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2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고수물길 1
우도는 소가 누워있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일찍부터 소섬 또는 쉐섬으로 불렸다. 완만한 경사와 옥토, 풍부한 어장, 우도팔경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관광지로써 한 해 약 2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제주의 대표적인 부속 섬이다. 성산항과 종달항에서 우도 가는 배를 탈 수 있는데 어디서 출발하든 15분 정도 소요된다. 섬의 길이는 3.8㎞, 둘레는 17㎞이며, 쉬지 않고 걸으면 3~4시간 걸리는 거리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버스나 자전거, 미니 전기차를 타고 유명한 관광지 위주로 돌아볼 수 있다. 여유 있게 우도를 즐기고 싶다면 오전 아침배를 타고 들어가 오후 배를 타고 나와 하루 종일 우도에 머물러 보는 것도 좋다. 단, 기상에 따라 배 운항 여부가 달라질 수 있으니 우도 여행 일정을 짜는 데는 기상조건을 필히 확인해야 한다. (출처 : 비짓제주 홈페이지)
2026-08-1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중앙동2가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대한제국 개항기에 ‘목포 해관’설치에 따른 근대기 통상 항만의 역사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의 생활사적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소로서 근현대를 관통하는 목포의 역사문화와 생활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보존과 활용할 가치가 우수한 지역이다. 일제의 수탈에 맞선 저항 흔적이 남아있는 근대 거리로 2018년 전국 최초 공간 단위의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유달로 180
오포대는 유달산 입구 이순신 동상 남서쪽에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리기 위해 1909년 포대를 설치하였다. 당시의 오포대는 현재 유달산공원의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으며, 오포는 주변에 모형으로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1913년 신식 대포로 일본 오사카 포병 공장에서 구매하여 대체했고, 그전에 있는 구식 대포는 송도 신사에 보관하던 중 일본 강점기 후기에 오포대의 대포와 함께 일본 정부가 가져갔다고 한다. 당시 오포대 담당 직원이 정오에 맞춰 현재의 이충무공 동상 뒤에 있는 오포대에 올라가서 포탄 없이 포구에 화약과 신문지를 넣고 쏘아 굉음과 함께 목포 상공에 휴지가 흩어지면, 시민들에게는 점심 먹자라는 신호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 말기 일본이 전쟁 수행을 위한 공출로 오포를 걷어가 버렸다고 한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노적봉길 45 (측후동)
노적봉(露積峯)은 해발 60m의 바위산에 불과하지만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호국혼이 담겨있다. 정유재란 때 12척의 배로 불가능해 보였던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전열을 재정비하는 동안 조선의 군사와 군량미는 턱없이 부족하여 바로 왜적이 쳐들어온다면 함락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때의 노적봉은 아주 큰 역할을 하였다. 유달산 앞바다에 왜적의 배가 진을 치고 조선군의 정세를 살피고 있을 때 이순신 장군은 노적봉을 이용하여 위장전술을 펼쳤다. 노적봉 바위를 이엉(볏짚)으로 덮어 마치 군량미가 산처럼 많이 보이게 하고 새벽에 바닷물에 백토를 풀어 밥 짓는 쌀뜨물처럼 보이게 하여 왜군들이 군사가 많은 줄 알고 스스로 물러나게 하였다. 이러한 일이 있는 후로 이 봉우리를 노적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호령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큰 바위 얼굴은 맞은편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함께 서남해안의 관문인 목포를 수호하고 있다. 노적봉의 기를 받으면 건강에도 좋다고 하여 다산목과 함께 소원을 빌기 위해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출처 : 목포 문화관광 홈페이지)
2026-08-14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유달로 165
유달산정문에서 조각공원 쪽으로 약 2㎞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목포시사는 본래 1890년에 하정 여규형 등이 건립한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초기에는 유산정이라 부르며 문인들에게 시문을 가르치고 백일장 등을 주도하던 곳이었다. 이후 1920년에 무정 정만조가 재확장하여 유산사로 개명하고 1932년에 중수하였으며 1937년 목포시사를 발족하였다. 목포시사는 40.49㎡(12.25평) 크기의 목조 기와로 되어 있다. 측면과 뒷면의 중방은 습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벽돌로 쌓았으나 1979년과 1984년 2회에 걸쳐 벽돌을 제거하고 보수하였다. 시사란 문사들이 서로 시문을 독려하고 자연과 시를 노래했던 풍류의 장소로 시인들의 단순한 모임을 넘어 망국의 한과 우국충정을 토로하는 유림의 문학 결사 단체였다. 특히 한말의 유학자 정만조는 이곳에 머물며 퇴폐한 유풍을 바로잡고 학풍을 진작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한시의 명맥을 이어온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시사로 무정문집과 구한말의 전적, 창사이래 개최된 백일장에서의 입선작, 문인들의 원고를 모두 보존하고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별량면 학산리
