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Km 2024-11-12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제35대 왕인 경덕왕이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였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상원사 동종(국보),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보물)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전한 형태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이다. 높이 3.66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아기를 시주하여 넣었다는 설화로 인해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린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종 몸체에는 상하에 넓은 띠를 둘러 그 안에 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종의 어깨 밑으로는 4곳에 연꽃 모양으로 돌출된 9개의 연꽃봉우리를 사각형의 연곽이 둘러싸고 있다. 유곽 아래로 2쌍의 비천상이 있고, 그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연꽃 모양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몸체 앞면과 뒷면 두 곳에는 종에 대한 내력이 새겨져 있다. 특히 종 입구 부분이 꽃모양으로 굴곡진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통일신라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전성기를 이룰 때 만들어진 종으로 화려한 문양과 조각수법은 시대를 대표할 만하다. 또한, 몸통에 남아있는 1,000 여자의 명문은 문장뿐 아니라 당시의 종교와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금석문 자료로 평가된다.
10.2Km 2023-12-26
경상북도 경주시 북군길 107-19
070-4175-8861
경주 보문 단지 내 위치하여 경주의 주요 관광지인 불국사, 석굴암 차로 15분 거리 국립박물관, 동궁과 월지, 첨성대는 10분 거리 보문 단지, 테마파크, 레저시설 등에 접근이 용이하고 동궁원 식물원과 버드파크, 북군동 음식촌이 차로 2분 이내 거리에 있으며 경관이 빼어난 보문호수 둘레길, 경주 cc 블루 원 워터파크 가 매우 가깝다. 벨루스로즈의 차별화된 실내장식과 정성스럽고 포근한 분위기 휴식과 따뜻한 곳에서 즐기기를 바란다.
10.2Km 2024-07-30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054-740-7500
2022년 12월 15일 개관한 신라천년서고는 박물관 소장 도서를 열람할 수 있는 박물관 안 도서관이다. 기존에 수장고로 이용되던 건물은 한옥 형태를 본뜬 외관을 그대로 살리고 내부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리모델링했다.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발간한 도서들은 물론 국내외 전시 도록과 신라 및 경주학 관련 도서 등을 소장하고 있다. 별도로 마련된 북큐레이션룸에서는 박물관 큐레이터와 사서가 함께 고른 책들을 주제에 맞춰 소개하며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가 주관하는 ‘2022년 골든 스케일 베스트어워드 협회상’을 수상했다.
10.3Km 2024-05-03
경상북도 경주시 알천북로 369
벤자마스는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에 있다.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외관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벤자마스 브런치이며, 치아바타 클래식 샌드위치, 스테이크 버섯 샐러드도 인기가 많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바닐라라떼, 콜롬비아 디카페인, 브라질 로얄허니 등 여러 가지 음료도 준비되어 있다. 경주IC에서 가깝고, 주변에 보문관광단지, 경주동궁원, 경주월드가 있다.
10.4Km 2024-09-11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
분황사는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로 국보인 모전석탑으로 특히 유명하다. 현재 3층만 남은 분황사 모전석탑은 본래 9층 규모였다고 전하는데, 7세기 신라의 건축과 조각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재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이 같은 분황사 주변에는 매년 봄 싱그러운 청보리밭이 펼쳐진다. 추석 직후에 파종한 보리가 이듬해 봄부터 초여름까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분황사 주차장에서 황룡사지 방향을 바라보면 황룡사 역사문화관을 배경으로 짙푸른 청보리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 봄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해 질 무렵에는 노을에 물든 청보리가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천년 경주의 매력을 더한다.
