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Km 2024-01-05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로 82
송정역 근처에 위치한 코코블루는 이름과 동일하게 외관이 코발트블루색으로 멀리서도 눈에 쏙 들어오는 곳이다. 코코블루는 층마다 알록달록 다양한 콘셉트와 포토존이 가득하다. 코코블루 시그니처 공간인 지하 1층에는 온통 핑크핑크한 핑크 매장이 있으며, 3층에 위치한 루프탑에서 커피도 즐길 수 있다.
6.4Km 2025-01-20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아로 460
경장각은 조선 인조 대 문신인 이신의(1551~1627)를 배향하는 재각이다. 재각은 무덤이나 사당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말한다. 이신의를 배향하기 위하여 1754년 지어진 유애서원이 1868년 서원 폐지령으로 훼철되자 1901년 서적과 유물을 보관하기 위하여 금서재가 세워졌고, 이후 금서재를 철거하고 1919년에 경장각을 건립하였다. 2000년 경장각 후면에 단청 사우를 마련하여 이신의를 배향하게 되었다. 이 곳에는 이신의의 유물로 선조왕 친필병풍과 거문고가 보존되어 있다. 병풍은 인조가 그의 충절을 가상히하여 선조왕 친필을 하사한 것이며, 거문고는 석탄이 평소 애용하던 거문고이다. 의병장이자 학자인 석탄 이신의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유적지는 경기도 고양에는 위치한 도래울석탄공원, 이신의선생기념관이 있다. *석탄 이신의 이신의의 본관은 전의이며 자는 경칙이고 호는 석탄이다. 일찍이 어버이를 여의고 형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군 300명을 거느리고 적과 싸운 공으로 사옹원직장에 올랐으며, 이어 사재감주부·공조좌랑·고부군수 등을 지냈다. 1617년(광해군 9) 이항복·정홍익·김덕함 등이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광해군의 폭정에 대해 극간하다가 유배되자, 이신의도 분연히 항소를 올렸다가 이듬 해회령으로 유배, 위리안치되었다. 그 해 가을 북로의 경보가 있어 변경 일대가 불안하자 흥양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풀려 나와 형조참의·광주목사를 역임하고, 1626년 판결사를 거쳐 이듬 해 형조참판에 올랐다. 이 해 정묘호란으로 왕을 호종해 강화로 가던 도중 병이 나 인천에 머물다가 수원마정리에서 죽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고양의 문봉서원과 괴산의 화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이다. 저서로는 『석탄집』이 있다.
6.4Km 2025-04-10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로68번길 13 (송정동)
광산문화예술회관은 문화예술 공연장으로 2002년 10월 8일 개관하였다. 문화예술인들에게 창작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주민의 문화향유욕구를 충족시켜 주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턱 낮은 복합문화공간을 목표로 다양한 장르의 공연, 전시, 예술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시설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연장, 사무실, 국창 임방울 판소리 전수관, 온라인 생중계 스튜디오, 분장실, 조정실이 내부에 있다. 부대시설로는 야외 공연장과 주차장이 있다. 펼치는 사업은 공연장 상주 단체 육성 지원, 특별 기획 공연, 문화가 있는 날 특별 공연,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대관 규정에 따라 대극장, 야외시설, 임방울 판소리 전수관 등의 대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6.4Km 2025-03-24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마을로 171
062-576-4749
정통 중국요리 전문점 장가계는 아늑한 외식공간은 물론 싱싱하고 신선한 재료로 사랑받고 있다. 또한 각종 모임 및 사교의 장소로써 손색이 없으며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요리로 자긍심을 가지고 오는 이로 하여금 시각과 미각의 만족감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양한 코스요리는 중국 정통 중화요리 그대로 맛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반드시 신선한 재료만을 엄선하여 사용하며 특히 양장피, 삼선자장, 코스요리, 정식 요리 등은 그 맛이 유별나다.
6.4Km 2025-01-20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아로 460
유애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신의(1551~1627)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어졌으며, 삼문 양편에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담한 공간이다. 1754년 이신의의 충절을 기려 호남 유림이 건립했다가 1868년 훼철됐다. 이어 1919년 경장각을 짓고 2000년 사우를 마련해 서원으로 성균관에 등록했다. 유애서원의 경장각에는 서적과 석탄금(거문고), 선조가 쓴 당 오언시를 목판에 새겨 찍은 여덟 폭 병풍(인조의 하사품) 등 유품을 보관했으며, 선무원종공신녹권을 비롯한 130여점의 고문서는 광주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석탄 이신의 이신의는 한성에서 태어나 고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형조판서 이원손이며, 어머니는 정종의 현손이다. 일찍 어버이를 여의고 형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도라산 숲속에 서실을 지어 공부하는데 물이 바위를 굽이쳐 흐르는 것을 보고 여울의 탄을 넣어 호를 석탄(石灘)이라 했다. 서경덕의 문하인 초당 허엽과 행촌 민순을 사사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석탄은 의병 300여명을 결집해 고양에서 창의했다. 고향을 지키려는 이 작은 부대는 왜적이 쳐들어오자 혁혁한 공을 세운다. 1596년 서얼 이몽학의 난이 일어나 고을 수령들이 줄줄이 도망해 여러 현이 함락됐다. 이 와중에 석탄은 천안군수 정호인과 8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이어 괴산·임천 군수, 홍주·해주목사를 거쳐 광주목사를 역임하면서 목민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1617년, 영창대군이 참살당한 이후 광해군은 인목대비를 폐하기 위해 문무백관의 의견을 듣는 수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그 부당함을 지적하는 항론을 올린다. 이 일로 이듬해 2월 함경도 회령으로 유배를 간다. 1623년 광해군의 폭정에 서인 일파가 정변을 일으키니 인조반정이다. 석탄은 5년의 귀양을 마치고 형조참의로 조정에 복귀한다. 광주목사에 이어 형조참판에 오른다. 1627년 정묘호란때 석탄은 노구를 이끌고 인조 호종을 위해 강화도로 향했다가 병을 얻어 77세에 수원의 어느 여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우국일념이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정이다. 고양의 문봉서원, 괴산의 화암서원, 그리고 광주의 유애서원에 제향됐다.
