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약수사(서울)

약수사(서울)

2026-03-18

서울특별시 관악구 약수암1길 28 약수사

약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에 속해있는 사찰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숲이 많아 남쪽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관악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 사찰에서 전해지는 창건연대는 1421년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스님이 창건하고 어느 때 인지 모르지만 김처사라는 사람이 세 칸의 초가로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1880년에 명성황후가 법당을 중건하여 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1914년 조성된 지장시왕도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산신도가 전한다. 이후 1923년 화재 피해를 입은 것을 당시 주지인 영원스님이 중창하였으며 1934년 칠성각도 중건하였다. 1969년에는 혜초스님이 대웅전 석가모 니후불도와 법당을 보수하여 법등을 이어갔다. 그 뒤 1970년 묘희스님이 새로 절을 맡아 가꾸어 오다가 1993년에는 잠시 승가대 소속의 비구니 사찰로서 운영되었다. 1991년에는 노인복지전문요양원도 만들어 운영하였고 현재 미림어린이집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으며 1995년에는 광옥스님이 중창불사를 통해 다시 조계종 소속 사찰이 되었다. 2014년에는 정인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였고 포교 기도도량 및 편안한 휴식처로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자운암(서울)

자운암(서울)

2026-03-04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신림동)

서울시 관악구 전통사찰로 등록된 자운암은 서울대학교 신공학관 뒤에 있는 골짜기 중턱에 위치해 있다. 이 사찰은 1396년(태조 5)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창건 당시 자운암(紫雲庵)이라 하였으나 1734년(영조 10) 대효선사가 중수하면서 자운암(慈雲庵)이라 개명하였고 1777년(정조 원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조선 9대 왕인 성종이 어머니 소혜왕후(昭惠王后)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봉안한 위패가 아직까지 전해오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사찰이 위치한 곳은 자하동천(紫霞洞天 )이라 불리던 계곡으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나무가 울창하게 선경을 이뤄 예부터 자하시경(紫霞詩境)이라 불려 왔다. 대웅전 뒤편에 자리한 마애미륵부처의 조성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명당 요처에 자리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을 배출하는 기도의 영험함이 알려지면서 신도들의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가 끊이지 않는 관악산 내 기도성취도량이다.

관음사(서울)

관음사(서울)

2026-03-17

서울특별시 관악구 승방1길 109-80 (남현동)

관음사는 관악산 주봉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봉우리 기슭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말사이다. 신라 제51대 진성여왕 9년(895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비보사찰로 불교의 호국 사상에 따라 명당에 세워진 절이다. 이후 천여 년 동안 기도 도량으로 유지되다가 1924년 주지 석주에 의해 증축되었고 1974년 박종하 스님이 대웅전, 용왕각, 종각 등을 중건하였다. 조선 고종 20년경 봉은사 스님들이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당시 중건 사실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어 세간의 고통을 듣고 구제해 준다는 뜻에서 관음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용문산관광단지

용문산관광단지

2026-03-13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산관광단지에 가까워지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높이 1,157m의 용문산이다. 관광단지를 품에 안고 있는 용문산의 웅장한 산세와 기암괴석이 만들어 낸 절경은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 용문산 정상은 이전에 출입금지 지역이었으나 2007년에 개방되어 많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다. 가장 큰 볼거리로는 용문사와 천연기념물인 용문사 은행나무이다. 용문사에 가면 가장 먼저 찾는 은행나무는 높이 60m, 둘레 12m가 넘고, 나이는 약 1100년에서 1300년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 또한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이다. 관광단지 내에는 관광단지 초입에 있는 토속음식마을과 친환경 농업박물관, 추억의 청춘뮤지엄, 정지국사부도비, 용문산지구전적비 등이 있다. 또한 넓은 잔디광장과 캠핑장, 분수대, 야외공연장 등을 갖추고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인근에는 펜션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숙박도 가능하다.

효민공 이경직 묘역

효민공 이경직 묘역

2025-03-28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경직 선생을 기리고 있다. 이경직은 이항복과 김장생의 제자로, 조선 선조 때 승문원에서 처음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강화유수를 지내었고, 병으로 생을 마칠 때까지 도승지, 호조판서 등의 여러 관직을 맡아보았다. 1617년(광해군 9)에는 일본에 회답사의 종사관으로 다녀오고, 1642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전라절도사로서 커다란 공을 세웠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병조참판으로 청나라의 사신과 교섭하여 화의를 성립시키기도 하였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으로, 당시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1668년(현종 9)에 세운 것으로, 김류가 비문을 짓고 그의 셋째 아들인 이정영이 글씨를 썼다. 역사적·학술적으로 보존할 만한 가치를 지니며, 선생의 묘소 일대는 조선시대 당시의 묘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정정공강사상묘역

정정공강사상묘역

2025-01-10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조선 중기 문신 강사상(姜士尙: 1519~1581)과 그의 부인 파평윤 씨(坡平尹氏)의 합장묘가 있는 묘역이다. 강사상은 1543년(중종 38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46년(명종 1년) 식년문과에 병과 급제하여 한림이 되어 수많은 관직을 거쳤다. 강사상은 강홍립 장군(1570 ∼1627)의 조부로서 1561년에 명나라 성절사, 1568년 사신원 접사, 1570년 명나라 주청사로 활동하는 등 외교에 역할이 컸으며, 평상시 국가의 치란은 천운에 있지 인력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라 하여 당파에 초연하였다. 신도비문은 권유가 짓고 본문은 이진검이, 비문의 전서는 권규가 쓴 것이다.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

