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충장사

충장사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송강로 13

원효사로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배재에 이르면 왼편에 잘 가꾸어진 묘소와 함께 충장사의 우람한 건물이 바라다 보인다. 이 충장사는 무등산이 낳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모신 사우로 1975년에 세워졌다. 경내에는 김덕령의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사우 충장사, 동재와 서재, 은륜비각과 해설비, 유물관, 충용문, 익호문 등이 세워져 있다. 유물관에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김덕령 장군 의복과 장군의 묘에서 출토된 관곽, 친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사당 뒤쪽 언덕에는 김덕령의 묘와 묘비가 있으며 가족묘도 조성되어 있다. 충장사로 향하는 길은 광주 사람들에게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받는 길이다. 봄이면 노란 개나리가 길섶을 수놓고, 여름이면 신록이 우거져 터널을 이루며, 가을이면 빨간 단풍이 숲을 물들이고, 겨울이면 나무마다 눈꽃이 피어 설원에 온 듯 장관을 이룬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길이다.

남원 황산대첩비지

남원 황산대첩비지

2026-04-16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가산화수길 84

남원 황산대첩비지는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적을 무찌른 업적을 기념하여 세운 승전비가 있던 자리이다. 금강 어귀에서 퇴로가 막힌 왜구는 이곳에 주둔하면서 장차 바다로 달아나려 하였다. 고려군은 이성계를 최고 지휘관으로 삼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성계가 먼저 활을 쏘아 아지발도의 투구를 떨어트리고 뒤이어 이두란이 쏜 화살이 그의 머리를 맞혔다. 이에 고려군은 지휘자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왜구를 완전히 섬멸하였다. 선조 때 왕명을 받아 김귀영의 글, 송인의 글씨로 대첩비를 세웠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부수었다. 광복 후 옛 비석을 복구하였다가 1972년 신석호가 한글로 글을 지어 새롭게 세웠다. 왜구의 침탈에 맞서 우리 선조들이 꿋꿋하게 일구어낸 역사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이곳에는 오른쪽에 황산대첩비가 세워져 있고, 오른쪽 뒤편에 파비각이 있다. 파비각 안에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흔적으로 파손된 대첩비가 있다.

남원 만인의총

남원 만인의총

2025-10-30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만인로 3 (향교동)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 관. 군 1만여 의사의 호국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1592) 때 호남을 침범하지 못해 승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왜군은 1597년 11만 대군으로 다시 침략하여 적의 우근은 전주성을, 좌군과 수군 5만 6천은 남원성을 공략하였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해 전라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1천여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 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으로 주민 6천여 명을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은 분투 끝에 장렬하게 모두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에서 돌아온 성민들은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1612년(광해 4년) 충렬사를 건립하였다. 몇 번의 이전을 거쳐 정부의 지원과 전 도민의 정성 어린 헌수로 현재의 충렬사에 50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만인의총에서는 매년 9월 26일에 만인의사에 대한 제향을 올려,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이곳은 문화관광해설사와 관람하며 호국선열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기고, 소중한 추억을 담을 수 있다.

정읍 황토현 전적

정읍 황토현 전적

2026-06-16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황토로 덮인 작은 산으로 1894년 갑오동학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물리친 전승지이다. 1894년 4월 초, 관군이 농민군을 쫓아나서자 농민군들은 이를 유인하여 4월 6일 밤부터 7일 새벽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날로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흥덕, 고창, 무장을 점령하였으며, 경상, 충청지방으로까지 농민혁명의 불길이 번져 갔다. 지금 이곳 황토현 마루턱에는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있고, 이 기념탑 동남쪽 기슭에 황토현 전적지 기념관이 있다. 탑을 등지고 앉아 내려다보이는 길건너 붉은 흙 둔덕과 밭이 강한 인상을 주는 곳이다.

진도 운림산방

진도 운림산방

2026-07-14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서화 예술이 발달한 진도에서도 대표적인 서화 예술가로 꼽히는 이는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로 불리는 소치 허련(小痴 許鍊)이다. 그는 당나라 남송화와 수묵 산수화의 효시인 왕유의 이름을 따 허유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운림산방은 허련이 말년에 서울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거처하며 그림을 그리던 화실의 당호다. 진도읍에서 바로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첨찰산 서쪽, 쌍계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ㄷ’자 기와집인 운림산방과 그 뒤편의 초가로 된 살림채, 새로 지어진 기념관들로 이루어져 있다. 운림산방 앞 오각으로 만들어진 연못에는 흰 수련이 피고 연못 가운데 직경 6m 크기의 원형으로 된 섬에는 배롱나무가 있다. 소치 허련 선생은 1809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를 보였다. 28세부터 해남 대둔사 일지암에서 기거하던 초의 선사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30대 초반 그의 소개로 서울로 가서 추사 김정희에게서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받아 남화의 대가로 성장했다. 왕실의 그림을 그리고 여러 관직을 맡기도 했으나, 김정희가 죽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진도에 내려와 운림산방을 마련하고 그림에 몰두했다. 운림산방은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1982년 허건에 의해 지금과 같이 복원되었다. 화실 안에는 허 씨 집안 3대의 그림이 복제된 상태로 전시되어 있고, 새로 지어진 소치기념관에는 운림산방 3대의 작품과 수석, 도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찰산을 지붕으로 하여 사방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담양 소쇄원

