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8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대밭담로 5-9
한려해상국립공원은 경상남도 사천시, 거제시, 통영시, 하동군, 남해군 및 전라남도 여수시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이며 해양과 도서, 육지가 빚어내는 아기자기한 지형경관이 뛰어나 매년 100만 명 이상의 탐방객이 찾고 있는 곳이다. 1968년 우리나라에서 4번째 이자 해상공원으로는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경남 거제시 지심도에서 전남 여수시 오동도까지 300리 뱃길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과 천혜의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해양생태계의 보고이다. 상주, 금산지구, 남해대교지구, 사천지구, 통영, 한산지구, 거제, 해금강지구, 여수, 오동도 지구의 전체 면적은 535.676㎢이며 76%가 해상 면적이다.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로 이름난 한려수도는 71개의 무인도와 29개의 유인도가 있다.
2026-03-12
대전광역시 서구 상보안윗길 160
구봉산의 유래는 봉우리 9개가 솟아있다 하여 구봉산이라 한다. 대전광역시 서구 관저동, 가수원동, 괴곡동, 흑석동, 봉곡동에 둘러싸여 있다. 대전역을 출발점으로 하여 시내버스 1번, 201번, 202번을 이용하여 서대전 IC에서 하차, 길 건너 관저골 입구로 진입 후, 관저골에서 구봉농장 주차장까지 직진하면 구봉산에 들어설 수가 있다. 산행코스는 구봉농장 주차장에서 왼쪽 등산로를 따라 구봉정 방향으로 진행하여 구봉정에서 성애양로원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다. 구봉정을 올라가는 길에 나무 구름다리와 철다리는 꼭 체험한 후 구봉정 꼭대기의 팔각정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대전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출처 : 대전 문화관광 홈페이지)
2025-09-23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
파평을 본관으로 하는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의 탄생 설화와 관련된 연못이다. 윤신달은 통일신라 말 고려 초의 인물로 이곳 용연에서 태어나 파평 윤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고려 왕조를 세운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 통일의 공을 세워 개국공신 2등을 받았다. 이후 태자를 교육하는 삼중대광태사의 벼슬에 올랐으며, 태조가 죽고 혜종이 즉위하자 서라벌의 동경대도호부 대도독으로 임명되었다 용연은 태곳적부터 지하수가 솟아나는 천연의 연못으로 윤신달의 탄생 설화는 다음과 같다. 신라 진성왕 7년(893) 음력 8월 15일에 운무가 자욱한 용연에 금궤가 떠올라 근처에 사는 윤온 할머니가 건져서 열어보니 옥동자가 들어 있었다. 아이는 옥색털로 싸여 있고 양어깨는 붉은 점이 있었으며, 양쪽 겨드랑이에는 비늘이 81개, 발바닥에는 북두칠성 모양으로 흑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이는 자라서 높은 벼슬을 지냈는데 그가 바로 파평 윤씨의 시조인 윤신달이었다. 용연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연못으로 전체 면적은 약 8.366㎡이다. 1920년에 세운 파평 윤씨 용연비와 1972년에 세운 파평 윤씨 발상지비가 근처에 있다.
2025-09-12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구인사길 73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 사찰로서, 전국에 140개나 되는 절을 관장하고 있다. 1945년에 건립되었으며, 1966년 현대식 콘크리트조로 지은 이색적인 건물이다. 소백산 국망봉을 중심으로 장엄하게 늘어선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연화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상월원각 스님이 1945년에 이곳에 손수 칡덩굴을 얽어 삼간초암을 짓고 정진 끝에 대도를 성취하여 구인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구인사는 현대식 건물의 대가람 (총 건축면적 15,014㎡)으로 절 안에는 5층 대법당을 비롯하여 삼보당, 설선당, 총무원, 인광당, 장문실, 향적당, 도향당 등 50여 동의 건물들이 경내를 꽉 메우고 있으며 만여 명이 취사할 수 있는 현대식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구인사를 방문할 때 두 가지 볼거리를 빼놓으면 안 되는데, 이는 바로 국내 최대 규모의 대법당과 법어비이다. 대법당은 1980년 4월 29일 준공된 5층 건물로 국내 최대 규모의 법당이다. 5층의 대법당은 상월원각 대조사가 삼간초암을 얽어 처음 구인사를 창건하고 수행하 시던 그 자리에 세워져 있다. 이는 남대충 대종사께서 대조사님의 생전 유지를 받들어 전통양식과 현대적 공법으로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대법당을 지은 것이다. 상월원각 대조사 법어비는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 일생동안 종도들에게 가르쳐 오신 모든 법문을 총 집약시켜 간략하고 명료하게 요약하여 설법하신 법어를 새겨놓은 비석이다. 이 법어 안에는 부처님 팔만대장경의 모든 진리가 다 포함되어 있으며 넓고 미묘한 불법의 이치를 담고 있다. 구인사에서는 나를 들여다보는 재미있는 체험, 단주, 연등 만들기 체험, 당일형부터 숙박형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의 템플스테이도 진행하고 있다.
