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수운정(단양)

수운정(단양)

2025-03-28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황정리

* 단양팔경 사인암 위의 정자, 수운정 * 단양팔경의 사인암 윗편 계곡에 있는 정자이다. 단종 때 영의정 유성룡이 운선 9곡을 명명하여 6곡의 자리에 정자를 세웠으나 지금은 유적지만 남아있다. 운선 9곡은 중국의 주자 10곡을 모방한 것으로, 지금도 9곡 입구에는 운선 9곡의 글씨가 음각으로 남아 있다. * 유성룡이 명명한 운선 9곡 * 유곡(酉谷) 또는 운암구곡(雲岩九曲)이라고도 한다.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의 도솔봉 아래에서 발원하는 남조천을 따라 황정리·직티리·사인암리·괴평리에 걸쳐 펼쳐지는 9곳의 경승지를 가리킨다. 제1곡에서 제9곡까지 차례대로 대은담(大隱潭)·황정동(黃庭洞)·수운정(水雲亭)·연단굴(煉丹窟)·도광벽(道光壁)·사선대(四仙臺)·사인암(舍人岩)·선화동(仙花洞)·운선동(雲仙洞)을 이르는데, 이 가운데 사인암은 단양팔경(丹陽八景)의 하나이다. 경관이 아름답기로 널리 알려져 고려와 조선시대에 숱한 시인묵객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전한다.

충주 미륵대원지

충주 미륵대원지

2025-09-15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미륵사지는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남죽향으로 펼쳐져 있다. 미륵리 사지(彌勒里寺址)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꿈에 관세음보살로부터 석불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하늘재를 넘자마자 지세를 확인하고는 지금의 미륵리에 석불을 세워 절을 만들었다고 한다. 충주 미륵사지는 청주대학에서 1977년에서 1978년의 제2차 발굴조사를 통해 절의 명칭이 미륵대원사였음이 밝혀졌고, 1980년에 이화여대에서 3차 발굴을 통해 여기에 일찍이 석굴사원이 경영되다가 소실되어 현재의 석조물만 남았다는 것을 밝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아달라이사금 3년(156) 기록에 의하면 “4월에 계립령 길을 열었다.”라고 되어 있다. 이를 통해 신라가 백제, 고구려와 교류하게 되었으며, 장기적으로는 한강을 통해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하게 된다. 미륵사지는 14,000평 정도의 직사각형 절터에 일탑일금당이 배치되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미륵리사지 내에는 5층 석탑(보물)과 석불입상(보물)이 있고 지방 유형문화재인 석등과 3층 석탑이 있다. 중원 미륵리 사지는 석조(石造)와 목구조(木構造)를 합성시킨 석굴사원(石窟寺院) 터로 석굴을 금당으로 삼은 북향의 특이한 형식을 취한 유일한 유적이다. 또한 미륵사지의 석불은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이며 석불이 있는 석굴 방형의 주실은 가로 9.8m, 세로 10.75m의 넓이이며 높이 6m의 석축을 큰 무사석으로 쌓아 올렸고 그 가운데 불상을 봉안하였다. 석축 위에는 지금은 없어진 목조 건물이 있었으며 전당은 목조로 된 반축조석굴이다.

원호 유허비 및 관란정

원호 유허비 및 관란정

2025-03-17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

원호는 세조의 왕위 찬탈 당시 초야에 묻혀 지내던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영월에 유배되자 관란재를 짓고 단을 세워 아침, 저녁으로 눈물을 흘리며 영월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한다. 그해 단종이 살해되자 영월에 가서 삼년상을 마쳤다. 단종의 능이 동쪽에 있다 하여 앉을 때나 누울 때나 반드시 동쪽을 향했다고 한다. 원호의 후손과 유학자들이 원호의 충의를 기리고자 헌종 11년(1845)에 비석과 정자를 세웠으며 그의 호에 따라 ‘관란정’이라 이름 지었다.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며 공포는 간결하게 짜여 있다. 이 건물은 1941년에 고쳐서 다시 지었으며, 1970년과 1987년에도 개보수가 있었다. 가까운 곳에 용두산 산림공원과 의림지, 송학역 등 가볼 만한 곳이 많이 있다.

돈암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돈암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2026-05-21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1548~1631)의 강학 기반을 배경으로 건립된 서원이다. 황강 김계휘가 건립한 정회당과 김장생이 건립한 양성당에서 수학한 김장생의 제자들이 후에 스승을 추모하며 기리기 위하여 돈암서원을 건립하였다. 서원 내에는 사당인 숭례사와 강당인 응도당, 정회당과 양성당, 산앙루, 장판각 등 다수의 건축물과 돈암서원의 연혁을 밝힌 원정비 등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그중 응도당은 고대의 가옥제도를 전범으로 하여 지은 건축물로 유명하다. 2019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개최된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돈암서원을 비롯한 한국의 서원 9개소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결정하였다. 당시 한국의 서원은 조선후기 교육 및 사회적 활동으로 널리 보편화되었던 성리학의 증거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인정받았고, 각각의 서원마다 세계유산으로서의 진정성과, 완전성, 보존관리계획 등도 충분한 요건을 갖추었다고 평가받았다.

