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2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용길 372
운달산 김룡사는 신라 진평왕 10년(588) 운달조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의 말사이다. 김룡사는 원래 금선대에 위치하고 조선 중기까지 운봉사로 불리었으며, 이후 17세기부터 각종 기록을 통해 김룡사로 불려지게 되었다. 효종과 숙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에 사찰이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으며 영조와 정조시기를 거치면서 사찰의 규모가 정해졌다. 이후 큰 사찰로 자리를 잡았으며, 일제강점기 사찰령 체제하에서는 전국 31본산 중의 하나였다. 김룡사는 학교설립과 교육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2025-09-23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 437-17
기림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이며, 처음에는 임정사라 불리다 원효가 도량을 확장하면서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기림사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랑 500년 이상 된 큰 보리수나무가 있는 지역과 보 박물관, 삼성각, 명부전, 관음전 등이 있는 지역이다.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배흘림기둥의 다포식 단층 맞배지붕의 건물이며 조선 초기 불상의 전형을 갖춘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대적광전과 진남루 사이 서쪽에 오백나한전이 있고, 그 바로 앞에 3층 석탑이 있다. 성보박물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건칠보살 반가상과 비러자나불 복장전적과 목비, 석조 토제지미 등 많은 문화유산 자료들이 있다. 기림사에는 오종수라고 불리는 다섯 가지 맛을 내는 물이 유명하다. 차를 끓여 마시면 맛이 으뜸이라는 감로수와 그냥 마셔도 마음이 편안하다는 화정수, 기골이 장대해진다는 장군수, 눈이 맑아진다는 명안수,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오탁수가 그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장군이 태어날까 두려워 장군수의 물길을 막아버렸고 지금은 네 곳만 물이 솟아 나오고 있다. 기림사에서는 산사체험 프로그램과 템플스테이도 운영하는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율형과 예불 참여와 108배 등 스님과 함께하는 체험형이 있다. 계절별 테마로 구성되어 봄에는 녹차 만들기, 여름에는 용연폭포에서 명상의 길 체험, 가을에는 연차 시음하기 및 산사음악회 관람, 겨울에는 타종식과 동해의 해맞이도 볼 수 있다. 그 밖에 만다라 그리기, 마하사 여름수련회, 어린이 여름불교 학교도 체험해 볼 수 있다.
2026-06-19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 (진현동)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15년에 어머니의 뜻에 따라 국가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며 창건되었다. 경덕왕 10년인 751년에는 재상 김대성이 절을 다시 지어 현재의 규모로 정비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거치며 건물과 문화유산 대부분이 소실되거나 약탈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920년대 전까지는 일부 건물과 탑만 황량하게 남아 있었으나, 지속적인 원형 복구와 보수 작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현재는 국보 7점을 포함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대사찰로 자리 잡고 있다. 불국사에서 약 3㎞ 떨어진 산등성이에는 석굴암이 위치해 있다. 석굴암은 동해를 향해 앉은 여래좌상 본존불이 중심을 이루며 동양의 걸작으로 꼽힌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12월 6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두 유적은 국내외적으로 신라 불교문화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산업로 4214-110 (동천동)
경주시 북쪽 소금강산 중턱에 자리한 백률사는 신라 법흥왕 14년(527)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을 기리기 위한 절이자, 신라의 불교 성지이다. <삼국유사>와 헌덕왕 때 작성된 <향전>에 따르면 이차돈은 법흥왕의 명을 받들어 불교를 공인하고 사찰을 짓기 위해 순교했는데, 참수형을 받고 이차돈의 목을 베니 흰색 피가 솟아 나오고 꽃비가 내리는 등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불교 공인을 반대하던 신하들도 이것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고 하며 이차돈의 아내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차돈의 목이 베려 날아가 떨어진 자리에 자추사를 지었다고 전한다. 백률사는 이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일 것으로 추정된다. 백률사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후에 다시 지었으며, 기단부는 일부 신라시대 양식을 지니고 있다. 과거 대웅전에 모셨던 금동약사여래입상은 불국사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이 세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로 알려져 있다. 금동약사여래입상과 이차돈의 석당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2025-10-23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길 285-30
용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이다. 870년(신라 경문왕 10년) 두운선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러 내려가다 이 사찰을 찾았으나 운무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치 못했는데, 어디선가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하여 ‘용문사’라 불렀다. 고려 명종 때 ‘용문사 창기사’로 개명했으나 조선 세종대왕의 비 소헌왕후의 태실을 봉안하고 성불사 용문사로 다시 고쳤고, 정조 때 문효세자의 태실을 이곳에 쓰고 소백산 용문사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장전, 응진전, 명부전, 진영당, 일주문, 자운루, 성보 박물관이 있으며, 성보박물관에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윤장대를 비롯해 성보문화재 10여 점이 있다. 또한 조선 숙종 때 조성된 목각탱화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윤장대를 돌리면 번뇌가 소멸되고 공덕이 쌓여 소원이 성취된다고 해 예로부터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5-12-12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 명봉사길 62
명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875년(헌강왕 1) 두운이 소백산 자락에 창건하였다. 1662년(현종 3) 화재로 전소된 뒤 여러 승려들이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1668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자 신익 등이 중창의 뜻을 세우고 10여 년 동안 시주를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6·25전쟁 때 전란으로 소실된 것을 1955년 주지 만준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에는 1735년(영조 11)에 세워진 문종대왕태실비(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와 941년(태조 241)에 세운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보물)가 있다. 사찰 뒤 산에는 문종대왕 태실과 세도세자(장조) 태실이 복원되어 있다.
