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금곡사삼층석탑

금곡사삼층석탑

2026-02-11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까치내로 261-21

금곡사삼층석탑은 고려시대 삼층석탑으로 기단 중심석의 전후 측면에서 각기 1매씩의 판석이 유실되고 갑석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어 원형의 모습을 잃은 채 보존되어 왔었다. 1988년 해체 복원공사를 실시할 때 3층 탑신에서 세존 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어 이 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 석탑은 3층 석탑으로서는 5m가 넘는 거탑이며, 그 형식면에서는 전형적인 고려양식을 고수하면서도 기단부 구성이나 옥개석의 우동마루 등 일부에서 약간 백제계 석탑의 분위기가 가미되고 있다. 1층 옥개석은 4개의 석재로 결구하였고 비교적 두꺼운 편으로 처마 곡선이 밋밋하여 전각의 반전 또한 완만하다. 2, 3층 옥개석은 모두 두 개의 석재로 결구 되었고 하면의 받침은 2층이 5단, 3층은 4단으로 줄었다. 3층 탑신 역시 각면 모서리에 모서리 기둥 없이 편평하게 처리하였다. 상륜은 모두 유실되고 없다. 또, 1층 탑신이 두 개로 포개진 예는 광주 서오층석탑이나 장성 내계리오층석탑 등에서 볼 수 있어 이 탑의 조성연대는 고려 시대로 추정된다.

하멜 체류지와 강진 성동리 은행나무

하멜 체류지와 강진 성동리 은행나무

2026-09-01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병영면 한골목길 69-1

[하멜체류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일원으로 일본으로 이동 중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 일행 33명은 한양, 강진, 여수 등에 유배되어 살았는데 특히 하멜은 이곳 강진 병영에서 1656 ~ 1663까지 약 7년간 생활을 했다. 하멜 일행은 생계를 위해 잡역을 하거나 나막신을 만들어 팔기도 하였고 춤판을 벌여 삯을 받아 생활하였으며, 민간인, 승려들과 친밀하게 교류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나막신이 일본의 나막신과 달리 네덜란드와 같이 통으로 만들어진 것을 볼 때 이들이 나막신을 전래한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하며, 이들이 남긴 빗살 무늬 돌담이 이 지역 일부에 남아있다. 하멜은 이곳 은행나무 밑에서 수인 산성을 바라보며 고향을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1663년 병영 생활을 마치고 좌수여 12명, 순천 5명, 남원 등지로 5명이 분리 이송되었으며, 마지막 체류지인 여수에서 일행 중 7명이 1666년 9월 탈출 후 「하멜표류기」를 저술함으로써 조선에서의 생활을 최초로 서양에 알리기도 했다. 강진군은 2007년 12월에 하멜 일행의 조선 표류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고, 나아가 한국, 네덜란드 간의 문화적 교류 증대를 위하여 하멜기념관을 개관하였다. [강진 성동리 은행나무] 이 지역은 고려 시대에 도강(도강) 현의 행정 중심지가 있던 곳으로, 조선시대 태종 17년(1417)에 병마절도사 영을 둔 곳이다. 전라병영성으로부터 성동리 은행나무는 약 3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으며 하멜기념관 부근에 자리 잡고 있다. 수령 800년쯤으로 추정하는 성동리 은행나무는 동성마을 중앙에 우뚝 솟아 마을의 상징목으로 되어 있으며 높이 30m, 나무 둘레 6.75m이고 수형이 곧고 아름답다. 1656년부터 1663년까지 머물렀던 하멜의 표류기에도 은행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전라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관리가 이 은행나무로 만든 목침을 베고 잠을 잔 뒤에 병이 났는데, 백약이 무효하였다. 그때 한 노인이 은행나무에 제사를 지내고 목침을 나무에 붙이면 병이 낫는다 하여 그대로 하였더니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후로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월 15일 자정에 은행나무에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전라병영성과 하멜기념관이 근거리에 인접해 있다.

병영성홍교

병영성홍교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병영은 조선 태종 17년(1417)에 남해 지역의 외침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되어 500여 년 동안 호남을 지켜온 군사 요충지였으며 홍교는 병영의 관문이었다. 이 홍교는 일명 배진강 다리라고도 하는데, 장방형 화강석재 74개를 26열로 정교하게 무지개처럼 쌓고 잡석을 채워 보강한 다음 점토로 다리 위를 다졌다. 홍예의 상단 중앙에 돌출시킨 용두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풍운조화를 일으키려는 듯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그 모습은 매우 해학적이며 그 의장 또한 만인월교의 외경 신앙을 함축성 있게 시사하고 있는 듯하다. 축조 연대는 숙종 무인(1698년)에 가선동추 경술(1739년)에 숭록대부가 된 류한계의 금의환향을 기념하여 양한조가 감독, 준공하였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18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수작이다.

