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진도 용장성

진도 용장성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군내면 용장산성길 92

진도의 용장성은 삼별초가 진도에 설치한 대표적인 항몽 시설이다. 산성은 진도 북쪽 해안의 산 능선에 있으며 북쪽 해안에는 진도의 관문인 벽파진이 있는데 울돌목으로 이어지는 조운로의 길목이기도 하다. 배중손을 지도자로 한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왕온을 새 왕으로 받들고 관부를 구성하고 관리를 임명하여 몽고에게 항복한 고려 조정에 대립, 정권을 세웠다. 1,000여 척의 배에 재물과 인원 등을 싣고 진도 벽파진에 도착, 용장성에 터를 잡은 후 산성을 개축하고 성안의 용장사를 궁궐로 삼고 각종 건물을 지어 왕을 황제로 칭하였다. 2009년~2010년에 진행된 궁궐터 전면 조사를 통해 20여 채 이상의 건물이 치밀하게 배치되었는데, 마치 개경 만월대를 연상시키는 구조여서 계획하에 궁궐이 조성되었다고 보인다. 현재 성의 대부분은 원형이 사라진 상태이며, 성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성내의 용장사지 및 행궁지가 보존되고 있다. 주변에 용장성 홍보관과 고려항몽충혼탑과 배중손을 모시는 정충사가 있어 연계하여 방문할 수 있다.

흥양읍성터 및 고흥 옥하리 홍교

흥양읍성터 및 고흥 옥하리 홍교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

흥양읍성터는 1441년 흥양현이 생긴 이래 1914년에 행정명이 고흥군으로 개칭되기까지 흥양현이 있던 곳으로 고흥 읍내에는 흥양현 시절에 쌓은 읍성의 자취가 남아 있다. 우선 고흥 존심당 역사문화공원 뒤편 비탈진 마을 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윗등성이에 성벽의 자취를 볼 수 있다. 흥양읍성터에는 성문, 성벽, 치성, 우물 등이 남아 있어 고흥군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고흥 옥하리 홍교는 조선 후기에 축조된 무지개 형태의 다리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옥하리를 흐르는 두개의 홍교가 있다. 이 중 위쪽 홍교는 비교적 큰 다리이며, 무지개 모양의 앞면에는 용머리를, 반대쪽에는 용 꼬리를 새겨 놓았다. 아래쪽 홍교는 위쪽 다리보다 규모가 크다. 형태는 위쪽의 것과 비슷하나, 용머리가 다리 아랫면 천장 중앙에 부착된 것이 앞의 홍교와 다르다. 두 다리 모두 조선 후기에 만든 것으로, 규모가 크고 장엄하다. 현재 두 다리의 정상이 지면보다 훨씬 높은데, 이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지형이 바뀐 탓으로 추측한다. 흥양읍성터와 고흥옥하리홍교의 거리는 도보 8분 거리이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

보길도 윤선도 원림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보길면 부황길 57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대한민국의 명승으로 지정된 문화유산으로 조선시대의 문신, 시인, 학자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여생은 보낸 곳이다. 고산 윤선도는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의 소식을 듣고 강화도에 도착하였으나 인조는 이미 남한성에서 적에게 항복한 후였다. 이에 고산은 세상을 버리고 제주도로 가는 길에 보길도의 경치에 취하여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고산은 보길도 내 경관이 수려한 곳의 경처를 명명하고 그곳을 오가며 『어부사시사』 등 주옥같은 한시가 창작되었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들 보여 주는 한국의 3대 전통 정원 중 하나이다. 윤선도는 이곳에 대해 ‘지형이 마치 연꽃 봉오리가 터져 피는 듯해 부용이라 이름했다.’라고 전해진다. 부용동 정원은 고산이 직접 조성한 생활공간이자 놀이공간으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정원에 해당한다. 별서는 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을 말한다. 오늘날 남아 있는 부용동정원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거처하는 살림집인 낙서재 주변과 그 맞은편 산 중턱의 휴식공간인 동천석실 주변, 그리고 부용동 입구에 있는 놀이의 공간이라 할 세연정 주변이다. 이처럼 윤선도는 당쟁으로 시끄러운 세상과 멀리 떨어진 자신의 낙원에서 마음껏 풍류를 누렸다. 여기에서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부의 소박한 생활을 창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고금면 세동84번길 86-31

