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광주 충효동 요지

광주 충효동 요지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풍암제길 14

무등산 북쪽 충효동에 자리 잡은 가마터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상감청자·분청사기·백자를 굽던 곳이다. 가마의 구조는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시설·도자기를 집어넣는 번조실·굴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둥근 무덤 형태가 연결된 모양으로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과 출토유물의 연도를 통해 1430년을 전후해 만들어지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후 약 70∼80년간 자기 제작이 지속되다가 16세기 초에 중단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초기에는 분청사기만 만들다가 백자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같이 제작했으나 분청사기의 무늬가 조잡해지면서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반면 백자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질이 좋아지고 생산량도 늘어 분청사기가마에서 백자가마로 성격이 바뀌었다. 백자는 크기가 작은 것이 주를 이루는 데 비해 분청사기는 크고 작은 것 모두 있고 종류도 접시·종지·잔·병·항아리·벼루·제기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분청사기에 주로 사용된 무늬는 국화·나비·물고기·게·구름무늬 등이며 여러 무늬를 조합하여 그리기도 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운영되었던 곳으로 청자부터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문화관광홈페이지)

환벽당

환벽당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환벽당길 10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 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에 힘쓰던 곳이다. 환벽(環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룬다라는 의미이다. 환벽당은 시가문학과 관련된 국문학사적인 인문학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며, 별서 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당호(堂號)는 영천자 신잠이 지었으며, 벽간당이라고도 불렀음이 고경명의 유서석록에 기록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이다. 가운데 2칸을 방으로 하여 앞쪽과 오른쪽을 마루로 깐 변형된 형식이다. 원래는 전통적 누정 형식이었으나 후대에 증축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제액이 걸려있고, 석천 임억령과 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환벽당에 관한 시는 정철이 지은 2수가 있는데, 송강속집과 광주목지에 실려 있다. 환벽당에는 정철에 얽힌 일화가 전한다. 어느 날 김윤제가 이곳에서 낮잠을 자다가 조대 앞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난 김윤제가 이상히 여겨 급히 그곳에 내려가보니 미역을 감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그 소년의 비범한 용모에 매혹되어 외손녀를 이 소년에게 시집보냈는데, 이 소년이 뒤에 정치가로서 또한 문호로서 이름을 날린 정철이었다 한다. 환벽당 아래는 김윤제와 정철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와 용소가 있다. 창계천 동북쪽으로 250m쯤 떨어진 곳에는 식영정이 있으며, 환벽당 바로 곁에는 취가정이 있다. 인근에는 독수정과 소쇄원이 자리 잡고 있어 바로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의 중심 지역임을 알 수 있다. * 사촌 김윤제 김윤제(1501~1572)는 본관이 광산으로, 충효리에서 태어났다.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교리 겸 춘추관으로 벼슬길에 나아간 뒤 홍문관교리, 나주 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는데, 송강 정철과 서하당 김서원 등이 대표적인 제자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김덕보형제는 그의 종손으로 역시 학문의 영향을 받았다.

칠갑산 장승공원

칠갑산 장승공원

2026-09-28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장승공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장승문화가 변형, 왜곡되어 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해 오던 중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최고의 장승문화 보존지역으로 지켜나가기 위해 1999년 5월 ‘칠갑산장승축제’를 개최하면서 조성된 테마공원이다. 민속학습장으로도 좋고 가족 나들이 공간으로 좋다. 칠갑산 대장군의 전체적인 의미는 평화, 안녕, 생산 그리고 새롭게 도약하려는 청양군의 미래와 청양인의 정신을 표현한다. 장승은 고대 솟대와 선돌에서 유래되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장승이라고 불려졌다고 전해진다. 청양에 있는 장승들은 마을에서 실제로 제를 드리는 장승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음력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여전히 장승제가 치러진다. 이곳에는 높이 11.5m의 칠갑산 대장군과 칠갑산 여장군이 있고 전국의 장승이 재현되어 있다. 민속학습장으로도 좋고 가족 나들이 공간으로 좋다.

냉천골

냉천골

2025-05-08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칠갑산로

냉천골은 칠갑산 산자락 마을인 마치 2리에 있는 계곡이다. 골이 좁고 깊어 여름철에도 발이 시릴 정도로 시원하고 맑은 물이 흐른다. 나무가 계곡을 뒤덮어 터널을 이루어 햇빛을 보기 어려울 정도다. 여름철에는 많은 피서객이 모여들며 모텔과 여관, 식당 등 편의시설이 확충되는 등 피서지로 활기를 띠고 있다. 냉천골이 위치한 마치리는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에 있는 마을로 칠갑산 동쪽에 위치하며, 전형적인 중산간 지역으로 동쪽에는 잉화달천이 남류한다. 냉천골 초입에 칠갑산냉천골캠핑장이 있어 시원한 계곡 피서와 캠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뚫리고, 36번 국도변에 위치해 있어서 쉽게 찾아올 수 있다.

