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산정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보산정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보산정사

보산정사

.0M    2024-11-05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무숙로 647-6

보산정사는 조선 중종때 부터 선조 대 사이에 이 마을에서 태어나 문과에 급제한 8분의 선비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진 사당과 초동팔문관이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을 양성한 장소인 보산정사와 동재, 서재, 고직사로 구성되어 있다. 초동은 나주의 대표적인 마을로 초동 8현으로 일컫는 문과 합격자를 잇따라 배출한 곳으로 초동팔문관은 이들 8명을 말한다. 보산정사는 사당보다 크고 오래된 누각 건물로 강당 형식을 하고 있어 그 예가 희귀하다. 사당에는 초동8문관으로 불리우는 죽담 이유근, 야우 장이길, 창주 정상, 한천 유주, 삼주 최희열, 금애 이언상, 남호 류은, 사촌 최사물 등이 배향되었다. 이곳에서 남전향약을 본떠 향약을 실시하기도 하였으며 지금까지도 대동계가 이어져 온다.

무열사(나주)

137.9M    2024-10-07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무숙로 637-31

조선 정조 21년(1797)에 무열공 배현경, 금헌 배정지, 정절공 배극렴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 무열사다. 배현경은 고려 태조 때 무신으로 경주 사람이다. 궁예 때부터 활약했던 인물이며, 고려 건국에 큰 역할을 했고, 이에 일등공신에 올랐다. 태조를 도와 후삼국 통일에 많은 역할을 한 사람으로 알려진다. 그의 시호가 무열이다. 배정지는 고려시대의 무신으로 10세에 금위에 들어가 도지가 되었다. 그는 원나라에 들어가 원제로부터 용사라는 칭찬을 받고 백금을 하사 받기도 하였다. 배극렴은 고려말 왜구 토벌에 공을 세운 조선의 개국공신이다. 고려 우왕 2년(1376)에는 진주에 침략한 왜구를 크게 격파하였으며 1378년 욕지도에서 왜구를 대파하였다. 무열사는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일부가 헐렸으나 뒷날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나주 복암리 고분군

2.1Km    2024-06-13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백호로 287

회진 마을 앞 영산강 북안 강변에 형성된 충적평야에 위치한 복암리 고분군은 다양한 묘제가 복합된 국내 유일의 고분이다. 복암리 고분군은 한 가문의 선산으로 고분인 줄 모르고 사용되었기 때문에 도굴을 피할 수 있었으며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총 4호 분이 200m 반경 안에 분포해 있으며 봉분의 흙이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이라서 질이 다르기 때문에 조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1호 분은 규모 18.5m이고 높이는 4.5m의 원형 봉분이다. 2호 분은 평면 사다리꼴의 구조로 수령, 수직으로 확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1,2호 분 사이에서는 선행분구와 독널무덤 7기가 확인되었다. 3호 분은 가장 규모가 크며 분구 길이 36∼43m, 높이 6m, 주구 너비 약 5m, 깊이 약 1m이다. 3호 분은 우리나라 최초로 널방 안에 독무덤이 들어 있는 독특한 묘제이며, 1개의 봉분 안에 독무덤 22기, 구덩식 돌덧널무덤 3기, 굴식 돌방무덤 11기, 앞트기식 돌방무덤 2기, 앞트기식 돌덧널무덤 1기, 돌덧널독무덤 1기, 널무덤 1기 등 모두 7종류의 묘제로 이루어져 있다. 출토 유물은 금동신발, 철제관모, 각종 마구류, 은장삼엽환두대도, 철제 관모, 은제관식, 규두대도, 구슬, 토기 등 300여 점이다. 4호 분은 방형계로 최대길이 31.5m, 높이는 3.15m이다. 나주 복암리 고분군은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서 당시 일본과의 관계와 영산강 유역의 토착세력과 백제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나주 복암리 고분군 주변은 통일신라시대 무역항이었으나 이제는 흔적조차 없는 풍호나루터와 나루터에 인접하여 천연염색문화관과 백호임제문학관이 직선거리 1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한국천연염색박물관

