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6
서울특별시 노원구 덕릉로129가길 241
멀리서 바라보는 수락산은 드물게 암벽이 우뚝 솟아 봉우리를 이루고 있고, 그 아래로는 울창한 숲이 바다를 이루며 펼쳐져 있다. 남쪽 산록에 자리한 학림사는 주변지세가 마치 엄마가 자식을 품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래서 절 이름도 학이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학림사라 하였다. 이러한 학림사는 서울 근교에 자리한 많은 사찰 가운데 그 역사만큼이나 기도 도량으로 명성이 높다. 천혜의 자연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 참배는 물론 가족이 함께 산행까지 겸할 수 있는 웰빙 사찰이다. 울창한 숲을 걸으며 삼림욕을 즐기고, 산사에 들러 시원한 감로수 한 모금이면 속세에 찌든 온갖 티끌이 씻겨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림사는 기도와 수행, 포교와 교육의 도량을 함께 갖춘 사찰이다.
2026-09-23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로14다길 89
서울 노원구에 자리한 학도암은 ‘학이 이르렀다’는 뜻의 한자에서 이름이 비롯된 사찰로, 주변의 자연 풍경과 함께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학도암은 암자 뒤편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높이 13.4m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관음보살좌상으로, 1870년(고종 7) 명성황후의 발원으로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바위 면에 새겨진 관음보살의 모습이 인상적인 이 불상은 현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은 국내에 남아 있는 마애불 가운데서도 규모가 큰 관음보살상으로, 조선 후기 불교조각과 신앙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학도암에서는 마애관음보살좌상과 함께 불암산의 풍경을 둘러볼 수 있으며, 경기도 남양주와 서울 노원구·도봉구 일대까지 이어지는 주변 조망도 감상할 수 있다. 사찰 입구에는 작은 찻집이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다.
2026-08-18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도리3길 12
경북 경산의 아미타도량 하양포교당 조계종 제10 교구 본사 은해사 말사이다. 창건 시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 다만 조선 초기에 창건된 사찰로서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사찰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상실한 채 유생들의 객사로 함께 쓰여 오다가 1927년 지석담 스님이 사찰의 재건을 위해 중수했다는 사실만 전해져 온다. 지석담 스님은 사찰의 중수와 아울러 은해사에서 부처님을 모셔와 봉안한 것이 지금까지 극락전 본존불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지난 2001년 주지로 부임한 성본스님이 쇠락한 사역을 정비하고자 5평 남짓한 극락전을 34평으로 신축하고, 칠성각 중수, 설법전 부처님 봉안, 공양간 건립 등 사격을 일신하여 지금은 그 터가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 만큼 1천여 평의 드넓은 도심분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부처님의 자비와 가르침을 알리며 이 포교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하양포교당은 매일 새벽 5시 새벽예불, 오전 10시 사시불공, 오후 6시 30분 저녁예불을 진행하며, 매월 초하루 기도(음력 1일)와 지장재일(음력 18일), 관음재일(음력 24일) 기도를 봉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지역사회에서 각종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하양포교당 소속 불교청년회에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경로당이나 아동 시설 등을 방문하여 생필품 전달 및 위문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 법회는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며, 2019년부터 은해사 불교대학 강의가 하양포교당에서 진행되는 등 지역 불자들을 대상으로 교육 활동도 하고 있다.