정혜사(청양)

정혜사(청양)

2025-04-09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상지길 165-10

칠갑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절로, 신라 문성왕 3년(841)에 혜조국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이후, 517년경 전각이 모두 불타고 삼존불상만 화를 면했다. 16년 후 마곡사의 인명선사가 다시 짓고 여러 차례 보수·중건하였다. 1907년 큰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1908년 월파스님이 다시 지었다. 현재 절 안에는 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과 산신각, 석굴암, 중암, 서암 등 암자가 있다. 정혜사의 현판은 3·1 운동의 33인 중 한 분인 오세창 선생이 직접 쓴 것이다. 이 정혜사는 대사원으로 소속 암자도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혜림암, 석굴암, 서전암 등이 남아있다. 대웅전은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자연석으로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다. 정면 5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앞뒤에 툇간이 있다. 가운데 3칸은 뒤쪽 툇간까지 방을 넓혀 불전으로 사용하고, 동쪽 방은 승방, 서쪽 1칸은 부엌이다. 불전과 승방 앞에는 툇마루를 깔았다. 대웅전 안에는 목조로 된 석가여래불좌상·아미타여래불좌상·약사여래불좌상의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청양 다락골 줄무덤 성지

청양 다락골 줄무덤 성지

2025-05-08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다락골길 78-6

줄무덤은 한 무덤에 여러 사람을 함께 묻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으로 줄묘라고도 부른다.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들을 탄압할 때 홍주감옥에서 순교한 교도들이 매장되어 있다. 총 37기가 있으며, 주로 가족 단위로 매장되어 있다. 주위에 없어진 10개의 인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천주교 탄압 때 마을 전체가 화를 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청양 다락골 성지는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와 그의 부친인 최경환 성인이 탄생한 유서 깊은 교우촌이자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줄지어 자리한 곳이다. 마을 뒷산 양지바른 산등성이에 무명 순교자들의 묘소와 묘비들이 여러 줄로 서 있는데 누구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홍주 감영에서 순교한 교우들의 시신을 밤을 틈타 엄중한 감시를 뚫고 빼내어 최씨 종산인 이곳에 안장했다고 구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갈음이해수욕장

갈음이해수욕장

2025-03-19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갈음이해수욕장은 천혜의 자연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1970년도 후반에 군사지역으로 지정되어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0년대 중반에 군사보호지역으로부터 해제됨으로써 비로소 일반인 출입이 가능해졌다. 해변의 모래가 아주 곱고 희며, 천연의 사구가 발달되어 있어 어린이들의 생태학습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울창한 자연 송림이 가까이 있어 야영하기 좋아 가족단위의 피서지로 적당하다. 특히, 이곳은 <찬란한 여명>, <용의 눈물>, <여인천하>, <번지 점프를 하다> 등 드라마 및 영화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녹도

2026-02-09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녹도2길 33-2

보령시 서쪽 약 25km 해상에 있는 이 섬은 고개는 서쪽으로 뿔은 동쪽으로 두고 드러누워 있는 사슴과 같이 생겼다라고 하여 녹도라고 불린다.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기도 하다. 녹도의 마을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오밀조밀하게 형성되어 있어 불이 켜진 한 여름밤에 바다 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서구의 옛 성을 연상케 하는 그림 같은 섬이다. 녹도는 그리 크지 않아 외부인의 발길이 적고, 주로 낚시 애호가가 찾아오는 조용하고 깨끗한 섬이다. 하지만 녹도를 한 바퀴 돌아보면 고요한 청정미를 느끼며 마을 언덕에서 방파제를 바라보는 풍경도 그림과같이 아름다워서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고대도

2026-03-12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고대도1길 1

고대도는 보령시 원산도와 태안군 안면도 사이에 위치한 섬으로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속한다. 옛부터 일찍이 사람이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던 섬으로 조그만 섬이지만 풍부한 어자원과 어장으로 일찍이 생활 수준이 발달하였다. 마을에서 가까운 당산 너머에는 기암괴석과 금사홍송으로 둘러싸인 당산 해수욕장, 섬의 남쪽 끝머리에는 자갈 해수욕장이 있어 피서지로 방문하기에도 좋다. 이 섬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진 섬으로 일컬어진다. 고대도 교회는 조선에 배를 타고 들어온 최초의 선교사 칼 귀츨라프 선교사를 기념하는 교회이다. 멋진 풍경 뿐 아니라 이러한 역사까지 갖고 있는 고대도는 안면도 영목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주변에는 안면도, 원산도뿐만 아니라 장고도, 삽시도 등의 섬도 있다.

효자도

2026-03-12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효자도리

대천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효자도는 원래 이름은 소자미였으나 예부터 효자가 많이 나왔다고 하여 현재는 효자도라고 부른다. 서쪽에 좁은 수로를 끼고 원산도가 있고, 북쪽으로 안면도 영목 포구가 있다. 섬 주변의 조류가 빨라 파도에 씻긴 몽돌이 해안선을 따라 길쭉하고 둥글둥글하게 깔려있는 자갈밭 해변이 있으며, 몽돌 해변 뒤쪽으로는 울창한 송림이 둘러싸여 있어 야영을 즐길 수 있다. 주민들의 주 소득원은 가두리양식업이며, 특산물로는 우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