묘당도는 고금도에 딸린 섬으로 그 거리는 20리 안팎이다.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1598년(선조 31) 2월 17일 충무공 이순신이 수군 8,000여 명을 거느리고 고하도(현 목포시 충무동)로부터 이곳에 옮겨 진을 쳤고, 그해 7월 16일에는 명의 원병으로 진린 장군이 5천 명의 수군을 이끌고 고금도에 도착해 관왕묘를 세우고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으며 연합전선을 펴 왜적의 침략을 막아냈던 유적이다. 특히, 이곳은 해수로의 요새지로서 이충무공이 고금도에 진을 옮긴 뒤부터는 장흥, 고흥 등에 출몰하여 살육과 약탈을 일삼던 왜군이 순천 방면으로 도주해 버림으로 전투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공은 이때 우선 본영을 건설하고 피난민들을 거두는 일 등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공이 고금도에 이르렀을 때는 군의 위세도 장했거니와 섬 안의 민간인도 수만 호에 달해 한산도 시절의 10배나 되었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같은 해 9월 15일 이순신의 조선 수군과 진린의 명나라 수군이 연합하여 순천 수교 (왜교)에 침몰한 왜적을 소탕하고, 다시 10월 9일에는 고금도로 돌아와 전열을 재정비하였다가 11월 9일에는 함대가 노량을 향하여 출진하여 충무공이 11월 19일(양력으로는 12월 16일) 아침, 54 세를 일기로 순국하여 이곳으로 유해를 88일간 봉안하였다가 그 이듬해 1599년(선조 32년) 2월 11일 정식으로 발인, 고향인 충남 아산의 묘역으로 옮겼다. 아직도 이 터에서는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명나라 수장은 장군의 전사를 애석히 여겨 이곳에 서혈하고 귀국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관왕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충무사로 명칭을 변경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진도 남도진성

진도 남도진성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임회면 남도길 8-8

진도는 땅이 기름지고 농사가 번창해서 옥주라고도 부른다. ‘한 해 농사지어 삼 년을 먹는다’라는 말이 아직까지 내려올 정도로 물산과 인심이 넉넉한 고장이다. 진도는 예향이면서 워낙 외진 곳이기에 유배지로도 활용되었고, 군사적 요충지라서 군사 관련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남도진성은 백제 시대 매구리현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여겨지는데, 고려 원종 때 삼별초군이 진도로 남하한 몽골군과의 항쟁을 위한 근거지로 삼았던 성이며, 그 후 1438년 세종 20년에 또다시 성을 보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도진성은 높이 4~6m, 폭은 2.5∼3m가량 되는 성으로 둘레가 610m이다. 둥그런 성벽과 동문, 서문, 남문이 거의 그대로 있으며, 서문 양옆에 밖으로 튀어나온 치가 남아있다. 남도진성 남문 앞으로 흘러가는 가느다란 개울 위에는 쌍운교와 단운교 두 개의 운교(무지개다리)가 놓여있다. 두 개 모두 편마암질의 판석을 겹쳐 세워 만든 것으로 규모는 작지만, 전국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양식이다.

