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배내골(울산)

배내골(울산)

2025-11-21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울주군 상북면과 양산시 원동면에 걸쳐있는 배내골은 영남 알프스라 불리고 있는 가지산 높은 봉우리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1급 청정수가 모여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맑은 개울 옆으로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배내골이라 한다는 이곳은 고지대 사이에 끼어 있는 긴 골짜기이기 때문에 일조량이 다른 곳보다 2시간 이상이나 짧고 맑은 계곡물이 계속 흘러내려 여름에도 냉기가 감돈다. 계곡의 아름다운 모습과 고로쇠 수액이 나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배내골계곡은 상수도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심이 깊은 웅덩이와 급류 지역이 많아 물놀이와 취사 행위가 일절 금지되어 있다.

목도

목도

2025-03-27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당목길

※ 25년 3월 산불로 인해 상록수림 초본류, 관목류 등 일부가 소실되어 방문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text202503{ COLOR: #FF0000; } 묵도는 울주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으로 육지로부터 200m 떨어져 있다. 동물의 눈과 같은 형상이라 하여 목도라는 이름을 얻었고, 동백나무가 섬에 가득하여 동백도라고 불리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춘도(동백섬)라 하였다. 신라 때는 대나무를 많이 길렀다고 하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는 주민들이 대나무 화살을 만들어 나라에 바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대나무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각종 상록수들이 무성하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곰솔나무, 사철나무, 후박나무, 다정큼나무 등이 흔하게 자라고 있으며 벚나무, 팽나무, 자귀나무, 두릅나무, 노린재나무, 칡, 멍석딸기, 인동덩굴, 등나무, 감나무, 구기자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섬 전체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목도의 상록수림은 우리나라 동해안 쪽에 있는 유일한 상록수림이며, 물고기가 서식하는데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여 물고기 떼를 해안으로 유인하는 어부림의 역할도 하고 있다. 현재 울주 목도는 상록수림의 보호를 위해 공개제한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관리 및 학술 목적 등으로 출입하고자 할 때에는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

2025-08-19

울산광역시 남구 두왕로 277

태화사지 십이지상부도는 옛 태화사의 터에서 나온 것으로 십이지상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태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재위 632∼647) 때에 처음 세워졌다고 전하는 절이다. 사리탑은 이름난 스님들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세운 돌탑을 말하며 부도라고도 한다. 이 부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돌종 모양 부도일 뿐만 아니라 표면에 십이지상을 조각한 것이 특이하다. 십이지상은 능묘나 석탑에는 보이나 부도에 새겨진 것은 이것이 유일한 것이다. 직사각형 모양의 대석 위에 돌종 모양의 탑신을 올려놓은 형태인데 탑몸 앞면에 감실 을 설치하고 그 아래쪽에 짐승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십이지상을 돋을새김했다. 남쪽에 새겨진 것은 오상(말)이고 북쪽에 새겨진 것은 자상(쥐)이다. 이 부도는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1962년 태화동 반탕골 산비탈 태화사터에서 처음 발견되어 부산과 학성공원 등을 거쳐 2011년 울산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1966년 보물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이 사리탑은 전체적으로 인도 산치탑과 같은 복발형 모양을 띠고 있다.

울주 구량리 은행나무

울주 구량리 은행나무

2025-06-10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울주 구량리 은행나무는 조선 초기 이지대 선생이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선생은 고려 후기 유명한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익재 이제현의 4대손이다. 조선 태조 3년(1394) 경상도 수군만호로 있으면서 왜구가 탄 배를 붙잡은 공으로 임금으로부터 상을 받았으며, 그 후 벼슬이 높아져 한성판윤에 이르렀다. 단종이 즉위한 1452년 수양대군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죽이고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키는 등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살게 되었다. 이때 서울에서 가져와 뒤뜰 연못가에 심었던 것이 이 은행나무라고 전한다. 따라서 이 전설대로라면 나무의 나이는 약 600년 정도인 셈이다. 구량리 은행나무는 높이 22m, 가슴 높이의 둘레가 12m에 이른다. 이 나무를 훼손하면 해를 입는다고 하고,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들이 나무에 정성껏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도 있다.

