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1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
부여 왕릉원은 충남 부여군 소재지 동쪽 능산리에 위치한 백제 고분군이다. 남향 경사면에 고분이 앞뒤 2줄로 3기씩 있고, 뒤쪽 제일 높은 곳에 1기가 더 있어 모두 7기로 이루어져 있다. 오래전부터 왕릉으로 알려진 고분의 겉모습은 모두 원형봉토분이고, 내부는 널길이 붙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뚜껑돌 아래는 모두 지하에 만들었다. 1호는 네모형의 널방과 널길로 이루어진 단실무덤으로 널길은 비교적 길고 밖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나팔형이다. 널방의 네 벽과 천장에는 각각 사신도와 연꽃무늬, 그리고 구름무늬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고구려의 영향으로 보인다. 2호는 공주 무령왕릉과 같이 천장이 터널식으로 되어 있으며,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3호와 4호는 천장을 반쯤 뉘어 비스듬히 만든 후 판석을 덮은 평사천장이고 짧은 널길을 가졌다. 이 형식은 부여에 많으며 최후까지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고분군 서쪽 절터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이 출토되어 왕릉일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도 포함되었다. 인근 관광지로는 부여 능안골 고분군, 부여나성, 부여 중정리 백제건물지, 국립부여박물관 등이 있다.
2026-05-19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66
문헌서원은 가정 이곡(1298∼1351)과 목은 이색(1328∼1396)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곡은 고려 후기 학자로서 이색의 아버지이다.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인정받았고, 문명을 떨쳤다. 이색은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다. 원·명교체기에 친명정책을 지지하였고, 유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다. 이곳은 자연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경관 명소로 유명하며, 특히 이색 선생 영당 뒤 아름드리 배롱나무가 장관이다. 배롱나무 꽃은 8월~9월 사이에 만개하며, 우리 전통 건축과 선홍 빛 꽃이 어우러진 자연미를 감상할 수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조선 시대 성리학의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지방에 세운 기관으로 한국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서원이다. 에서 배롱나무에 걸린 천을 잡으려던 어린 담이와 이휘가 처음으로 만난 장면의 촬영지로 여름이면 400년 된 서원과 소나무 숲, 너른 잔디밭, 배롱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고요한 절경을 이룬다.
2026-07-13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국악로 13-34
조선 전기 문신이자 악성인 난계 박연(1378∼1458)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세종을 도와 음악을 정비하는 데 많은 공을 세운 박연은 악률에 정통하여 세종 7년(1425) 아악의 율조와 악기의 그림, 악보를 같이 실은 를 편찬하였고, 1427에는 편경 12매를 만들어 자작한 12 율관을 따라 직접 연주하기도 하였다. 사당 일대에는 박연을 비롯한 6인의 위패를 봉안한 세덕사와 박연의 묘소, 그의 사촌형인 국당 박흥생(朴興生)의 묘비, 쌍효각(雙孝閣)등이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난계사 蘭溪祠’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이 있다. 난계의 동상과 비가 방문객을 맞이하는 사당 입구부터 외삼문까지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나무도 많아 휴식하기도 좋다.
2026-06-19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궁남지는 백제시대의 연못으로, 삼국사기에 의해 백제 무왕이 궁궐 남쪽에 만들어 궁남지라고 불린다. 삼국유사에는 무왕의 어머니가 궁남지의 용과 정을 통하여 무왕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우물과 주춧돌들이 남아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조경으로 백제의 조경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다. 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신선사상을 표현한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정원으로 백제의 노자공은 일본에 건너가 백제의 정원 조경기술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백제가 삼국 중에서도 정원을 꾸미는 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관광지이다. 현재 궁남지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하는 이상적인 친환경 여행지로 발전했는데,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적극적인 관리가 진행되고 있다. 덕분에 관광 시에는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체험을 선사하고 있는데, 자전거와 도보를 통해 더욱 친환경적인 관광이 가능하다. 또한, 유적지를 둘러보며 관광지에 있는 역사적 가치를 더욱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 7월에는 천만 송이 연꽃들의 아름다운 향연인 서동연꽃축제가 열리고, 10~11월에는 다양한 작품으로 꾸며진 굿뜨래 국화전시회가 열려 궁남지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2026-07-13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11
충추 탑평리 칠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다.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으로는 가장 높은 석탑으로 크게 높은 토단과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고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홍수 등으로 인한 석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높은 토단을 조성한 후 세워진 일반형 석탑으로 탑신에 비해 기단부의 너비가 넓다. 기단은 각부를 몇 장의 돌로 조립하였는데 아래위층 기단이 모두 면석에 탱주 네 개씩을 세워 놓았다. 탑신부 역시 각부를 몇 장의 돌로 구성하였는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좁아들면서 중첩되었고 옥개석 받침은 각층이 모두 5단으로 되어있다. 상륜부는 2층으로 구성된 노반이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위에 가운데가 볼록한 원주형 석재가 있고, 앙화석이 꼭대기에 올려져 있다.
2026-04-27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배론성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위치한 조선 후기 천주교 성지이다.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신자촌을 형성한 이곳은 한국 천주교 성립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801년 신유박해 당시 황사영이 토굴에 숨어 ‘백서’를 집필한 곳이며, 1855년부터 1866년까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론 신학교가 자리했다. 또한 이곳에는 한국의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의 묘소와 병인박해 순교자 남종삼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된 성지 경내에는 성요셉 성당, 황사영 순교 현양탑,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 등 다양한 종교 시설과 수녀원, 사회복지 시설인 살레시오의 집이 들어서 있다. 역사적 가치와 신앙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곳은 오늘날에도 전국의 성지순례객들이 끊임없이 찾는 장소이다.
