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천 토굴새우젓시장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광천 토굴새우젓시장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광천 토굴새우젓시장

광천 토굴새우젓시장

15.2 Km    23898     2024-08-26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광천로285번길 8-20
041-642-7445

장항선 광천역 인근에 있는 토굴새우젓시장(광천전통시장)은 홍성의 토굴 새우젓 및 광천 재래 김으로 유명한 정기시장이다. 이곳에서는 산지에서 직접 생산하는 싱싱한 젓갈 및 김을 판매하고 있다. 광천읍은 젓갈의 마을이라 할 정도로 주변이 온통 젓갈 상가들이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새우젓은 용암포 마을 뒷산에 일제강점기 때 광산을 하기 위해 뚫어 놓은 토굴이 있는데, 이 토굴에서 숙성되어 나온 것들로 맛과 향이 다른 지방보다 월등하다. 전국에서 소비되는 새우젓의 60~70% 정도를 홍천에서 담당한다고 한다. 또한, 홍천의 또 다른 명물 광천김과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 및 가공품, 의류 및 잡화 등이 거래된다. 광천시장은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홍성IC로 나와 29번 국도를 따라가면 나온다. 또한 장항선 열차 이용도 편리하고, 버스터미널도 가까워 대중교통으로도 접근이 용이하다.

가야산(서산)

가야산(서산)

15.4 Km    41292     2024-07-30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

가야산은 충남 서산시와 예산군 사이에 솟은 충남 서북부 최고봉이다. 가야산 정상(678.2m)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원효봉(604.7m), 북쪽으로는 석문봉(656.8m)을 거쳐 일락산(521.4m)~상왕산(309.6m) 줄기와 옥양봉(621.2m)~수정봉(453.3m) 및 서원산(473.2m)으로 갈라진다. 이곳에는 다양하면서도 어렵지 않은 등산로가 개설되어 초보자도 쉽게 산을 오를 수 있다. 또한, 정상에서는 멀리 서해 바다가 보이고 봄철에는 철쭉과 진달래 등 각종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등 사시사철 경치가 수려하다. 또한 북쪽 용현계곡에는 백제가 남긴 예술 작품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과 보원사지가 있고 북서쪽 자락에는 개심사, 일락사, 문수사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반대편 동쪽 골짜기에는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일어났던 남연군묘와 예산 가야사지가 있는데, 이 쪽이 바로 정상으로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는 주 등산로의 시종점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각종 문화재가 산재하여 그 자체가 거대한 문화재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 외에도 이 산에는 용현자연휴양림 등이 있고, 주변에는 해미읍성, 해미순교성지(여숫골), 덕산온천, 고풍저수지, 산수저수지, 옥계저수지 등이 있다. 산 남쪽으로는 수덕사를 품고 있는 덕숭산이 이어진다.

어슬티굿밤

어슬티굿밤

15.4 Km    0     2024-07-25

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 어슬티안길 71-15

어슬티굿밤은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수많은 별을 보며, 마음 편히 쉬어갈 수 있는 펜션이다.이곳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편안한 잠자리와 쉼을 제공하고자 ‘어슬티굿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락방이 있는 독채 펜션, 사랑채와 카라반이 있어 인원에 맞춰 숙박시설을 선택할 수 있다. 직접 기른 쌈 채소와 맛깔스러운 김치와 밑반찬, 항아리 속에서 담백하게 구워진 훈제구이를 맛볼 수 있다.

국립예산치유의숲

국립예산치유의숲

15.5 Km    4     2024-03-04

충청남도 예산군 치유숲길 203-31
041-330-0902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은 관모산 일대에 자리한 국립예산치유의숲은 모든 국민이 산림복지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도록 탁월한 시설과 수려한 경관을 갖췄다. 데크로드, 테마별 숲길 및 쉼터, 전망대, 건강측정실이 있어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온전한 쉼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산림치유 프로그램이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힐링을 선사한다. 산림욕 멍때리기 체조(정신이완체조), 자연물 공예, 치유명상, 트리허그 등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활동들로 이뤄져 있다. 또한 치유센터에서 체험할 수 있는 반신욕 프로그램과 다도 체험, 싱잉볼 프로그램은 여행 속 소중한 힐링 시간을 만들어준다.

