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31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곡성읍 교촌길 85
곡성향교는 조선 선조 3년(1570)에 지었다고 전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중종(재위1506~1544) 이전에 세운 것으로도 보인다. 건물 배치는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어 전학후묘의 형태로 되어 있다. 대성전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부리 모양으로 짜맞춘 익공 양식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명륜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에 지붕은 맞배지붕이고, 동재와 서재는 각각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를 갖추고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이고, 동재·서재는 기숙사이다. 이외의 건물로는 내삼문·전사청·교직사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2026-07-28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로 184
필암서원은 도학, 절의, 문장에 모두 탁월한 조선 중기 김인후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남은 유서 깊은 서원이다. 교육과 배향이라는 서원의 기능에 따라 지은 곳으로, 공부하는 공간을 앞에 놓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뒤에 자리하게 한 ‘전학후묘’의 형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또한 보물 및 지정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목판, 고문서 등 조선 시대 서원 운영과 선비 교육에 관한 중요한 기록과 사료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7월, 전국 9개 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2026-06-24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원촌1길 44-12
무성서원은 신라말(886년) 정읍의 태산태수로 부임하여 8년간 선정을 베푼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을 세운 데서 유래하였다. 서원은 1615년 건립하여 태산서원이라 했는데 1696년(숙종 22) 무성서원이라 사액되었다. 무성서원은 예(禮)와 악(樂)으로 백성을 교화한 선비문화의 중심으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는데, 자연경관 속에 입지 한 다른 서원과는 다르게 마을 속에 위치하여 주민들이 민주적으로 서원의 보존과 운영에 참여해 왔다는데 특징을 보이고 있다. 무성서원은 19세기말 정부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아니한 전북도 내 유일한 서원으로 고운 최치원 선생, 「상춘곡」을 지은 불우헌 정극인 선생 등 이 지역에서 성리학을 보급하고 학문을 장려한 7분을 배향하고 있다. 특히, 무성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향약인 고현동향약을 시행하였으며, 을사늑약 체결로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이에 항거하여 1906년 면암 최익현을 맹주로 호남 최초의 의병을 창의 한 역사적 현장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출처 : 정읍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진원면 고산로 68
고산서원은 퇴계와 더불어 조선 성리학의 6대가 중 1인으로 추앙받는 노사 기정진이 고종 15년(1878)에 정사를 지어 담대헌이라 하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후손들이 1924년 중건하였으며, 1927년에 고산서원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노사 기정진은 19세기 전라도 지역뿐만 아니라 멀리 제주까지 전국적인 후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노사선생연원록]이라는 제자록에 의하면 글을 배운 제자가 600여 명에 이르고, 그들의 제자들까지 합쳐 6,000여 명에 이르는 조선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대한단이 형성되었다. 또한, 노사의 제자들은 구한말 의병의 본류가 되기도 하였다. 고산서원은 문화유적 보호차원에서 완전히 개방하지 않고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곡성읍 영운1길 33
곡성읍 영운천변에 위치한 이곳은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왕검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이 사당은 3·1운동 당시 곡성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곡성 보통학교 교사 백당 신태윤 선생이 1909년 부임한 이후 일제 몰래 초가로 단군전을 지었고, 일제하에서도 개천절에 주민들과 이곳에 모여 기념식을 올리고 나라의 독립을 기원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익공은 연꽃과 봉오리가 조각되었고 보머리는 봉황 머리 모양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매년 10월 3일 개천절과 3월 15일 어천절에 단군 성조의 제사를 모시며 일제로부터 독립을 위해 애국동지를 규합하고 단합을 약속하였던 곳으로 경내에는 3·1운동 기념비와 설립자 백당 기념관이 있다. 백당 신태윤 선생은 기미년(1919) 3·1운동 당시 많은 군민 학도들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 경찰에 잡혀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2005년 12월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유산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2026-07-30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로 1
