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척판암(부산)

척판암(부산)

2026-02-11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척판암은 원효대사가 장안사와 함께 창건한 토굴로 원효대사의 신통력으로 중국 당나라 운제산 태화사의 붕괴를 예측하고 원효대사께서 소반을 던져 천명의 대중을 구했다는 송고승전(宋高僧傳)의 기록이 남아있는 사찰이다. 창건 당시에는 '담운사'라고 불렸으나 1938년 경허스님에 의해 중수된 후 장안사의 부속 암자로 유지되다 최근 독립된 사찰로 자리하고 있다. 사찰 곳곳에 남아 있는 전통 건축과 불교 문화유산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아름다운 자연과 고요한 분위기가 어우러진 명소로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평온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상적인 공간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쉼터이다.

창룡사(충주)

창룡사(충주)

2025-04-04

충청북도 충주시 고든골길 63-89

창룡사는 충주의 금봉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 전해진다. 조선시대까지 두 차례에 걸쳐 중건되었으며 1988년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창룡사는 절의 창건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신라시대 대중 불교의 전파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던 원효대사의 꿈에 푸른 용이 나타나 여의주를 물고 간 명당에 창건한 것이 창룡사이다. 창룡사의 시설은 극락보전, 산신각,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극락보전 안에는 아미타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2006년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창룡사 다층청석탑이 있다.

창덕암(남원)

창덕암(남원)

2025-03-19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중절길

창덕암의 창건은 1933년에 김보덕화 여사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당시부터 부녀자들 사이에 영험 있는 기도처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절에서 전하기로는 창건 이전에도 움막 형태로나마 절이 있었다고 하므로 보기에 따라서는 1933년의 불사를 중창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그것은 지금 절에 전하는 삼층석탑이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이므로 절의 역사를 적어도 석탑이 세워진 조선시대까지 올려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절은 조선시대 이래 나름대로 면면이 법등을 이어왔던 것이다. 1997년에는 대웅전을 헐었는데 예전 삼성각 자리에다 새로 지을 계획이며, 그전까지 있었던 삼성각을 헐어버리고 대웅전 자리에 새로 지었다. 대웅전과 삼성각을 서로 자리를 바꾸어 새로 짓는 셈이다. 최근에는 요사도 새로 지었다.

창녕 포교당·통도사

창녕 포교당·통도사

2025-09-17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신당2길 4-3

화왕산의 억새와 관룡사로 유명한 경남 창녕은 예부터 비화가야(非火伽倻), 즉 비사벌이라 불려지던 문화의 고장으로 각종 문화재가 많아 제2의 경주라 불린다. 일찍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낙동강 이동(以東)에 아름다운 가야문화를 창조해 온 창녕은 부처님의 법화도 함께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전통사찰인 통도사 창녕포교당은 불법을 수호하고 포교의 일선에서 매진하고 있는 창녕의 명찰 중 하나이다. 비록 포교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절집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창녕포교당은 적멸보궁을 조성하고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셨으며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선시대 목조석가여래가 안치되어 있는 사찰이다. 또한 창녕포교당이 자리한 곳은 신라시대 거찰로 알려졌던 인왕사(仁旺寺)가 있었던 곳이라고 하니 창녕포교당은 포교당 이상의 조건과 역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창녕포교당은 기도처와 포교의 방편 외에도 관내 독거노인 돕기 활동을 매일 펼쳐나가는 등 지역사회 내에서도 기여하는 사찰로 정평이 나있다. 비화가야의 넓은 들판 속 인왕사터에 자리한 창녕포교당은 불국정토를 만들기 위한 염원이 불보살의 뜻과 닿아있으리라 믿어본다. 또 ‘창녕지명사’에 전하는 창녕읍 신당마을 유래에 대해 ‘창녕여고와 포교당(仁旺寺)이 있는 일대로 말흘리의 동북부에 위치한다’라고 적고 있으며 창녕군의 전통사찰현황에 창녕포교당은 1920년도 창건하였는데 “신라시대 창녕읍 술정리에 ‘인왕사’라는 포교당 전신인 대사찰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자 동산선사가 옛 인왕산사를 재현한 포교당을 지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절에 초창시부터 지극정성으로 다니고 있는 법왕자(法王子, 85세, 신당리 거주) 보살의 증언에 의하면 곤양군수를 지낸 만석군의 모친인 김선명화(金善明華) 보살과 아들 내외인 하준석(河駿錫), 서공덕화(徐功德華) 보살이 이 아들을 낳기 위해 원불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아들 영달(永達)이 범종을 시주하였다는데 지금도 적멸보궁에 ‘하영달’이라는 명문이 있는 당시의 범종이 남아 있다. 따라서 창녕포교당은 1939년 창건이 확실해 보인다. 이후 1978년 청운스님(현 밀양 표충사 주지)이 주석할 당시 6·25 때 화마를 입은 관룡사 팔상전에 모셨던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이운해 왔는데 현재 도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이후 적멸보궁에 봉안해 놓았다. 이후 설법전 등의 요사채와 석가모니입상 등을 조성해 놓았다.

