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괴산 송시열 유적

괴산 송시열 유적

2026-07-29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188

조선시대 성리학 중심지 중 한 곳인 괴산 송시열 유적은 송시열(1607~1689)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으로 조선 효종(재위 1649~1659)을 도와 북벌정책을 추진하는 등 자주적인 정치를 펼쳤으며, 주자학의 대가로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화양동계곡 안에 있는 화양서원터(華陽書院址)와 만동묘터(萬東廟址)를 중심으로 암서재, 읍궁암, 애각사적, 묘소와 신도비 등 송시열과 관련된 사적들로 구성되었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잠시 머물렀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이 많이 모였던 장소이다. 만동묘의 자리는 중국 명나라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던 곳이다. 만동묘 주변에는 송시열과 관련된 암서재, 하마비, 읍궁암, 송시열 무덤 및 신도비 외에 암서재 근처의 암벽에 ‘충효절의’, ‘비례부동’이란 글을 새긴 곳이 많이 있다. 또한 암서재는 송시열이 만년에 화양동에 은거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읍궁암은 효종(孝宗)의 승하로 북벌이 좌절되자 효종의 기일마다 이곳에 올라 통곡하였다고 전한다. 이 외에도 화양동에는 충효절의, 비례부동 등 많은 애각사적이 산재해 있어 송시열의 북벌애국사상과 민족자존정신이 깃든 유적의 성격과 조선성리학의 중심지로서 일제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되고 왜곡된 사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송시열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정신이 깃든 곳일 뿐 아니라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로서, 한때는 일제에 의해 파괴되었던 곳이다. 민족정기회복을 위한 교육 장소로서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곳이다.

산호공원

산호공원

2025-12-15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용마산길 142 (산호동)

산호공원에는 일명 용마산성이라 불리던 과거 성터인 마산 왜성이 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마산의 용마산(85.4m)을 군사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축성을 시작하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완공한 것이라고 전한다. 용마산성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석축 일부만 남아있으며 현재는 산호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산 아래로는 마산 앞바다와 자유무역지역 창원공단 등이 있으며 마산 출신 시인들의 영혼이 새겨져 있는 [시의 거리]에는『가고파』의 이은상,『고향의 봄』을 남긴 이원수, 우수의 황제로 일컬어지는 김수돈, 동요『산토끼』의 작사자 이일래, 5월의 서정을 노래한 김용호, 갈대의 이미지를 읊은 정진업, 만남과 이별의 일상사를 간이역을 통해 표현한 박재호, 마산 유맥을 잇는 현장인 관해정의 유구성을 밝힌 김태홍 등의 작품을 새긴 시비들이 있으며 공원 안에는 마산충혼탑, 마산도서관 등이 있다.

진천 태화4년명 마애여래입상

진천 태화4년명 마애여래입상

2025-03-18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화5길 30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전리에 있는 마애불이다. 마애불이란 절벽의 거대한 바위면이나 돌에 선각이나 돋을새김으로 새긴 불상을 말한다. 이 불상은 바위면에 가는 선으로 새긴 배(舟) 모양의 타원형 광배(光背)를 갖추고 연꽃잎이 새겨진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서 있다. 불상의 각 신체 부분은 파손이 심하여 잘 알아볼 수가 없다. 불상 옆에 새겨진 글을 통해 신라 흥덕왕 5년(830)에 조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선의 새김이 아름답고 절대 연대를 가지고 있는 불상으로 진천지역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남망산 조각공원

남망산 조각공원

2026-09-29

경상남도 통영시 남망공원길 29

남망산 조각공원은 경상남도 통영시 동호동에 위치한 도심형 공원으로, 충무공원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 해발 72m의 낮은 구릉지에 조성되어 있으며,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공원 내에는 체육시설과 산책로, 정자, 조형물 등이 함께 조성되어 있다. 공원 중심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한산대첩비가 있으며, 수향정(2층 팔각정자)과 열무정 같은 쉼터 공간도 함께 배치되어 있다. 벚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산책길을 따라 이동하면 남동쪽으로 거북등대, 한산도, 해갑도, 죽도 등 한려수도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어, 자연과 함께 통영의 역사적, 지리적 특징을 관람할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남망산 정상 주변을 중심으로, 세계 10개국 15명의 현대조각가 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공원에는 통영시민문화회관, 오광대 놀이마당, 청마 유치환 시비, 김상옥 시비 등 문화시설이 함께 위치하고 있어 예술과 문학을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효석 가산공원

이효석 가산공원

2025-07-03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기풍3길 6

이효석 가산공원은 이효석 선생의 문학세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인 이효석문화예술촌 내에 위치한 곳이다. 본래 매년 3월과 10월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제당이 있던 곳이었으나 이를 없애고 1991년 가산공원을 조성하였다. 공원에는 약 150여 년 이상 된 돌배나무가 자리 잡고 있으며 매해 이 공원에서는 이효석 선생의 추모식이 열린다. 그리고 매년 9월 메밀꽃이 한창일 때 효석문화제가 개최되는데 아름다운 소설의 배경이 된 이곳을 기억하고 찾는 방문객들로 이 일대는 온통 축제의 장으로 변모한다.

