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3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삼봉로 644
남한강 한가운데 세 개의 바위 봉우리가 솟아있는 단양팔경의 으뜸 명소다. 물에 잘 녹지 않는 지질 성분으로 인해 수억 년의 시간 동안 깎이고 남아 현재의 독특한 지형을 형성했으며, 국가 명승 및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 단원 김홍도 등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이곳의 풍경을 시와 그림으로 남겼을 만큼 예로부터 뛰어난 경관을 뽐내온 장소다. 가운데 가장 큰 봉우리에는 '삼도정'이라는 정자가 자리하고 있어 고풍스러운 멋을 더하며, 계절과 시간에 따라 피어오르는 물안개나 장엄한 일출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단양을 찾는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방문하는 필수 코스이다. 유원지 내에 위치한 삼봉스토리관은 단양의 명소를 자료 보관소로 전시하고 있다. 강 건너편에 도담정원이 조성되어 다채로운 계절 꽃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기 좋다.
2026-03-09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로32번길 17-6 (탑동)
탑동 양관은 20세기 초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지은 건물로 선교사 주택, 성경학교, 병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주에 서양식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904년 선교사 밀러가 청주에 온 이후부터이다. 이때부터 땅을 사기 시작해서 각각 다른 시기에 여섯 동의 건물을 지었다. 지하실은 주로 돌을 사용해 외벽을 쌓았으며 여섯 동의 건물 중 한 건물의 주춧돌은 개신교 선교자들이 있던 청주감옥의 벽에서 가져다 사용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양관 부지 내에서 기와와 벽돌을 굽기 위한 질 좋은 점토가 발견됐고, 이를 채취해 벽돌을 굽는 데에 50명 이상의 인원을 고용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만들지 못했던 유리, 스팀보일러, 벽난로, 수세식 변기, 철물류와 같은 수입자재가 많이 사용된 건물이다. 한식과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지어진 연대에 따라 서로 다른 건축적 특징을 나타내며, 전통건축에서 근대건축으로 넘어가던 시기의 과도기적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2025-03-26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 48-19
절에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당간이 서 있는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는 예전에 용두사라는 절이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용두사는 962년(고려 광종 13)에 창건되었으나 고려말의 잦은 전쟁과 난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절이 있던 터는 현재 청주시내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변하였다. 이 당간은 밑받침돌과 이를 버티고 있는 두 기둥이 온전히 남아 예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두 기둥은 바깥면 중앙에 세로로 도드라지게 선을 새겨 단조로운 표면에 변화를 주었다. 그 사이로 원통 모양의 철통 20개를 아래위가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 당간을 이루게 하였고, 돌기둥의 맨 위쪽에는 빗장과 같은 고정장치를 두어 당간을 단단히 잡아매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철통 표면에는 철당간을 세우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30개의 철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간을 세운 시기는 절의 창건과 때를 같이 하는 962년(고려 광종 13)으로,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당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문 우리 문화유산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곳과 함께 공주 갑사, 안성 칠장사의 세 곳에서만 철당간을 접할 수 있어 보기 드문 작품이다.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2025-03-05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이정골로 115-8
신항서원은 청주를 대표하는 서원이다. 1570년 창건한 이후 여러 차례 추향과 사액, 위차 시비를 거쳐 아홉 분의 성현을 모신 서원으로 훼철과 복원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항서원이라 편액 된 삼문을 들어서면 앞쪽에 묘정비가 있다. 묘정비 뒤로 앞면 5칸, 측면 2칸 크기의 강당인 계개당이 있다. 강당 뒤로 다시 삼문을 지나 앞면 3칸, 측면 1칸 크기의 사당인 구현사가 위계를 이루며 자리한다. 처음 지역의 사림과 명망가를 모신 서원으로 출발하여 점차 노론계 서원으로 자리 잡았다. 추향과 위차 시비를 통해 노론계 서원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2025-07-10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로122번길 81
청주향교(淸州鄕校)는 조선시대에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며, 지방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던 청주 지방의 국립학교이다. 조선 태조 때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세종 26년(1444)에 세종이 초정(椒井)에 행차했을 때 청주향교에 서적(書籍)을 하사한 일이 있고, 또 세조 10년(1464)에 세조가 청주에 행차했을 때 문묘(文廟)에 친히 제향(祭享) 한 일이 있는 삼남(三南, 충청도․전라도․경상도) 제일(第一)의 향교였다. 그 후 숙종 9년(1683) 현령(縣令) 이언기가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고, 그 뒤 여러 차례의 보수가 있었다. 현재는 제사공간인 대성전과 교육공간인 명륜당을 비롯한 6동의 부속 건물이 남아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노비·서적 등을 지급받아 운영되었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제사기능만이 남아 옛 모습을 지키고 있다.