2025-05-23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68 (팔달로3가)
팔달사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의 사찰이다. 수원시의 최대 번화가인 팔달문 주변에 있어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오간다. 도심의 중심은 언제나 어수선하고 시끄러우나 도심 한 가운데에서 팔달사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이러한 번잡함이 모두 사라지며, 아늑한 사찰을 마주하게 된다. 팔달사는 금강산 유점사의 비구니 윤홍법당 스님이 도심에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이곳에 최초로 사찰을 건립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대지에 있는 작은 사찰이었으나, 현 주지인 범행스님이 부임한 이후 사찰의 정문인 일주문이 건립되었고, 위쪽 대지에 있는 대웅전도 이 시기에 건립되어 현재와 같은 커다란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86년에는 범종이 건립되었는데, 범종각 역시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산신각에 모셔져 있는 석가모니후불탱화는 1989년에 조성되었다고 화기에 기록하고 있어 이 당시에 새로운 불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해주며, 조사당의 영정도 제작되어 이 당시에 조사당의 건립이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팔달사는 정조 때 만들어진 화성과 그 주요 건물들이 건립된 팔달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어 화성 문화재들과 어우러져 수원시 중심의 풍광을 한껏 고풍스럽게 만들고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노안면 금성산길 387-83
금성산 자락에 위치한 태평사는 1956년 금명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 2동, 종각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규모이다. 요사채는 서민의 살림집 유형이며,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석가모니불 및 보살입상 2구를 봉안하고 있다. 주지스님에 따르면, 과거 이곳에 고려 시대의 큰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6·25 전쟁이 끝난 후 나주교도소에서 근무하던 한 불자의 꿈에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이 잇따라 현몽하였고, 이에 태평사 터를 파보니 연화좌와 탑파의 상륜부, 지장보살상 등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옛 절터였음을 증명하는 6각 주초가 대웅전 앞 화단에 남아 있으며, 뒤편 암벽에는 불상이 양각되어있다. 봄이면 사찰 입구의 철쭉과 겹벚꽃 길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인근에는 차량으로 약 7분(3.5㎞) 거리에 신숙주 생가터가 있으며, 마을 쉼터이자 강학 공간인 쌍계정도 가까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2026-03-09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원이로 78-132
태을암은 국보로 지정된 태안마애삼존불로 유명한 사찰이다. 태안은 서해안에 위치해 있어 중국의 앞선 문물이 들어오던 길목에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항상 왜구가 출몰하여 근심이 많았던 지역이었다. 이러한 지역적 조건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빨리 태을암, 태안마애삼존불과 같은 우수한 불교문화를 조성할 수 있었다. 아울러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원래 경상북도 의성현에 있던 단군의 영정을 모신 태일전을 옮겨와 이곳에 봉안함으로써, 단군의 가호를 받아 민생 안정을 도모하려는 상징적인 의미도 부여하였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북평면 천태산길 191
태영사(台迎寺)는 북평면 남창리 1228번지 신기마을 뒤 천태산(天台山)에 있는 대흥사의 말사이다. 이곳 사람들은 칠성암이라고도 부른다. 절은 그리 높지 않은 천태산 정상아래 부분의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쪽으로는 남창항과 완도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전망이 매우 좋다. 절의 바로 뒤쪽에는 7개의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칠성바위로 불리며 절은 신기마을에서 북두칠성이 바로 올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은 백팔 개의 계단으로 만들어 대숲사이로 난 계단을 오르면 백팔번뇌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태영사는 1552년(명종 7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확실한 문헌기록이 없어 창건 년대는 분명치 않다. 그리고 창건 당시는 칠성암(七星庵)이었다가 임진왜란 때 폐허화 되었으며 이후 중건을 거듭하다 1976년 현재의 이름인 태영사로 고쳐졌다. 이 절은 원래 이곳 남창항의 선주(船主)와 주민들이 출항 시에 해난방지를 위해 정월 보름에 칠성기도와 제사를 지내려고 칠성각(七星閣)을 세웠다. 이때의 제각(祭閣)인 칠성각이 칠성암으로 고쳐졌다고 한다. 그 뒤 어느 해인지 알 수 없지만 경술년에 박붕명 스님이 제자 이도문 스님과 함께 중창했다고 하며 1971년 춘담 스님이 법당과 관월당을 새로 짓고 범종을 조성했다. 1985년 7월에 갑자기 불어 닥친 폭풍우로 건물이 붕괴되었으나 1989년 인근 남창항 일대주민들이 뜻을 모아 절을 다시 지었다. 이때 중건에 참여한 신도들의 이름이 사찰로 올라가는 입구의 중수석비에 새겨져 있다. (출처 : 해남군 문화관광)
