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4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때 무염국사(801 ~ 888)가 산 이름을 따라 만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이후 쇠락했다가 고려 희종 7년 원묘국사 요세스님이 옛 터에 중창하고 백련결사로 크게 이름을 날려 백련사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를 왔을 때 아암 혜장선사와 종교, 나이를 뛰어넘은 소통과 교류를 했던 공간으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이 있는 만덕산은 야생차가 많아 예부터 다산(茶山)이라 불렸으며, 정약용이 이곳에 유배와 지냈다는 의미로 '다산'이라는 호를 지어 대표적으로 사용하였다. 11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는 꽃들은 3월 말경에 만개하여, 4월에는 땅 위에 떨어져 다시 한번 붉게 숲을 물들인다. 백련사에서는 휴식형, 단체 체험형, 다도체험 등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절 주변으로 다산초당과 다산박물관이 있다.
2025-07-30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청대로 207
속초시 조양동에 있는 산으로 속초 8경 중 제3경으로 지정된 곳이다. 해발 230.8m이고 주변에 푸른 소나무가 많아 청대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속초 소야 8경에는 우뚝 솟은 산이 마치 그림을 그려 놓은 병풍을 둘러친 것과 같다 하여 청대화병이라고 표현했다. 청대산 정상까지 30분이면 산에 오를 수 있으며 정상에서는 속초 시가지와 동해 일출 그리고 손에 잡힐듯한 울산바위, 달마봉 등 병풍처럼 전개되는 설악을 함께 조망할 수 있다.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는 운동시설과 쉼터가 위치하고 있어 운동과 휴식을 취하며 산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서 500m 거리의 쉼터에는 사진 찍기 좋은 경관 명소라 하여 속초시와 동해바다를 가장 좋은 각도로 볼 수 있도록 전망대도 설치하였다.
2025-11-26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이중섭로 29
이중섭 거주지는 이중섭이 서귀포로 피난을 와서 정착한 곳이다. 천재 화가 이중섭과 그의 작품세계를 기리기 위해 그가 잠시 살다 간 서귀포 정방동 거주지를 당시 모습으로 복원, 정비하고 정방동 매일시장 입구부터 솔동산까지 360m를 이중섭 거리로 지정하여 그의 서귀포 체류 시절을 기념하고 있다. 1995년 11월 이중섭 거주지 기념 표석이 세워졌고, 이듬해 2월 말 그가 자주 거닐곤 했던 길가는 이중섭 거리로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7년 4월 그가 기거했던 집과 부속 건물을 복원, 정리하여 이중섭 거주지와 그의 호 '대향'을 따라서 대향 전시실로 꾸며 놓고 소개하게 되었다. 이로써 제주 서귀포시의 이중섭 거리는 한국 최초로 화가의 이름이 붙여진 거리가 되었으며, 더불어 매년 10월 말 그의 사망 주기에 맞추어 "이중섭 예술제"를 이곳에서 거행해 그의 예술혼을 기리는 행사를 하고 있다. 이중섭과 그의 가족 4명이 기거했던 방은 1.3평 정도의 아주 협소한 공간으로 명성에 비하여 얼마나 그의 인생이 초라했고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전시실은 8평 남짓한 공간에 그의 서귀포 생활이 담긴 작품을 중심으로 서귀포의 추억물고기 등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담배 은박지에 그린 은지화 작품으로 6·25전쟁 후 생활고로 인한 그림재료의 열악함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곳은 이중섭 가족의 추억이 담긴 장소이자 이중섭 화백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2025-03-17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길 27
경북 영양은 문향의 고장이다. 일월면은 시인이자 국문학자였던 조지훈의 고향이고, 영양읍 감천리에는 시인 오일도, 석보면에는 소설가 이문열의 생가가 있다. * 주실마을(조지훈 생가) 먼저 일월면 주곡리 주실 마을에 가면 시인이자 국문학자였던 조지훈의 생가를 볼 수 있다. 마을 입구에는 그의 문하생들이 세운 시비가 있고, 비에는 ‘빛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어 눈길을 잡는다. 조지훈 선생이 태어난 호은종택이라는 이 집은 조선 중기인 인조 때에 지은 것으로 한국전쟁 때 일부 소실되었던 것을 1963년 복원하였다. 언뜻 보기에도 고고한 선비정신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이 호은종택은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생가에는 조지훈 선생이 태어난 태실이 그대로 남아있고 인근에는 어렸을 적 수학했던 월록서당도 그대로 있다. 조지훈은 20세에 문단에 데뷔했으며, 해방 후 김동리 등과 함께 청년 문학가 협회를 창립, 문학의 순수성과 민족문화운동에 힘썼다.