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4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청룡사지길 147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로 창건 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절터 내에 국보 제197호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보물 제656호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충주 청룡사 위전비,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등의 유물이 있으며 이를 통해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법등이 이어졌던 사찰의 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물들은 불교 미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로 특히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은 조선시대의 석조 부도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될 만큼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이다.
2026-02-12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마사리 산28
예산 임존성은 예당저수지 서쪽 인근 봉수산에 축조된 백제시대 산성으로 예산 제4경으로도 선정되었다. 외벽은 돌로 쌓여 있고 안은 흙으로 메워진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둘레 약 4km, 높이 약 2.5m, 폭 약 3.5m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660년(의자왕 20)에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망했을 때 복신, 도침과 흑치상지 장군이 3년여 동안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으로 활용하였으며, 백제의 산성 중에서도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라 산성 연구에 많은 기초가 되고 있다. 1963년에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봉수산자연휴양림 등을 통해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거나 남서쪽 마사리에서 임도를 통해 차량을 이용해 오를 수 있다. 정상부에서는 예당저수지 외에도 오서산, 백월산, 가야산 등을 전망할 수 있으며,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을 만나볼 수 있다.
2026-06-19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내로 70
* 삼국시대 포곡식 석축산성, 상당산성 * 상당산성이란 명칭은 삼국시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된 듯하다. 둘레가 4km를 넘는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상당산성이 처음 축성된 것은 백제시대 때 토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서현(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이후 조선시대 선조 29년 임진왜란 당시 개축되었다가 숙종 때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읍지(邑誌)에 따르면 이 산성은 1716년(숙종 42) 고지(古址)에 의거하여 석축으로 개수하였다고 하며, 남문 등의 성문·성벽에 당시의 공사관계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새겨져 있다. 남문의 문루는 1977년 복원되었다. * 상당산성의 구조 및 축조법 * 산성의 면적은 12.6ha, 성 둘레 4,400m이며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구축하고 그 안쪽은 토사(土砂)로 쌓아 올리는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축조하였으며 높이는 4.7m이다. 동·서·남방 3개소에 성문을 두었는데, 남문은 무사석(武砂石)으로 홍예문을 만들고 그 위에 목조 문루(門樓)를 세웠다. 지금은 석축 부분만 남아 있고, 성문의 높이는 3.5m, 너비는 4.2m이다. 동문과 서문도 역시 문루가 있었으며 성문은 무사석으로 네모지게 축조하였는데 높이 2.7m, 너비 2.8m이다. 동문과 남문 부근에 1개소씩의 암문(暗門)이 있고 동남방에 수구(水口)가 있었으나 지금은 여기에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장대(東將臺)와 서장대(西將臺)의 터가 남아 있다. 상당산성은 청주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멀리서 보아도 상당산이 머리에 띠를 두른 듯 또렷하게 보이는 성벽은 위기 때마다 청주 사람들의 울타리가 되어준 파수꾼이다. 상당산 능성 따라 이어진 성벽은 산을 돌아가며 둘레 4.2km, 높이 4~5m의 성곽이다.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에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석성을 쌓았다. 성 안에는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공남문(남문)과 미호문(서문), 진동문(동문) 3개의 문과 2개의 암문, 치성 3곳과 수구 3개소가 있다. 조선군이 훈련하던 동장대는 1992년에 복원해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성을 한바퀴 돌고 내려오면 성안에는 전통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는데 전통마을에서 맛보는 전통주와 빈대떡은 산성을 돌고난 고단함을 풀어준다. ※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여 언제든지 해설을 들을 수가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상당산성’은 에서 청나라의 침공으로 인해 임금 인조가 피신했던 장소로 남한산성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2026-05-07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참샘길 113
박팽년 사당은 충주시 참샘길에 있다. 조선 전기의 학자이며 충신인 박팽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1775년에 창건되고 1968년에 충주시에서 새로 복원한 것이다. 박팽년은 1447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의 관원이 되어 신숙주, 유성원 등 젊은 학자들과 편찬사업에 참여하였다.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려 하였으나, 성삼문의 만류로 단념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단종 복위 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김질의 밀고로 실행하기도 전에 발각되었고, 그의 재주를 아깝게 여긴 세조의 회유에도 뜻을 굽히지 않다가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과 함께 참형을 당하였다. 이 사우는 전면 3간 측면 2간의 목조 8작 집으로, 흙과 돌을 섞어 담장을 둘렀으며 입구에 일각대문이 있다. 사당 건물 정면에는 솟을삼문의 충신문이 있는데 중앙칸에 박팽년의 충신지문 편액이 걸려 있다. 민가 가운데에 있으며 화려하지 않은 모습으로 낮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다.