참당암(고창)

참당암(고창)

2025-03-18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길 194-77

참당암(懺堂庵)은 선운사를 나와 오른쪽 산길을 따라 가면 있다. 지금은 선운사의 산내 암자 가운데 하나로 그 격이 떨어졌으나 선운사의 여러 사암(寺庵) 가운데 가장 먼저 창건되었고, 본래의 이름도 ‘참당사’ 또는 ‘대참사(大懺寺)’라고 불렸던 큰 사찰이다. 의운(義雲)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고려 시대부터 이어지는 여러 번의 중수가 있었다. 조선 성종 대(1469∼1494년) 이후 선운사가 산중의 중심 도량이 되면서 사세가 기울게 되었다. 선운사에 속해 있는 암자인 참당암에는 대웅전이 있는데, 1984년 11월 30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창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은 의문화상이 신라 진평왕의 부탁으로 지었다고 한다. 대웅전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앞면에 짜인 공포는 전형적인 18세기 다포 양식을 보이고 있는 반면, 뒷면은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건물을 수리할 때 고려시대의 부재를 재활용한 것이라 짐작한다.

진흥사(해남)

진흥사(해남)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현산면 입제길 442

진흥사는 두륜산 남쪽 산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태고종 사찰이다. 진흥사는 1909년(융희 3) 김진성각(金眞性覺) 보살이 창건한 이래 몇 차례에 걸쳐 절 이름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양도암(養道庵)’으로 불렀다가 ‘양도사’로 바뀌었으며, 다시 ‘진흥사’가 되었다. 절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에는 ‘제석천왕비(帝釋天王碑)’라 새겨진 석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창건주인 비구니 김해김씨 진성각의 비석으로 그가 생존해 있던 1928년 6월에 건립된 것이다. 이 비는 본래 법당 앞에 있었으나 최근 이곳으로 옮겨졌다. 석비 바로 뒤에는 진성각의 부도 1기가 있다. 진흥사는 대웅보전과 극락보전, 요사 채가 있으며, 동서로 긴 장방형의 대지 위에 극락보전과 요사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요사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본래법당이었는데 최근 그 오른쪽에 극락보전을 지어 불상을 모시고 있다.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불, 관음, 지장보살의 삼존상과 나한상이 있다. 불화로는 1937년에 봉안된 아미타후불탱화, 1975년에 봉안된 칠성탱화 및 근래에 봉안된 산신탱화,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고, 안에는 소종도 있다.

진월사(영주)

진월사(영주)

2025-09-09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1106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학가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진월사는 천년고찰로 이 고장 절 가운데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해 있으며, 서북으로 멀리 소백산 연봉을 마주하고 절 아래로 내성천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 진월(陳月)이라는 이름은 이 곳의 지명과 관련이 깊다. 학가산 진월사는 영주시와 안동시의 접경지역으로 현재 절이 있는 곳은 영주시에 속하나, 안동 월전(月田)동이 본마을이라고 한다. 이 마을 지형이 고지대 분지를 이루고 있고 동산마가 위치한 곳에 반월처럼 생긴 동산이 있으며 그 동산을 중심으로 반월처럼 층계로 밭을 이루고 있어 달밭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마을에서 유래되어 절 이름도 진월사가 되었다고 한다.진월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옛 건물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고 현재는 무량보전, 향로전, 심원루와 가정집처럼 지워진 요사채가 눈길을 끈다. * 창건배경 및 역사* 진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이후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며 1720년(조선 숙종 46) 설신(雪信)과 계원(戒員)이 무량보전(극락전)을 중건하면서 이 절의 주불을 지장보살에서 아미타삼존불로 바꿔 봉안하고 노전도 신축하였다. 1797년(정조 21) 계문(戒文)이 중수하였고, 1807년(순조 7) 시임(時任)과 정신(定信)이 중수하였다. 1891년에 희민(曦玟)이, 1919년 보정(普貞)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건물로 무량보전과 삼성각, 심원루, 향로전, 요사 등이 남아 있다. 특별히 전해지는 유물은 없다.