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의 한 사람이었으며 승무, 풀잎 단장, 역사 앞에서, 봉황수 등 2백50여 편의 시를 창작했다. * 감천마을(오일도 생가) 주실 마을에서 나와 영양읍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감천마을이 나오고 이곳에 시인 오일도의 생가가 있다. 시인 오일도는 24세 때 등단하여 1935년 사재를 털어가며 순수 시문학지 시원을 창간한 인물이다. 감천마을 중앙에 터를 잡은 그의 생가는 44칸짜리 건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오일도 생가 앞의 하천 절벽에는 천연기념물인 측백수림이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어 좋은 경관을 이룬다. 오일도 시비는 마을과 조금 떨어진 도로변 소공원에 세워져 있다. 저녁놀이라는 시가 시비에 새겨져 있고 명시를 감상하며 다시금 여행길을 떠나게 된다. * 두들마을(이문열 고향) 청송군 진보면과 이웃한 석보면 원리리로 가면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인 두들마을이다. 석계고택, 석천서당, 장부인 안동장씨 유적비 등이 생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어, 이문열 선생이 왜 문학에 심취하고 또 많은 대작들을 쓸 수 있었는지 이해할 만하다. 이문열은 새하곡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고 주요 작품으로는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젊은날의 초상, 황제를 위하여, 레테의 연가, 사람의 아들 금시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삼국지, 수호지 등이 있다.
2026-06-02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
한국 현대시의 대표 시인인 『향수』정지용의 생가이며 정지용 문학관 바로 옆에 있다. 1902년 11월 20일 정지용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1974년에 허물어졌으나 1996년 7월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정지용은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아픔을 안타까워하며 순수시를 쓴 시인이다. 이곳은 한국 현대시의 대표 시인인 정지용의 삶과 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생가는 초가로 지어진 단층 한옥으로,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다. 안채는 부엌과 방 2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랑채는 방 2칸과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생가 주변에는 정지용 시인의 동상과 시비, 그리고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정지용 문학관에는 정지용 시인의 유품과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품으로는 시인의 유복, 붓, 먹, 책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관련 자료로는 시인의 생애와 작품, 옥천과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학 해설가가 상주해 있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근처에 장계관광지, 옥천 향수 100리 자전거길 등이 조성되어 있고 멀지 않은 곳에 육영수 생가가 있다.
2026-03-09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충청대로272번길 230-14
목은 영당은 목은 이색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이다. 이색의 학덕과 청주에서의 유서를 기리기 위해 후손인 한산이 씨 이붕 해(李鵬海)와 그의 종형 이조해(李朝海)가 주도하여 1714년(숙종 40)에 청주목 산외 일면 주성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 60번지)에 건립하였다. 목은 이색 선생은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 시대 삼은 중 한 사람이다. 정방 폐지와 3년 상을 제도화하고, 김구용, 정몽주 등과 강론,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다. 우왕의 사부였으며 위화도 회군 후 창을 즉위시켜 이성계를 억제하려 했다. 조선 태조가 한산백에 책봉했으나 사양했다. 지금의 영당은 1987년에 보수한 것으로 건물은 영당, 강당, 내삼문, 외삼문, 홍살문으로 배치되어 있다. 영당 건물은 내진과 툇마루로 구성된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가구 형식은 1 고주 5량 가이다.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로 온돌방을 각각 설치했다.