2.7Km    2025-03-17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백호로 379

고대문화 중심지인 나주는 영산강유역을 배경으로 일찍이 염색 문화와 실크 생산의 큰 역할을 하여 왔다. 영산강과 바닷물이 합류했던 지리적 환경은 쪽 재배와 뽕나무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여 이곳은 천연 염색의 최적지이자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가 무형문화재 염색장 기능 보유자도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과 지역의 문화를 발굴 계승하기 위해서 마련된 곳이 나주 천연 염색 문화관이다. 문화관은 천연 염색 전통 계승 발전과 천연 염색산업 진흥 계기를 마련하고 천연 염색 상품을 개발하여 관광자원화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특별교부세를 지원받아 건립하였다. 나주시 천연 염색문화관은 한국 천연 염색 문화를 대표하고 향후 천연 염색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천연 염색의 요람이 될 것이다.

푸른 하늘 아래서 즐기는 천연염색체험

푸른 하늘 아래서 즐기는 천연염색체험

2.7Km    2023-08-09

나주는 영산강을 중심으로 한 고대 문화의 중심지로 직물문화가 발달했던 고장이다. 천연염색 문화와 전통을 지속적으로 전승, 발전시켜온 덕분에 천연염색문화관에서 다양한 천연염색체험을 해볼 수 있다. 영산강을 따라 걸으며, 옛 고대 도시의 흔적인 반남 고분군과 복암리 고분군도 빼놓지 말고 둘러보자.

풍호 나루터

풍호 나루터

2.7Km    2025-08-07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백호로 379

회진은 통일신라시대에 해상교류를 통해 수많은 인물과 각종 물자가 모이는 국제적 무역항이었다. 통일통일신라시대 대중국 항로는 두 개의 바닷길이 있었다. 서해안 중부지역 당은포에서 출항하는 서해북로와 나주 회진에서 출발하는 서해남로가 그것인데 이 두 바닷길로 해상교류가 크게 활발했다고 한다. 신라말 고려초의 회진현의 포구는 회진 풍호마을 앞 풍호나루였다. 통일신라로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국제 무역항으로서의 그 역할을 하였으나 조선초에 회진현이 폐현이 되면서 점차로 축소되거나 쇠락을 하였고, 1970년대까지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영산강 하구언 사업과 4대강 사업으로 영산강의 모습이 크게 변하면서 그 자취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현재는 영산포에서 출발하여 풍호 나루터까지 오는 오는 황포돛배를 타고 오는 체험객을 위한 시설로 이용되고 있으며 현재는 회진나루로 명칭 되고 있다. 풍호나루터(회진나루) 주차장 길 건너에 천연염색문화관이 있고, 직선거리 500m 지점에 백호임제문학관이 있다.

백호문학관

2.9Km    2024-11-14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나주 영산강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는 백호문학관은 전국을 누비며 자유롭고 재기 넘치는 글로 조선중기 당대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백호 임제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기리는 곳이다. 나주 출신의 백호 임제는 기질이 호방하고 예속에 구속받지 않고 혼란한 시대를 비판하여 풍류기남아라 불렸다. 1587년 39세로 짧은 생을 마쳤으나 현시에 대한 고뇌와 풍류를 즐겼던 소탈함을 1천여 수의 시와 산문, 소설로 남겨 16세기 조선에서 가장 개성적이며 뛰어난 문장가로 평가받고 있다. 백호 임제의 대표적인 작품은 [청초 우거진 골에], [물곡사], [남명소승], [수성지]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그의 친필 작품과 다양한 작품들을 해석본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포토존에서는 옷과 어사화, 삽금대, 홍패통을 입어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공간이다. 백호문학관은 임제의 유물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은 물론 그의 문학작품을 널리 알리고,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백호문학관에서 차로 2분 거리에 천연염색박물관, 복암리고분전시관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나주 회진성

3.0Km    2024-12-09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 백제 지역의 가장 큰 규모의 토성, 회진성 *

