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청주 성공회 성당

청주 성공회 성당

2026-03-09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교동로47번길 33 (수동)

청주에 성공회가 들어온 것은 1922년 영국인 선교사 유신덕(G. E. Hewlett) 신부가 대성동에서 가정 예배를 가짐으로써 시작되었고 현재의 성당은 세실 쿠퍼 (Cecil Cooper) 주교에 의하여 1935년에 32칸 규모로 건축되었다. 이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대들보와 종보 위에 사다리꼴의 대공이 종도리를 받치는 목조 한옥으로 팔작지붕에 한식 기와를 얹었다. 내부는 중앙에 2열로 고주를 세우고 고주 양쪽에 퇴보를 걸어 측랑을 두어 삼랑식의 성당내부를 구성하고 있다. 창문은 상부를 아치형으로 꾸몄으며 출입문의 상부는 네모의 교살창으로 되었다. 벽체는 외벽을 벽돌과 콘크리트로 내벽은 석회로 마감하였다. 초기 성공회 신부들의 토착화 의지를 잘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건물은 한옥의 구조를 갖추면서 서구적인 형태로 지어진 성당건축으로 서양건축과 한국건축이 융화되어 나타난 절충형식으로 서양건축의 수용과 전통건축의 근대적 변화를 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청주 신전동 고가

청주 신전동 고가

2026-03-11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로175번길 169

이 집은 1926년에 지은 것으로 안채의 종도리 장여에 상량문이 적혀 있다. 일자형의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ㄷ자 형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집의 형태를 보면 안채는 3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둥근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고, 기둥 위에 큰 부재로 된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종보를 올렸다. 종보 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우고 종도리와 뜬창방을 결구하였는데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수법이다. 건물이 세워진 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안채・사랑채・행랑채가 고루 갖추어져 있는 전통 주거 건축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현재는 소유자가 거주하면서 관리를 하고 있다. (출처 : 청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청주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

청주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

2025-09-02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사로 115

청주 중앙공원은 청주시 한가운데에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그 공간 안에 병마절도사 영문이 있다. 병마절도사란 조선시대에 각 지방에 두어 병마를 지휘하던 종 2품의 무관 벼슬이다. 병마절도사 영문 건물은 청주읍성 안에 있었던 충청도 병마절도사 영(營)의 출입문이다. 영문 앞에는 수령 1천 년가량의 은행나무가 서 있다.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은 당초 충남 해미현에 있었다가 효종 2년(1651)에 이곳으로 옮겼다. 병마절도사는 충청도 관찰사가 겸직하고 따로 전임의 종 2품 절도사를 두었는데 이곳에 전임의 절도사가 있고 충청도의 육군인 기병/보병을 총괄하였다. 건물의 양식은 조선시대 후기 병영이나 수영의 출입문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네모진 높은 주춧돌 위에 세운 2층의 누문으로 아래층의 중앙에 문을 달아 출입하고 위층은 우물마루로 하고 계자난간을 돌렸다. 이 건물은 1988년까지 청녕각으로 오인되어 서원현감 이병정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 병마절도사의 형태 * 병마절도사의 건물은 195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집이다. 공포형식은 이익공이며, 가구는 5량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구조는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사다리꼴의 방형 고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누하부에 문비시설의 흔적은 보이지 않으나, 누하부 중간에 외부 원기둥과 달리 네모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주초석도 낮게 구성한 상태로 보아 본래 이 부위에 대문을 달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남측 내부에 루마루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누대는 우물마루로 되어있으며, 사면에는 계자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서쪽면의 양측 귀기둥에는 “節制州郡兵營”, “鎭南千丈銅柱”라고 새긴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도명산

도명산

2026-02-03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119

도명산은 괴산군에 있는 청천면 화양리에 있으며,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해있는 천혜의 계곡 화양동을 안고 있는 명산이다. 낙영산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산줄기가 화양천에 그 맥을 가라앉히기 전 바위로 불끈 일으켜 세운 산으로 이름처럼 삼체불 부근에서 도를 닦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지성을 드리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정상까지는 10분 정도 걸리며, 통나무 계단과 철사다리 등 안전시설이 잘 되어 있어 쉽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정상은 크고 작은 바위 다섯 개가 하나를 이뤄 정상을 형성하고 있다. 동으로는 백악산에서 뻗은 줄기, 서로는 그 넘어 금단산, 남으로는 낙영산 넘어 톱날같이 늘어선 속리산 연봉들, 북으로는 화양천 너머 군자산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당포성지

당포성지

2025-11-13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으로,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많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아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 전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당포성이 점령당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는데, 이것이 유명한 당포승첩이다. 당포성은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국경·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남·북쪽으로 정문 터를 두고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시켰다. 지금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 최고 높이 2.7m, 폭 4.5m이며 동·서·북쪽에는 망을 보기 위해 높은 곳에 지은 망루 터가 남아 있고, 성문 터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밖으로 쌓은 작은 옹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청담근린공원