2025-11-03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
팔공산 자연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는 파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로 일대가 울창한 숲, 맑은 계곡이 선경을 이루고 있다. 사적기에 의하면 애장왕 5년(804) 심지왕사가 창건하였고, 선조 38년(1605) 계관이 중창하였으며, 숙종 21년(1695) 현응이 삼창하였다. 파계사는 조선 영조와의 인연이 깊다. 숙종이 대궐 속으로 승려가 들어오는 꿈을 꾸고, 꿈속에 승려를 남대문 밖에서 찾으니 영원선사였고, 그에게 왕자 생산 기도를 부탁하고 얼마 후 숙빈 최씨에게 태기가 있어 왕자가 탄생했으니 바로 훗날의 영조이다. 기뻐한 숙종은 승려에게 현응이라는 호를 내렸다. 당시에 파계사는 유생들의 횡포가 심하던 중 현응은 왕실의 위패를 모시도록 숙종에게 청해 유생들의 횡포를 막아내는 현명함을 보였다고 한다. 지금도 파계사에는 하마비가 존재하며 현응대사의 비석과 부도, 그리고 영조대왕의 도포가 보관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원통전을 중심으로 진동루∙설선당∙적묵당 등 격조 높은 당우 4채가 [ㅁ] 자형을 이루고 있다. 원통전은 그 중심 전각으로 건칠관음보살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영산회상도(보물)와 왕실 원당 관련 고문서 등이 있으며, 법당 앞에 높이 2m의 8각 석등이 있고, 숙종의 하사품인 병풍 2개와 구슬 2개, 절 서쪽에 세워진 현응 등 세 대사의 부도와 비가 있다. 부속 암자로는 현니암, 금당암, 성전암, 칠성암 등이 있다. 이 중 성전암에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현응의 영정과 벽화가 있다. 이름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는 물길을 모은다는 뜻의 파계사는 팔공산자연공원에서도 맑은 계곡을 자랑으로 소문 낼만큼 아름다운 사찰이다.
2025-12-24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 (도학동)
동화사는 유서 깊은 신라 고찰로 팔공산 폭포골, 빈대골, 수숫골이 좌우로 몰려든 동학동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이다. 493년(소지왕 15) 극단이 창건하여 유가사라 하였다. 그 뒤 832년(흥덕왕 7) 왕사 심지가 중창하였는데, 그때가 겨울철임에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들은 대부분 영조 때 중창 시에 세워진 건물로서 대웅전을 비롯하여 연경전, 천태각, 영산전, 봉서루, 심검당, 칠성각, 산신각, 응향각, 원음각, 천안문 등이 있다. 또한 부속암자로는 금당암, 비로암, 내원암, 부도암, 양진암, 염불암 등이 있다. 또한 동화사는 팔공산국립공원의 다양한 탐방로가 시작되는 관문이다. 염불암을 지나 염불봉이나 동봉으로 향하는 코스, 빈대골 계곡을 따라 능선을 오르는 코스, 템플스테이 입구에서 폭포골을 따라 도마재(신령재)나 바른재로 향하는 코스까지, 사찰 곳곳에서 자연으로 향하는 탐방로가 열려 있다. 사계절 내내 산과 계꼭의 풍경을 따라 걷기 좋아 많은 이들이 찾는다.
2025-04-30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송계사길 321
북덕유산 자락의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송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다. 이곳은 원효와 의상이 652년(진덕여왕 6) 영취사를 창건한 뒤 5개의 부속 암자를 세우면서 송계암이라고 이름 지어 창건하였으며, 그 뒤 많은 고승들이 이 절에서 배출되었다. 임진왜란 때 영취사를 비롯하여 5개의 암자가 모두 불탄 뒤 폐허로 있다가 숙종 때 진명이 송계암만을 중건하였다. 6·25 전쟁 때 다시 전소된 것을 1969년 승민스님이 중창하였다. 1995년에 원정이 1969년 중창 때 건립한 영취루가 기울어진 것을 해체하여 다시 짓고 문각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대웅전, 문각(종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아미타여래좌상, 소종, 탱화 3점 등이 있다. 송계사 대웅전에서는 북덕유산 수리덤이 정면으로 볼 수 있으며, 겨울 송계사 설경은 북덕유산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장관을 연출한다.
2026-02-11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의상봉길 1049
고견사는 신라 문무왕 7년에 의상과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고견사 뒤에 우뚝 솟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는데 의상대사가 참선하던 터로 알려져 의상봉이라 한다. 이곳에 올라서면 동쪽으로 가야산, 서쪽으로 덕유산, 남쪽으로 지리산이 보인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장군봉과 별유산, 비계산, 미녀봉, 박유산의 산세가 빼어나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 왕씨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밭 150 결을 주어 대궐의 향을 내려 해마다 2월과 10월 수륙재를 지내게 한 사찰이다. 또, 이 절에 고운 최치원이 머무르기도 했다고 한다. 최치원이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고 의상대사가 도를 닦을 때 날마다 대사와 상좌가 먹을 만큼 쌀이 나왔다는 쌀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