다산초당

다산초당

2026-08-24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 68-35

다산초당은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기 머물며 학문 활동을 이어간 대표적인 유적지다. 그는 1801년 신유사옥 이후 유배되어 여러 곳을 거쳐 1808년부터 이곳에 정착했으며, 해배될 때까지 10여 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고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다. 이 시기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조선 실학을 대표하는 방대한 저술을 완성하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장소로 평가된다. 다산초당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학문적 성과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정약용이 실용적이고 현실 중심적인 학문 체계를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는 동암과 서암, 제자들이 머물던 공간이 복원되어 있으며, 정약용이 직접 글자를 새겼다고 전해지는 ‘정석(丁石)’, 차를 끓이던 약천, 다조, 연지석가산, 천일각 등 다양한 유적들이 함께 보존되어 있어 그의 생활과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순천향교

순천향교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향교길 60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순천향교는 태종7년(1407)에 창건되었고 순천이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1550년에 순천성 동쪽 3㎞ 지점에 옮겨 세웠다. 그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광해군 2년(1610)에 순천성 서쪽 구지 북편으로, 정조 4년(1780)에 홍내동으로 이전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순조 1년(1801)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이처럼 여러 차례 이전한 원인은 옥천의 범람과 산사태로 인한 수해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요즘은 강우량도 많지 않고 제방도 잘 정비되어 있지만, 당시 순천은 수해가 심하고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불리한 여건에서도 순천향교는 남원향교와 함께 전라좌도 지역에서 최대 규모의 향교로 발전하였으며, 전통적으로 강한 유림세력의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수호실 등으로 되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 10철, 송조6현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5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으로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집터 뒤로는 덕음산을 두고, 앞에는 벼루봉과 그 오른쪽에 필봉이 자리 잡고 있는 명당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윤선도의 14대 종손이 살고 있다. 녹우당 고택을 중심으로 고산 사당, 어초은 사당, 어초은 묘역 등이 들어서 있고, 조선 중기 양반 상류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인데, 앞면에 사랑채가 있고 서남쪽 담 모퉁이에는 조그마한 연못인 백련지가 있다. 사랑채는 효종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경기도 수원에 있던 집을 현종 9년(1668)에 이곳에 옮긴 것이다. 사랑채 뒤 동쪽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ㄷ] 자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당은 안채 뒤 동쪽 담장 안에 한 채가 있고 담장 밖에 고산 사당과 어초은 사당 등이 있다. 이곳에는 국보인 윤두서 자화상과 보물 산중신곡집, 어부사시사집 등의 지정문화유산과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박물관이 있다.

내산서원

내산서원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불갑면 강항로 101

조선 중기 문신인 강항(1567∼1618)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강항은 공조좌랑과 형조좌랑에 있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활동하다가 왜적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일본에 있으면서 그 나라의 역사, 지리 등을 알아내어 고국으로 보내기도 하면서 일본에는 성리학을 전하였다. 선조 33년(1600) 귀국한 후 벼슬을 사양하고 독서와 후진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이 서원은 인조 13년(1635)에 나라에서 ‘용계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고 숙종 28년(1702)에 고쳐 세웠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고쳐 지었는데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쪽에 교육 공간을 마련하였고 뒤쪽에 제사 공간을 마련한 전학 후묘의 배치이다. 교육 공간인 강당은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뒤에 있는 내삼문을 지나면 강항의 위패를 모신 작은 규모의 사당이 있다. 왼쪽 산기슭에는 강항의 묘소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강진 고려청자 요지

2026-02-09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1963년 국가 사적 제68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는 강진 고려청자 요지는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5백여 년간 집단적으로 토기나 청자를 생산했던 곳으로 9개 마을에 180여 개소의 가마터가 분포되어 있다. 고려 시대 집단적으로 청자를 생산했던 곳으로 이곳 강진과 부안 등을 들 수 있으나, 전국적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400여 기의 옛 가마터 중 대부분이 이곳 강진에 분포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사당리는 제작 기술이 최절정을 이룬 시기에 청자를 생산하였던 지역으로, 우리나라의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청자의 80%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되었을 정도로 그 기법의 천재성과 예술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왔으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도 보관되어 있다. 또한, 강진은 다른 지방에 비해 태토, 연료, 해운, 기후 등 여건이 적합하여 우리나라 청자 문화를 하였다. 강진의 '청자촌' 일대에는 고려청자박물관,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 한국민화뮤지엄 등이 자리를 잡고 있어 다양한 시청각 체험이 가능하고, 인접하여 청자촌 오토캠핑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