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Km 2025-06-09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현동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있는 공간으로, 경복궁과 종로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광장이다. 송현동 부지는 일제강점기 식산은행 사택, 해방 후 미군 숙소, 미대사관 숙소 등으로 활용되어 오다가 1997년 우리 정부에 반환되었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쓰임 없이 폐허로 방치되어 높은 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2022년 7월 한국주택공사로 소유권이 넘어오고 서울시로 다시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쉼과 문화가 있는 열린송현 녹지광장으로 단장하고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높이 4m 담장에 둘러싸여 오랜 기간 닫혀있던 공간은 돌담을 낮추고 야생화로 어우러진 녹지로 조성하였다. 이로 인해 율곡로, 감고당길에서 드넓은 녹지광장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돌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광장 중앙에 서울광장 잔디보다 넓은 중앙잔디광장이 펼쳐진다. 광장 주변으로는 코스모스, 백일홍과 같은 야생화 군락지가 조성되어 있다. 경복궁과 북촌은 송현동 부지가 열리면서 광장 내부로 난 지름길로 연결된다. 광장을 가로지르며 걷다 보면 청와대, 광화문광장, 인사동 그리고 북촌 골목길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1.7Km 2025-08-19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36길 7 (후암동)
아티스푼은 그림과 음악, 책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농담, 말담, 청담 등 오감을 열고 나의 감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있다. 외국인 대상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테마로 하는 별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서울타워가 자리한 남산 자락, 용산구 후암동 하늘계단에 위치한 아티스푼에서 나홀로, 함께 예술이 주는 생경함과 신비함을 느껴보시기 바란다.
1.7Km 2025-12-10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이며, 궁성의 정문이다. 광화문은 국왕이 드나드는 정문이기도 했지만,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었기 때문에 다른 궁궐의 정문에 비해 그 규모와 격식 면에서도 매우 웅장하고 화려했다. 또한 광화문은 담장 끝 동쪽과 서쪽에 각각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두어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 형식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광화문은 중층으로 된 문루를 받치는 기단석축에 세 개의 홍예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도록 하였다. 문루(門樓)에는 종을 걸어 때를 알리는 데 사용하였다. 이처럼 경복궁이 조선왕조의 법궁이라는 점은 광화문을 비롯한 성문의 형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궁의 문들은 낮은 단 위에 문을 세우지만 경복궁의 문은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중앙에 홍예문을 내서 마치 성곽의 문과 같은 모습을 취한다. 광화문은 그중에서도 홍예문을 셋이나 내서 가장 격식 높은 모습을 보여준다. 광화문이 법궁의 정문이라는 사실을 잘 드러내준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이 궁제에 따라 ‘오문(午門)’으로 부르다가, 태조 3년(1395) 정도전에 의해 ‘정문(正門)’으로 이름을 바꾸지만, 세종 8년(1426)에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집현전에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을 지어 올리면서 지금의 광화문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원래 광화문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궁성의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으나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부서지고 석축은 탄흔투성이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광화문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된 것은 1968년 박정희 정권에 이르러서다. 파괴된 문루를 다시 짓고 광화문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 재건한 광화문은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으며, 재건 당시 광화문의 축을 경복궁의 중심축에 맞춘 것이 아니라 당시 중앙청으로 쓰이던 구 조선총독부 청사의 축에 맞추어, 그 결과 3.5도가량 본래의 축과 어긋나게 틀어지고 말았다. 그 뿐만 아니라 원래의 광화문 자리에서도 14.5미터가량 뒤로 물러나 지금의 자리에 서있게 되었다. 이렇게 원형을 잃어버린 광화문을 복원하고자 2006년부터 광화문 철거작업을 시작해 3년 8개월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2010년 8월 15일 완공되었다. 화강암으로 육중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이층의 문루를 얹어 멀리 조망하기 좋을 뿐 아니라 궁궐 정문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내고 있다. 기단에 있는 3개의 아치형 출입문은 경복궁이 조선의 정궁이라는 위엄을 과시한다. 돌로 만든 기단 위에는 흙을 구워 벽돌처럼 만든 ‘전돌’로 나지막한 담을 둘렀는데, 여기를 장식한 팔괘 문양은 조선조 궁궐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1.7Km 2023-08-10
경복궁 인근 길들은 정말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최근에는 고풍스런 북촌에 젊은 디자이너들이 색을 입혀 갤러리와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이 들어섰다. 걸어도 걸어도 눈이 즐겁다. 정독도서관의 시원스럽고 운치있는 정원의 한가로움도 서울의 번잡함을 잊게 해 준다.
주변의 작은 갤러리들도 눈요깃감이 많다.
출처:이야기를 따라 한양 도성을 걷다.