2026-03-12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송리
일명 고산산성으로 불리는 운주산성은 백제 시대의 유적으로, 전동면 미곡리·청송리와 전의면 동교리·신정리 경계 지점에 위치한 운주산(해발 459.7m)을 중심으로 조성된 산성이다. 운주산성은 운주산의 지형을 이용해 축조된 성곽으로 둘레 약 3,210m, 폭 2m, 높이 2~8m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분지형의 산세와 수려한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뛰어난 풍치를 자랑하는 산성이다. 성벽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쌓았으며 북벽과 동벽은 운주산 정상에서 서쪽과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이어졌고 남벽은 산봉우리를 감싸는 형태로 축조되었다. 서벽은 서쪽 능선을 가로지르며 형성되어 전체적으로 북쪽은 해발 고도가 높고 서남쪽은 낮은 지형적 특성을 보인다. 서문, 남문, 북문에서 문지(門址)가 확인되지만, 대부분 붕괴되어 원형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운주산성은 내성과 외성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고대 산성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성 안에는 성문 터, 건물 터, 우물 터 등이 남아 있으며, 정상 부근에는 기우제를 지냈던 제단으로 추정되는 원형 대지가 존재한다. 또한 성 내부에서는 백제 시대의 토기편과 기와편, 고려·조선 시대의 자기편과 기와편 등이 출토되어 오랜 세월에 걸친 역사적 흔적을 보여준다. 이 산성은 백제가 660년에 멸망한 이후, 풍왕, 복신, 도침 장군을 중심으로 일어난 백제 부흥운동군의 최후 항전지로 알려져 있다. 산성 입구에는 고산사라는 사찰이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8일이 낀 토요일에는 백제 멸망기의 의자왕과 부흥기의 풍왕, 그리고 백제 부흥운동 중 순국한 이들의 넋을 기리는 고산제가 열린다.
2026-07-13
충청남도 서산시 탑동2로 15
이 유물들은 고려 말에 큰 사찰이 있어서 대사동이란 동명까지 붙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일명 대사동탑이라는 삼층석탑과 당간지주다. 현재 석탑의 총높이는 5m이며, 이중기단과 탑신과 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각층 탑신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옥개석은 4단 받침에 전각의 반전이 있는 개석이다. 상륜부는 남아있지 않다. 또한 이 탑과 같은 장소에 있는 당간지주는 탑과 같은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두 지주가 마주 서 있으나, 기단석의 매몰과 유실로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 또한 두 지주의 높이가 각기 달라, 한쪽은 3.96m이고 다른 한쪽은 3.81m이다. 정상부가 파손돼 없어져, 총높이가 동일하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25-11-05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단양 신라 적성비는 성재산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비로,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높이 93cm, 폭 107cm, 두께 25cm로 1979년 5월 22일 국보로 지정됐다. 정확한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삼국사기의 내용을 토대로, 진흥왕 6~11년(545~550) 경으로 추정된다. 단양 신라 적성비의 경우 진흥왕이 세운 다른 순수비와는 다르게 영토 편입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비록 순수비(왕이 직접 순행하며 민정을 살핀 기념으로 세우는 비)는 아니지만, 순수비의 정신을 담고 있는 척경비(영토 편입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비의 윗부분 일부가 잘려나갔으나 대체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국왕의 교시를 받은 고관 10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사부, 비치부, 무력 등 진흥왕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 주목되며, 새로운 관직 명인 대상등하간지(大象等下干支) 등은 학계의 관심거리이다. 글자 수는 총 430자에서 440자 내외로 보이며, 이 중 완전히 해석한 것이 288자이다. 음각으로 파낸 이 적성비는 예서체와 해서체 중간의 글씨로 서예 연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비의 발견으로 당시 신라의 영토 확장과 신라의 유력 인물, 정복지 포섭 정책, 당시의 관직, 관등, 율령 반포에 대한 중요한 사실 등을 알 수 있어 학술적인 자료로 중요시되고 적성 위에서 남한강이 잘 전망되므로 이곳이 삼국 시대에는 요새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2026-02-09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은 충남 부여군 소재지 북부에 위치한 백제시대 유적이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96.4m)에는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궁녀사, 고란사, 부소산성, 영일루, 백제의 마지막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을 기리는 삼충사, 곡식 창고터였던 군창지, 수혈병영지등 백제의 유적이 매우 많다. 부소산성은 금강의 남안에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쌓은 테뫼식, 포곡식 복합 산성이다. 백제시대에는 사비성, 소부리성으로 부른 것으로 보이나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백제의 수도인 사비 도성의 일환이며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년) 사비 천도 시 혹은 그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백제 멸망 이전과 이후에 계속 개보수되어 현재에 이른다. 부소산성 아래 관북리 725번지 일원에 위치한 관북리유적은 그동안의 발굴 결과 도로 유적, 배수시설 유적, 토기 등이 출토되어 현재 왕궁지로 추정되고 있다.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도 포함되었다. 사비도성 가상체험관도 들어서 유적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며 매년 가을 대백제전이 개최된다. 인근 관광지로는 정림사지 5층석탑, 부여 구아리유적, 부여 쌍북리 요지, 부여향교,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