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사직길 49
정신과 신체를 동시에 건강하게 해주는, 관덕정의 각궁 궁술은 무사뿐만이 아니라 선비들도 반드시 익혀야 할 필수 요건이었다. 이러한 활이 요즘에는 생존이나 방비 기능은 완전히 상실하여 스포츠와 취미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도 스포츠와 취미로서 활의 명맥을 이어주는 곳이 있는데, 사직공원에 있는 활터 관덕정이 그것이다. 관덕정의 사범이자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활을 만들고 있는 권태은 씨는 호라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경북 예천이 고향으로 3대째 활을 만들고 있는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자리를 잡은 것은 23년 전이다. 경상도에서 활을 만들면 팔러 나가는 곳이 대부분 전라도이므로 아예 옮겨와 활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권 씨의 이야기다. 옛날에는 활의 재료와 쓰임새에 따라 무척 다양했지만 요즘에는 각궁만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해 주고 있다. 전통이 실려있는 각궁이란 후궁·장궁(長弓)이라고도 하는데 각궁의 모양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가 있다. 크게 2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전쟁이나 사냥에 쓰인 것은 궁간상(弓幹桑)·뿔·힘줄·아교·실·칠 등 6가지로 만들고, 운동이나 오락으로 쓰인 것은 궁간상·참나무·대·벚나무·뿔·힘줄·아교 등 7가지로 만들었다. 강(强)·중(中)·연(軟)의 구별이 있어서, 남녀 누구나 자신의 힘에 맞는 것을 쓸 수 있었다.
2025-09-17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 1
북덕유산과 남덕유산 사이의 골짜기이다. 웅장하고 수려한 계곡으로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곳이며 경관이 수려한 유흥지로 고산식물의 채집 연구에도 빼놓을 수 없는 명승지이다. 주변에는 축탑 연대는 확실치 안으나 심상사라는 절에 세워졌던 5층 석탑으로 현재는 4층만 남아 있는 지방유형 문화재 양악탑과 의병대장 문태서, 박춘실 전적비, 정인승 선생 유허비가 있다. 토옥동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온 맑은 물에서 양식한 송어회를 맛보며 내려다보는 계곡의 비경은 과연 대자연의 선물이라 아니할 수 없이 아름답다.
2026-09-10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수읍 덕산리 772
군립공원 장안산의 제일 계곡인 덕산은 울창한 원시림과 맑은 물, 기암괴석이 조화되어 절경을 이룬다. 울창한 원시림과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맑은물이 용이 살았다는 2개의 용소를 비롯한 크고 작은 10여 군데의 소(沼), 용바위, 신선바위, 정승바위 등 20여개의 기암괴석, 은골, 절골, 감골 등의 작은 골짜기와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출처 : 장수군청)
2025-03-11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 438-3
지지계곡은 장수의 장안산과 백운산에서 흘러내린 계류가 만나 만들어진 계곡이다. 번암면 지지리와 장계면 대곡리 상단이 서로 면계를 이루며 영취산에서 한 맥은 경남 함양군 백전면을 거쳐 지리산으로 가고 정맥은 장안산으로 이어진 협곡에서 시작하여 지지리, 동화리, 남원, 구례, 곡성을 지나 삼백리 하동포구에 이르는 섬진강의 최상류이다. 장안산과 백운산 사이에 위치한 10㎞의 계곡으로 울창한 수림과 청류수가 조화를 이뤄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특히 만추의 계곡은 온통 붉어지니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출처 : 장수군 문화관광)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서서평길 24
조선 후기의 효자 정엄의 석조로 된 정려비와 정려각이다. 정엄정려비는 2단의 받침을 둔 좌대 위에 비몸을 세웠다. 비머리는 종모양으로 변형 운문을 조식하였고, 비몸과 같은 돌이다. 사방에 석조 기둥으로 정려각을 세웠다. 정려각 내에는 비와 함께 충견과 관련한 설화가 전하고 정려각 곁에 석구상이 있다. 효자 정엄은 155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냈다. 모친 섬기기에 효성을 다하였고 병환 중이실 때에는 밤에도 옷을 벗지 않고 모친을 돌보았으며, 상을 당해서는 장례 절차를 성대히 하였으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니, 그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1611년 국가에서 정려를 명하였다. 이후 정려각이 퇴락되어 1975년에 석조로 재건하였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광주공원 선정비군은 광주 여러 곳에 있는 조선시대 선정비나 사적비를 광주공원에 모아 놓은 장소이다. 주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수령이었던 광주목사, 군수의 비가 있으며, 관찰사, 도지사들의 비도 있다. 그 외 유학자 안규용, 어사 조헌과 여규익, 소수의 찰방 선정비가 있다. 광주공원 선정비군의 비석은 본래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역 곳곳에 흩어져 훼손된 비석을 1957년 광주공원 입구에 조성하였다가, 1965년 지금의 위치인 광주공원으로 옮겨져 총 27기의 비석이 모여 있었으나 광주목사 신석유의 선정비는 2011년 복룡마을로 옮겨져 지금은 26기가 남아 있다. 26기의 비석 중 초대, 4대 전라남도 관찰사 및 전라남도 재판소 판사 윤웅렬(1840~1911), 5대 전라도 관찰사 겸 전라남도 재판소 판사 이근호(1861~1923), 전라남도 관찰부 광주군수 홍난유(1856~1913)는 일제 국권침탈 협력자로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들이다. 2019년 8월 8일 광주광역시에서는 3·1 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맞이하여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일제 국권침탈 협력자 홍난유’의 죄상을 밝힌 단죄문을 세우고 비석을 뽑아 눕혀 놓았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제중로 56 (양림동)
