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로 306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 남쪽 도갑봉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한 도갑사는 신라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이신 도선국사(道詵國師)께서 본래의 문수사(文殊寺)를 크게 개창하여 오늘에 이른 유서 깊은 도량이다. 조선 세조 2년(1456), 수미왕사(守眉王師)가 왕실의 명을 받들어 무려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 그리고 12개의 암자를 세웠다. 이후에도 연담선사, 허주선사, 초의선사 등 역대의 고승대덕들이 주석하며 깨달음의 참된 이치를 널리 펼쳤고, 수행과 가르침이 끊이지 않는 법등의 도량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도갑사는 또한 오랜 세월 동안 불교 예술과 문화의 정수를 간직해 온 귀중한 성보문화유산의 보고이다. 해탈문(국보), 마애여래좌상(국보), 석조여래좌상(보물), 문수·보현보살·코끼리상(보물), 그리고 도선·수미비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이 전해지고 있다. (출처 : 도갑사 홈페이지)
2025-10-23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백련사길 580
백련사는 무주 덕유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이 초암을 짓고 수도하던 중 그곳에서 흰 연꽃이 솟아 나와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절터에서는 광무 4년(1900)에 이하섭이 고쳐 지으면서 기념비를 세운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전쟁 때 건물들은 불에 타 없어졌으나, 경종 3년(1723)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하는 백련사의 종은 자리를 옮겨 두어 남아 있다. 1968년에 요사를 건립하며 백련암으로 불리던 절 이름을 백련사로 바꾸고 30여 년 동안 중창 불사에 힘썼다. 대웅전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이외에도 선수당, 원통전, 사천왕문, 일주문 등이 있으며, 불교의 계(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 의식을 행하는 백련사 계단이 사찰 뒤쪽에 있다. 특히 이 계단에는 누구든지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주변을 일곱 번 이상 돌면 그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전해 내려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양면 쌍산의로 459
쌍봉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39년 이전에 창건되어 혜철선사가 여름을 지냈고, 855년 경에 철감선사가 중국에서 귀국하여 이곳의 산수의 수렴함을 보고 창건한 절로 지형이 절의 앞과 뒤에 산봉우리가 2개인 쌍봉이 되므로 이에 쌍봉사라 칭하였다. 창건 이후 퇴락한 절을 1081년 혜소국사가 창건 당시의 모습대로 중건하였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몇 차례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요문화유산으로는 철감선사탑, 철감선사탑비, 쌍봉사 대웅전이 있었다. 철감선사탑은 우리나라 석조 부도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며철감선사탑비는 신라 말 작품으로 귀부(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과 이수(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만 남아 있다. 그리고 총 높이 12m의 정방형 3층 건물인 대웅전은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3층 목탑의 모습을 전하고 있는 유일한 건물이었으나 1984년 촛불로 인한 실화로 소진되었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템플스테이가 있다. 휴식형과 장기 휴식형으로 나누어져 있다. 공양, 예불, 명상, 스님과의 차담을 할 수 있으며, 청정도량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사찰 주변을 산책하며 건강한 심신을 유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무위사 사적을 보면 875년(헌강왕 1) 도선[道詵]국사가 갈옥사[葛屋寺]로 창건한 것이 첫 번째 중창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905년(효공왕 9) 이후 선종인 가지산문[迦智山門] 계통의 선각국사[先覺國師] 형미[逈微](864∼917)가 고려 태조 왕건의 요청으로 무위갑사[無爲岬寺]에 머무르면서 절을 중수하고 널리 교화를 펴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무위사는 형미 스님이 주석했던 10세기 초 이전에 무위갑사라는 절로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위사 사적에 의하면 고려 시대인 946년(정종 1)에 형미가 제3창을 하면서 모옥사[茅屋寺]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946년은 이미 형미가 입적한 30년 뒤이며, 최언위가 지은 ‘고려국고무위갑사선각대사편광영탑비’가 세워진 해라서 믿기 어렵다. 이것은 아마 형미가 무위갑사를 왕건의 후원을 받아 크게 중창하면서 교화를 펼쳤던 사실을 후세 사람들이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무위사는 10세기 초 이전에 창건되었고, 형미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가지산문 소속의 선종 사찰이었음은 분명하다.