2026-09-29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산 4-9

관악산 북쪽 골짜기로 올라 약수터를 지나면 거대한 절벽이 서 있는데,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북쪽 바위 면에 미륵불 좌상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연꽃 봉오리를 든 불좌상으로 연꽃 대좌 위에 앉아 있다. 얼굴은 온화하고 풍만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몸을 왼편으로 살짝 틀었다. 머리 광배에는 이중 테두리를 둘렀고, 몸 광배는 한 줄의 음각선으로 나타냈다. 몸에는 가사를 입혔는데, 가슴은 조금 돌출되었고 안에 입은 평행의 내의와 내의를 묶은 매듭이 자세히 조각되어 있다. 낮은 육계, 소반의 머리칼, 다소 풍성하게 보이는 갸름한 얼굴 등은 상당히 우수한 기법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늘씬한 체구나 타원형의 어깨 등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17세기 조선조 사회에도 미륵신앙이 상당히 유행하였음을 알려 주고 있다.

서울 남현동 요지

서울 남현동 요지

2025-03-19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3길 60 (남현동)

서울 남현동 요지는 관악산 끝자락에 위치한 통일신라 토기 가마터이다. 1973년에 처음 발견된 이후 1976년에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하였다. 조사 결과 서울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백제 토기 가마터로 알려지면서 1976년에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2006년에 실시한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시굴 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 가마터의 폐기장임을 확인하면서 이 시기 토기 가마터로 확정하였다. 사당초등학교를 지으면서 가마터 유적이 상당 부분 파괴되었으나 가마 여러 개가 이곳에 밀집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마는 연소실 - 소성실 - 연기배출구로 구성된 반구형의 터널형 굴 가마로서 가마의 흔적인 불태운 흙과 재의 범위로 보아 길이 4.5m, 너비 0.7m 정도 규모로 추정된다. 가마 벽체와 바닥은 점토를 발라 만들었으며, 바닥은 약 17도 기울어진 경사 가마이다. 가마 내부와 주변에서 완형 토기 4점을 비롯하여 많은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토기 조각은 뚜껑과 사발, 항아리 조각이 대부분이며, 도장무늬가 찍힌 토기 조각이 많은 것으로 보아 7~8세기경에 만든 가마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현기촌하지위(縣器村何支爲)’, ‘성음(性音)’, ‘사지작(舍知作)’ 등을 새긴 명문 토기 조각도 출토되어 당시 토기의 생산과 공급체계, 지방행정 체제를 밝히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적상산사고지

적상산사고지

2025-07-30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960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에 보관 중이던 실록을 제외하고 나머지가 전소되자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실록 3부를 더 인쇄하여 전주본 원본과 교정인쇄본을 합쳐 실록 5부를 만들어 춘추관, 마니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에 각각 보관했다. 1641년(인조 19) 이곳에 선원전을 건립하고 선원록을 보관함으로써 적상산사고는 비로소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 복본 34권(왕조별로 1권씩 27권, 무주에 관한 기록 7권)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 복본 5권을 제작해 비치했다. 실록 제작·편찬 과정 및 옮기는 과정 등을 담은 22종의 전시패널을 설치했다. 무주군청 소속의 문화관광해설사가 관람객에게 적상산사고의 역사적 가치와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알기 쉽게 해설을 하고 있어 학생을 낀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꼭 가볼만한 관광지로 꼽히고 있다.

서울 구 벨기에영사관 (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 구 벨기에영사관 (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2026-08-21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2076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이 둥지를 튼 이곳은 대한제국 시절 벨기에 영사관으로 사용된 건물로, 1905년 회현동에 준공되어 1983년 지금의 남현동으로 옮겨졌다. 길게 뻗은 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자유롭게 배열된 두 개 층의 방들에서는 다양한 층위의 관람객에 특화된 공공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사적으로 등록된 서울 구 벨기에영사관은 1901년 한국과 벨기에 사이에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세워진 건물이다. 1903년에 착공하여 1905년에 완공되었다. 원래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2가 78번지(현 우리은행 본점 사옥 위치)에 있었는데 1970년도 도심 재개발 사업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 건물은 1919년 벨기에 영사관이 충무로 1가로 이전한 뒤 요코하마 생명보험사 사옥으로 쓰이다가 일본 해군성 무관부 관저로 쓰였다. 광복 후에는 해군헌병대에서 사용하였다. 1970년 상업은행이 이 건물을 사들여 1983년 이곳으로 옮겨 상업은행(우리은행 전신) 사료관으로 사용하였다. 2004년 9월부터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벽돌조 절충식 건물이다. 일본인 건축가 고다마가 설계하였다. 붉은 벽돌과 화강석을 혼용하여지었고 건물의 와관은 당시 일반적인 건물들과는 달리 비대칭형이다. 현관 앞에 있는 두 개의 돌기둥과 발코니에 길게 늘어서 있는 돌기둥들은 고전주의적이다. 전면의 창부분은 르네상스식 분위기를 띠고 있으며, 1층과 2층에 설치된 베란다의 기둥들은 이오니아 양식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