예산 땅의 문화가 잠든 곳을 찾아

예산 땅의 문화가 잠든 곳을 찾아

15.6 Km    2566     2023-08-08

예산군은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지금에도 대단히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 내려오는 이성만, 이순 형제가 태어난 의좋은 형제의 고장으로 전국 최대의 저수지인 예당저수지, 국보 수덕사 대웅전을 비롯 윤봉길의사의 충의사 , 추사 김정희 선생의 옛집인 추사고택, 나트륨온천으로 물 좋기로 이름난 덕산온천 등 관광명소가 산재한 충남 서북부 관광의 요충지이다.

남연군의 묘

남연군의 묘

15.8 Km    20349     2024-05-14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남연군의 묘는 조선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이자 고종의 할아버지인 남연군(본명 이구, 1788~1836)이 잠든 묘소로, 덕산도립공원 가야산 지구에 위치해 있다. 이 묘소는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었고, 이곳에는 가야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이 가야산 아래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가 웅장하게 뻗어 있어 [이대천자지지], 즉 2대에 걸쳐 황제가 되는 곳이라는 말을 들은 흥선대원군이 가야사를 불태워 폐사시키고 자신의 아버지 묘소를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그리하여 흥선대원군 집안에서는 실제로 고종과 순종 2대에 걸쳐 황제가 배출되었다. 2018년에는 이러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명당]이 개봉되기도 하였다. 묘소 이장 이후엔 1869년에 독일인 오페르트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남연군의 시신을 볼모로 조선 조정을 협박하기 위해 이 묘소를 도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여파로 조선이 쇄국정책을 시행하고 천주교 박해가 더욱 강화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지금은 다시 단장되고 1989년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람객을 맞고 있으며, 묘소 이장 당시 사라졌던 가야사지가 발굴되고 있다. 주변에는 가야산 외에 상가리 미륵불, 덕산온천, 충의사(매헌 윤봉길 의사 유적), 윤봉길의사기념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예산느티나무캠핑장

예산느티나무캠핑장

15.8 Km    0     2024-07-10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송정길 2-71

예산 느티나무 캠핑장은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 자리 잡고 있는데, 예산군청을 기점으로 15㎞가량 떨어져 있어 자동차에 몸을 싣고 형제고개로, 차동로, 차동송정길을 차례로 달리면 20분 안팎에 도착할 수 있다. 닿는다. 이곳은 피톤치드 가득한 숲속에 위치하고 있어서 한여름에도 천연 그늘 덕분에 뙤약볕 걱정이 없다. 사이트 간 간격이 넓은 것도 장점 가운데 하나인데, 캠핑장에는 일반 야영장 50면을 마련했다. 바닥은 파쇄석 48면, 데크 2면으로 이뤄졌는데 사이트 크기는 가로 6~7m 세로 7~13m 등 다양하다. 개인 트레일러와 개인 카라란 동반 입장이 가능하고, 사계절 내내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운영하며 예약은 온라인 실시간으로 받는다. 캠핑장 주변에 예당관광지, 봉수산자연휴양림 등도 둘러볼 수 있고, 공주 유구시장이 가까이 있어 한우 음식점을 찾아나서 보는 것도 좋다.

화암사(예산)

15.8 Km    19381     2023-03-13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1길 21-29

예산의 화암사에 가면 추사 김정희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문인인 추사는 예산 사람으로서, 이 사찰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색창연한 그의 생가, 추사고택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야트막한 오석산 아랫자락에 위치한 화암사는 추사나 그의 일가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절이다. 이 사찰을 중건한 김한신이 김정희의 증조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한신은 영조의 부마로서, 영조 임금의 둘째 딸이자 사도세자의 누이동생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로 봉해졌는데, 이들 부부는 죽은 후에 용산 아래에 위치한 앵무봉에 합장되었다. 이처럼 살아 생전에 사찰과 맺은 인연이 죽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화암사는 가까이 가 보아도 사찰 입구에 위치한 정갈한 요사채에 의해 사찰이란 느낌이 잘 들지 않는 그런 곳이다. 아주 오래된 고택의 편안함을 주는 요사채를 지나야 비로소 사찰에 들어서게 되는 데 곳곳에 추사와의 인연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이 산재해 있다. 게다가 요즘은 비구니 스님의 수도도량으로서 시골 사찰이 갖는 고즈넉함과 단정함까지 느낄 수 있다. 추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한번쯤 찾아가 보았으면 하는 그런 곳이다.