담양 소쇄원

2026-08-14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쇄원길 17

소쇄원은 한국 민간원림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명승 40호로 지정된 곳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이다. 1,400여 평의 공간 안에 건축 및 조경물이 자연과 조화를 절묘하게 이뤄내며 조성되어 있고, 곳곳에 조선시대 선비들의 심상이 묻어나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봉대와 광풍각 그리고 제월당이 있으며,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 있고, 북쪽의 산 사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이루고 흘러내려와 담장 밑을 통과하여 소쇄원의 중심을 관통한다. 소쇄원의 주요 조경 수목은 대나무와 매화, 소나무, 난, 동백 등이 있으며, 초본류는 석창포와 창포, 맥문동, 꽃무릇, 국화 등이 있다. 조경물로는 너럭바위, 흘러내리는 폭포, 걸상모양의 탑암과 책상바위 상암, 홈을 판 고목으로 물을 이어가는 두 개의 연못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애양단, 계곡을 건너지르는 외나무다리 약작, 경사지에 적절히 단을 쌓아 꽃과 나무를 심고 담장으로 내부공간을 아우르고 감싸는 조화로운 곳이다. 이러한 공간의 조성은 조선 중종 때의 선비로서 조광조의 제자인 소쇄공 양산보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정확한 조영 시기는 1530년대에 시작하여 그의 자식과 손자 대에 이르러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불에 타기도 했지만, 후손들에 의하여 다시 복원, 중수되어 현재까지 15대에 걸쳐 후손들이 잘 가꾸어 나가고 있다.

대흥사(해남)

대흥사(해남)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두륜산에 있는 대흥사는 백제 성왕 2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2018년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대흥사는 호국불교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사찰로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총본영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차 안에 부처의 진리와 명상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 생각한 초의선사가 대흥사의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 동안 홀로 수행에 전념하였는데, 이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대흥사에는 국보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을 비롯 서산대사 유물관에는 선조의 하사품인 옥발, 비취옥발과 서산대사의 친필, 교자, 신발 그리고 금과 은으로 쓴 불경 등의 유물이 있다.

능가사

능가사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점암면 팔봉길 21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인 능가사는 호남 4대사찰 중 하나로 규모가 크고 평지에 위치해 있다. 417년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보현사라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뒤 조선 인조 22년(1644)에 벽천 정현대사가 중창하고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벽천은 원래 90세의 나이로 지리산에서 수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절을 지어 중생을 제도하라는 계시를 받고 이곳에 능가사를 신축하였다고 한다. 능가사는 호남 4대사찰 중 하나로 규모가 크고 평지에 위치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한 보물 제1307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당, 종각, 천왕문, 요사채 등이 있다. 능가사는 2018년부터 템플스테이 사찰로 지정되어 남쪽나라 바다 명상 여행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팔영산 자락에 위치해 팔영산을 둘러볼 수 있으며, 능가사를 지나 팔영산 자동차야영장이 인접해 있다.

부안김씨종중고문서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길 47-20

전라북도 부안의 부안 김 씨 종중에 소장되어 온 고문서 6종 80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연산군, 중종 때의 문신 김석필에게 임금의 명을 적어 발급한 교지 및 재산 분배 기록인 분재기를 비롯하여 그 외 자손들에게 발급한 유지(승정원에서 왕의 뜻을 받들어 전달하는 중요한 명령서) 명문 등 중요한 서류를 뽑아 일괄 지정한 것이다.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문서들 가운데 편지글과 제사에 쓰는 제문은 지정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선조 33년(1600) 4월 6일 국왕의 특별 명령에 따라 금산 군수 김홍원에게 상으로 옷감 1벌을 내리는 유지 1점을 비롯하여, 교지 및 교첩, 양반을 포함한 백성들이 관청에 청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하는 진정서인 소지, 분재기, 명문과 공신으로 임명한다는 증명서인 공신록권 등 6종 80여 점이다. 유지와 교지는 인사행정제도 연구에, 소지는 사회상 연구에, 분재기와 명문은 경제, 사회, 가족제도 연구에, 공신록권은 공신도감의 기능 연구와 관련하여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우금산성

2026-02-09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우금산에 있는 고려시대~조선시대의 산성이다. 변산반도의 중심쯤 되는 지점에 자리한 우금산성은 우금산(329m)의 울금 바위를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의 산줄기를 연결하는 포곡식의 석성이다. 일명 울금산성, 주류성이라고도 한다. 우금산성은 660년 백제 의자왕이 부여를 빼앗겨 연합군에 투항하고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백제 광복군이 왕자 [부여풍] 을 받들어 최후 항전을 벌였던 역사적 현장이다. 또, 우금산성 내에 암자가 있는데,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이 암자가 칠성암지로 전해진다. 현재 지상 구조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지표상에 남아 있는 석축과 주춧돌 등을 고려해 볼 때, 대형 암반을 다듬고 그 앞쪽에 조그만 암자를 조성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금산성이 있는 울금바위 정상에서는 드넓은 호남평야와 서해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주변으로 개암사, 변산반도국립공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