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천간사

천간사

2026-07-21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로10길 20-8 (불광동)

천간사는 1960년 창건되었으며, 2009년 재개발로 인해 현재의 위치에 재건축되었다. 경내에는 부처님 진신사리탑을 비롯해 창건주 스님의 부도탑과 육영수 여사의 추모공덕비 등 다양한 석조 유물이 조성되어 있다. 재건축된 사찰은 전통 한옥 양식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건축물로, 2011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한옥상'을 수상하였다. 북한산 자락과 북한산 둘레길 인근에 위치해 사찰을 둘러본 뒤 자연 경관과 함께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으며, 도심 속에서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거창 강남사지 석조여래입상

거창 강남사지 석조여래입상

2026-07-21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거창 강남사지 석조여래입상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강남사지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여래입상이다. 높이 3.65m, 너비 1.5m에 이르는 대형 석불로, 부처의 몸에서 발하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를 갖추고 있어 ‘강남불 석불’이라고도 불린다. 이 불상에서 유래하여 마을 이름이 ‘강남불’ 또는 ‘부처지이’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얼굴은 마모가 심하지만 목에는 세 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양어깨를 감싼 법의의 형태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허리 아래 부분은 훼손되었으며, 보수 과정에서 일부 원형이 손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창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

거창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

2026-07-21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거창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은 금원산 북쪽 골짜기 큰 바위굴에 새겨져 있는 마애삼존불이다. 뒤의 돌계단을 오르면 바위굴이 있고, 안쪽 남향 바위에 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삼존불의 부분을 삼각선으로 그어 구획하고, 가운데는 보주형으로 다듬어 세 분의 부처를 새겼다. 중앙의 부처가 두 보살을 좌우로 거느린 모양이다. 중앙은 아미타여래, 오른쪽은 관음보살, 왼쪽은 지장보살로 보인다. 연꽃 수미단 대좌 위의 본존불은 얼굴인 넓적하며, 얼굴에 비해 작은 눈, 코, 입, 크지만 밋밋한 귀가 토속적 인상을 준다. 좌우 보살의 얼굴도 비슷한데 화려한 옷자락은 조금은 번잡한 느낌이다. 삼존불 모두 도드라지게 새겼으나, 전체적으로는 납작하게 표현되었다. 본존불의 각진 어깨, 밋밋한 가슴, 부자연스럽게 가슴에 모은 팔, 막대 같은 다리, 좌우로 벌린 발등 표현은 고려시대 부처상의 특징이다. 오른쪽에 새긴 글에는 1111년에 제작한 것으로 되어 있고, 바위굴 아래의 가섭암 자리는 1770년 대까지 절이 있었다고 하며,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몇 개의 석재가 남아 있다.

구연서원

구연서원

2026-07-20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100

구연서원은 1540년 요수 신권 선생이 세운 구연재에서 시작되었으며, 1694년 신권 선생과 석곡 성팽년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발전하였다. 1808년에는 황고 신수이 선생을 함께 배향하였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당은 훼철되었으나, 문루인 관수루와 강당은 현재까지 남아 있다. 경내에는 신권 선생의 사적비와 산고수장비, 열녀비, 효자비 등이 있으며, 관수루는 서원의 문루 역할을 하고 있다. 관수루는 위천변에 자리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바위와 작은 나무다리를 통해 출입할 수 있다. 인근에는 요수정과 수승대가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거창 요수정

거창 요수정

2025-03-19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100

요수정은 요수 신권 선생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1542년 구연재와 남쪽 척수대 사이에 처음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805년 후손들이 수승대 건너편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상량문에 1800년대 후반에 수리한 기록이 있다. 요수정은 수승대 건너편 솔숲에 부속건물 없이 홀로 세워진 중층의 정자이며,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정면 어칸의 배면에 1칸의 방을 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로 구성하였다. 요수정은 자연 암반 위에 바로 세운 건물로 초석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특별히 기단을 조성하지는 않았고, 배면 쪽에 경계의 표시와 굴뚝을 겸하는 낮은 돌담을 쌓았다. 수승대의 경치를 감상하고, 시회와 교육 등을 위해 솔 숲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전통정자 건물로 형태가 매우 아름답다. 산간지역의 기후를 고려하여 정자의 내부에 방을 들이고 있어 이 지역의 건축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거창 내오리 지석묘

