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 의주길 제2길] 고양관청길(벽제관지 ~ 용미3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경기옛길 의주길 제2길] 고양관청길(벽제관지 ~ 용미3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경기옛길 의주길 제2길] 고양관청길(벽제관지 ~ 용미3리)

[경기옛길 의주길 제2길] 고양관청길(벽제관지 ~ 용미3리)

12.4Km    2024-11-04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관로

경기 옛길 의주길 제2길은 고양 관청길로, 고양 관청길은 고양의 옛 관아 자리인 고읍마을과 고양과 파주를 잇는 관청고개(관청령)를 지나는 길이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파주 땅으로 넘어가기 위해 혜음령을 지나는 의주대로 외에 이 길 역시 자주 이용했다. 두 지역의 경계가 되는 관청 고개는 전망이 좋아 멀리 관악산까지 볼 수 있다. 벽제관지에서 시작해 중남미 문화원, 고읍마을 등을 거쳐 혜음원지에서 마무리된다. 소요 시간은 3시간 정도로 코스의 총 길이는 7.3km이다. 이 옛길에서 볼 수 있는 문화재로는 고양 벽제관지, 고양향교, 연산군시대 금표비, 파주 혜음원지 등이 있다.

고양 벽제관지

고양 벽제관지

12.4Km    2024-08-30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관로 34-16

고양 벽제관지는 우리나라에 오는 중국 사신의 공용 숙박시설이 있었던 곳이다. 숙박시설인 벽제관은 1476년에 세워졌으며, 중국 사신들은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예를 갖추어 서울에 들어가는 것이 관례였다. 또한 이곳이 중국으로 통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으로 가는 우리나라 사신들도 여기서 머물며 휴식을 취하곤 했다. 특히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이끄는 군대와 왜군과의 벽제관 싸움이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지금의 자리는 1625년에 고양군을 옮길 때 세운 객관으로, 그 후의 보수 흔적은 확실하지 않다. 당시 규모는 면적 1,265평, 건물은 601평에 달하였다고 한다. 벽제관은 관서지방으로 가는 큰 길에 설치된 첫 역관이었으며, 또한 국왕이 중국 사신을 친히 배웅하고 맞이하던 모화관에 버금가는 곳이다. 한국전쟁으로 불타고 1960년 경까지 객관문은 남아 있었으나 결국 퇴락하여 무너져버리고, 지금은 터만 남았다.

서해안칼국수

서해안칼국수

12.5Km    2024-06-27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호국로 1721

서해안칼국수는 덕양구 고양동에 있는 해물 칼국수 맛집이다. 주차는 가게 앞에 4~5대 가능하고 오른쪽 문구점 옆 공터에도 주차할 수 있다. 식당은 2층에 있고 내부는 넓은 편이고 좌석이 많아서 쾌적하게 식사할 수 있다. 칼국수 전문점인데 해물칼국수가 유명하다. 메뉴에 해물전골+칼국수라고 적어 놓은 것처럼 해물탕에 가깝게 해물이 많이 들어가 있다. 전복, 가리비, 꽃게, 새우, 오징어, 홍합, 바지락 그리고 낙지 한 마리가 들어가 있다. 해물이 많이 들어가서 국물이 시원하다. 해산물을 샤부샤부처럼 먹고 나면 칼국수를 넣어 준다. 추모공원하늘문에서 10분 거리라 성묘 후 방문하기 좋다.

일산 어린이천문대

일산 어린이천문대

12.5Km    2024-08-29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로 306-176

어린이천문대는 천체관측 시설과 천문연구활동을 중심으로 아이들에게 우주과학 및 자연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고취시키며, 주어진 문제를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케 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서 어린이천문대는 사회 각층의 전문 자문위원단과 연세대학교 이과대학 전공 실무자들의 연구와 협의에 의해 개발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체험적이고 심층적인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어린이들에게 보다 다양하고 심도 있는 천문 자연과학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곳 프로그램들은 자연과학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어린이들에게 제공하여 그들이 자연과학을 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도록 하고, 아이들에게 단순히 지식 전달만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게 이끌어 준다. 도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아이들이 쉽게 별을 만날 수 있고, 4년 과정의 체계적인 천문 프로그램을 통해 우주 속에 숨은 과학적 지식을 배울 수 있으며 천문 관련 만들기 실습을 통해 어린이들의 공간지각 능력과 천문학의 지식을 동시에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장흥관광지 한식마을

장흥관광지 한식마을

12.5Km    2024-11-11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양주시 장흥계곡을 따라 한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장흥계곡은 워낙 물이 맑아 많은 방문객들이 방문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경기형 청정하천 공모사업’을 통해 불법 시설물들을 철거하고 누구나 계곡을 이용할 수 있도록 계단과 편의시설을 설치하였다. 맑고 청정한 장흥계곡을 맘껏 즐긴 후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는 한식 마을에서 식사해 보자.

