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백양사

백양사

2026-09-09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1239

백양사는 내장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절로, 백제 무왕(632년) 때 창건했다고 전한다. 거대한 바위를 배경으로 좌우에 맑고 찬 계곡물이 흘러내려 경치가 매우 수려하다. 가을 단풍을 비롯하여 일 년 내내 변화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준다. 대웅전, 극락보전, 사천왕문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소요대사부도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갈참나무와 단풍나무가 도열하듯 서 있는 숲 길을 지나 백양사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쌍계루가 눈에 띈다. 앞에는 계곡을 막아 만든 연못, 뒤로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어 연못물에 어른거리는 쌍계루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쌍계루를 지나면 대웅전과 극락보전, 부도탑이 나온다. 백양사는 창건 당시 백암사였다가 고려 때 정토사로 바뀌었다. 조선선조 때 환양조 사가 불경을 읽을 때마다 흰 양이 설법을 들었다 해서 백양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선도량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불교계를 이끌었던 고승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일제 때 2대 교정(종정)을 지낸 환응, 조계종 초대 종정 만암, 태고종 초대 종정 묵담 등 근래에 와서 서옹당 종정 등 고승만도 5명이나 된다. 또한 등산로 쪽으로 올라가면 암자가 많고 약사암과 운문암, 천진암 등은 경관도 뛰어나다. 절 입구에서 20분 거리인 약사암은 전망대 격으로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백양사의 모습이 한눈에 조망된다. 절경 맞은편에는 난대성의 늘 푸른 나무인 비자나무 5,000그루가 군락을 이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차장에서 절로 오르는 0.5㎞ 구간에 우거진 수백 년 된 아름드리 갈참나무 거목들, 3,000여 그루의 고로쇠나무와 비자림은 산림욕 하기에 더없이 좋다.

문수사(고창)

문수사(고창)

2025-11-03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수면 칠성길 135

문수사는 고창과 전남 장성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문수산(621m)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고수면 소재지에서 고수도요지를 지나 위로 올라가면 조산 저수지가 나오고, 왼쪽 골짜기를 타고 6㎞ 정도 가면 문수사가 있다. 의자왕 3년(643)에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자장이 당나라 청량산에서 수행을 하고 돌아오던 도중, 백제 영토인 이곳 문수산을 지나다가 청량산과 비슷하다 느껴 석굴에서 기도를 올렸고, 땅속에서 문수보살입상을 발견하고 이곳에 절을 지었다 전한다. 지방유형문화유산 제51호 문수사 대웅전, 제52호 문수사 문수전, 제154호 문수사 부도, 제207호 목조삼세불상, 제208호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이 있으며 기타 명부전, 한산전 등이 남아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문수사 애기단풍나무숲은 일주문부터 문수사 입구까지 약 80m 구간에 식재되어 있다. 수령 100년에서 400년 된 애기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가을이면 색색으로 물든 단풍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천년고찰 문수사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명소이다.

금산사(김제)

금산사(김제)

2026-09-21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금산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1400여 년의 역사를 이어 오늘날까지 법등을 밝혀온 유서 깊은 명찰이다. 호남평야 가운데 우뚝 솟은 모악산 서쪽 자락에 위치해 있다. 정유재란 때 왜군의 방화로 모든 건물과 산내의 40여 개 암자가 완전히 소실되는 등 수난을 겪었으나 이후 많은 문화재가 조성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출처 : 금산사 홈페이지)

봉서사(완주)

봉서사(완주)

2025-03-1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용진읍 봉서안길 313

봉서사는 용진면 간중리 동쪽에 있는 서방산의 수목이 울창하고 산세가 수려한 기슭에 위치해 있다. 서방산 정상에 서면 김제평야가 한눈에 바라다보이고 맑은 날에는 서해바다가 바라다 보인다. 봉서사를 찾아가려면 전북 향토사단의 유격장을 지나야 한다. 유격장을 지나면 간중제가 위치해 있는데 주변 산과 어우러져 정겨운 한 폭 그림을 연상케 한다. 봉서사는 신라 성덕왕 26년(727년)에 창건되었으며 고려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조선시대 선조 때에는 진묵대사가 중창하고 이곳에 머물면서 중생을 교화하였던 유서 깊은 절이다. 1945년 전까지는 지방 굴지의 대찰이었으나 6.25 때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완전히 소실되어 폐사되었다가 호산스님이 1963년에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건하고 1975년 삼성각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사찰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08호인 진묵대사 부도를 비롯 몇 기의 부도가 있다. 이 절에는 진묵대사와 해인사 대장경에 얽힌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절에서 수도하던 진묵은 자주 해인사를 내왕하면서 대장경을 모두 암송하였다 하며 하루는 제자를 데리고 급히 해인사로 갔는데, 그날밤 대장각 옆에서 불이 나 도저히 끌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진묵대사가 솔잎에 물을 적셔 불길이 번지는 곳에 몇 번 뿌리자 갑자기 폭우가 내려 불길이 잡힘으로써 대장경판의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또한 진묵대사가 지팡이로 바위를 뚫어 발견했다는 약수터가 있는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약수 맛에 끌려 자주 찾는다고 한다. (출처: 완주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한산사(여수)

