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

2025-11-20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길50번길 147-20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은 아산시가지 남부 용담사 경내에 보존된 불상이다. 이 거구의 석불입상은 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장륙불상(1장 6척)으로 통일신라 양식과 고려 양식이 섞여 있다. 상체가 짧고 하체가 긴 다소 불균형적인 모습이지만 얼굴과 옷 주름의 뛰어난 조각 솜씨 덕분에 미적으로 우수하다. 특히 단아한 얼굴, 맵시 있는 이목구비, 잔잔한 미소 등은 이 시기 독특한 불상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불상의 체구가 직사각형이면서 평면적이지만 손과 팔, 어깨와 다리의 형태를 능숙하게 표현한 점, 옷 주름을 묘사한 유려한 솜씨 등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또한 선이 구불거리면서도 기하학적인 좌우대칭을 잘 지키고 있다. 그리고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약합(약그릇)을 들고 있는 모습은 중생들이 앓고 있는 심신의 온갖 병마를 없애주는 자비로운 약사여래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보령 충청수영성

보령 충청수영성

2026-05-15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충청수영성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되었으며, 그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이 군선(軍船) 142척에 수군 수(水軍數)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고,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선조 29년(1596), 충청수사 최호가 충청수영의 본영과 속진의 수군을 이끌고 남해 한산도에 머물며 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다가 이듬해인 선조 30년(1597) 7월 1일 일본군에 패하여 통제사 원균과 함께 전사했다. 또한, 충청수영성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으로 성내의 영보정이 유명했고, 서문 밖 갈마진두(渴馬津頭)는 충청수영의 군율 집행터로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천주교 신부 다섯 명이 순교한 곳이다. 근대에 들어 도로개설이나 호안매립 등으로 인하여 훼손된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충청수영성은 나머지 성지(城址)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형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목적에서 마련된 충청지역 수군 지휘부로써 충남의 수군편제와 조직, 예하 충청지역 해로(海路) 요해처(要害處)에 배치되었던 수군진과의 영속 관계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단양 적성

단양 적성

2025-04-21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

단양적성은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성재산 정상에 있는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단양적성은 석축성으로 성의 길이가 923m이지만 대부분 붕괴되었고 북동쪽 내외 부분의 안쪽 벽 높이 2~3m, 폭 1m의 석축이 일부만 남아 있다. 성재산 봉우리와 남쪽 비탈을 빙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며 성문 자리는 남서쪽, 동쪽, 남동쪽 등 세 곳에서 발견되었다. 산성의 주변에는 남한강의 상류 방면과 하류 방면으로 각각 고대 교통로가 나 있으며, 동서쪽으로도 길이 트여 있다. 남한강 수로를 다라 영월과 충주 방면으로 진출이 용이하고, 강 건너 제천 방면으로 진출하기에도 유리한 교통의 요충지에 있는 산성이다. 적성에서 단양신라적성비가 발견되었는데, 이 비는 적성의 성격이나 목적, 연대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비의 건립 연대는 늦어도 551년 이전으로 보인다. 따라서 적성은 6세기 중엽 이전에 신라가 남한강 상류방면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하고자 쌓은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성으로 평가된다. 단양적성은 삼국 시대의 산성으로는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며 신라와 고구려 세력관계 변동을 알아보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 또한 축성 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 있어, 신라의 축성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

2026-07-21

충청북도 단양군 향산1길 24 향산리삼층석탑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은 단양읍에서 동쪽으로 16㎞ 떨어진 산골짜기의 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탑이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묵호자는 향산사라는 절을 세웠는데, 그 후 그가 열반하자 그 자리에 제자들이 석탑을 세우고 묵호자의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사찰이 소실된 이후 그 터는 400여 년간 폐허로 남아 있고, 향산리 삼층석탑만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주변에 자기 조각들과 기와가 널려 있어서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고 있으나, 절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1935년경 탑 속의 사리를 도둑맞으면서 허물어졌던 탑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삼중 기단의 3층 석탑으로 신라 석탑의 전형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9세기 경의 3층 탑 양식을 계승한 아담한 소탑으로, 불탑의 맨 꼭대기에 있는 기둥 모양의 장식 부분의 일부도 현재까지 보전되어 있다.