2026-10-01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당진시 면천면 소재지 대부분을 둘러싼 평지 읍성으로, 당진과 서산, 태안 일대는 예부터 중국으로 통하는 바닷길이 열려 있던 곳이다. 통상의 길목이자 국방상 중요한 거점이어서 백제시대부터 중요하게 여겨졌다. 지금의 읍성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1439년(세종 21)에 쌓았으며, 조선 후기까지 면천의 군사·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다. 성벽은 자연석을 다듬어 바깥쪽을 석축으로 쌓고 안쪽은 돌을 채운 뒤 흙으로 덮었으며, 서벽에서는 축성 책임 군현을 새긴 각자성돌도 발견되었다. 현재 성벽 둘레는 1,336m로, 축성 당시에는 치성과 옹성을 합쳐 약 1,564m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서·남쪽에 성문을 두었고 남문에는 옹성을 갖추었다. 2007년부터 복원이 이어져 남문과 옹성, 서벽, 동남치성, 동벽 일부와 객사가 옛 모습을 되찾았다. 성 안에는 천연기념물인 1,100년 된 면천 은행나무 두 그루와 군자정, 골정지, 레트로 거리가 어우러져 있고, 주민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성안마을을 거닐며 옛 정취를 느끼기 좋다. 매년 봄에는 면천읍성 진달래민속축제가 열린다.
2026-05-07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귀래길 24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 언론인이었던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사당 및 묘소이다. 1981년 이곳에 신채호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면서 단재 영당, 단재 영각으로도 불린다. 1978~1979년 사이 묘역을 정화하고 신채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옛 집터에 사당을 세웠다. 호석이 없는 아담한 봉분 앞에 한용운 등이 세운 묘표와 상석을 놓았다. 상석 오른쪽에는 1972년 세운 사적비가 있고 봉분의 정면 중앙에는 명등석 1기, 좌우에는 문인석 1쌍이 서 있다. 신채호 동상, 신채호 기념관도 건립되어 있어 같이 둘러보며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 신채호는 민족사관을 정립한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이며 일제에 끝까지 대항해 싸운 독립운동가이다. 28세 무렵 이동녕, 안창호 등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했으며, 1910년 해외에 망명한 후 본격적으로 국사 연구에 힘써 ,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 후에는 의정원 전원 위원장으로 독립운동에 힘을 기울였고, 1929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중국 뤼순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순국하였다.
2026-06-24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0-1
충남 홍성군에 있는 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성의 둘레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문종 1년(1451)에 새로 고쳐 쌓았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가 4,856척(약 1.5㎞), 높이는 11척(약 3.3m)이며 문은 4개가 있었고, 여장·적대 등의 여러 시설이 설치되었으며 안에는 우물 2개가 있었다고 한다. 동문인 조양문은 현재까지 남아있고 1975년 복원한 것이다. 아문은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함께 세운 것이며 ‘홍주아문’이란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으나 현재 남아있지 않다.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며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안회당은 홍주목의 동헌으로 22칸의 목조 기와이다. 역대의 홍주목사와 홍주 군수가 행정을 집행하던 관아건물로 현재 군청 후정에 위치하고 있다. 여하정은 목조 와즙의 육각으로 된 수상정으로 현재 군청 후정에 안회당 뒤뜰과 연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 등이 이 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덕산으로 격퇴시킨 일이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읍성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초기 새로운 형식에 의해 쌓은 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2026-07-15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 도이길 42
옥천 후율당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조헌(1544∼1592)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조선 선조 21년 중봉 조헌 선생께서 보은 현감을 사임하고 옥천에 낙향하여 살 때 율곡 이이 선생을 경묘 하여 그 뒤를 잇는다 하여 자신의 호를 ‘후율’이라 하고, 용촌 밤티에 담을 짓고 ‘후율당’이라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중봉 선생은 옥천에서 김경백 등과 의병 약 1,600여 명을 모집하고 승병인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충청도 순찰사인 윤극형의 방해로 의병이 강제 해산되어 700여 명으로 금산전투에 참전했으나 모두 전사하였다. 그 후 철종 5년 후손들이 옥천군 백양동에 이건 하였다가 1864년 현 위치로 옮겼으며 1977년 중건하였다. 후율당의 건물 규모는 앞면 3칸, 1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솟을대문과 돌로 쌓은 담장이 둘러져 있고, 뜰에는 금산전투에서 그를 대신하여 죽으려 했던 그의 아들 조완기의 효자각이 서 있다. 이곳에는 광해군 3년(1621) 판각한 10매, 선조가 내렸다는 1매를 보관하고 있다.
2026-07-15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길 50
칠백의총은 충남 금산군 소재지 북쪽에 위치한 묘지이다. 임진왜란 발발 직후인 1592년(선조 25) 8월에 조헌과 영규대사의 지휘 아래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의병 700인의 묘이다. 조헌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있은 4일 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했다. 그 후 1603년(선조 36)에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를 세우고 1647년(인조 25) 사당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시설을 파괴한 후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 황폐하게 만들어, 항일유적을 말살하였다. 광복 후 1952년에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사당을 다시 지었고 1970년에 묘역을 확장한 후 사당과 비석을 새로 지었으며, 1976년에는 기념관을 신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일부 유물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매년 9월 23일 15시에 제향 행사를 거행한다.
2025-09-02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충주 남산성은 충주시 안림동과 목벌동 사이에 있는 산성으로 남산성 또는 금봉산성으로 불린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며 외축 내착형이며 산 정상을 이어 쌓아진 테뫼식 산성이다. 성안에는 우물 자리가 두 개소 있는데 현재 물은 나지 않는다. 동서의 산 능선상에 문터가 있고 동쪽으로 수구가 있다. 또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조각 및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충주 남산성은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몽고병을 물리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몽고군의 이어지는 침입에도 꿋꿋이 막아내어 끝내 지켜졌다고 전해진다.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백제 개로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