2025-11-11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삼기면 진북로 347-23
태봉사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미상이나 백제 무왕이 익산 지역에서 지지기반을 다지던 7세기 전반에 건립된 사찰로 추정된다. 지금의 사찰은 1934년 심묘련화 보살이 삼대독자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다가 산신의 현몽으로 태봉산 동쪽 기슭에서 삼존석불을 발견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불당을 짓고 절을 중창하여 태봉산의 이름을 따서 ‘태봉사’라고 하였다. 태봉산은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이 위만에게 쫓겨 마한으로 내려온 뒤, 기도를 올려 세 왕자를 얻은 후 태봉산에 태를 묻었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지금도 태봉사에 전해져 오는 전설의 영향으로 아들을 얻으려고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2025-11-21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569-72
탈골암은 법주사의 산내 암자로 720년(신라 성덕왕 19) 창건되었고, 776년(혜공왕 12) 진표율사가 중창했다고 한다. 속설에 의하면 신라 탈해왕 때 경주 김씨의 시조인 알지가 자기의 용모가 닭과 비슷함을 한탄하던 중, 속리산의 현 탑골암에 좋은 약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와서 약수를 마시고 아름다운 인간의 용모로 바뀌었으므로 이곳을 탈골암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또다른 얘기로는 진표스님이 이곳에서 영심·융종·불타 등의 제자들을 깨우쳐 생사윤회를 벗어나 해탈케 했다 하여 탈골암으로 불렀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없으나, 1624년(인조 2) 벽암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950년 한국전쟁 때 건물이 전부 불타 없어지고 폐허가 되고 말았다. 이후 1954년 일부 중건을 하였으나 작은 암자에 약사여래좌상만 봉안되었을 뿐 아무도 머무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 1967년 영수스님이 머물면서 법등을 잇기 시작했다. 영수스님은 1975년부터 중창불사에 들어가 1977년에 삼성전을 짓고, 1987년에는 상좌인 혜운스님과 함께 선원을 건립하기 시작해 1990년에 완공을 보았다. 이 선원은 당시 조실이었던 월산스님이 대휴선원이라 이름 지었다. 대휴란 크게 쉰다는 말로, 선방에 들어서는 수행자 모두가 안으로는 헐떡이는 마음을 쉬고 밖으로는 구하는 마음을 쉬어 일체 번뇌의 뼈를 벗어 버리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93년 2월에는 화재로 17평의 법당이 소실되자 그해 12월부터 법당 중건불사에 들어갔으며, 1995년 가을에 약사전과 요사인 운하당·연화당의 완공으로 오늘날 탈골암의 모습이 되게 하였다. 비가 많이 내린 여름이면 약사전 앞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연못에서 떨어지는 작은 폭포가 인상적이다.
2025-08-14
경상남도 진주시 망진산길 71
진주 8경의 하나인 망진산 자락에 자리한 총림선원은 사찰 주위에 300m 남짓한 토성지가 남아 있으며 옛날 봉수를 올렸던 봉수대 아래 진주시를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총림선원은 조선 후기인 1890년대에 창건이 이루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으나 정확한 창건 연대와 창건주를 알 수 없다. 진주의 부잣집 며느리가 아들을 얻기 위해 현재의 총림선원 아래에 있는 미륵불에서 기도를 하여 아들을 얻게 되었고 그 후에 보살이 지금의 총림선원을 세웠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 보살을 절에서는 야공보살이라고 알고 있으나 정확한 내력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야공보살이 총림선원을 세운 후에 아들을 얻기 위해 찾아와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망진산에는 망진산봉수대, 망진산도시숲, 남강유등전시관, 소망진산유등테마공원, 진주어린이박물관 등 유명 관광지가 많은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