영수사(진천)

영수사(진천)

2025-03-17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길 60-125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영수사 경내에는 조선 후기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관음보전과 관음보전에 봉안된 목조관음보살좌상(木造觀音菩薩坐像), 그리고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4호인 「영수사 괘불(靈水寺掛佛)」과 조선 말기에 그려진 「후불탱화」와 「칠성탱화」 등이 남아 있다. 이 밖에 근래에 신축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대웅전, 그리고 대웅전 앞마당 좌우측에 콘크리트조의 승방 건물과 삼성각이 있다. 영수사는 두타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다.

서한순 효자문

서한순 효자문

2025-03-17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서한순 효자문은 진천군 사석리 민가의 낮은 언덕 위에 조성되어 있다. 이 효자문은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직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일생을 마친 서한순의 효행을 길이 후세에 기리기 위해 1971년 6월 6일에 건립한 효자 정문이다. 서한순 효자문은 목재를 이용한 기와집 형태로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방의 유림의 건의로 효자문을 세우도록 건의하였으나 조선조 말엽의 혼란과 외세 침략으로 정려(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던 일)되지 못하다가 1971년에서야 지방 유림이 당시의 감사, 현감 등의 표창장을 자료로 효자 정문을 세우게 되었다.

진천 연곡리 석비

진천 연곡리 석비

2025-03-17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641

연곡리 사지는 진천읍 연곡리 비립 마을 바로 뒤에 있으며, 삼층 석탑이 남아 있고, 인근의 연곡리 석비를 통하여 고려 때 절터로 추측된다. 현재 이곳에는 삼선 포교원의 보탑사가 있다. 진천 연곡리 석비는 발견 당시 비석에 비문이 없어 일명 백비라고도 하며, 원래는 비문이 있었으나 오랜 세월에 걸쳐 지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그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형 형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 또는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진천 연곡리 석비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좌대는 거북 모양이고 이수는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려고 하는 모습인데 그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석비 옆에는 석불 좌상과 사리탑으로 추측되는 삼층 석탑이 남아 있다. 현재 이 앞에는 전통적인 공법으로 목탑을 재현하는 등 현대의 불교 유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보탑사가 건립되어 많은 참배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만뢰사

만뢰사

2025-03-17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강당길 50-6

만뢰사는 조감의 위패를 모셔 놓고 그 공적을 후손이 기리도록 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의병장인 조감은 만노성에서 유창국과 더불어 통솔자가 없어 방황하는 수천 명의 피난민을 이끌고 만노성에 침입한 외적을 물리친 공을 세웠다. 조감은 사후에 예조판서에 올랐다. 1851년(철종 2) 백곡면 가죽리에 죽계사를 세워 김유신과 함께 조감을 배향하였다가 고종 때의 서원철폐령으로 죽계사가 철거되면서 배향을 하지 못하였다. 해방 후인 1949년 진천 길상사에서 다시 조감을 배향하였다가, 1961년 후손들과 지방 유림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백곡면 갈월리 강당마을에 새로 만뢰사를 건립하여 조감을 배향하게 되었다.

진천 이시발 신도비

진천 이시발 신도비

2025-03-17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진천 이시발 신도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시발(1569∼1626) 선생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이다. 이시발은 오촌 대건의 아들로 청원군 오창면 오근리(현 청주시 오근장)에서 선조 2년(1569년)에 태어났다. 선조 2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고, 임진왜란(1592), 이봉학의 난(1596), 이괄의 난(1624) 당시 큰 공을 세웠다. 생을 마친 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선조, 광해군, 인조에 걸친 세 임금을 섬기면서 백성의 생활안정과 지방민을 평온하게 하였던 그의 공로를 찬양하고자 이 비를 세웠다. 조선 효종 9년에 세운 비로, 비문은 송시열이 글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썼으며, 이정영이 새겼다.

진천향교

진천향교

2025-03-17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화5길 30

진천향교는 조선 태조(재위 1392∼1398) 때 지은 것으로 순조 4년(1804)에 명륜당과 동재·서재를 고치고 풍화루를 지었다. 1816년에는 대성전을 고쳤으며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풍화루 등과 부속건물들이 남아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으로 동무·서무와 함께 제사공간을 형성한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으로 이것을 중심으로 배움의 공간이 이루어진다. 풍화루는 학생들의 휴식공간이면서 누문의 기능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책·노비 등을 지급받아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봄·가을 2차례에 걸쳐 제사만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