6.4Km 2025-01-15
광주광역시 광산구 풍영로229번길 53
해궁은 전복요리 전문점으로 넓은 주차장과 홀을 갖추고 있어 회식 장소로 추천할만한 식당이다. 전용 주차장과 2층 주차장 2곳이 마련되어 있어, 주차 걱정 없이 방문할 수 있다. 홀 외에도 룸을 갖추고 있어 조용한 식사를 원하는 손님에게 안성맞춤이다. 전복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식당인 만큼 전복회, 전복구이, 전복아구찜 등 전복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다양한 요리가 마련되어 있다. 건강식으로 알려진 만큼 부모님과 함께하는 가족 단위 손님도 많다. 가까이에 수완호수공원, 원당산공원 등이 있어 식사 전후 산책을 즐기기 좋다.
6.4Km 2025-04-01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월로21번길 26
광주의 옛 이름 ‘무진의 볕’이라는 뜻을 지닌 무양서원은 고려 인종 때 탐진 최 씨 문중이 전국 유림의 호응을 얻어 세운 사원이다. 고려 인종 때 어의 최사 전과 그의 후손 최부, 최희춘, 나덕현 다섯 분의 신주를 모신 서원이다. 강당인 이택당을 중심으로 왼편과 오른편에 합의문과 합인문이 있다. 합의문을 지나면 오른편에 동재인 성지재가 있고 왼편에는 서재인 낙호재가 있다. 내삼문인 삼오 문을 지나 높은 땅 위에 담장이 있는 무양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것은 사당 안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무양서원에 이르는 마을은 토담길로 단장되어 있으며 입구의 광장과 주차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주위의 오래된 거목들은 마치 유생들의 기상을 펼쳐놓은 듯 아름드리 펼쳐있어 무양서원의 나이를 말해주는 듯하다.
6.4Km 2025-04-03
광주광역시 동구 무등로
무등산 옛길은 광주광역시에서 2009년, 예부터 광주와 인근지역 사람들이 넘어 다녔던 무등산 자락의 옛길을 복원한 곳이다. 옛길은 현재까지 총 3구간과 무등산 의병길로 구성돼 있다. 1구간은 광주 도심과 무등산 산행이 시작되는 원효사까지이며, 2구간은 원효사에서 서석대에 오르는 등산로, 3구간은 광주 도심에서 충장사를 거쳐 담양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무등산 의병 길은 일제강점기 때 의병활동을 하며 다녔던 길을 복원 한 길로 지난 2011년 개방됐다. 그중 ‘무등산 옛길 1구간’은 광주 도심에서 수지사를 출발해 잣고개-청풍쉼터-옛주막터-충장사를 거쳐 원효사까지 이어지는 7.75km의 길이다. 넉넉잡아 3~4시간은 족히 걸린다.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에게는 버스를 타고 산을 올라가 2구간부터 돌고 1구간을 내려오는 것을 추천한다.
6.5Km 2025-01-14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완길 103
광주 광산구에 있는 스퀘어는 큰 규모의 매장과 깔끔한 인테리어로 주목받는 카페다. 옥상 테라스에도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 주변 경관을 보며 힐링 타임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다양한 커피 종류와 베이커리가 있어, 디저트를 즐기기 위해 찾는 손님도 많다. 아인스퀘어, 피넛크림, 보름달이 시그니처 메뉴다.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한 베이커리로 유명한만큼, 베이커리 종류도 인기다. 수완호수공원, 황룡친수공원 등이 주변에 있어 산책코스로 함께 즐기기에도 좋다.
6.5Km 2025-03-28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로46번길 46
송호영당은 눌재 박상(朴祥)과 사암 박순(朴淳)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1728년에 건립되었다. 원래 박상의 출생지인 서창동 절골마을에 있었으나 후에 현 위치로 옮겼다. 이곳은 1995년 12월 22일부터 1996년 4월 16일까지 사당, 담장, 진입계단의 보수공사가 이루어졌고, 1997년 10월 12일부터 1998년 1월 16일까지 효자각을 건립하였다. 이후 1998년 9월 2일부터 10월 14일까지 사우석축을 보수하였다. 이 영당의 기단은 시멘트 기단 위에 중앙은 영정봉안장소로 사용되고 좌우에는 온돌방을 만들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하였다. 뒤쪽 벽에는 창방소로 장혀위에 납도리를 걸쳤고 전면에는 단청을 하였으나 퇴락하였다. 창호는 분합문이며 빗살(교살) 창살로 되어있고 주두위의 포작은 익공식을 따르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담징을 붉은 벽돌로 쌓았으며 대문은 평문이다. 눌재 박상(1472∼1530)은 연산군 7년(1501)에 정시을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를 시작으로 중종 24년(1529) 나주목사를 마치기까지 약 29년간 조정에 몸담았다. 사암 박순(1523∼1548)은 그의 조카로 조선중기의 문인학자이다. 사암은 명종 8년(1553)에 정시문과에 장원한 뒤 예문관전적을 시작으로 약 35년간 조정에 있었다. 송호영당에는 사암과 눌재의 문집도 보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