2025-07-02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위봉길 53
위봉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위봉산(추줄산)에 자리하고 있는 고찰이다. 고려 말 나옹스님이 중건하였고, 조선 세조 때는 선석, 석잠 두 스님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포련대사에 의한 60여 칸 건물 중수를 거쳐 1312년에는 전국 31 본산(일종이나 일파의 기본이 되는 큰 절) 중 하나로 전북 일원의 50여 말사를 관할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급속히 퇴락했다. 폐사 직전인 1988년 법중스님이 부임 후 바로 도량 정비를 시작하여 퇴락한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보수하였고, 여러 시주의 동참으로 100여 칸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현재는 보광명전, 극락전, 관음전, 삼성각, 나월당, 요사채 등을 갖추고 있고, 건물에 50~60명의 대중이 상주하고 있는 대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2025-03-18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천면 원천로 165-12
남원에서 동쪽으로 약 3㎞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백제 26대 성왕 때 지어진 것으로 절이 세워지기 전에는 부근의 깊은 물속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아 농작물을 해치고, 사람을 잡아먹는 등 갖은 행패가 심했으나 절을 지어 용담사라 한 후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용담 사지 석불입상은 고려 초기 거불상 계통을 따르고 있는 가장 우수한 작품의 하나로 평가되며, 높이 10m에 이르는 홀쭉하고 긴 모양의 용담사 칠층 석탑은 용담사 창건 당시의 유물로 여겨진다. 1914년에 옛 터에 중창했고, 1930, 1989년에도 중창 불사를 했다.
2025-10-31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1050
적상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찰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년)에 월인화상이 지었다고 전한다. 광해군 6년(1614년)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년)에 선운각이 설치되어 적상산 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되었다. 이때 사고를 방비하기 위하여 호국사를 지었으며,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안국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적상산 양수발전소 건설 때문에 이 사찰은 호국사지의 위치로 옮겨져 안국사가 호국사지에 있다. 인근에는 무주리조트와 라제통문 구천동 계곡이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2025-09-09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입석길 94-129 실상사
지리산 기슭의 평지에 있는 실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증각대사가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개산하면서 창건했다. 이 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 버린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정유재란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숙종 26년(1700년)에 다시 지었으나, 고종 19년(1882년)에 거의 불타 버려 일부만 남게 되었다. 현재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국보인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 석탑과 보물 11여 점을 포함하여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17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진입로는 논 가운데 있고, 절은 산속이 아닌 들판에, 수목에 둘러싸여 있다. 절 입구에서 반달 모양의 돌다리인 해탈교를 지나면 보이는 돌장승이 인상적이다.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마음이 편안해지며 고요한 사찰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2026-08-04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내소사로 191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세운 절로 원래 이름은 소래사이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 대사가 절을 고칠 때 지은 것이라 전한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포개진 모습은 조선 중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웅보전의 꽃문살에서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으며, 불상 뒤쪽 후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 좌상이 그려져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연못을 바라보며 돌을 던지는 장면, 그리고 그 모습을 민정호가 지켜보던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내소사 경내의 연못에서 촬영되었다. 고즈넉한 사찰 분위기와 함께 연못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드라마의 감성을 더욱 깊이 있게 담아낸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화순 8경 중 2경인 운주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 운주스님이 창건했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있는데,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근거해 비보 사찰로 세웠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전해지고 있다. 비보 사찰이 [돕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풍수지리상 지세를 보완해 주는 방법으로, 인공적으로 탑이나 불상들을 조성하여 세워진 사찰을 의미하며 부처의 힘을 빌려 호국과 중생들의 안녕을 도모한 도선 스님의 지혜가 담긴 사찰이다. 임진왜란으로 사찰이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있었으나 18세기에 자우가 불상과 불탑을 수리하고 약사전을 중건하였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금동불입상을 비롯하여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의 파편, 기와편 등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늦어도 11세기 초인 고려 초기에는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운주사 골짜기 서쪽 언덕 위에 땅에 누워있는 한 쌍의 부부와불이 있다. 절 주변은 문화재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2017년 [화순 운주사 석탑군]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최종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