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2026-06-10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은 1983년에 발견된 것으로 돌기둥 4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 백제시대 유일의 사면불(四面佛)이다. 사면불은 일명 ‘사방불’이라고도 하는데,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사방 정토에 군림하는 신앙의 대상인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불, 미륵불을 뜻한다. 남면에는 본존불로 생각되는 여래좌상이 있고, 나머지 면에는 여래입상이 각각 1구씩 새겨져 있다. 머리 부분은 많이 훼손된 채 서향과 북향만이 남아있고, 따로 끼울 수 있도록 되어있는 손은 모두 없어졌다. 4구의 불상은 모두 양 어깨에 옷을 걸치고 있으며, 가슴 부분에 띠매듭이 보인다. 옷주름이 매우 깊고 가슴아래에서 U자형으로 겹쳐 있다. 머리광배는 원형으로 불꽃무늬·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백제 특유의 양식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석조 사방불로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과 비교할 수 있어 백제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

2026-08-03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만해로318번길 83

만해 한용운선생의 생가는 초가지붕을 얹었으며 방 두 칸, 부엌 한 칸으로 구성된 일자형 구조로 한용운이란 문패가 걸려있다. 댓돌이며 툇마루가 한없이 정겹고 우물과 장독대를 돌아 집 뒤 야산 언덕배기를 올려보면 적송과 조릿대가 자란다. 부엌 옆은 장작을 쌓아두는 헛간이고 사랑방 옆은 절구통과 맷돌이 보관된 헛간이다. 생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위패와 영정을 모신 만해사라는 사당이 있다. 1879년 이곳 성곡리에서 태어난 한용운 선생은 6세부터 성곡리 서당골에서 한학을 배워 9세에 문리를 통달,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26세에 강원도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하였고 삼일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불교개혁운동에 일생을 바쳤으며 1944년 69세의 나이로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별세했다.

우산성

우산성

2025-06-11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백천리

우산성은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백제시대 축성한 산성이다. 대개 가로모양의 자연석을 모쌓기로 하였으며, 잘 남아 있는 곳의 성벽은 높이 7m, 폭 6m가량 된다. 남벽과 동벽이 만나는 곳, 북벽과 동벽이 만나는 부분은 다른 곳보다 높은데 아마도 전투 시 장수가 올라서 지휘하던 장대가 있던 곳으로 보인다. 성 안에서는 몇 개의 건물터와 저장용 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우물이 있다고 한다. 성에서 보이는 유물은 백제 토기조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와조각도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 성은 백제 때 쌓아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산성을 따라 우산의 정상에 이르다 보면 칼바위 광장을 만나는데 보기 드문 기이한 모습의 바위들을 볼 수 있다. 정상에 위치한 청룡정 누각에 걸터앉아 청양의 전경을 내려다보면 산행 끝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2026-06-08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

성북리 오층석탑은 높이 6.2m로 고려시대에 세워졌으면서도 백제 영토였던 서천 지역의 특색을 살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닮은 백제계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이 탑은 단층 기단에 5층의 탑신을 갖추는 등 백제계 석탑 양식을 가장 충실히 따르고 있다. 특히 각 면의 모습이 위는 좁고 아래는 넓어 사다리꼴을 하고 있는 것이 영락없는 백제의 탑이다. 그러므로 백제계 석탑 양식의 분포에 따른 그 전파 경로를 알아내는 데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가치가 있는 국가유산이다. 1963년에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주변에 비인읍성, 비인향교, 비인해수욕장, 월명산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하기 좋다.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2026-04-15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단길 71

조선 후기 사회 운동가인 이상재(1850∼1927) 선생의 생가가 있던 자리이다. 이상재는 종교가·정치가로 일찍이 기독교에 입교하여 신앙운동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노력했다. 고종 18년(1881)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 고종 25년(1888) 전권대신 박정양을 수행하여 주미공사 서기로 부임했다. 미국에 다녀온 뒤, 신문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광무 2년(1898)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민중 계몽에 앞장섰다. 1927년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단일 전선을 결성하여 일본과 투쟁할 것을 목표로 신간회를 조직할 때, 창립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저서로 논문집 『청년이여』, 『청년위국가지기초』 등이 있다. 선생의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초가집으로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대문은 솟을대문을 두었다. 안채는 1800년경에, 사랑채는 1926년경에 지었다고 하나 원래 건물은 1955년에 없어지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72년, 1980년 두 차례에 걸쳐 복원한 것이다. 생가 옆에는 유물전시관이 있어 선생이 생전에 남긴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금이성