* 역사

옛 유래는 알 수 없고, 다만 삼국시대 절이었다고 전할 뿐이다. 절 뒤에 병풍바위가 있는데, 옛 절은 이 병풍바위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에 절이 없어지고,그 들에 조그만 탑이 남아 있었는데, 근래 현위치로 옮겨졌다. 화암사의 역사는 문헌을 전래되는 것이 거의 없어,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절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다 현재는 수덕사 유물전시관에서 소장 중인 「화암사중수건기(華巖寺重修建記)」현판에 절의 연혁이 기록 되어 있어 많은 참고가 된다. 이 중건기는 1848년(헌종 14)에 김명희(金命喜, 1788~?)가 짓고 김상희(金相喜)가 쓴 뒤 조석신(曹錫臣)이 새긴 것이다. 김명희는 서예가이자 금석학자, 실학자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동생인데, 학문이 깊고 글과 시문에 뛰어났다. 이 현판문의 내용으로 절의 역사를 알아보면, 처음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고, 1752년(영조 28) 본관이 경주인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이 그의 아버지 김흥경(金興慶, 1667~1750)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하여 절을 중건하였다. 김한신은 영조 임금의 둘째 딸 화순옹주(和順翁主)의 남편으로서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는데, 사후에 부부가 용산 아래 앵무봉에 합장되면서 김한신 일가가 화암사와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 뒤 1846년(헌종 12) 절이 허물어지며 퇴락되자 김명희가 여러 친지와 더불어 무량수각ㆍ요사ㆍ선실(禪室)ㆍ시경루(詩境樓)ㆍ창고 등을 지었다. 또한 옛 법당터에 약사암을 중건하고 삼존상을 봉안하였다.

이처럼 화암사는 조선 후기에 경주 김씨, 특히 김정희 일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 유적지, 화순옹주홍문(和順翁主紅門,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45호) 등 예산에는 본래 김정희 및 그의 일가와 관련된 유적이 많은데, 화암사 역시 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화암사의 북서쪽으로 약2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약 100여평에 걸친 평평한 지대가 있는데 스님의 전언에 의하면 원 화엄사의 사역이 이 곳이었다고 한다. 약 100여평에 걸친 사지는 산사면을 깍아서 동남향으로 사찰을 조영했던 것으로 추저되나 사지의 가람을 추정할 만한 유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화암사의 원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원래 절 뒤에 병풍바위 앞에 있던 절이 폐사되고 탑만 남아 있던 것을 화순옹주의 부군인 월성위 김한신이 중건하고 영조가 화암사라 명명했다 한다. 즉 영조 임신년(A.D 1752) 영조의 부마인 월성위 김한신이 이절을 중건하였다.

『화암사』라는 절 이름은 영조가 명명한 것이고, 이 현판은 월성위가 쓴 것이다. 월성위는 화순옹주의 부군이고,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이니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가 된다. 화순옹주는 영조의 따님이니,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의 누이동생이다. 이러한 가계관계가 후일, 김추사 일문이 왕권투쟁에 말려들어, 죄없이 파멸을 당하게 되는 연유가 된다. 월성위가 이 절을 중건한 95년 후, 헌종 병오년에 절이 또다시 훼손되어, 승려들이 기거할 수 없게 되자 김추사 일족이 출자하여 다시 중건하였다. 그 건물이 현재의 화암사이다.