한산사(여수)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구봉산길 114 (봉산동)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사찰로서 임진왜란 당시 수군과 의승군의 주둔처이기도 한 호국역사의 현장이다. 당시에는 보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고증이 확실치는 않다. 아홉 마리 봉황의 전설이 얽힌 구봉산에 위치한 한산사는 경내의 동쪽 바위 사이로 흐르는 약수가 차고 맛있기로 이름나 있다. 이 절의 종소리는 맑아서 여수 8경으로 꼽혀 왔으며 특히 이 절에서 바라보는 여수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한산사의 한산모종(해 질 녘에 울려 퍼지는 범종소리)은 여수 8경 중 제3경이다. 신도회의 자원봉사 활동도 활발하여, 한산사 가릉빈가 합창단이 불교행사에 참여하여 음성공양을 하고 있다.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어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참배를 하거나 경내를 돌아보며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시내와 여수바다의 경치가 아름답다. 야경을 보기위해 한산사를 방문할 시 정숙을 요한다.

만일사(순창)

만일사(순창)

2025-03-18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구림면 안심길 103-134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회문산 자락에 있는 만일사는 백제 무왕(673년) 때 처음 세워진 사찰로 조선 초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 무학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 그 후 6.25 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54년에 다시 세웠고 1998년에 일주문, 대웅전, 요사채 각 1동씩을 건립하였다. 만일사라는 명칭은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자 만일 동안 이곳에서 기도하였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이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높이 175㎝, 폭 65㎝, 두께 16㎝) 있으며 절 아래로 산안마을과 무직산, 성미산 등 수려한 연봉이 바라보인다.

망해사(김제)

망해사(김제)

2026-08-11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10길 94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자리한 금산사의 말사이다. 망해사는 754년(경덕왕 13) 통장 법사가 창건한 후 성쇠를 거듭하다가 조선 시대 억불 정책으로 폐허가 되었으나, 1609년(광해군 1) 진묵 대사가 중창하였다. 이후 승려 관준(1850~1919)이 다시 중창하고 수도하였으며, 1915년 계산이 중창하였다. 1933년 주지 김정희가 본전을 중수하고 보광명전과 칠성각 등을 신축하였다. 1977년 남파가 요사채와 망해대를 신축하고 보광명전·낙서전·칠성각 등을 복원 중수하였다. 1984년 보광명전과 칠성각을 허물고 대웅전을 새로 지었으며, 수차례 중수와 중건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서해의 섬들과 어우러진 경관이 매우 뛰어나 2024년 6월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약사암(광주)

약사암(광주)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증심사길160번길 89

약사암은 증심사의 부속 암자로 새인봉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도윤(道允)이 847년(문성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당시에는 인왕사(人王寺)라고 했다가, 고려 예종(1105~1122) 때 국사 혜조(慧照)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약사암으로 바꾸었다. 조선시대인 1856년(철종 7) 3월에 성암(性庵)이 약사전을 중수하였고, 1905년 9월에 선주(善周)가 관청의 도움과 시주로 중건했다. 이후 1970년대부터 주지 석담(石潭)이 법당과 요사채 등을 중건·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약사암에 보존되어 있는 유물로 석조여래좌상(보물)과 3층석탑이 있다. 이 두 가지의 유물이 9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추정되어 이 절의 역사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현재 약사암에는 대웅전, 운림당, 운림서원, 강원, 일주문 등이 있으나, 모두 1970년 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의 건물이다. 대웅전에는 독성탱화·칠성탱화·산신탱화·신중탱화 등의 불화가 있는데 독성탱화는 1912년에 그린 것이며 칠성탱화와 산신탱화도 이와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신중탱화는 근래의 것이다.

송광사(완주)

송광사(완주)

2026-09-29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255-16

완주 종남산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통일신라 말이다. 설악산 억성사에서 수행하던 체징 선사가 중국 유학길에 영험한 도량으로 이름난 백련사에 잠시 머물렀는데, 백련사는 종남산 남쪽의 영험한 샘물 옆에 지은 절이라고 전해진다. 체징 선사가 귀국한 뒤 백련사를 송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전소되었으나, 1636년부터 벽암 각성대사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가람으로 크게 중창하였다. 경내는 대웅전을 비롯해 지장전, 약사전, 관음전, 십자각, 금강문, 향로전, 적묵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국내 유일의 십자형 누각인 종루, 소조사천왕상과 함께 2024년 보물로 지정된 금강문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와 불교학당을 운영하며, 새벽예불과 108배, 참선, 스님과의 다담을 통해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화암사(완주)

화암사(완주)

2026-09-21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

화암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자리한 전통 사찰로 행사를 최소화하고 수행 중심의 사찰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창건자와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중창비에 따르면 원효와 의상이 이곳에서 수행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 초 성달생의 시주로 해총이 중창하고 극락전을 완성하면서 대가람의 모습을 갖추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쳐 극락전을 포함한 주요 전각이 재건되었으며 현재는 명부전, 산신각, 우화루, 적묵당,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문화유산으로는 화암사 동종, 중창비, 괘불도가 있으며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