2026-06-05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86
개심사는 운산면 신창리에 위치한 충남 4대 사찰 중의 하나로써 백제 의자왕 14년인 654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하여 고려 충정왕 2년인 1350년에 처능대사에 의하여 중수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대웅전의 기단만이 백제 때의 것이고 건물은 조선 성종 6년(1475)에 산불로 소실된 것을 조선 성종 15년(1484)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물 제143호인 대웅전은 창건당시의 기단 위에 조선 성종 15년(1484)에 중창한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절충한 건축양식으로 그 작법이 미려하여 건축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사찰을 중심으로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 그리고 석가탄신일을 전후하여 만개하는 벚꽃은 주위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사찰 주변이 온통 벚꽃으로 만발해 마치 속세의 시름을 잊은 선경에 와 있는 듯한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출처 : 서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2025-04-04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천태산은 충청북도 영동군의 양산면 누교리와 충남 금산군 제원면 화원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해발 714.3m의 천태산은 뛰어난 자연경관과 잘 정돈된 등산로 그리고 주변에 많은 명소가 산재되어 있어 등산 동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가족 단위 등산지로 주목을 받는 곳이다. 특히 양산팔경이 이곳 천태산 영국사를 제1경으로 시작되고 많은 문화유적이 그 신비함을 더해주는 곳이다. 천태산은 4개의 등산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천태산 산행의 맛은 단연 아찔한 바위 능선을 타는 짜릿함이다. 특히 75m의 암벽 코스를 밧줄로 오르는 맛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천태산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기도 하다. 높이가 그리 높지 않고 규모도 크지 않지만 기암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어 거친 바위를 타는 스릴을 톡톡히 즐길 수 있다. 또한 아기자기하면서도 웅장한 바위와 수많은 나무가 조화를 이뤄 빚어낸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충북의 설악이라는 별칭까지 붙었으니 산행 초보자라도 힘들지 않게 설악산을 타는 듯한 산행의 즐거움을 기대해 볼 만하다. 천태산 입구 천태동천의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진주폭포와 삼단폭포(옛 용추폭포)를 지나면 영국사 입구가 나온다. 조금 더 길을 걸으면 1,000여 년 동안이나 이산을 지키고 있는 영국사 은행나무의 뛰어난 자태를 엿볼 수 있다. 높이 31m 둘레가 11m 정도 되고 가지 하나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독립된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 이 은행나무 아래에서 등산로가 갈리고 영국사에서 1시간 30분 정도 오르면 정상에 도착한다. 서쪽으로 서대산이, 남쪽으로는 성주산과 그 너머 덕유산이 보인다.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8년 원각대사가 창건하였고 그 후 효소왕이 육궁백관을 인솔하고 피난했다는 전설이 있는 옥새봉과 육조골이 있고, 고려 문종 때 대각국사가 국청사라 한 것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함으로써 국난을 극복하였다 하여 영국사라 개칭한 곳으로 지금은 청소년들의 역사 교육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2026-06-19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의 법주사는 속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진흥왕 14년(서기 553)에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성덕왕과 혜공왕이 중창하였는데 이때부터 대찰의 규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고려 홍건적의 침입 때는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을 왔다가 환궁하는 길에 들르기도 하였고 조선 태조는 즉위하기 전 백일기도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병에 걸렸던 세조는 복천암에서 사흘 기도를 올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60여 동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로서 위용을 떨치게 되었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사찰의 거의 모든 건물이 전소되어 1624년 인조 2년에 이르러 벽암스님에 의해 다시 중창하였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친 후 오늘에 이른다. 예전 법주사 가람배치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화엄신앙축과 용화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미륵신앙축이 팔상전에 직각으로 교차하고 있었으나, 1990년 높이가 33미터에 이르는 청동 미륵불을 조성하면서 그 배치가 흩어져 버렸다. 경내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용화전, 원통보전, 명부전, 능인전, 조사각, 진영각, 삼성각 등 전각과 종무소를 포함한 10여 채의 요사채들이 남아 있다. 이곳 법주사를 비롯한 속리산 일대에는 보은의 지정 문화재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데 그중 법주사에는 국보가 3점이나 된다. 또, 천왕문과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 씨의 위패를 모셨던 선희궁 원단, 16 나한을 모시고 있는 능인전, 자기 몸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한 희견보살상, 그리고 쌀 80 가마는 너끈히 들어가는 석조와 쇠솥 등이 그것이다. 법주사는 천 년이 넘는 역사를 통한 미륵신앙이 전해져 내려왔던 곳으로써 기도와 예불 수행 등 기초적인 불교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팔상전은 5층 목탑으로서 우리나라 목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며, 신라 진흥왕 때에 의신이 세웠고 776년 병진이 중창해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팔상전은 1984년에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3층 목조탑이 소실됨으로써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된 중요한 건축물로 전체높이가 상륜까지 22.7m이며 현존하는 한국의 탑파 중 제일 높은 것이다. 또한 석연지는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구름 위에 둥둥 뜬 듯한 모습을 조식한 걸작품으로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고 있으며, 쌍사자 석등은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그 조성 연대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등의 간주석을 석사자로 대치한 이 석등은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8각의 지대석 위에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대 방석을 모두 하나의 돌에 조각한 것으로 다른 석등에 비해 화사석과 옥개석이 큰 것이 특징이다.
2025-09-09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
관촉사(논산)은 논산 시내 남부 반야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논산 8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명승지다. 관촉사에는 독특한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 으뜸은 ‘은진미륵’이라 불리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높이 18m의 석불이 온화하고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있어 ‘백제의 미소’로 표현되곤 한다. 은진미륵 앞에 선 석등과 오층석탑, 석문 등도 귀중한 유물이다. 불경을 넣어둔 윤장대의 축을 잡고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관촉사에 있는 유물 중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국보, 석등은 보물, 석문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석조비로자나불입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관촉사 앞마당에 서면 풍요로운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2025-07-31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길 192
쌍계사(논산)는 대둔산 줄기의 불명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다. 역사에는 고려 초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을 건립한 혜명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옥황상제의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절터를 잡아 건립했다는 말이 있다. 이곳은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을 품고 있으며, 대웅전은 꽃무늬 창살로 유명하다. 꽃무늬는 연꽃, 모란을 비롯해 6가지 무늬로 새겨 색을 칠했는데, 이를 통해 섬세하고 정교한 솜씨를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사찰에는 보물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대웅전의 좌측에 나한전과 칠성각이 있으며 대웅전의 전면 좌측에 명부전과 우측에 요사가 배치되어 있다. 또한,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역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입구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부도군과 중건비가 위치하고 있으며, 쌍계사는 고려 시대에 작은 암자였다가 고려 후기에 크게 중건되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