상가리미륵불

상가리미륵불

15.8 Km    19570     2024-07-30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기리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한 상가리미륵불은 전체적으로 돌기둥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미륵불로 불리지만 형태로 볼 때 관세음보살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에는 초화문장식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중앙에는 변화한 부처님을 상징하는 작은 화불이 조각되어 있고, 양옆의 머리띠 매듭은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얼굴은 길쭉하지만 양볼이 두툼한 편이며, 눈은 지그시 감았고 오똑한 코 끝은 훼손되었다. 법의는 우견 편단으로 선간 되었으며, 왼쪽 어깨에는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있다. 양팔은 몸에 붙인 채 오른손 가슴까지 돌며 왼손은 손바닥을 배에 붙이고 있다. 이러한 불상양식은 고려시대 유행한 것으로 충청도 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천장사(서산)

천장사(서산)

16.0 Km    21676     2023-10-24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천장사길 100

천장사는 연암산(燕岩山)에 숨어있는 작은 절집이다. ‘천장(天藏)’이란 ‘하늘 속에 감춘다’는 뜻으로서 장자가 물가에 매어둔 배를 온전히 숨기려면 산이나 들이 아닌 배 그곳에 숨겨야 했던 말과 통하고 있다. 이처럼 천장사는 제비바위가 있는 산 중턱에 너무도 깊이 숨어 있어 하늘도 땅도 감추어진 곳이라 불리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제비바위의 가파른 봉오리로 둘러싸인 좁은 골짜기에 조성된 천장사는 이러한 산 계곡 간에 세워진 너무도 작은 절집이지만 이 집을 거쳐 간 큰 스님들로 인하여 그 어느 곳보다 큰 사찰이다. 이 천장사에는 근세에 이 땅에 선풍(禪風)을 새롭게 불러일으킨 경허스님이 일 년 석 달 동안 보림수행을 한 곳이다. 이후 송만공 대사가 이곳에서 불법을 계승한 사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몇 해전 큰 산불로 인해 주위에 울창한 송림이 다 불타버려 제비바위에서 사찰 쪽을 바라보면 죽은 나무들이 둘러싼 가운데 오로지 천장사만이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어 불법의 오묘함에 옷깃을 여미게 한다. 다시 제비바위에서 눈을 돌려 남쪽을 바라보면 멀리 고북저수지가 눈에 들어오고 날씨 맑은 날에는 서해 앞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한 천장사는 이처럼 그 규모는 매우 작지만 선사들의 높은 뜻을 간직하고 있는 참선도량으로서, 오늘도 햇빛 잘 드는 사찰 앞마당에 서면 큰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바람 소리를 헤치고 들리는 듯하다. * 연혁 * 천장사의 연혁을 알려 줄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형편에서, 새로운 자료의 발견 없이 정확한 연혁을 알 수가 없다. 다만 서산시청 자료인 사찰 현황을 토대로 그 역사를 재음미해 볼 필요는 있다. 즉 위 자료에서 천장사는 “서기 633년에 백제의 담화(曇和) 선사가 수도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조선말에는 경허선사가 수도하고 송만공대사가 이곳에서 득도한 고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먼저 창건주인 담화선사가 누구인지 밝히기가 어렵다. 참고로 삼국사기에서 거의 같은 시대의 신라에 담화라는 스님이 있었으며, 그는 620년(신라 진평왕 42년)에 안흥법사가 황룡사에서 머물면서 번역한 경전인 『전단향화성광묘녀경』을 받아 썼다고 한다. 또 한가지 천장사가 창건되었다고 한 633년의 다음 해인 634년(백제 무왕 35년) 2월에는 백제 흥왕사가 낙성 되었고, 신라에서는 분황사가 낙성되었음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을 것 이다. 한편 현재의 법당 앞에 있는 7층석탑(문화재자료)이 고려시대 석탑의 양식적 특징을 어느 정도 보여 주고 있어서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언할 수는 없지만 천장사가 조그만 암자로서 석탑을 갖춘 채 고려시대 언제인가부터는 현재의 자리에 창건되었으리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오랜 세월 동안의 연혁에 대해서는 유물이나 문헌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밝히기 어렵다. 다만 조선말기 이래로 선풍을 널리 떨친 고승인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9-1912) 스님이 천장사에 머물면서 수도하는 한편 후학을 지도했다. 또 이곳에서는 만공 월면(滿空 月面, 1871-1946) 스님이 경허 스님의 제자로 이 절에서 출가하여 불법을 계승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 시기의 유물로는 1896년(건양원년) 5월에 조성된 신중탱이 남아 있다. 한편 이 절의 연혁과는 직접 연관이 없지만 관음사후불탱으로 조성된 1788년(정조12년)작 불화가 법당 불단 뒤 후불탱으로 걸려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