조선시대 고창현의 읍성으로서 장성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고창읍성은 세 번의 전투가 이루어 졌으며, 첫 번째는 정유재란, 두 번째는 동학농민혁명, 세 번째는 6.25사변 때라고 전해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정읍, 흥덕을 연달아 점령한 농민군은 고창으로 이동하였다. 고창을 점령한 농민군은 고창읍성 내의 옥문(獄門)을 열어 죄수를 풀어주고, 읍성 앞에 살며 부정축재를 일삼았던 은대정의 집을 불태웠다. 전봉준은 농민군들에게 엄하게 규율을 지켜 무고한 백성에게 폐단을 끼치지 못하게 하였고, 또 애매하게 잡힌 죄수를 풀어주고 주린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농민군이 고창읍성을 점령하고 동헌을 파괴한 뒤 인부(印符)를 빼앗으려 할 때 고창현감은 도주해 버렸다고 한다.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축성된 고창읍성은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부분적으로 복원된 관아건물은 학습교육의 장소로 많은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 : 고창군청)
2026-05-20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요천로 1447
광한루원은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조선 전기에 조성된 광한루의 정원이다. 남원역 근처의 시내에 춘향과 이도령이 만났다는 광한루가 있고, 그 광한루가 있는 정원을 통칭하여 광한루원이라고 한다. 누원의 북쪽으로는 교룡산이 우뚝 서 있고, 남쪽에는 금괴같이 보배롭다는 금암봉이 있으며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 광한루원은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가에 월궁을 상징하는 광한루와 지상의 낙원인 삼신산이 함께 어울려 있는 아득한 우주관을 표현한 한국 제일의 누원이며, 경회루, 촉석루,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에 속한다. 광한루원 안에는 광한루, 오작교, 완월정, 영주각, 춘향관, 춘향사당, 월매집이 있고, 이외에도 공예품점, 카페 등의 부속시설이 있다. 연지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이 돌다리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춘향사당에는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전설 속 하늘의 옥황상제가 사는 궁전을 지상에 재현해 본 곳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누원이다. 부터 , 등 다양한 드라마의 촬영지이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고전소설 의 배경지이니 광한루원은 오래전부터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이야기의 배경이 된 셈이다. 한국 4대 누각의 하나인 광한루와 사랑의 다리 오작교는 꼭 거닐어 보길 추천한다.
2026-06-16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산로 2951
호남 제일의 정자로 널리 알려진 피향정(披香亭)은 원래 이 정자 앞뒤로 상연지와 하연지라는 연못이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었으나 상연지는 일제강점기 때 메워지고 현재는 하연지(태창제)만 남아 있다. 연못에 연꽃이 피면 향기가 주위에 가득하다 하여 피향정이라 했다. 신라 시대에 최치원 선생이 태산 군수로 재임 중에 이곳에서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정자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의 정자는 조선 시대 중기의 건물로 4면이 모두 개방되어 있고 주위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다.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문화유산이다. 인근 관광지로 태인향교, 태인동헌, 정토사, 고택 문화체험관이 자리 잡고 있어 연계관광으로도 좋다.
2026-03-05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부안 유천리 요지는 굴포만이 있는 바닷가 앞의 넓은 들판에 자리하고 있는 가마터로, 넓은 벌판의 구릉 주위로 수십 개의 가마터가 널려 있다. 토성으로 둘러싸인 안쪽 언덕에 주로 널려 있으며, 각종 고려자기들이 출토되고 있다. 여기에서 발견되는 조각들은 최상급 고려자기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도자기의 형태는 다양하며, 특히 높이 1m 이상의 매병은 크기·무늬·제작 기술이 매우 뛰어나서 고려도자기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또한 효문(孝文), 조청(照淸)이라는 글씨가 있어 고려 도자기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유천리 가마터는 고려시대 11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세계적으로 뛰어난 고려청자를 굽던 곳으로 전남 강진 지방의 청자와 더불어 우리나라 청자의 대표적인 도요지이다. 이 부근에서는 순청자, 상감청자의 파편이 주로 출토되나 백자, 상감백자, 진사백자 등도 약간씩 출토되며, 특히 유천리 도요지 사적비가 있는 부근의 가마터에서 우수한 청자 파편들이 발견되어 고려시대 자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2026-09-14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에 자리한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이다. 지석묘는 돌로 만든 무덤을 뜻하며, 고인돌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에는 원래 13기의 고인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10기가 남아 있다. 큰 덮개돌 아래에 받침돌을 세운 바둑판식 고인돌이 모여 있으며, 자연 암석을 덮개돌로 사용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덮개돌 길이가 약 6.4m에 이르는 고인돌은 8개의 고임돌이 둘레를 따라 받치고 있어 독특하다. 다른 고인돌 중에는 4개의 고임돌로 덮개돌을 받친 것도 있어 구조와 형태를 비교해 볼 수 있다. 거북의 등처럼 생긴 덮개돌과 다양한 크기의 고인돌이 특징이며,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