천전리공룡발자국화석

천전리공룡발자국화석

2025-06-10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천전리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약 1억 년 전 백악기 시대에 살았던 중대형 공룡들의 것으로 귀중한 자연사 자료이다. 천전리 공룡발자국 화석은 천전리 각석 맞은편, 대곡천 하천의 경상 누층군 대구층에 해당하는 암석 위에 드러나 있으며, 바위 위에 남아 있는 것은 대형 초식공룡인 한외룡 (울트라사우루스)을 비롯한 용각룡 열 마리의 발자국과, 중형 초식공룡인 조각류 이구아나룡에 속하는 고성룡(고성고사우루스) 한 마리의 발자국 등 2백여 개가 확인되고 있다. 나타난 발자국들의 흔적으로 보아 공룡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고 자유롭게 돌아다닌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공룡의 생활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공룡들이 아열대 기후의 대평원이나 하천, 평야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곳 일대가 먼 과거에는 열대 무역풍의 영향을 받는 사바나 지역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공룡발자국 화석 AR 앱을 다운로드하여 이곳을 방문하면 백악기 공룡들의 모습을 증강현실로 만나 볼 수 있으며 공룡과 함께 사진촬영도 하고 공룡 수집도 하는 등의 특별한 체험이 가능하다.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유네스코 세계유산]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유네스코 세계유산]

2026-07-21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태화강 물줄기인 대곡천 중류의 기슭에 각종 도형과 글, 그림이 새겨진 암석으로, 아래 · 위 2단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내용이 다른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조각이 가득하다. 윗단에는 쪼아서 새기는 기법으로 기하학적 무늬와 동물, 추상화된 인물 등이 조각되어 있다. 사실성이 떨어지는 단순화된 형태인데 중앙부의 태양을 상징하는 듯한 원을 중심으로, 양옆에 네 마리의 사슴이 뛰어가는 모습과 맨 왼쪽의 반인반수(半人半獸:머리는 사람, 몸은 동물인 형상) 상이 눈에 띈다. 표현이 소박하면서도 상징성을 갖고 있는 듯한 이 그림들은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아랫단은 선을 그어 새긴 그림과 글씨가 뒤섞여 있는데, 기마행렬도, 동물, 용, 배를 그린 그림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기마행렬도는 세 군데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간략한 점과 선만으로도 그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배그림은 당시 신라인의 해상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글자는 800자가 넘는데 왕과 왕비가 이곳에 다녀간 것을 기념하는 내용으로, 법흥왕대에 두 차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중에는 관직명이나 6부체제에 관한 언급이 있어 6세기경의 신라사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이 이루어 놓은 작품으로,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의 생활, 사상 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어느 특정 시대를 대표한다기보다 여러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은 유적이다. 2025년 7월 12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아우르는 약 3㎞의 ‘반구천의 암각화’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처용암

처용암

2025-06-10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 668-1

처용암은 처용랑과 개운포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바위다. 신라 헌강왕(875-886)이 개운포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운무가 가려 앞을 볼 수 없게 되자 왕이 즉시 명을 내려 이 근처에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현, 울주군 청량면 망해사) 그러자 운무는 씻은 듯이 걷히고(개운포) 해가 떠 동해용왕이 크게 기뻐하여 바다에서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이 왕자들 중 처용이 바위에서 나왔다 하여 처용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신비롭고 영험이 있는 바위로 여겨져 온 처용암은 흑색 화강암 바위와 그 사이를 비집고 자라난 관목 몇 그루로 이루어져 있다. 산책하기 좋은 처용공원에서 소년 처용의 익살스러운 얼굴 표정을 형상화한 공식 캐릭터를 만나 볼 수 있고 매년 10월에는 처용문화제도 열리고 있다.