10.4Km 2024-09-26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
분황사(芬皇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분황사는 황룡사지와 잇닿아 있으면서 국보로 지정된 모전석탑으로도 유명하다. 선덕여왕 3년(634)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고승 원효와 자장이 거쳐 간 사찰로 명성이 높다. 선덕여왕 3년(634년)에 지어진 절로서, 원효대사가 거주하면서 화엄경소를 쓴 곳이다.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경덕왕 14년(755년)에 불상주조의 대가인 강고 내말이 만든 약사여래상이 있었다. 선덕여왕의 권유로 자장법사도 오래 머물렀으며, 원효의 아들인 설총은 원효대사가 돌아가신 후 아버님의 소상을 만들어 모셨고 이 소상은 고려후기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원효가 이곳에서 해동종을 완성했다고 하여 해동종을 분황종이라고도 한다. 이 절은 평지 일탑 일금당의 가람배치로서 다른 사찰에서 보듯 중문, 탑, 금당을 중심으로 회랑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나 절터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치는 않다. 통일신라 이전에 세운 모전탑으로 원형은 5층인지 7층인지 9층인지 알 수 없으나 그중에서 지금은 3층(국보)만 남아있다. 신라탑은 전탑양식이 유행하여 백제의 미륵사지 목탑구조 모방 전탑과 결합하여 통일신라 석탑의 정형을 이루었다. 통일신라의 모전탑 및 전탑은 안동, 의성, 제천 등지에 남아있다. 임진왜란 때에 왜구들이 이 탑을 반쯤 헐어갔다고 한다. 이 탑은 바다속의 안산암을 갈아서 쌓은 것으로 1915년 탑을 수리하다가 사리장치가 든 돌 상자 속에서는 구슬과 금은으로 된바늘, 고려시대 화폐가 발견됨으로써 고려시대에도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바늘은 탑을 건립한 선덕여왕과 관계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에는 1층 탑신 4면에 감실을 만들고 돌문을 달았으며 이 입구마다 좌우로 수문장인 금강역사상이 있고, 탑에는 돌사자가 놓여 있다. 금강역사상은 조각이 아름답고 입체감이 두드러져 삼국시대 조각 기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분황사 사찰 내에 마련되어 있는 돌우물이다. 바위틈 사이로 솟아오르거나 흘러내리는 물이 잘 고이도록 바위를 움푹하게 판 뒤, 그 위에 다시 돌을 쌓아 시설해 놓은 모습으로, 겉면은 8각을 이루고, 안쪽의 벽은 둥근 원형을 이루고 있다. 분황사 경내, 당시의 우물 석정에는 아직도 물이 마르지 않고 있는데 이 우물 속에 호국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호국룡변어정’이라고도 불리는 이 우물에는 분황사 우물과 금학산 기슭 동천사의 동지와 청지라는 우물에는 각각 통일신라를 지키는 세 마리의 호국룡이 살고 있었다. 원성왕 11년(795) 중국 당나라 사신이 이 용들을 물고기로 변신시켜 잡아가니, 두 여인이 왕 앞에 나타나 이 사실을 아뢰며 남편을 찾아줄 것을 아뢰었다. 두 여인의 말을 들은 왕은 사람을 시켜 물고기를 다시 빼앗은 후 각각의 우물에 놓아주었다. 1965년 우물 속에서 14구의 목이 부러진 석불들이 출토되었고이 석불들은 경주국립박물관 경내에 전시되고 있다.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돌우물 가운데 가장 크고 우수한 것이며, 현재에도 사용될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초석의 규모로 보아 당시에는 대단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약사전은 조선시대에 세워졌다.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분황사 모전석탑과 화쟁국사비적, 삼룡변어정(8각 석정)이라는 우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분황사약사여래입상 등이 있으며 석등과 대석 같은 많은 초석들과 허물어진 탑의 부재였던 벽돌 모양의 돌들이 한켠에 단정하게 쌓여 있다. 분황사화쟁국사비부는 분황사 내의 우물 옆에 놓여 있는 것으로, 원효대사를 기리는 비의 받침돌이다. 낮은 직육면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네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 많이 훼손되었다. 윗면에는 비를 꽂아두기 위한 홈이 파 놓았고, 옆면에는 옅은 안상(眼象)을 새겼다. 고려 명종대(1170∼1197) 한문준이 건립한 화쟁국사비의 대석이 남아있는데, 원효대사를 위한 비석이나 시호(諡號 : 죽은 이의 덕을 기리어 붙여주는 호)가 없음을 애석하게 여긴 왕이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오다가 김정희가 절 근처에서 발견하여 이를 확인하는 글귀를 받침돌에 새겨두었다. 비는 임진왜란 후까지도 보존되었으나, 지금은 이 받침돌만이 남아있다.
10.4Km 2022-12-28
경상북도 경주시 식혜골길 35
임진왜란 때 경주에서 최초로 의병을 창의한 월암 김호장군의 생가로400년 역사의 국가 중요문화재 34호이다.
10.5Km 2024-10-22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푼 장소이다. 신라가 멸망한 후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와 기러기 안(雁)과 오리 압(鴨)을 써서 예전엔 안압지로 불렀으나, 1980년대 이곳에서 월지-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고,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 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지는 내용으로 보아 이곳이 신라시대 때 ‘월지’라고 불린 장소로 확인되어 2011년에 경주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 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 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중 보상화 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월지는 신라 원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동궁에는 임해전을 비롯해 총 27동의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현재는 3채만 복원되었다. 그 건물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과 월지에 반사된 모습은 경주의 대표 야경명소로 뽑힌다.
10.5Km 2023-12-15
경상북도 경주시 천북면 목실길 84-5
054-773-8866
경주 천북면 물천리에 위치한 다유(茶由)는 여행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여행객들에게 편안한 쉼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다유(茶由)에서 정성이 가득 담긴 웰빙 음식인 채식요리(채과밥, 콩고기밥)를 맛보고 전통차류도 음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