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진주성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진주성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진주성

14.1 Km    2     2024-07-29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본성동)
055-795-3214

2024년 8월 2일부터 24일간 진행되는 2024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진주성의 주제는 ‘온새미로 진주성도’이다. 온새미로는 ‘가르거나 쪼개지 않은, 있는 그대로’라는 뜻의 순우리말로, 진주성의 지난 역사와 변천사를 보여주며 영남 제일의 풍류인 진주교방문화, 진주성 전투 및 불굴 충절의 정신을 드러내는 미디어파사드와 관람객과 진주시민 모두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하동복집

14.2 Km    0     2024-01-22

경상남도 진주시 진양호로 553

중앙시장에서 6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복국전문점이다. 맑은 국물의 시원한 복국으로 해장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매콤한 아귀찜과 아귀수육도 수준급 맛이다.

중태마을

중태마을

14.2 Km    0     2023-10-26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중태리 826

여인이 누워 만든 태자리를 뜻하는 중태마을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픔이 녹아있는 마을이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전장이기도 했고 6·25 전쟁 당시 불에 전소되었던 마을을 재건한 아픔도 갖고 있다. 특히 동학 전쟁 당시 중태마을 입구의 대나무밭은 일본군을 공격하기 위해 매복했던 곳이라고 전한다. 중태마을의 나무들은 전쟁 때 다 불에 타버리는 바람에 다른 마을에서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 마을 내 지리산 둘레길 중태 안내센터가 있어 지리산 탐방객들의 주요 거점 중 하나로 역할을 하고 있다.

안의갈비탕

안의갈비탕

14.2 Km    0     2024-01-16

경상남도 진주시 비봉로 6-2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바로 옆에 있는 안의 갈비탕은 30년 전통의 2대가 함께 운영하는 진주 대표 로컬 맛집이다. 대표 메뉴는 갈비탕과 갈비찜으로 갈비탕의 진하고 깔끔한 국물맛이 일품이고 갈비찜은 부드러운 갈비에 매콤한 소스가 매력적이다. 2층엔 단체 손님을 위한 연회석이 준비되어 있고 버스는 진주성 공북문 주차장을 이용하고 승용차는 안의갈비탕 앞에 있는 삼성 서비스센터 앞의 노상주차장이나 근처에 청소년수련관 주변 노상 주차장을 이용하면 1시간 무료 주차권을 지원해 준다. 매장과 2분 거리에 진주성이 있어 식사와 관광을 편하게 할 수 있다.

용암서원(합천)

14.2 Km    1566     2023-12-20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남명로 72-5

용암서원은 조선 명종 때의 거유(巨儒)이자 실천 성리학자인 조식(曺植)이 제향되었던 서원이다. 이 서원의 전신은 1576년(선조 9)에 노흠(盧欽), 송희창 등 여러 선비가 의논하여 삼가현의 서쪽 20리 근처 회현(晦峴) 아래에 세운 회산서원(晦山書院)이라고 한다. 그 후 1601년(선조 34)에 서원을 재창건 하면서 회산서원지가 협소하므로 여러 선비들이 의논하여 황강 앞으로 옮겨 건립하였다. 황강으로 이건 된 4년 후인 1605년(선조 38) 8월에는 조식의 위판(位板)이 봉안되고, 1609년(광해군 1)년에는 ‘용암(龍巖)’이라 사액되었다. 용암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진 1871년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서원지에 1812년에 건립된 용암서원묘정비가 남아 있다. 이 비는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서원이 헐리자 서원과 관련된 조식의 업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건립되었으나 합천댐 공사로 인하여 수몰을 피해 봉산면 죽죽리 산 26번지로 이전하였다.

진주향교

진주향교

14.2 Km    3322     2024-08-14

경상남도 진주시 향교로 99-3

진주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며 지방 백성들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기 위해 지은 국립지방교육기관이다.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성종 6년(987) 지금의 의곡사 계곡에 향학당으로 처음 세워진 후 조선 태조 7년(1398) 문묘를 지으면서 향교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명종 13년(1558) 현 위치로 옮겨졌으며, 교관과 교수 등은 성균관으로부터 직접 파견되었다.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타 없어졌다가 여러 차례의 공사를 거치면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동서방향의 급경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명륜당을 비롯한 교육공간이 앞에 있고 대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공간이 뒤에 위치한 전학 후묘의 배치형식을 하고 있다. 또한 대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건물들이 일직선 위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현재 대성전, 동무와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와 서재, 풍화루 그밖에 부속건물이 있다.