죽사(서산)

죽사(서산)

2025-03-17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갓고개길 242-24

죽사는 서산시 갈산동과 인지면의 경계에 해당하는 비룡산의 남향사면에 위치한다. 지형적으로는 비룡산의 정상부 남향사면에 해당하며 죽사의 후면에는 비룡산 동쪽에 솟아있는 큰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죽사의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며, 일설에 의하면 백제 의자왕 때 도감국사가 수도하기 위해 창건한 것이라고 전한다. 현재 죽사에는 원통전과 종각 그리가 요사체가 있다. 원통전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신축하였다.

죽림암(임실)

죽림암(임실)

2025-03-11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호반로 79-53

임실읍의 안산이라고 할 수 있는 용요산(龍要山, 일명 용오산)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9세기 말경 신라 진감국사가 신흥사를 건립 후 초가삼간의 규모로 창건하였다. 절 주위에는 왕대가 있었고, 이 때문에 죽림암이라 불렀다 하는데 한 승려가 칡덩굴을 없애려고 불을 놓았다가 왕대도 모두 사라졌다 한다. 신흥사가 수행을 위한 도장으로 만들어졌다면 죽림암은 수행과 포교의 목적을 지닌 곳이었다. 1504년 고려시대 승려인 보우국사의 4 세손 지엄이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그 후에 전라남도의 어느 민가를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 현재의 죽림암이다. 본래 법당 본전 5칸과 칠성각, 산신각이 있었으나 임진왜란과 6.25 전쟁 때 다시 불타버렸다. 지금의 법당, 칠성각, 산신각은 1981년 중수된 것이다. 암자 바로 앞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3그루가 서 있는데 큰 것은 높이 약 25m 정도로 이 절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천룡사(경주)

2026-02-25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백운대길 101-388

서남산의 최고봉인 고위산(高位山) 정상 부근에 자리한 천룡사는 신라시대 때 천녀(天女)와 용녀(龍女)라는 두 딸을 가진 부모가 딸들을 위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천룡사는 지리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사찰이었다. 그것은 이 절이 계림(鷄林) 땅을 흐르는 한 줄기의 객수(客水)와 한 줄기의 역수(逆水)의 근원지에 있으면서 객수와 역수의 조화를 유지시키는 위치에 있고 그 일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리를 아는 당(唐)의 사자(使者) 악붕귀(樂鵬龜)는 “이 절을 파괴하면 나라가 망한다.”라고 했다. 신라 말기에 와서 어느 사이엔가 절이 폐사가가 되고 과연 나라도 망하고 말았다. 이처럼 신라시대에 천룡사는 없어지면 나라가 망한다고까지 존숭되고 석가 만일도량(萬日道場)이 열릴 정도로 중요한 사찰이었다. 천룡사에서 열렸던 석가 만일도량에 관해서는 고려 때 최승로가 지은 글이 남아 있는데, 10,000일이면 거의 30년에 해당하는 셈인데,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이 법회가 열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신라의 대표적 사찰 가운데 하나인 천룡사가 언제 폐허가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고려의 재상 최승로의 아들 최제안이 천룡사를 중건한 이야기가 전하므로 고려 후기까지 법등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지만 그 뒤의 역사는 전혀 전하는 것이 없어 아쉬움을 준다. 현재 유일하게 옛 터에 남아있는 천룡사 삼층석탑은 본래 무너져 있던 것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에서 발굴 조사하여 1991년 9월 25일에 복원하였으며,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폐석탑이었던 이 탑이 복원되는 데는 용성(龍城) 스님의 유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용성 스님은 호국호법도량 천룡사가 흥할 때 국가도 흥했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우리나라 8백 년 국운과 불법 중훙을 위해 천룡사 복원을 제자 동헌 스님에게 부촉했다. 그리고 동헌 스님으로부터 이 부촉을 이어받은 도문 스님은 20여 년에 걸쳐 농가로 변한 천룡사지 6만여 평을 구입하였다. 축대석, 초석, 석당(石幢)의 귀부, 맷돌 등과 함께 폐탑의 부재들이 산재해 대가람이었음을 보여주는 빈터에서 석탑만이라도 먼저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기로 하고 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이 주관하여 90년 11월 탑지 주변을 발론하고 91년 8월~9월에 복원 완공했다. 이 탑에는 정영호 박사가 기증한 4과의 세존 진신사리를 순은으로 된 2중 원통형 사리 병과 백자로 된 사리함에 모셔 봉안했고, 호국호법 삼부경과 그 외 경전과 소탑 및 순은 판에 쓴 석탑 복원 연기문을 함께 모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