진천 농다리

진천 농다리

2026-06-11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산동리

진천 농다리는 사력 암질의 붉은 돌을 쌓아서 만들어진 다리로, 28칸의 교각이다. 지방유형문화재로서 길이는 93.6m, 폭 3.6m, 교각 1.2m 정도이며, 교각 사이의 내폭은 80cm 내외이다. 석회 등을 바르지 않고 그대로 쌓았는데도 견고하며 장마가 져도 유실됨이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다리는 고려 초엽 시대의 권신, 임 장군이 놓았다는 돌다리로 규모도 크고 축조술도 특이하다. 정자, 산책로, 초평저수지까지 연결된 수변데크 등이 조성되어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으며, 신비로운 다리 모양과 주변 풍경이 잘 어우러져 드라마 촬영지로도 등장한다.

청주 흥덕사지

청주 흥덕사지

2024-10-17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

청주 운천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이다. 1985년 발굴조사 때 금당터·서회랑터·강당터·부속건물들이 있던 건물터가 확인되었고 ‘흥덕사’라고 새겨진 쇠북(금구) 조각이 나와 절의 이름이 흥덕사였음을 알 수 있었다. ‘대중 3년명(大中 3年銘)’이라 새겨진 기와와 기타 유물들로 보아 늦어도 9세기에 지어져 고려 후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치미·기와조각·그릇 들과 청동제품이 많이 출토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직지심체요절"을 찍은 곳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솔뫼성지

솔뫼성지

2026-09-21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

솔뫼는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 ‘내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1821년 8월 21일 한국 최초의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탄생하셨으며 박해를 피해 할아버지 김택현을 따라 용인 한덕동(현 골배마실)으로 이사 갈 때인 일곱 살까지 사셨다. 뿐만 아니라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 종조부 김한현(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1846년 순교)에 이르기까지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골배마실에서 신학생으로 간택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가 1845년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 돼 그 해 10월 귀국한다. 귀국 후 용인 일대에서 사목을 하다가 1846년 9월 국문 효수형을 받고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그리고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 때 성인 품위에 오르게 되었다. 솔뫼 성지의 소나무 그늘 아래에는 김대건 신부 동상을 비롯하여 기념탑이 세워져 있으며, 아래쪽으로는 개인과 단체 100여 명이 피정을 할 수 있는 피정의 집이 있다. 또, 최근에 김대건 신부와 솔뫼성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념관과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기념과 성당을 신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충의사 (매헌 윤봉길 의사 유적)

충의사 (매헌 윤봉길 의사 유적)

2025-05-12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5

예산 덕산온천 인근에 위치한 충의사는 윤봉길 의사(1908~1932)가 태어나 중국으로 가기 전까지 살아온 곳에 조성된 사적지로, 예산 제2경으로 선정되었다. 윤봉길 의사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며 항일 정신을 고취하고 농촌 계몽운동을 펼쳤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1932년 4월 29일에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열린 일본군의 상하이 전투 기념식에 폭탄을 던져 우리나라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이곳에는 윤봉길 의사가 태어난 집인 ‘광현당’과 중국으로 갈 때까지 거주하던 집이자 ‘한국을 건져 내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저한당’, 농촌 계몽운동을 펼치던 집 ‘부흥원’이 보존되어 있다.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적비와 동상,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당 충의사, 유품 등을 전시한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있다. 의거일인 4월 29일에는 매년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는 기념식이 개최되고 있다.

단양 온달산성

2026-02-05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하리

온달 산성은 남한강변의 해발 427m의 성산에 축성된 길이 682m(외측), 532m(내측), 높이 6m 내지 8m로 축성되어 반월형 석성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영춘을 돌아 흐르는 남한강 남안의 산에, 길이 70cm, 너비 40cm, 두께 5cm 크기의 얄팍한 돌로 축성한 성으로, 약 100m 정도가 붕괴된 것 외에는 대체로 현존한다. 동 ·남 ·북 3문[門]과 수구[水口]가 지금도 남아 있다. 성내에는 우물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매몰되어 물이 조금 나올 정도이며, 곳곳에서 삼국시대 및 고려 때의 토기 조각을 볼 수 있다. 이곳은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이루었다면 현재 중국의 양자강과 황하강 주변이 우리의 땅이 되었을 것이라는 역사적 회고와 바보 온달이 자기 수련의 노력을 통한 명장으로의 변신과 홀어머니에 대한 효행심 그리고 평강공주의 내조의 힘 등을 통하여 현대의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과 의미를 주는 유서 깊은 곳으로 온달동굴과 더불어 학생들의 고적 답사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온달 산성의 지명과 전설에 의하면, 영토 확장 경쟁이 치열했던 삼국시대에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영유권을 둘러싸고 전투가 치열하였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 바보온달 장군의 무용담과 함께 평강공주와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의 사위 온달이 신라군의 침입 때 이 성을 쌓고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삼국사기 열전 제45에 기록되어 있다.

홍성 오관리 당간지주

2026-03-12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297-17

당간지주 화강석재 2개의 기둥으로 된 사찰 당간지주로서 절 앞에 세워 부처의 자비를 나타내고 나쁜 기운을 내쫓는 깃발을 ‘당’이라 하고 그 깃발을 매다는 깃대를 ‘당간’이라고 한다. 당간 지주란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말한다. 홍성 오관리 당간 지주의 안쪽은 아무런 장식이 없지만 바깥쪽의 중앙부에는 줄무늬 두 개가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중앙에는 깃대는 세우도록 한 둥근 구멍이 있고 지주의 윗부분에는 깃대를 고정하는 직사각형의 구멍이 있다. 당간 지주가 있는 주변에는 고려 시대 사찰 ‘미륵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