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사(경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망월사(경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망월사(경주)

7.2Km    2025-03-06

경상북도 경주시 포석로 682-17

망월사는 경주시 배동에 자리한 대한 불교 원효종 사찰이며 원효종의 중요한 사찰로 꼽힌다. 대한불교원효종은 우리나라 18개 불교 종단 가운데 하나로 신라의 원효스님을 종조로 하여 1963년 경주에서 해인스님이 대한불교원효종 포교원을 창종하고 해인스님이 초대 종정이 되었다. 그 뒤 1967년 8월 망월사가 본원이 되었으며, 1977년 12월 대한불교원효종이 되었다. 현재 총무원은 서울 안양암에 있고, 주요 경전은 <원효종성전>인데 1967년 망월사에서 발간되었다. 오랜 역사와 위상에 비해 소박한 사찰이며 대웅전, 요사채가 있으며 연못 안에 놓인 불탑인 연화탑이 인상적이다. 절 입구에는 망월사에서 관리 운영하는 전통찻집이 있고, 인근에는 삼불사와 배동삼존여래입상이 있다. 지금은 폐사된 옛 신라시대 사찰 선방사지에 있는 망월사와 삼불사, 배동삼존여래입상 세곳을 선방골이라 부른다.

남산 화강암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

남산 화강암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

7.2Km    2024-05-21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순환로 341-126

경주시의 남쪽에 위치한 남산은 금오봉(약 468m)과 고위봉(약 494m)을 중심으로 한 긴 타원형의 화강암 바위산이다. 화강암은 석재로 흔히 쓰이는 대리암이나 석회암에 비해 단단하고 비와 바람에 잘 깎여나가지 않는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남산의 수많은 문화재들이 오랜 시간 동안 잘 보존된 것은 화강암의 이러한 특성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남산 화강암은 신라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손꼽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만들 때도 쓰였기 때문에 신라인들이 남산 화강암을 문화재의 재료로 많이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인들은 남산의 바위절벽을 이용하여 남산 문화재 중 으뜸으로 꼽히는 마애삼존불좌상, 선각여래좌상, 마애석가여래좌상과 같은 불상들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바위 절벽은 남산 화강암에 흔히 잘 발달하는 수직 틈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다른 화강암들보다 남산에 분포하는 화강암이 특히 수직 틈을 많이 가지는 이유는 아주 오래 전 이 지역에 단층활동이 일어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

7.2Km    2024-06-17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순환로 341-126

경주시 배동의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이다. 남산의 좌불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의 마애불로 추정된다. 바위 자체가 약간 뒤로 기울어져 있어 조각된 불상이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 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살펴 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 있게 깊게 새겨서 돋보이게 했으나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다. 이곳에 있는 다른 불상들의 세련되고 단정한 얼굴과는 달리, 이 불상은 약간 투박한 느낌을 준다.

경주 무열왕릉, 태종무열왕릉비

경주 무열왕릉, 태종무열왕릉비

7.3Km    2024-12-06

경상북도 경주시 능남길 10-4

경주 무열왕릉은 신라 제29대 태종(太宗) 무열왕(재위 654∼661, 김춘추)의 능이다. 경주 북서쪽에 있는 선도산(仙桃山)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해 있다. 김춘추는 신라 중대(中代)의 첫 진골(眞骨)출신 왕으로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병합하고 통일 대업의 기반을 닦았으나 통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능은 밑둘레 114m, 높이 8.7m로 비교적 큰 편이며 능 아래쪽은 자연석을 쌓고 드문드문 큰 돌로 받쳤으나 지금은 흙 속에 묻혀 있다. 동쪽에 비석을 세웠던 돌거북 받침돌과 머릿돌이 남아있는데,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金仁問)이 쓴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씨가 돋을새김되어 있어 이 곳이 무열왕의 능임을 알 수 있다.

왕에게 가다

왕에게 가다

7.3Km    2023-08-09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종이 보인다. 경덕왕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만든 성덕대왕신종이다. 신라의 황금 같은 문화유산을 보기 좋은 코스로 각 유적지마다 담긴 이야기를 주시해 돌아보면 뜻 깊은 체험 여행이 될 것이다.