이곳의 선교기념비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서 최초로 진행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의 예배를 기념하여 세워진 비석이다. 시립사직도서관 인근의 도로변이나 비가 세워진 장소에 개신교의 예배 장소로 쓰인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비에는 ‘선교기념비’ 다섯 글자만 새겨져 있으나, 받침돌에 박힌 별도의 돌에 ‘이곳은 하나님의 보내심 받아 1904년 12월 2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 목사가 광주에서는 처음 예배드린 곳으로 그 거룩한 뜻을 길이 기리어 여기 돌비 하나 세우니라. 1982년 12월 6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남노회 삼가 세움’이라는 글귀가 한글과 영문으로 새겨져 있다. 선교사 배유지가 진행한 최초의 예배는 훗날 제중원 선교사들의 임시사택 자리에서 진행되었다고 하며, 1982년 당시에는 선교기념비가 세워진 장소가 그 위치인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후 관련 문헌 등을 통해 지금의 광주기독병원 내에서 제중원 터의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어 이를 기리는 기념비가 새로 건립되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백서로 13 (양림동)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일제강점기 시절 광주학생운동을 시작으로 다양한 독립운동이 펼쳐진 고장이다. 이러한 고장에서 3·1 만세운동이 벌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러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역의 3·1 만세운동을 기념하고 당시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비이다. 넓이 4㎡ 길이 7m로 3·1 운동 때 여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있는 형상이다. 1995년 5월 10일에 건립한 이 기념비는 수피아여고 후문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앞면에는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은 1919년 3월 10일 광주 3·1 만세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에 옥고를 치른 수피아여고 학생들의 이름을 새겨 길이 기념하고자 했다. 기념비에는 박순애, 이태옥, 김양순, 윤혈녀, 김덕순, 조옥희, 이금봉, 하영자, 강화선, 이라혈, 최수향, 김만순, 홍순해 등 23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으며, 옆면은 추모시가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천추에 이름 석자 누구나 남기는가, 기미년 3·1 운동 선두에 서서 구국의 일념으로 충성을 맹세하고 태극기 앞에 두고서 독립만세를 외쳤네. 일제의 총칼 앞에 나라가 침탈 당하자 자유 없는 속박에서 사느니보다 사슬을 끊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네. 모진 고문을 당하여도 이겨낸 고결한 애국 얼이 역사의 별이 되어 무궁토록 빛나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양촌길 21
이장우가옥은 500여 평의 대지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 문간채로 구성된 근대 한옥이다. 상류층 팔작 기와지붕 가옥으로 광주 지역의 부호였던 정낙교의 아들 정병호가 1899년 안채와 1935년 문간채를 건축하였고, 동신대학교와 동신중·고등학교 등을 설립한 동강 이장우 박사가 1959년 매입 후,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까지 완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해당 건축물의 안채 상량문에 ‘광무 삼 년 을해 이월 십일 축시(光武三年乙亥二月十日丑時)’로 기록된 점을 보아 근대화 시기인 1899년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120.12㎡(약 36평) 규모이며, 툇마루, 작은방, 대청, 큰방, 부엌, ‘ㄱ’자형으로 꺾인 작은방으로 구성된 독특한 구조이다. 남부지역 가옥들의 평면 형태가 ‘ㅡ’자형인 것과 달리 ‘ㄱ’자형인 점과, 부녀자의 활동을 편리하게 하고 가족의 공간을 확보한 근대 한옥의 특징을 갖추었다는 점을 인정받아, 안채가 1989년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곳간채는 한때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2009년 복원되었다. 마당에는 일본식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2009년 광주 디자인비엔날레의 특별 전시 장소로 활용하면서 한국식 정원으로 재조성하였다. 이장우가옥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근대 초기 전통 상류 가옥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영화 <위험한 상견례>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서 전라도 출신인 현준(송새벽 분)의 본가로 등장한 곳이다. 원형이 보존된 한옥과 한국식 정원이 어우러져 근대 가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2024-12-04
광주광역시 남구 양촌길 29-4
최승효가옥은 양림산 동남쪽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가옥이다. 1920년대 사동 최부자인 최명구의 큰아들 최상현이 건축하였다. 건물은 동향으로 지었으며, 주요 건축 목재는 압록강을 통해 운반된 금강송이며 마루는 옷칠을 하였다.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골기와는 강진 옹기로 주황색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가옥은 훗날 최상현의 사업 실패로 매각되었는데 최승효가 매입하였다. 1993년 최승효가 죽은 이후에는 아들인 최인준에 의하여 관리되고 있다. 최인준은 현대미술가이자 비디오아트 백남준의 제자이다. 다양한 수목이 울창하고 석간수와 집의 후원에서 바라보는 무등산 조망이 특별하다. 안채인 자이당은 정면 여덟 칸, 측면 네 칸의 매우 큰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구조를 살펴보면 일자형 평면의 팔작집이면서도 우측의 경사진 부지를 자연 그대로 이용하여 1퇴 공간의 반지하층을 구성하여 율동감을 주었다. 좌측으로도 1퇴를 개방공간으로 주어 비대칭의 평면과 입면을 형성하여 단조롭지 않게 하였다. 서향인 뒤쪽은 너비 60m의 마루를 두르고 미닫이 창문을 만들어 서쪽의 빛을 일단 차단시키고 있으며, 미닫이 창문 때문에 방이 어두워지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벽면 윗부분에 띠판창을 두었다. 연등천장인 대청을 제외하고는 다락을 두었는데 이곳에 독립운동가 등을 피신시켰다고 한다. 다락 외부벽에는 완공을 두어 다락안의 채광을 돕고 있다. 기단은 우측의 반 지하 부분을 제외하고는 1cm 정도 높인 뒤 2단 원형 주초석을 써서 모양을 살렸다. 최승효가옥은 행사가 있을 때에만 개방되어 탐방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