2025-11-03
충청남도 부여군 무량로 203
충남 부여군 외산면에 자리한 천년고찰 ‘무량사’는 만수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신라 문무왕 때 범일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몇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국내 제일의 아미타 기도 도량으로 사천왕문을 지나면 정면에 보물로 지정된 무량사 극락전이 보인다. 사천왕문은 무량사의 멋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위치로, 층 구분이 없는 2층 극락전과 오 층 석탑(보물), 석등(보물)이 일렬로 늘어서서 장관을 이룬다. 극락전 소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도 위용을 자랑한다. 무량사는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이 입적한 곳이다. 경내에 그의 부도와 초상화가 있다. 행정구역 상 부여군에 속하지만 보령 시내에서 더 가깝다.
2026-09-08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로 25-15
와우정사(臥牛精舍)는 경기 용인시 해곡동 연화산의 48개 봉우리가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에 위치한 사찰로 1970년 실향민인 해월삼장법사 (속명 김해근)가 부처님의 공덕을 빌어 민족화합을 이루기 위해 세운 호국사찰이며 대한불교 열반종의 본산으로 3천여 점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여러 불상 중 절 입구에 세워진 불두(佛頭)와 산중턱에 있는 와불(臥佛)이 유명하다. 높이가 8m 인 불두는 초대형이며, 와불(누워있는 불상)은 높이 3m, 길이 12m에 이르는 것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향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다. 경내에 있는 거대한 불두와 황동 10만 근으로 10년간 만든 장육오존불, 무게가 12톤에 이르는 통일의 종(88 서울올림픽 때 타종), 그리고 우리나라 최대의 청동미륵반가사유상이 있으며, 석조약사여래불 등이 있다. 세계최대이며, 유일한 석가모니 불고행상(佛苦行像)도 와우정사의 자랑거리이다. 이 불고행상의 본체는 백옥, 좌대는 청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반 전에 이르는 계단옆의 통일의 돌탑은 세계각국 성지에서 가져온 돌 한 개 한 개를 모아 쌓아가고 있다. 와우정사에는 인도·미얀마·스리랑카·중국·태국 등에서 모셔온 불상 3천 여점이 전시되어 있어 세계 각국의 불교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 세계만불전(萬佛殿)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와우정사는 삼보(三寶)를 다 봉안하고 있다. 인도·스리랑카·미얀마에서 들여온 석가모니 불진신사리(佛眞身舍利), 파리어 대장경과 산스크리스트어 장경(藏經) 등이 봉안되어 있다.
2026-06-1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공원길 23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대둔산은 완주의 자랑이자 보물이다. 금남정맥 줄기가 만경평야를 굽어보면서 솟구쳐 절경을 이루고 있다. 곳곳에 드러난 화강암 암반이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고, 빼곡한 숲이 첩첩으로 쌓여 있어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려 온 곳이다. 특히, 정상 부근에 있는 대둔산구름다리는 대둔산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놓쳐서는 안 되는 명소이다. 대둔산구름다리를 건너면 약수정이 나오고 여기서 삼선계단을 타면 왕관바위로 간다. 봉우리마다 한 폭의 산수화로 그 장관을 뽐내는 대둔산은 낙조대와 태고사, 그리고 금강폭포, 동심바위, 금강계곡, 삼선약수터, 옥계동 계곡 등 신의 조화로 이룬 만물상을 보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 해발 878m 우뚝 솟은 최고봉 마천대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바위 봉우리들의 자태가 수려하다. 독특한 형상의 기암괴석들은 잘 다듬어진 조각품이다. 분재의 군락이다. 차라리 수석의 보고다. 눈 가는 곳 어디든 아름답고 웅장하다.
