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칠장사(안성)

칠장사(안성)

2026-03-04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

칠현산 기슭에 있는 칠장사는 신라 선덕여왕 5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는 사찰로 고려 시대 1014년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중창하였다. 칠장사와 칠현산이란 이름은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일곱 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다. 깊은 차령산맥이 그 줄기를 품고 있어 1383년에 왜구의 침입으로 충주 개천사에 있던 고려조의 역대 실록을 칠장사로 옮겨 8년간 소장해 소실을 면한 일도 있었다. 1389년에 왜구의 침입으로 전소되어 폐허로 내려오다가 1506년에 흥정이 중건했다고 한다. 이후 1623년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원찰로 삼아 사세를 크게 중창했다고 전한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국보 제296호 오불회괘불탱을 비롯하여 혜소 국사비, 철당간 등 지정문화재가 많다. 또한 칠장사에는 여러 구전이 내려오는데 궁예가 10세까지 활쏘기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는 활터가 남아있으며 의적 임꺽정이 갖바치 스님 병해대사에게 바친 꺽정불 이야기가 있다. 또한 암행어사 박문수가 과거시험을 보기 전에 나한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나타난 나한님이 과거시험 구절을 가르쳐 주어 장원급제했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어 시험 합격을 비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곳이다.

청룡사(안성)

청룡사(안성)

2026-04-15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길 140

청룡사는 1265년 서운산 기슭에 명본 국사가 창건한 절로서 창건 당시에는 대장암이라 하였으나 1364년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고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고 하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절 안에는 대웅전, 관음전, 관음 청향각, 명부전 등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명본 국사가 세웠다는 삼층 석탑 등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은 다포계의 팔작집으로 고려 말 공민왕 때에 크게 중창하여 고려 시대 건축의 원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법당 안에는 1674년에 만든 5톤 청동 종이 있고 큰 괘불이 있어 대웅전 앞에 괘불을 걸 돌지주(기둥)까지 마련해 놓았다. 이 지주는 구불구불한 아름드리나무를 껍질만 벗긴 채 본래의 나뭇결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세웠다. 청룡사 주변에는 서운산, 칠장산, 미리내 성지, 죽주산성 등의 관광지가 있다.

강화 전등사

강화 전등사

2026-06-19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 근본도량으로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三郞)을 시켜 쌓았던 고대의 토성이었고, 삼국시대에는 토성 자리에 석성을 쌓아 올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이후 고려 왕실에서는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지은 후 진종사를 크게 중창시켰으며, 16년이 지난 충렬왕 때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라 사찰 명칭을 바꾸었다. 이후 조선 광해군 때인 1614년에 화재로 인해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가 지경 스님을 중심으로 재건을 시작하여 1621년 2월에 전등사의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전등사에는 대웅전, 약사전, 범종 등 대한민국의 보물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사고가 경내에 있다. 또, 동문 쪽에는 전등사가 호국불교의 진원지임을 증명하는 양헌수승전비가 있다. 병인양요 때 전략적 요충지였던 전등사에 쳐들어온 프랑스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 10년인 1873년에 건립한 것이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템플스테이가 준비되어 있으며, 당일형, 체험형, 휴식형으로 나뉘어 있다. 당일형은 짧은 시간 틈을 내 한국의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고, 체험형은 계절 또는 참가자들의 특성에 따라 사찰마다 조금씩 다른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휴식형은 말 그대로 사찰에 머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보문사(강화)

보문사(강화)

2026-03-12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남로828번길 44 보문사

강화도 서쪽 석모도 낙가산에 있는 보문사는 신라시대 635년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던 중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강화도로 내려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창건 당시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낙가산이라고 하고,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며 보문사라 이름을 짓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고 알려진 성스러운 관음성지인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 도량(관음보살을 두고 기도하는 곳)이다. 보문사를 창건한 지 14년 만인 649년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륵보살 등 스물두 분의 석상을 바다에서 건져 올려 석굴 법당에 모신 나한전 조성 일화는 유명하며 기도의 영험을 많이 보여 신통굴로 불리기도 한다. 낙가산 중턱 눈썹바위 아래 있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마애 관세음보살님은 탁 트인 서해를 바라보며 중생들을 살펴주고 있다 하여 많은 불자들이 찾고 있다.

백련사(강화)

백련사(강화)

2026-03-17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고려산로61번길 270

인천광역시 강화군 고려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416년 고구려 장수왕 때 창건됐다. 전설에 따르면 삼국시대 한 인도의 승려가 절터를 물색하다가 고려산 정상에서 다섯 색의 연꽃이 만발한 연못을 발견하고 이 다섯 색의 연꽃을 꺾어 날린 다음 꽃이 떨어진 자리에 절을 세웠다. 그중 하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절을 짓고 이름을 백련사라 했다고 한다. 그 후 확실치는 않으나 조선 순조 6년인 1806년 서산대사의 제6대손 천봉후인 의해당 처활대사의 사리비와 부도탑을 건립했다는 기록이 있다. 1906년 극락전과 삼성각을 중수하고 지금 남아있는 건물로는 극락전, 삼성각, 칠성각, 범종각, 요사 등이 있다. 보물로 지정됐던 백련사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은 보물로 지정된 그해 도난당했다. 팔만대장경이 한때 이곳에 봉안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경내에 470년과 350년 된 느티나무와 100년 된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다.