금이성

2026-03-05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

금이성은 금성산 정상에 축조된 테뫼식산성(산 정상부를 둘러쌓은 성)이다.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견고하게 구축된 형태가 철옹성 같다 하여 쇠성 또는 금성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금현성이 바로 금이성을 이르는 것이다. 북으로는 전의·천안 방면, 남으로 금강 일대를 굽어보고 있으며 산성의 동북방에는 운주산성이 있고 북으로는 고려산성·증산성·전의읍내리산성·이성산성이 거의 일직선으로 보인다. 산성 아래에는 전의에서 공주로 통하는 큰 길이 통과하고 있어 이곳이 과거의 전략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성의 축조 양식은 전형적인 백제 양식에 일부 통일신라 초기의 양식이 가미되어 있다. 남쪽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성의 북단과 동남·서남단에 망루 지의 형태가 남아있고 동·북·서쪽에서 문 터가 확인된다. 성내에서 백제 시대부터 고려 시대의 유물로 보이는 항아리, 대접, 사발 등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백제 시대에 축조되어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

2026-09-28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길 38

3·1 운동 때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유적으로, 생가와 봉화를 올렸던 봉화터가 있다. 유관순 열사는 대대로 내려오는 선비가문에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6년에는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다. 다음 해에 3·1 운동이 일어나자 서울시위에 참가하였고, 일제의 휴교령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하게 되었다. 이에 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날에 시위운동을 벌여 열사의 부모를 비롯하여 19명이 죽고 30명이 부상당했으며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다. 유관순 열사는 모진 고문을 당하고 1920년 9월에 순국하였다. 시신은 서울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도시개발 과정에서 무덤을 잃어버렸다. 천안시에서는 유관순의 애국정신을 길이 추모하고 3·1 운동의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1972년에 사당을 세우고 열사의 영정을 모셨다. 봉화대와 봉화탑을 건립하여 매년 3월 마지막날에 봉화를 올림으로써 그날을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아산 맹씨 행단(맹사성 고택)

아산 맹씨 행단(맹사성 고택)

2025-11-19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 25

맹사성 고택은 설화산을 서쪽으로 등지고 배방산을 동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수백 년간 무사히 보존되어 온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옛 모습을 간직한 집이다. 고려 말 충신이던 최영 장군이 살던 집으로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가 된 맹사성에게 그 집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가옥의 형태는 ‘ㄷ’자형의 맛배집으로 목재는 광솔이 되다시피 그을렸으며, 기둥과 도리 사이에는 단구로 봉설(봉황의 혀)이 장식되었고, 내실 천정은 ‘소라 반자’로 흔히 볼 수 없는 나무반자다. 사적으로 지정된 맹씨행단은 말 그대로 맹씨가 사는 은행나무 단이 있는 집으로 맹고불의 고택, 구괴정, 쌍행수 등을 망라하여 ‘맹씨행단’ 이라 한다. 맹사성은 이 은행나무 두 그루를 손수 심고 학문에 정진하여 후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안회당과 여하정

2025-07-18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7

안회당은 조선시대 충남 서북부 지역의 중심지였던 홍주의 지방관이 근무하던 관청이다. 1678년에 처음 세웠고, 1870년 한응필 목사가 다시 크게 지었다. ‘안회당’이라는 이름은 논어의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에서 인용한 것으로, ‘노인은 평안하게 모시고 벗은 믿음으로 대하고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라는 의미이다. 현판의 글씨는 홍선대원군이 썼다고 전하는데, 광복 이후 분실되어 1991년에 새로 제작하였다. 여하정은 안회당의 뒤뜰에 있는 작은 연못에 세워진 정자이다. 19896년에 이승우 관찰사가 옛 청수정 자리에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역대 홍주목사들이 관아 일을 돌보다가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정자는 육각형의 나무기둥으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데, 기둥에는 오언시가 주련으로 각 2개씩 총 12개가 걸려있다. 작은 규모의 정자이지만 고목과 연못의 연꽃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김좌진 장군 생가지

2025-07-18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백야로546번길 12

김좌진장군생가지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이 출생하고 성장한 곳으로 충남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생가는 안채, 사랑채, 곳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는 김좌진 장군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으로, 사랑채는 김좌진 장군의 부친인 김두영 선생이 거주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곳간채는 김좌진 장군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창고로 사용되었다. 생가 주변에는 김좌진 장군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사당, 기념관, 백야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사당은 김좌진 장군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기념관은 김좌진 장군의 독립운동 활동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백야공원은 김좌진 장군의 생가와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공원으로, 김좌진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