1.7Km 2025-09-22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85가길 19-4 (서계동)
010-4501-0106
서울역 15번 출구에서 걸어서 4분 소요되는 위치한 감성적인 독채 숙소입니다. 1950년대에 지어진 주택을 리모델링해 마당과 단독 출입문을 갖춘 특별한 공간을 제공합니다. 현대적인 인테리어와 청결한 환경, 다양한 가전제품 및 보완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명동, 홍대, 종로 주요 관광지와 지하철로 10분 이내에 이동 가능해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1.7Km 2025-06-24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일제 경성호국신사 계단은 일제강점 말기에 건설된 경성호국신사의 진입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다른 말로 108계단이라고도 한다. 일제는 중일전쟁과 대평양전쟁 등 침략전쟁으로 인해 전사자가 늘어나자 야스쿠니신사의 지부격으로 일본과 한반도 주요 지역에 호국신사를 건립하였다. 경성호국신사로 그중 하나로 전사한 군인들을 호국의 영령으로 추모한다는 명목하에 만들었다. 경성호국신사는 일본군인뿐 아니라 지원병제도(1938), 학도지원병제도(1943), 징병제도(1944) 등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한국인 사망자 추모까지 염두에 둔 것이었다. 1940년 10월에 착공되어 1943년 11월에 완공되었으며, 한국인들의 재산과 노동력이 동원되었다. 경성호국신사에서는 합사제 등 전사자 추모행사와 전쟁 승리 기원행사 등이 열렸는데, 많은 한국인들이 이러한 행사에 동원되었다. 해방 후 이 일대는 해외에서 귀환하거나 월남한 동포들이 빠르게 정착하면서 해방촌이 형성되었다. 정착민들의 적극적 활동으로 가건물 위주였던 해방촌은 주거시설 및 상하수도 시설이 체계적으로 구비되고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성호국신사는 해체되고 지금은 계단만 남아 있다. 2018년에는 108계단을 오르기 힘든 교통약자의 보행편의를 위해 주택가 최초의 경사형 승강기가 설치되었으며,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계단 양쪽 벽에 꾸며진 예쁜 타일 벽화와 곳곳에 그려져 있는 포토 스폿들, 골목 사이에 있는 개성 넘치는 가게들은 아픈 역사의 후암동108계단을 예술의 거리로 바꾸어 놓았다.
1.7Km 2025-11-12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경복궁은 1392년 조선 건국 후 1395년(태조 4)에 창건한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경복궁은 백악산(북악산)을 주산으로 넓은 지형에 건물을 배치하였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진 한양의 중심이었다. ‘경복’의 이름은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이곳에서 세종 대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반포되기도 하였다. 또한, 동궐(창덕궁)이나 서궐(경희궁)에 비해 위치가 북쪽에 있어 ‘북궐’이라 불리기도 했다.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식을 가진 왕들을 보면 제2대 정종, 제4대 세종, 제6대 단종, 제7대 세조, 제9대 성종, 제11대 중종, 제13대 명종 등이 있다. 경복궁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는데, 그 후 복구되지 못하였다가 270여 년이 지난 1867년(고종 4)에 다시 지어졌다. 고종 대에 들어 건청궁과 태원전, 집옥재 등이 조성되었으며, 특히 건청궁 옥호루는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1910년 경술국치 후 경복궁은 계획적으로 훼손되기 시작하여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한다는 명분으로 대부분의 전각들이 철거되었고, 1926년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경복궁의 경관을 훼손하였다. 이후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경복궁 복원공사가 진행되었고,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였으며 흥례문 일원, 침전 권역, 건청궁과 태원전, 그리고 광화문 등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복궁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경회루와 향원정의 연못이 원형대로 남아 있으며, 근정전의 월대와 조각상들은 당시의 조각미술을 대표한다. 현재 흥례문 밖 서편에는 국립고궁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고, 경복궁 내 향원정의 동편에는 국립민속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경복궁의 주요 문화재로는 사적 경복궁, 국보 경복궁 근정전, 국보 경복궁 경회루, 보물 경복궁 자경전, 보물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 보물 경복궁 아미산굴뚝, 보물 경복궁 근정문 및 행각, 보물 경복궁 풍기대 등이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미국의 국민 TV 쇼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서는 ‘BTS위크’라는 이름을 붙여 닷새간 BTS 특별 방송을 진행했는데, 그중 BTS가 ‘맵 오브 더 솔 : 페르소나’ 미니앨범 수록곡 ‘소우주’와 ‘IDOL’을 부른 장소가 화제다. 그 장소는 바로 조선시대의 궁궐 중 하나인 ‘경복궁’의 경회루와 근정전이다. 보랏빛 조명에 아름답게 빛나던 경복궁에서 한국의 과거를 체험해 보길 추천한다.
1.7Km 2025-03-13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건청궁(乾淸宮)은 1873년(고종 10)에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진 궁 안의 궁이다. ‘건청’은 ‘하늘은 맑다’라는 뜻으로,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다. 건청궁의 왕의 생활공간인 장안당(長安堂, 오랫동안 평안하게 지냄)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곤녕합(坤寧閤, 땅이 편안함)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안당과 곤녕합은 복도로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 고종과 명성황후는 10년 정도 생활하였다. 그러나 1895년(고종 32) 곤녕합 옥호루(玉壺樓, 옥으로 만든 호리병)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 고종은 이듬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이후 1909년(융희 3)에 철거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미술관이 들어섰다가 철거된 후 2007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1.7Km 2025-09-16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서울 02-786-0610 수원 031-5191-2367 화성 070-4202-1017
백성과 함께한 행복한 8일, 시민의 축제로 다가온다. 조선 역사상 가장 성대한 축제이자 백성과 성군이 함께한 동행! 2025년 정조대왕의 능행차 길을 따라 『원행을묘정리의궤』 속 정조의 뜻을 되새긴다. 1795년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수원 화성으로 행차했다. 정조의 8일 간의 여정은 단순한 왕의 이동이 아닌 백성과 즐거운 기억을 공유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정조의 애민정신은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담겨 널리 배포되었다. 2025년, 정조대왕의 정신을 계승하고 백성의 행복한 기억이 시민의 행복한 기억으로 재현된다.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은 서울시, 경기도, 수원시, 화성시가 협력해 '을묘년 화성원행'의 원형을 현대에 화려하게 재현하는 축제이다.
1.7Km 2025-09-23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1522-2295
수라간 시식공감'은 궁중 문화를 보고 먹고 즐기고 감동한다는 視 시각, 食 음식, 公 공연, 感 감동을 주제로 궁중음식문화를 직접 체험해 보는 전통문화 복합체험 프로그램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