자유로레져 바다낚시터

자유로레져 바다낚시터

12.5Km    2023-02-16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엘지로717번길 2-114

국내 최대 돔형 실내 낚시터로 사계절 실내에서 육지에서 바다낚시가 가능한 곳으로 우럭, 능성어, 대돔을 낚시할 수 있으며, 오전 8시 오후 5시 저녁 10시 3차례 추가 어류를 방류하며 중간중간 서비스 방류까지 이루어지고 있어 제대로 손맛을 즐길 수 있다. 1~2인 방갈로가 40석이 있으며 낚시터 정체가 돔으로 만들어져 있어 겨울철에도 편안히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최영장군묘

12.5Km    2024-08-29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부인 문화 유 씨와 합장하여 1기의 묘로 만들었다. 사각형의 2단 호석을 두른 사각형 묘로서 곡장(曲墻)을 설치하였다. 묘 앞에는 좌우에 묘비와 충혼비가 있으며 상석, 혼유석, 향로석이 있고 망주석과 문석인 각 한 쌍이 좌우에 배열되어 있다. 봉분은 사각이며 위편에 최영의 부친 최원직의 묘가 있다. 최영은 1316년(충숙왕 3)에 태어나 호군, 대호군을 거쳐 후에 문하시중에 올랐다. 고려 말 공민왕과 우왕 때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을 수차례 물리치고 1388년 요동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좌절된 후 1388년(우왕 14) 이성계에 의해 참형되었다.

샘뜰두부집

샘뜰두부집

12.5Km    2024-08-12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로 227

샘뜰두부집은 DMZ 대성동 마을에서 직접 기른 장단콩을 사용하여, 매일 아침 가마솥에서 만든 두부만을 판매한다. 100% 장단콩 두부 전문점으로 두부로 만든 다양한 두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두부보쌈이다.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 곳으로 건강한 두부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올리브영 고양동

올리브영 고양동

12.5Km    2024-03-23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혜음로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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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묘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묘

12.6Km    2024-10-28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장흥자연휴양림 인근에 있는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묘는 일명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유명한 조선 후기의 천주교 순교자 황사영의 묘이다. 가마골이라 불리는 흥복산 자락의 황씨 문종 선산에 묘가 있어 가마골 황사영의 묘라고도 한다. 황사영 묘는 집안에서조차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1980년 족보를 확인하는 작업 중에 추정되는 무덤을 발굴하고 황사영의 것임을 확인했다. 1988년 10월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가 무덤 옆에 추모비를 세웠다. 당시 무덤에서 석제 십자가와 비단 띠가 들어있는 항아리, 그 안에 토시가 든 청화 백자합이 출토되었다. 황사영은 어린 나이로 초시에 합격하여 조선 정조가 친히 그의 손을 어루만지며 격려한 일이 있는데 명주로 만든 토시로 국왕이 만진 손목을 평생 감싸고 다녔다고 한다. 무덤에서 발견된 토시가 바로 그것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유물은 창원 황씨 판윤공파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2004년 한국교회사연구소에 기증하였고, 2009년에는 절두산 순교성지에 있는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황사영(1775~1801)은 남인계 가문 사람으로 본관은 창원, 자는 덕소, 세례명은 알렉시오이다. 황사영은 정난주 마리아와 혼인하였는데 그녀는 정약현의 큰딸이자 다산 정약용, 정약종의 조카이며, 고모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로 신유박해 때 순교한 이승훈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신앙을 받아들인 황사영은 1801년(순조 1) 신유박해를 피해 충청북도 제천의 배론으로 피신 중에 이른바 [황사영의 백서]를 작성해 북경의 프랑스 선교사인 구베아 주교에게 전달하려다 발각되었다. 27세의 나이에 대역죄로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 당했고, 그의 어머니는 거제도로, 처는 제주도로, 돌을 넘은 외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유배당해 모두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백서는 당시 조선 천주교회의 전개 상황 및 사회상 등을 알려주는 초기자료로 신앙의 귀감으로 교회사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포교의 자유를 얻어내기 위하여 청나라의 간섭이나 서양의 무력 사용을 요청한 점은 민족사적 입장에서 외세를 끌어들이려 하였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백서 원본은 원래 100여 년 동안 의금부 창고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을 1894년에 오래된 문서를 정리하면서 우연히 발견해 당시 서울 주교로 있던 뮈텔이 1925년 한국 순교자 79위의 시복 때 교황 피우스 11세에게 바쳐 현재 로마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황사영 묘는 제주도, 추자도에 있는 그의 처, 아들의 묘와 함께 천주교 성지로 많은 순례자가 찾는다. 근래에 황사영 묘 앞에 있는 외벽이 특이하게 돌로 건축된 3층 식당 건물을 사들여 찾기 쉽도록 크게 황사영 순교자의 묘라고 현수막을 달아 놓았다. 그 건물 오른쪽 뒤편에 바로 황사영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