울산향교

울산향교

2025-08-06

울산광역시 중구 명륜로 117

울산향교의 창건 연대나 초기 연혁은 임진왜란으로 기록이 멸실되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한 고을 한 향교 체제가 완성된 15세기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당시에는 신학성 북쪽인 현 반구동 구교마을에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불탄 후 그곳에 다시 세워졌다가 효종 3년(1652)에 지금 장소로 옮겨 세웠다.1800년 이후 20차례 이상 고쳤으나 배치의 기본 틀은 변함이 없이 유지되고 있다. 울산향교는 대성전, 명륜당, 서재, 청원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건물들을 남북과 동서축으로 직각 교차하게 배치하여 전형적인 향교 건축의 특성을 살렸다. 석전대제를 연 2회 실시하며 일 년에 한 번 기로연, 성년식, 한시백일장을 개최한다. 전통혼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연중 신청을 받고 있다. 그 외에도 한문교실, 전통예절교실, 향교문화 스테이 등의 교육과 행사를 유림회관에서 연중 시행하고 있다.

어물동 마애여래좌상

어물동 마애여래좌상

2026-03-18

울산광역시 북구 어물동

마애불[摩崖佛]은 바위에 조각한 불상을 말한다. 어물동 마애불좌상의 중앙 본존불은 높이5m, 너비 3.5m이고 좌우협시 보살상은 높이 3.5m, 너비 1m 크기로 ‘방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자연 암벽 면에 돋을새김[高浮彫]되어있다. 도상적으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좌우 협시로 둔 약사여래삼존상으로,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된다. 마애불 중앙의 본존불은 결가부좌하여 앉은 모습이며, 얼굴은 크고 육계가 볼록하게 솟아 있다. 마모가 심해 자세한 조각 표현은 알 수 없으나 도톰한 볼과 입술에는 엷은 미소가 보인다. 양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까지 닿고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법의는 통견[通絹]이며 세부 옷주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른손은 가슴에 올리고 왼손은 아랫배에 대고 있으며, 마멸정도가 심해 손모양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약사여래[藥師如來]가 들고 있는 약합을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고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이다. 또한 극락왕생을 원하는 자,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자들이 약사여래의 명호를 부르면서 발원하면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좌우 협시보살상은 서 있는 입상으로 본존불상보다 크기가 훨씬 작고, 얼굴은 몸체에 비해 크게 표현되어 있다. 머리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어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임을 알 수 있다. 마애불의 배경이 되는 반원형에 가까운 암벽은 삼존불을 아우르는 거대한 광배 역할을 하고 있다. 울산 어물동 마애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의 신앙적인 측면과 마애불을 조각하였던 불교조각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서생포왜성

서생포왜성

2025-11-21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 초인 선조 25년(1592) 7월부터 선조 26년(1593)에 걸쳐 일본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지휘하여 돌로 쌓은 전형적인 일본식 성이다. 죽도왜성과 부산왜성, 울산왜성과 봉화로 서로 연락하였다고 하여 봉화왜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해발 200m 산꼭대기에 본성을 두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제2성, 제3성을 두었다. 성벽의 길이는 4.2㎞, 높이는 6m, 기울기는 15도로 성벽이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며 성의 전체 모습은 직사각형이다. 비록 왜군들이 축성했으나 후에 조선에서도 사용했던 성으로 남문 일부의 훼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16세기 말의 일본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선조 27년(1594)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이곳에 와서 평화교섭을 했으나 실패했다. 선조 31년(1598) 명나라 마귀 장군의 도움으로 성을 다시 빼앗았고 1년 후 왜적과 싸우다 죽은 53명의 충신을 위해 창표당을 세웠으나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어 지금은 표지판만 남아 있다. 현재는 울산의 벚꽃 명소 중 하나이며 진하해수욕장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