청담근린공원

2025-03-27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청담근린공원은 지극히 도시적인 청담동에 위치한 작고 아담한 공원이다. 대부분의 근린공원이 평지에 조성된 것과 달리 야산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산책길과 쉼터 등 인공 설치물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조성되었다. 낮은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간단한 운동기구가 비치된 놀이터가 있는데 아침이면 운동하는 사람들로 제법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에는 체육시설, 배드민턴장, 농구장, 산책로, 정자, 실개천, 약수터 등이 있으며, 공원 지역에 청소년수련관과 청담지구대도 있다. 청담근린공원은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로 도시에서는 드물게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가배량진성

가배량진성

2025-09-04

경상남도 거제시 동부면 가배리

거제 가배량진성은 성종 21년(1490)에 쌓은 성으로서 조선시대 전기 서부 경남 해안을 방어하였던 경상우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였으며, 거제 수군 7진 중의 하나이다. 이 지역은 한산도를 중앙에 두고 통영과 거제로 갈라지는 두 갈래 바닷길 중 거제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세종 7년(1425)부터 선조 24년(1601)까지 경상우수영 및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이용되어 역사적인 의미가 큰 곳이다. 선조 1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후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을 구축하고 이곳에는 기존보다 큰 규모로 연장 개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이곳 거제의 경상우수영성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겼다가, 선조 24년(1601) 다시 거제에서 고성으로 옮겼으며, 3년 뒤 현재의 통영으로 옮겨졌다. 이때 고성에 있던 ‘가배량진’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부터 ‘가배량진성’이라 불렀으며, 고종 31년(1894) 갑오개혁의 과정에서 진이 없어질 때까지 해안 방어의 요충지로 역할을 하였다. 성의 바깥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둑을 쌓아 만들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794m, 높이는 4m이며, 현재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146m이다. 성을 둘러싼 물길인 해자의 흔적과 남쪽에는 조망할 수 있는 망대 터가 확인되었다.

고현성

고현성

2025-09-05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

거제 고현성은 축조당시 사등성의 인구가 늘어나자 문종 1년(1451)부터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단종 1년(1453) 완공한 읍성이며, 성의 둘레는 921m, 높이 4m이며, 동·서·남쪽 세 방향에 성문을 설치하였다. 성문 앞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만들어 적으로부터 성문을 완전히 보호하였으며, 성을 둘러싼 물길인 해자를 설치하여 방어를 강화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읍성의 형태이다. 고현성은 임진왜란으로 함락되어 현종 4년(1663) 거제면으로 읍치를 옮길 때까지 210년간 읍성으로 사용되었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성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고현지역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성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지금은 600m 정도의 성벽만 남아있다.

옥산성지

옥산성지

2025-09-05

경상남도 거제시 삼동동

거제 옥산성지는 거제 계룡산 자락의 수정봉(해발 143m) 정상 부분을 타원형으로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동쪽은 폭이 넓고 서쪽은 폭이 좁은 표주박 형태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수정봉성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서쪽 성문 입구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옥산금성이라는 문구를 따라 옥산성이라 부른다. 옥산성이 자리한 거제면 일대는 현종 4년(1663)에 거제의 읍치를 고현 지역에서 이곳 거제면으로 옮겨 조선시대 말기까지 거제현 관아가 위치한 곳이었다. 거제 옥산성이 만들어진 시기는 성 안에 설치되어 있는 축성비의 내용에 따라 고종 10년(1873)에 거제 백성들이 힘을 모아 축조한 것으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산성 중 가장 늦게 축조된 산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2017년 성내 집수지 및 2020년 건물지 발굴 당시 7세기의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옥산성의 최초 축조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인 7세기 이전임이 확인되었다. 성을 쌓기 위한 돌은 가까운 계룡산 자락과 인근 야산에서 구해온 것으로 크지 않은 막돌을 사용하였고, 현재 성곽은 원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다. 문지는 서문지와 동문지 2개가 있는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성문 입구를 사각형 이중 성곽의 내옹성으로 만들어 성문을 보호하고 돌계단을 두어 성안으로 출입하게 하였다. 성 안에는 다수의 건물지와 집수지, 투석용 몽돌 저장시설 등이 남아있다.

거제향교

2026-02-09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기성로7길 10

거제향교의 건물배치는 교육 공간을 앞쪽에, 제례 공간을 뒤쪽에 두는 향교 건물배치의 일반적 형태인 전학후묘 형식이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대성전만으로는 경남에서 사천 향교와 함께 가장 건물이 큰 편이다. 거제향교는 평지에 세워져 대성전의 지붕을 다른 건물에 비해 높게 설치하였으며, 훼손 방지와 제례 영역의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해 대성전 뒤편에 인공 숲을 만들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