거창 내오리 지석묘

2026-07-21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뚜껑돌을 덮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거창 내오리 지석묘는 구릉지대에 3기의 고인돌이 있다. 이 가운데 제일 남쪽에 있는 것은 탁자식으로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2.86m, 너비 2.50m이다. 북쪽으로 약 5m 지점에 있는 것은 현재 덮개돌만 땅 위에 드러나 있는데 탁자식 고인돌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2.70m, 너비 2.40m이다. 나머지 1기는 수년 전 파괴되어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는데, 하부구조가 일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 내부에서는 민무늬토기, 돌칼,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이들 고인돌은 영남 지방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탁자식 고인돌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고인돌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거창 거기리 성황단

거창 거기리 성황단

2026-07-16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

성황단(서낭당)은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에 원뿔꼴으로 쌓아놓은 돌무더기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적인 기능을 한다. 거창 거기리 성황단은 거기천이 형성한 곡저평야의 평지에 조성되었는데, 높이 4.6m, 아래 둘레 24.3m로, 수많은 돌로 층층이 쌓아 올린 적석총 형태로 500년 전에 깃대봉의 용마가 아이와 함께 말 무덤으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성황단은 경계의 표시이거나 위급할 때 무기로 쓰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다. 돌무더기 옆에는 보통 신성시되는 나무나 장승이 함께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서낭신을 모신 성황단은 신성한 영역이자 신앙의 장소였다. 그래서 그곳을 왕래하는 사람은 돌, 나무, 오색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갔다. 거창 거기리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성황단에서 마을에서 공동으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서간소루

서간소루

2026-08-07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샘골길 6

거창 서간소루는 첨모당 임운 선생이 살던 고택의 사랑채로, 그의 아들 서간 임승신이 학문을 닦던 공간이기도 하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1596년 동계 정온이 남긴 기문을 통해 임진왜란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다. 임운은 정여창의 학문을 이어받아 수양하였으며, 형 임훈과 함께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다. 서간소루는 은진 임씨 집성촌인 갈계리에 자리한 전통 건축물로, 정면 4칸·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을 갖추고 있다. 대문채와 사당 등도 함께 남아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의 공간 구성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인근에는 갈계숲과 갈천서당, 거창 갈계리 임씨고가 등이 있다.

거창 갈계리 임씨고가

거창 갈계리 임씨고가

2026-07-16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샘골길 6

거창 갈계리 임씨고가는 갈천 임훈 선생이 살던 집으로 부친인 임득번이 1507년에 건립한 주택이다. 임훈선생은 생원시에 합격하여 광주목사를 역임하였고 장례원 판결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후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다. 부역제도와 군정의 폐단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등 백성을 사랑하는 목민관으로서 추앙받았다. 가옥의 구조는 솟을대문채, 사랑채, 안채, 장판각,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에는 정려가 걸려 있고, 홍문의 초석이 거북머리로 되어 있는데 작품성이 뛰어나다. 안채는 선생의 호를 따 자이당이라 부르며, 정면 5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이다. 안채 옆에 갈천 선생과 동생 임운 선생의 문집책판을 보관한 장판각과 사당이 있다. 고가는 솟을삼문을 한 대문채, 사랑채, 안채가 각각 독립적인 일자형 건물을 이루어, 전체적으로 三자형으로 배치되었다. 이러한 배치는 경남 지방의 옛 주택에서 자주 나타나는 독특한 방식이다. 안채와 장판각, 사당 등의 건물은 최근에 신축되었다.

영빈서원

영빈서원

2026-07-16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2길 34

거창 영빈서원은 1744년에 창건한 서원으로 동래정씨 정구, 정종, 정표, 정응두, 정시수, 정영진 선생 6위를 제향 하던 영천사에서 출발하였다. 서원철폐령에 따라 1864년에 훼철되었다가, 일제 강점기에 절의, 충효, 성경 정신을 일깨우고자 사림과 후손들이 1919년에 다시 세우고 영빈서원으로 개칭하였다. 강당의 마당에는 1951년에 다시 세운 육현묘정비가 있다. 영빈서원은 1991년에 중건되었으나, 평면의 형식이나 가구의 기법은 조선 후기 이전의 것으로 1744년에 창건되었던 영천사의 모습이나 건축 기법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빈서원은 일산봉의 서사면 끝자락에 서향 하여 자리 잡고 있는데, 높은 곳에 사당 영역을, 낮은 곳에 강당 영역을 동서축선상에 배치하였다. 사당인 구인사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평면은 정면에 툇간을 두고 배면에 통칸 마루방을 둔 형식이다. 공포는 다포식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사당 정면에는 3칸 규모의 내삼문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 마루 2칸, 툇마루가 딸린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포 양식은 소로수장집이며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5량 구조이다. 대문채는 광재문으로 정면 3칸의 솟을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