회진성은 백제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토성으로 서울의 몽촌토성보다 둘레가 100m 더 길다. 이곳은 동, 서, 북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만이 영산강의 본류를 향해 개방된 영산강 유역 천혜의 요충지이다. 성벽은 판축(版築)이라 하여 한채 한채 흙을 넣고 다져 쌓았다. 성의 둘레 길이는 2.4km이고 그 아랫부분은 폭이 14m이다. 산 능선의 평탄한 곳을 이용하여 4개의 문을 만들었던 흔적이 있고, 남쪽의 낮은 계곡에 수구문(水口門)이 있었던 흔적도 있다. 1994년 전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부분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성의 규모는 둘레 약 2.4㎞로서 전남지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토성 가운데서도 매우 큰 규모에 해당한다. 계곡 주변의 3면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는 외벽을 급경사로 깎아내어 성벽을 조성하였으며 계곡에는 폭 6m, 높이 6m 정도의 판축(版築) 성벽을 쌓았다. 회진성은 그동안 막연히 백제의 토성으로만 추정되어 왔는데, 1944년에 실시되었던 부분적인 발굴 조사 결과 인근 복암리고분군(伏岩里古墳群)과 병행하는 5세기말~6세기 초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 말에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 우리나라 성곽 연구의 중요한 유적 *

회진성은 여기서 가까이 있는 나주 복암리 고분군을 만들었던 이 지역 토착 세력의 생활공간 유적으로 추정되며, 영산강 유역 고대 세력인 마한의 역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만약 회진성이 복암리 고분군과 같은 시기에 해당하는 성곽이라면 한 변의 길이가 30~50m에 달하는 복암리 고분들의 규모나 둘레 2.4㎞에 달하는 회진성의 규모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제에 속한 지역세력이라기 보다는 백제와 무관한 독립된 세력으로서 고고학적으로 보면 그 사회는 이미 고대국가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회진성은 또한 백제의 축성기법을 알아볼 수 있고, 그뒤의 수축 양상도 남아 있어 우리나라 성곽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시대 : 백제
종류 : 성지
크기 : 성 둘레 2.4㎞

나주 영모정

3.0Km    2025-03-19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회진길 14-22

영모정은 중종 15년, 귀래정 임붕이 건립한 정자로 이 지방 출신의 명문장가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글을 배우고 시작(詩作)을 즐기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초기에는 붐의 호를 따 ‘귀래정’이라 불렀으나 명종 10년, 임붕의 두 아들 임복과 임진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재건하면서 ‘영모정’이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82년과 1991년에 다시 중건·중수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한 무고 주 5량 가이다. 세부양식은 두벌대의 다듬돌 바른 층 쌓기의 기단 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최근에 다시 그 위에 2m가량의 원형 장대석 주춧돌을 세웠다. 그 위에는 아랫부분을 잘라버린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에는 보와 장혀, 도리를 결구하였다. 굵은 보를 걸치고 동자주를 세워 마룻보를 걸치고 판대공과 파련 대공을 섞어 대공을 놓고 종도리를 설치하였다. 평면은 온돌방 1칸, 루마루 2칸으로 실이 있는 정자건물이다.

나주 구진포 장어거리

나주 구진포 장어거리

3.3Km    2025-05-28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영산강 하구가 둑에 막히면서 자연산 장어가 거의 잡히지 않지만, 영산강의 열두 구비 중 아홉 번째 구비라 하여 이름 붙여진 나주의 구진포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이어서 예로부터 장어가 유명하다. 특히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맛이 뛰어나다. 현재는 구진포 삼거리를 중심으로 7~8곳의 장어집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1940년대에 들어서기 시작하였으며 이곳만의 조리법으로 조리하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맛을 낸다. 구진포는 영산강 물길이 구부러지는 곳에 있는 나루라 해서 ‘구부나루’라 불렸고 예전에는 영산강의 물이 앙암바위를 돌아 이곳에서 모여 다시 굽이친다 해서 회진포라고 불렀다. 차량 이동 약 10분, 4.2㎞ 거리에 영산강 황포돛배 나루터와 나주 홍어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