경주 남산 전 염불사지

경주 남산 전 염불사지

7.3Km    2024-09-12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경주 남산동 전 염불사지는 8세기에 창건되어 12세기까지 운영된 신라의 사찰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이곳에 위치했던 사찰의 명칭은 염불사, 피리사, 봉구곡사 등 다양한 명칭이 기록으로 전하고 있으나, 사찰의 명칭을 단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가 부족하여 전할 전(傳)자를 써 전 염불사지로 명명되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남산 동쪽 산기슭에 피리촌이 있었는데, 그 절을 피리사라 하였다. 피리사에는 이상한 중이 있었는데, 늘 아미타불을 외었다. 그 소리가 성 안에까지 들렸으며 누구 하나 그 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소리가 높고 낮음이 없이 낭랑하기가 한결같았기에 사람들은 모두가 그를 공경하여 염불사라 불렀다. 그가 죽은 뒤에 소상을 만들어 민장사안에 모시고, 그가 본디 살던 피리사를 염불사로 고쳤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염불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며, 사찰터에는 2022년 11월 25일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탑 (전)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토함산 락 글램핑

토함산 락 글램핑

7.3Km    2024-08-21

경상북도 경주시 보불로 190-17

토함산 락 글램핑은 경북 경주시 보불로에 위치하고 있다. 불국사와 보문단지에서 5분여의 거리에 있으며 탁 트인 하동 저수지가 바로 눈아래 펼쳐져 있다. 펜션과 글램핑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부대시설로는 야외수영장, 바베큐장, 농구장이 마련되어 있다. 글랭핑장 내에 매점은 따로 운영하지 않고, 차로 10분 거리에 중형 마트가 위치하고 있어 필요한 물품은 미리 구입해 오는 것이 좋다.

보불어탕명가

보불어탕명가

7.3Km    2024-06-25

경상북도 경주시 보불로 174-17

보불어탕명가는 경상북도 경주시 하동에 있다. 한옥의 고픙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외관과 예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어탕 손수제비다. 이 밖에 어탕 칼국수, 어탕 만두국, 어탕 해장국, 어탕밥, 매운어탕수제비 등 여러 가지 어탕 요리가 준비되어 있다. 동경주IC에서 가깝고, 주변에 추억의달동네, 세계문화유산 석굴암이 있어 연계 여행에 나서기 제격이다.

경주 효소왕릉

7.3Km    2024-11-06

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

경주시 조양동에 있는 신라 제32대 효소왕의 능으로 크기는 지름 10.3m, 높이 4.3m, 둘레 57.5m이다.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원형봉토분이며 묘제는 굴식돌방무덤이다. 밑 둘레에는 40∼50㎝의 자연석을 사용하여 왕릉을 보호하기 위해 둘레돌을 1m 정도 쌓아 올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 둘레돌이 대부분 묻혀 있고 아무런 표식물이 없다. 능묘 제도의 발달 과정으로 보아 선대인 신문왕릉보다는 발달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 왕릉은 매우 초기적인 형식이다. 재위 시기는 신라가 3국을 통일한 후, 안정과 번영으로 향하던 때여서 비록 특기할 만한 치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능이 빈약하다. 기록에 의하면 망덕사 동쪽에서 효소왕의 장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현재의 위치로 보아 효소왕릉임은 분명하다. 왕릉은 1929년 4월, 1969년 11월에 도굴 당했다. 특히 두 번째 도굴로 돌방의 규모가 드러났는데, 길이 3m 너비 150㎝ 높이 150㎝의 크기이고 돌방에 사용된 돌은 화강석이며 돌방 안에 부장된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주 서악동 고분군

7.4Km    2024-08-14

경상북도 경주시 능남길 28

경주 서악동 고분군은 경주시 서악동 무열왕릉 바로 뒷편의 구릉에 분포하는 4개의 대형 무덤을 가리킨다. 1964년 8월 2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의 고분들은 경주분지의 대형 고분과 비슷한 형태로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원형봉토 고분이다.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내부구조를 알 수는 없으나, 봉분이 거대한 점, 자연돌을 이용해 둘레돌을 두른 점 및 무열왕릉보다 높은 곳에 있는 점으로 보아 왕릉으로 추측하여, 안에는 나무로 된 네모난 방을 만들고 그 위와 주변에 돌무더기를 쌓은 돌무지덧널무덤 형식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들 고분이 분포한 지형은 선도산에서 서남으로 뻗은 능선 위에 있고 뒷산과 동서의 계곡 건너에 있는 능선 등을 종합해 볼 때,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무덤의 주인에 대해 첫 번째 무덤은 경주 법흥왕릉, 두 번째 무덤은 경주 진흥왕릉, 세 번째 무덤은 경주 진지왕릉, 네 번째 무덤은 문흥대왕릉 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