2025-09-15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반구정로85번길 3
이곳은 조선시대 초기 명재상이며 청백리의 귀감인 방촌 황희(1369~1452) 선생의 유적지이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다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관직에 나오게 되었다. 선생은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의 여러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문물과 제도의 정비에 노력했고, 세종연간에는 19년간 의정부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에 재직하면서 세종성세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문종 2년(1452)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탄현면 금승리 선영에 예장하고 세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유적지 내에는 선생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세조 1년(1455)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황희선생 영당과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보낸 반구정이 위치하고 있다. 본래 영당의 건물은 6·25전쟁 때 전부 불탔으나, 1962년 후손들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양식의 맞배집으로 복원하였고, 영당 내부 중앙에 별도의 감실을 두고 선생의 영정을 모셨다. 반구정은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기암절벽 위에 위치하는데 예로부터 갈매기가 많이 모여들어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라는 뜻에서 이름을 지었다. 정자 내부에는 미수 허목의 「반구정기」와 여러 개의 중수기 편액이 있다. 이외에도 월헌공 황맹헌 선생 부조묘, 앙지대, 경모재, 방촌 황희 선생 동상 등이 있으며, 입구에는 황희 선생의 업적과 유품을 전시한 방촌기념관이 있다.
2025-11-28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파주삼릉은 공릉(장순왕후)과 순릉(공혜왕후), 영릉(효장세자와 효순왕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릉은 조선 8대 예종의 첫 번째 왕비 장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공릉은 1461년(세조 7) 장순왕후가 왕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1462년(세조 8)에 파주 보시동(普施洞)인 현재의 자리에 왕세자빈의 묘로 조성하여 장순빈묘(章順嬪墓)라 불렀다. 이후 1470년(성종 1) 장순왕후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공릉이라 하였다.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석양과 석호 각 1쌍만 배치하여 간략하게 조성되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는 지형에 맞게 조성하여 한 번 꺾여있다. 순릉은 조선 9대 성종의 첫 번째 왕비 공혜왕후 한씨의 능이다. 순릉은 1475년(성종 5) 공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언니 장순왕후의 공릉이 있는 현재의 자리에 조성되었다. 순릉은 파주 삼릉에 있는 3기의 능 중에서 유일하게 왕릉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는데, 이는 공혜왕후가 중전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능침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고, 왕릉의 형식에 맞게 문석인, 무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2쌍을 배치하였다. 석상을 받치는 고석(鼓石)의 귀면 무늬가 넓게 조각된 것이 특이하다.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수라간, 수복방 등이 있고, 비각 안에는 ‘조선국 공혜왕후 순릉(朝鮮國 恭惠王后 順陵)’이라고 새겨져 있는 표석이 있다. 영릉은 황제로 추존된 진종과 효순황후 조씨의 능이다. 영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진종, 오른쪽(동쪽)이 효순황후의 능이다. 1728년(영조 4) 진종이 왕세자(효장세자)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1729년(영조 5)에 파주 순릉 왼쪽 언덕인 현재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1751년(영조 27) 효순황후가 왕세자빈(현빈)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1752년(영조 28) 효장세자묘 동쪽에 묘를 조성하였다. 1776년 영조가 세상을 떠나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정조의 계승상 아버지가 되는 효장세자가 진종으로 추존되면서 능의 이름을 영릉이라 하였다. 영릉은 왕세자의 묘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간소한 모습이다.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각 1쌍을 배치하였다. 능침 아래에는 2개의 비각 안에 3개의 표석이 있다. 1비는 효장세자와 효순현빈의 표석, 2비는 진종대왕과 효순왕후의 표석, 3비는 진종소황제와 효순소황후의 표석이다. 이는 진종이 추존될 때마다 표석을 새로 세웠기 때문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2026-05-08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보광로474번길 87
광탄면 영장리 고령산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894년(진성여왕 8)에 어명에 의해서 도선이 창건하였고 1388년(우왕 14)에 무학이 중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1622년(광해군 4)에 설미와 덕인이 법당과 승당을 복원하였다. 1631년(인조 9)에는 도원이 범종을 만들기 위하여 모연을 시작하였는데 3년 동안 청동 80근을 모은 뒤 죽게 되자 신관이 그 뒤를 이어 1634년에 300근의 범종을 완성하였다. 1740년(영조 16)에 부근에 있던 영조의 생모 숙빈최씨의 묘소인 소령원의 기복사가 되어 대웅보전, 관음전을 중수하고 만세루를 창건하였다. 또한 소령원의 기복사로 정해지면서 사찰 내에 숙빈최씨의 위패를 모실 어실각이 지어졌고 그 앞쪽에는 영조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직접 심었다는 3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원통전, 어실각, 지장전, 웅진전, 산신각, 만세루, 승당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1215년에 만든 목조비로자나삼존불과 문수·보현보살상이 봉안되어 있고, 나한전에는 1863년에 조성한 삼세불과 나반존자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쌍세전에는 1863년에 조성한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도 영조의 친필 편액과 김정희의 친필 편액, 부도 1좌가 있다. 보광사 주변은 숲과 계곡, 호수가 어우러져 자연 관광지로도 각광 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장호수 흔들다리를 비롯해 장흥자색수목원 등 같이 둘러보아도 의미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