W글램핑

W글램핑

14.2 Km    3     2023-08-17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웅석봉로285번길 80-20

W글램핑은 각종 아웃도어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글램핑이다. 글램핑은 편안한 잠자리에서부터 캠핑에 필요한 모든 도구들과 시설들을 갖추고 있어, 훌훌 몸만 떠나오면 되는 곳이다. 또한 반려견과 동반 입장이 가능해 반려견 캠퍼들에게 사랑받는 캠핑장이다.
캠핑장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체험이 있어 캠퍼들이 심심할 겨를이 없다. 페인트볼 게임 , 보드게임, 피자 만들기, 붕어빵 만들기, 비어캔 치킨 만들기 등이 있으며, 전기바이크 투어, 카약 투어, 낚시 투어, 산악바이크(ATV)투어, 래프팅 투어까지 다양한 즐길 거리가 넘쳐난다. 바비큐 상차림을 예약하면 무한리필 (돼지고기, 닭봉, 소시지, 새우, 마시멜로, 옥수수, 구이용 떡, 김치 , 마늘, 고추, 상추, 깻잎, 쌈장, 소금, 참기름)로 먹을 수 있으며 햇반, 라면, 물까지 포함이다. 평일에는 전기바이크를 1시간 무상대여해주고 있으며, 주말엔 비용을 내야 이용이 가능하다.

호국사(진주)

호국사(진주)

14.2 Km    24623     2024-08-14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71

진주성 내에 있는 호국사는 고려 시대에 창건되어 내성사라 하였다. 고려 말기에 왜구를 막기 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 승병을 기르기 위해 창건된 것으로 생각되는 이 절은 임진왜란 때는 승군의 근거지가 되었다.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대에 호국사란 이름으로 재건하였다고 전한다. 최근에 진주성을 정화하면서 일주문 자리가 발견되어 새로 세웠으며, 사찰의 건물은 모두 근년에 새로 이룩된 것이다. 호국사 인근에는 진주음악분수대, 진주성 의암, 의기사 등 많은 관광지가 있는 지역이다.

진주성

진주성

14.2 Km    62439     2024-08-14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삼국 시대 거열성, 고려 시대 촉석성으로 불렀던 성곽으로 조선 시대에 이르러 진주성으로 개칭되었다. 석축 된 성의 둘레가 약 1,760m, 높이는 약 5~8m이며, 성안에 우물과 샘이 각각 3개 있고, 군창이 있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하륜(1347~1416년)의 성문기에 보면, 성이 옛터만 남아 언제 쌓은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고려 우왕 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에게 석축 하게 하였다고 한다. 고려 말 왜구 방어의 보루로 고쳐 쌓은 진주성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남에 진출하려는 왜적을 막는 관문이 되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제1차 진주성 싸움은 3,800여 명의 군사로 2만여 명 가까운 왜적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이 성을 지킴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을 지킬 수 있었다. 1593년 제2차 진주성 싸움에는 민·관·군 7만여 명이 왜군 10만여 명을 맞아 11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순의하였고, 이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충절을 지킨 곳이기도 하다. 성내에는 촉석루, 김시민 전성각적비, 의기사, 서장대, 북장대, 창열사, 국립진주박물관, 호국사,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진주 남강유등축제

진주 남강유등축제

14.2 Km    685507     2024-09-09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055-749-8588

*하기 행사 내용은 전년도(2023년) 행사 내용으로, 2024년도 행사 내용은 업데이트 중에 있습니다.*

“진주대첩”은 1592년 진주성을 침공한 2만 왜군을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3,800여 명 병력으로 물리친 전쟁이다. 풍등(風燈)을 하늘에 올려 횃불과 함께 남강에 띄워 남강을 건너는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 전술을 사용했다. 진주 남강의 유등은 전쟁 당시 가족 간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도 쓰였다. 진주 남강 유등축제는 이때부터 내려온 전통을 이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