강진 삼인리 비자나무

강진 삼인리 비자나무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병영면 동삼인길 28-10

이 비자나무는 수령 약 500년으로 높이가 10m, 가슴 높이 둘레가 5.2m이다. 앞에서 볼 때에는 지상 1.87m에서 커다란 가지가 길게 뻗었으며, 뒤쪽에 가지는 짧고 양쪽 가지는 비슷하게 자랐다. 가장 큰 가지의 밑부분 둘레는 2.6m나 된다. 태종 17년에 전라 병마절도사영을 이곳으로 정했을 때 쓸만한 나무는 모조리 다 베어버렸으나 이 나무는 굽었고 키가 작아서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남게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전해오기도 한다. 조선 500년 동안 호남 지방의 방어 진지였던 병영성이 갑오동란으로 동학군에 함락되어 마침내 폐영될 때가지 이 근처에는 많은 병사가 있었으나 열매를 촌충 구제에 사용하기 때문에 잘 보호되어 온 것 같아 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 매년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에 당산제가 열린다. 비자나무를 둘러보고 마을을 빠져나와 병영천 다리 건너 도보 약 10분 거리에 조선시대 전라도 육군 총지휘부였던 전라병영성과 하멜기념관 등이 있다.

강진마도진만호성지

강진마도진만호성지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마량면 마량리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마도진 만호성은 石城으로 둘레가 890자(尺), 높이가 12 자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서북벽의 일부만이 남아 있다. 성벽의 총 연장 길이는 730m 정도이고, 방형 및 장방형의 대형 석재로 기단부를 구축하고 상부로 올라갈수록 30×20㎝ 정도의 작은 석재를 이용하여 내탁법(內託法)에 의해 쌓아 올렸으며, 현존 서북벽은 길이 220m, 높이 2.3∼4.7m, 상부폭 1m, 하부폭 2.5m이다. 마도진이 있는 마량은 우리나라 서남해에 위치하여 강진, 장흥, 해남, 영암으로 이어지며 제주도와 연결되는 요충지이다. 마도진(馬島鎭) 만호성지(萬戶城址)는 마량에 들어서는 도로변(23번 지방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속칭 「말머리(馬頭)」라 불리는 마량의 배산(背山)을 뒤로하고 원마(元馬) 마을의 서북쪽에 장방형의 형태로 남아있는 마도진성(馬島鎭城)은 군항(軍港)으로써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해상의 전면으로는 고금도·까막섬·노리묵 등이 이·삼중으로 외호(外護) 하고 있으며 육지 쪽으로는 말머리산의 능선을 휘감으며 자리 잡고 있어 외부로부터 은폐·엄폐되어 있다.

마도진성(馬島鎭城)은 남쪽은 낮고 북쪽이 높은 구릉상에 축조하였는데 현재는 서북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유구를 통한 성벽(城壁)의 총 연장 길이는 730m 정도이며, 방형 및 작은 석재를 이용하여 내탁법(內托法)에 의해 쌓아 올렸다. 현존 서북벽은 길이 220m, 높이 2.3∼4.7m, 상부(上部) 폭(幅) 1m, 하부(下部) 폭(幅) 2.5m 정도이다. 그 외 동·서·남·벽은 마량지서 등의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현재는 기단부 만이 부분적으로 확인된다. 기타 부속시설로는 북문지(北門址)의 기단석만이 확인된다. 문지(門址)는 폭 4.3m, 높이 1.6m로 근래 도로 확장사업 계획에 따라 곧 파괴될 위험에 처해있다. 한편 서북벽 근처에는 행만호(行萬戶) 이종호(李鍾浩)의 선정비가 1기가 남아 있는데 규모는 높이 130㎝, 폭 50㎝, 두께 15㎝이다. * 규모 - 28필지 4,237㎡ * 시대 - 조선시대(1499년경 축성)

남포관아문

남포관아문

2025-03-19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9

남포관아문은 조선시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남포읍성의 관아 건물이다. 이전에는 객사(客舍), 동헌(東軒), 아사(衙舍), 향청(鄕廳), 작청(作廳), 현사(縣司)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진서루와 내삼문, 외동헌이 남아있다. 남포현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관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 건물로 아래는 출입구, 위는 누마루를 설치하고, 팔작지붕이다. 조선왕조의 중앙 집권을 상징하기 위해 당시 전국에 똑같이 만들어진 관아문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진서루(鎭西樓)’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진서루는 외삼문으로 옛 남포현의 출입문이다. 낮은 기단 위에 세워진 2층 문루인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아래층은 삼문을 달았고, 2층은 누마루를 깐 후 4면에 난간을 세웠다. 동헌의 출입문인 내삼문은 정면 7칸 측면 1칸인데, 중앙은 솟을대문 1칸이 있어 출입구 역할을 하였고, 건물의 정면에는 옥산아문(玉山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남포현의 업무를 보던 외동헌은 앞면 7칸, 옆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앞면 중앙에 2칸의 대청이 있고 좌우는 온돌방으로 꾸몄다.