용주사(화성)

용주사(화성)

2026-07-02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

용주사는 정조가 창건한 사찰이다. 본래 이곳은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길양사를 창건하여 고려 초기에 수륙재가 봉행되었으나 잦은 병란으로 소실된 후 폐사되었었다. 그 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성으로 옮기면서 원찰을 건립한 곳으로 낙성식 날 밤 정조가 꿈을 꾸니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라 했다고 전해진다. 용주사의 주요 문화유산으로는 용주사 범종(국보), 회양나무(천연기념물), 금동향로(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청동향로(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상량문(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전적수사본(경기도 유형문화유산), 병풍(경기도 유형문화유산), 대웅전후불탱화(경기도 유형문화유산), 불설부모은중경판(경기도 유형문화유산)이 있다. 용주사는 정조대왕의 효심에서 비롯된 만큼 사도세자의 왕생극락을 발원하여 중창된 사찰로서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유산 중에서도 효사상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이러한 효사상을 받들고자 만들어진 [용주사 효행박물관]의 친절한 안내와 상세한 해설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남기 유물에서 삶에 있어 필요한 지혜를 발견해 낼 수 있다.

청계사(의왕)

청계사(의왕)

2026-07-14

경기도 의왕시 청계로 475 (청계동)

청계산 남쪽 태봉 자락에 있는 청계사는 불상에 우담바라꽃이 피어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던 사찰이다. 청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측되며, 1284년(고려 충렬왕 10년)에 당대의 세력가였던 평양부원군 조인규가 중창하였고, 이후 그 후손들이 500년간 중창을 거듭하였다. 2000년에 10월에는 영력이 강한 곳에서 핀다는 전설 속의 꽃 우담바라가 피어 화제가 되었다. 꽃이 피면 영화스럽고 상서로운 일이 일어난다하여 영서화라 부르기도 하는 청계사의 우담바라는 부처님 눈썹에 모두 21송이가 피었다. 그 모습은 현재 사진으로 볼 수 있다. 또 조그마한 자갈들을 모아 조성한 거대한 와불상은 청계사의 명물이다. 사찰에는 조선 숙종 때 승려 사인비구에 의해 1701년 제작, 보물로 지정된 의왕 청계사 동종이 있으며, 청계사 목판, 청계사 신중도, 청계사사적기비, 아미타여래설법도, 비로자나삼신괘불도 등 다수의 유물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흥국사(남양주)

흥국사(남양주)

2025-05-12

경기도 남양주시 덕릉로1071번길 58 (별내동)

남양주 흥국사는 수락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원광이 창건한 사찰이다. 화랑도의 세속오계를 만든 원관이 창건했던 당시에는 ‘수락사’라 불리었다. 그 후 1568년(선조 1) 선조가 생부인 덕흥대원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수락사에 원당을 짓고 ‘흥덕사’라는 편액을 하사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대 왕 인조 때 중건되어 흥국사로 바꾸었다. 선조는 그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를 흥국사 근처에 세우면서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흥국사를 크게 중수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흥국사는 조선 왕실의 사찰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소가 있어서 ‘덕절’이라고도 한다. 흥국사에는 많은 문화재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흥국사를 대표하는 문화재는 등록문화재인 ‘대방’이며, 이 대방의 흥국사라는 현판은 조선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글씨는 전각마다 등장한다. 영산전 현판과 주련, 만월보전 주련 등에도 흥선대원군의 흔적이 남아있어 고종 대까지 왕실의 사찰로서 그 명성을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인 대웅보전은 흥국사의 중심 건물로 여러 번의 화재로 소실과 중수의 과정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으며, 대웅전 안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이 있다. 또, 경기도 유형문화재 영산전과 영산전 내부에는 보물 ‘소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 및 16나한상’이 있다.

청계호수

청계호수

2025-11-21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

청계호수는 경기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에 위치한 호수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로 각지의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다. 예전에는 기산저수지로 불렸으며, 포천 깊숙한 곳에 있는 곳이라 맑은 호수와 산의 전경이 아름답고, 특히 가을 단풍과 호수에 일렁이는 조화는 가히 장관을 이룬다. 수변공원 주차장에 무료로 주차 가능하며 공간도 여유 있고,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다. 청계호수 주변으로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곳곳에 벤치도 있어 산책하기 좋다. 데크로 된 호수 주변 길을 걷다 구름다리를 건너면 청계 저수지 둘레길이 나오고, 본격적으로 산길을 진입하게 되는데 곳곳에 자작나무가 심어져 있고, 맑은 호수 물속에는 커다란 물고기들과 수초를 볼 수 있다. 호수와 나무가 어우러진 뷰를 보며 한적하게 힐링할 수 있는 곳으로 단연 최고이다.

용문사(용문산)

2026-03-05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782

용문산관광단지에 있는 용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양평군 용문면의 용문산 자락에 있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 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 하였다고도 한다. 고려 우왕 4년(1378)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 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용문사에는 대웅전, 산령각, 칠성각, 요사채, 일주문, 템플스테이 수련관, 다원 등이 있다. 용문사에는 나이는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는 높이 42m, 뿌리 부분 둘레 15.2m인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이 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용문사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2km 올라가면 산중턱에 용의 뿔을 닮은 용각바위를 만나게 되고 여기서 1km 더 올라가면 100명가량 앉아 쉴 수 있는 대형바위, 마당바위가 있다. 템플스테이도 운영을 하고 있으며 휴식형 프로그램과 체험형 프로그램 중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