2026-03-11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청주 무농정지(충청북도 기념물)는 청주를 본관으로 하는 가장 대표적인 씨족으로 널리 알려진 청주 한 씨의 유허지이다. 이곳은 청주 남쪽의 넓은 들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며, 낮은 구릉 위에 정자를 짓고 농사에 힘쓰도록 권장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왔다. 정자의 옛 터는 폐허화되고 숙종 14년(1688년)에 후손 한익저가 세운 유허비만 남아있었는데, 1949년에 후손들이 정자의 옛 터에 시멘트로 중건하였다가 1988년 목조로 개건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 건물로서 내부는 우물마루에 난간을 돌렸다. 서쪽에 작은 일각 대문이 있고 4면을 담장으로 둘렀으며 앞뜰 좌측에 무농정 유허비가 있다. 무농정 유허비는 높이 93.5㎝, 아래 너비 37㎝, 윗너비 41.5㎝, 두께 185㎝의 둥근 머리 모양이며, 대략의 연혁이 쓰여 있다.
2026-06-30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정북동 351-1
청주 정북동 토성은 미호천 평야 중심에 흙으로 쌓은 사각 형태의 성이다. 성벽의 둘레는 675m, 높이는 3.5m가량이다. 4면의 성벽마다 중간에 성문을 두었으며, 특히 남북쪽은 성문을 공격하는 적군을 측·후방에서 공격하기 위해 좌우 성벽을 서로 어긋나게 만들었다. 성벽의 네 모서리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높은 누각을 세웠으며, 모서리와 성문 사이에는 치성(성벽의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방어용 성벽)을 설치하여 방어력을 높였다. 또한 성벽 바깥으로는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의 둘레를 감싼 도랑)를 파고 물을 채워 적군의 접근을 막았다. 흙으로 쌓아 올린 성벽은 안팎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나무판자로 구분하여 흙과 진흙을 교대로 다져 쌓은 판축 기법으로 축조하였다. 청주 정북동 토성이 언제 처음 축조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3~4세기 혹은 6~7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쓰인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후백제의 견훤이 까치내 옆에 토성을 쌓고, 백성들에게 걷어 들인 곡식을 쌓아 두었다가 상당산성 안으로 운반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를 통해 후삼국 시대(9세기 말~10세기 초)에 정북동 토성이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북동 토성은 국내 토성 중 가장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 초기 토성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2026-05-1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로53번길 9
청주 표충사는 이인좌의 난 때 이들을 막다가 순절한 충청도병마절도사 이봉상과 청주 영장 남연년, 비장 홍림의 3충심을 배향한 곳이다. 1731년(영조 7)에 청주성 북문 안에 사당과 함께 유적비를 세우고 삼충사라고 하였다. 1736년(영조 12)에 사약되었으며, 1939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봉상(1676~1728)의 자는 의숙, 본관은 덕수이며, 이순신의 5대손이다, 1702년(숙종 28)에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요직을 거쳐 훈련대장을 역임하다가 충청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좌찬성에 추증되고 시호를 충민이라 하였다. 남연년(1653~1728)의 자는 수백, 본관은 의령이다. 1676(숙종 2)에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고을의 군수를 거쳐 청주 영장이 되어 토포사를 겸하였다. 좌찬성에 추증이 되고 시호는 충장이라 했으며, 숭선군에 추봉 하였다. 홍힘의 자는 춘경, 본관은 남양이다. 이봉상의 비장이 되어 싸우다가 피살되었다. 호조참판에 추증되고 시호를 충강이라 하였다.
2026-04-30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상로18번길 44
청주 충렬사(충청북도 지방기념물)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충렬공 송상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선조 28년(1595)에 동래에서 청주로 묘소를 이장하고 광해군 2년(1610)에 사당을 창건했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송상현의 자는 덕구, 호는 천곡, 시호는 충렬이다. 국가의 위난을 죽음으로 지켜 시호를 ‘충렬’이라 하였다. 충렬공은 선조 9년(1576) 문과에 급제해 여러 요직을 거친 후, 선조 24년(1591) 동래부사가 되었다. 이듬해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부산진성을 함락하고 14일에 동래성을 공격하며 항복을 권했으나, 끝까지 항전하다가 15일 순절하였다. 왜장도 송상현의 충절에 탄복하여 동문 밖에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충렬사 뒷산에는 송상현의 묘소와 현종 원년(1659)에 세운 신도비가 있고, 사당 입구에 선조 28년(1595)에 건립한 충신문이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한 것으로 목조기와집과 마당 앞 삼문, 석축담장 등이 있다. 청주시에서는 송상현 선생의 애국충절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인근 부지를 정비하여 전시관과 사당을 신축했으며, 주변을 공원화해 더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고 역사와 함께 호흡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정규해설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