황성공원

황성공원

2026-08-20

경상북도 경주시 황성동

경주 황성공원은 신라 때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쓰인 역사가 있는 오래된 숲에 자리해 있다. 삼릉에 뒤지지 않는 멋스러운 소나무와 수 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고목이 어우러져 울창한 숲을 이룬다. 여름이면 솔숲 산책로에 맥문동 군락이 조성되어 수려한 풍광을 더 해주고 가을이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에 단풍이 아늑하게 물든다. 또한 도심 속 힐링 공간으로 경주 시민과 관광객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으며 문화유적 답사에 지친 여행자들의 발을 편하게 해주는 쉼터 구실을 하고 있다. 가을 10월 초순에는 격년제로 신라문화제가 개최해 볼거리를 더해준다.

월곶포구

월곶포구

2026-05-21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서해안과 맞닿아 있는 월곶포구는 만조 전후로 귀항하는 배들과 활기찬 항구 풍경이 어우러져 시흥의 대표 관광명소로 꼽히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포구를 따라 길게 늘어선 어선들과 바닷바람이 전하는 내음이 더해져, 바다의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바다와 어우러진 이곳은 고즈넉한 산책과 해산물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많은 방문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출처 : 시흥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금강유원지

2025-05-08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우산로1길 88-1

금강유원지는 경부고속도로의 옥천과 영동 인터체인지 사이에 시설된 금강변의 휴게소이다. 휴게소가 세워지기 전부터 이 일대는 푸른 강물이 굽이쳐 흐르던 금강 유역으로 금강유원지라 불렀다. 휴게소와 인근 마을에 전력 공급을 책임지는 소수력발전소를 위해 라바댐을 설치했는데, 험준한 산과 금강을 막아 만든 댐이 주변의 산세와 함께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이룬다. 여울낚시를 즐기는 낚시꾼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잠수교 구실을 하는 이 댐을 건너 맞은편 우산리(牛山里)에 쉽게 이를 수 있다. 이곳에는 경부고속도로 공사 때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봉안한 위령탑이 있다.

공지천(황금비늘테마거리)

2025-03-18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이디오피아길 25

춘천 의암댐에서 10㎞ 떨어진 공지천변에 위치하고 있다. 조각공원·분수대·보트장·잔디광장·체육시설·야외공연장을 비롯하여 전적기념관·KT&G상상마당·에티오피아 참전 기념비 등의 시설이 있어 연중 관광객으로 붐빈다. 공지천변에는 선착장과 보트시설도 갖춰져 있어 겨울을 제외하면 연중 보트놀이를 즐길 수 있으며 매년 8월 초에는 이곳 야외공연장에서 MBC강변가요제가 열린다.

서울 정릉(신덕황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2026-02-12

서울특별시 성북구 아리랑로19길 116 (정릉동)

정릉은 조선 1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 강씨(~1396)의 능이다. 1396년(태조 5) 신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는 취현방(현 서울 중구 영국대사관 근처)에 정릉을 조성하고, 자신이 묻힐 자리까지 함께 만들었다. 그러나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정릉의 능역 100보 근처까지 집을 짓는 것을 허락하였다. 1408년(태종 8) 태조가 세상을 떠난 후 다음 해(1409년) 정릉이 도성 안에 있는 것이 예에 어긋난다 하여 사을한 산기슭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옛 정릉의 목재는 태평관(太平館)을 짓는 데 사용하였고, 병풍석과 난간석은 홍수로 무너진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다. 일반묘나 다름없었던 정릉은 260여 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에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정릉의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이 있고 석양과 석호는 1쌍씩 배치하였다. 능침 석물 중 장명등과 석상(혼유석)을 받치는 고석(鼓石)만 옛 정릉의 석물이고 나머지는 현종 대에 다시 만든 석물이다. 장명등은 고려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왕릉 중 가장 오래된 석물이다. 능침 아래에 있는 비각에는 1개의 표석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세운 ‘조선국 신덕왕후 정릉’의 표석을 대한제국 때 신덕왕후를 황후로 추존하면서 ‘대한 신덕고황후 정릉’으로 바꾸었다. 향로와 어로는 지형에 맞게 조성하여 한 번 꺾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