적벽강 (전북 서해안 국가지질공원)

적벽강 (전북 서해안 국가지질공원)

2025-10-29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죽막길 20-4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해안선 약 2㎞의 층암절벽과 암반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지칭한다. 이곳은 채석강과 함께 전북서해안 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채석강의 끝인 죽막마을을 경계로 북쪽이 적벽강이고, 남쪽이 격포해수욕장을 포함한 채석강이다. 채석강이라는 명칭은 송의 시인 소동파가 놀았다는 중국의 적벽강만큼 경치가 뛰어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변산해변의 절경을 만들어 내는 적벽강은 붉은색을 띤 바위와 절벽으로 해안이 이루어져 있어 맑은 물에 붉은색이 신비롭게 조화를 이루며, 특히 석양 무렵 햇빛을 받아 바위가 진홍색으로 물들 때 장관을 이룬다. 적벽강의 용두산 절벽 위의 수성당을 비롯하여 그 앞 절벽 밑 대마골, 여울굴의 철마 등은 어로민속과 토속신앙의 전설이 많은 지역이다. 적벽강에는 봄에는 유채꽃이, 가을에는 코스모스밭이 펼쳐지므로 꽃구경을 하거나,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하면서 노을을 보는 것도 좋고 마실길을 따라 아름다운 해안가를 걷는 것도 좋다.

속리산조각공원

속리산조각공원

2026-07-20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속리산조각공원은 1997년 10월 속리산관광협회에 의해 조성됐으며, 속리산을 찾는 탐방객에게 볼거리와 문화 관광 서비스를 제공하고 안락한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속리산국립공원 잔디공원 내에 조성된 공원으로 넓이는 약 2만 4000㎡이며, 김석우의 ‘하늘과 땅의 교감’, ‘양현조의 동심의 고향’, 이상필의 ‘정’ 등 충청권의 대표적인 작가 27명의 작품 27점이 전시되어 있어, 속리산을 찾는 관광객에게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화장실과 식수대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었으며, 여름철에는 공원 내로 흐르는 계곡을 물놀이장으로 개방한다. 속리산조각공원을 찾았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법주사와 조각공원에서 법주사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오리숲(2㎞) 길을 함께 하면 좋다. 또한 속리산조각공원이 위치하고 있는 속리에는 천연기념물인 정이품송이 있으며, 다양한 민화를 볼 수 있는 에밀레박물관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보은 우당고택

보은 우당고택

2026-08-10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개안길 10-2

울창한 소나무 숲과 맑게 흐르는 서원계곡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정취 속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고결한 가치가 느껴진다. 보은 우당고택은 ‘위선최락(爲善最樂)’, 즉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가풍에 따라 주변의 배고프고 어려운 이웃들을 정성껏 살피며 선을 베풀어온 보금자리다. 전국의 유능한 인재들을 한데 모아 무료로 학문을 가르쳤던 서숙 관선정을 열어 나눔과 교육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물 위에 연꽃이 떠 있는 형상인 연화부수형 명당에 조성된 집터는 1919년부터 1921년 사이에 당대 손꼽히는 뛰어난 목수들이 정성을 다해 완성했다. 안채와 사랑채, 사당이 긴밀하게 조화를 이루는 99칸 규모의 대가옥은 한국 전통 건축이 지닌 기품과 우아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마루에 들어서 세월의 결을 느껴보고 아름다운 고택의 뜰을 천천히 거닐며 나눔과 비움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2024-06-14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1길 106-1

진각국사의 성은 최 씨이고 이름은 혜심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월남사 터에 서 있는 이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이다. 받침돌인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문 상태로 긴 목을 빼어 들고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발톱에서 보이는 현실성이나 목과 머리 조각의 세부 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잘 어울려진다. 비몸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으며,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고종 때로 추정된다. 월남사의 옛터 월남사지에는 보물 제125호 삼층석탑이 남아있다. 주변에는 설록다원강진, 백운동정원, 금릉경포대등이 있어 고즈넉한 정취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