화포는 옛날 지명이 쇠리로 시골스러움과 한적한 포구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순천만의 고즈넉한 갯벌이 오롯이 보존된 곳이다. 봄이면 진달래 개나리를 비롯한 개꽃들이 동산의 소나무와 대나무 사이를 촘촘하게 메운다고 해서 화등이라 부르고 그 아래 자리한 포구라고 해서 화포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곳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건너 와온해변에서 시작하는 남도 삼백 리 길 가운데 2번째 코스이자 남파랑 일부이기도 하고 예로부터 꼬막과 낙지, 짱뚱어 등의 중요한 어족자원들이 풍부한 어촌마을이다. 뻘이 깨끗한 이곳에서 잡히는 낙지는 대표적인 세발낙지로 명성이 자자하다. 또한 이곳은 순천만으로 날아드는 철새는 황새, 흑두루미,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등 70여 종에 달해 생태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화포마을 뒤편의 봉화산(235.9m)은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으며 순천만의 경관이 한눈에 보이는 정상에는 고흥 마복산에서 타오른 봉화를 순천에 전하던 봉화터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바다 너머로 보이는 동쪽 땅은 여수반도, 서쪽은 고흥반도이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금곡동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금곡동제철유적은 금곡[金谷]이라는 지명이 쇳골을 의미하고 있으며, 유적 주위에 건물지의 기단부와 수많은 철재가 남아 있어 일찍부터 유적이 나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금곡동제철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1567~1596)의 의병 활동과 관련한 무기 제조창으로 알려졌다. 금곡동제철유적 일대는 산화철이 포함된 미문상 화강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이 암석을 모암으로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철을 채취할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무등산 내에서 제철 연료용의 목탄도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 작업장 내에서 제철, 정련, 단조 철기 제작의 전 공정을 보여 주는 유구가 일괄 확인되어 15~16세기 제철 및 철기 제조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또한, 금곡동제철유적의 발굴을 통해 김덕령의 의병 활동 과정에서 무기 제조 장소로 활용된 역사적 사건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유적지에 이르려면 무등산 의병길을 따라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충효샘길 7
광주호 동쪽 호안(湖岸)과 충효동 마을 사이의 도로변에 위치한 왕버들나무는 버들과의 딸린 갈잎 큰 키나무이다. 암수 나무가 딴 그루를 이루며, 4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5월에 익는다. 우리나라 경기도 이남 지역과 일부 중부 이남 지역, 중국 중부 지역에 분포하며 풍치림(風致林)과 정자목(亭子木)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물가나 들에서 자라며, 목재는 가구와 땔감 등으로 쓰인다. 충효동의 왕버들 3그루는 모두 광주시 나무로 지정되어 있는데 원래는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 하여 마을의 상징 조경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매화와 왕버들 1그루는 말라죽었으며, 또 1그루의 왕버들과 소나무는 마을 앞 도로를 확·포장하면서 잘라 버려 지금은 왕버들 3그루만 남아 있다. 마을에서는 다시 왕버들 2그루를 식목하였으며, 소나무와 매화도 계속 식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충효동의 역사는 분명치 않으나 예부터 성이 있어 성안 또는 석저촌(石低村)이라 불려 왔다. 이 일대는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양산보(梁山甫)의 소쇄원(瀟灑苑)을 비롯하여 김윤제(金允悌)의 환벽당(環璧堂), 김성원(金成遠)의 식영정(息影亭)과 누하당(樓霞堂) 등의 원림(苑林) 정각(亭閣)이 많이 있어, 주변 조경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곳이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충효샘길 7 (충효동)
충효동 정려비각은 충장공 김덕령(1568~1596) 장군과 그의 부인 흥양 이 씨, 그 형 덕홍과 동생 덕진 일가족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충효리 마을 앞에 세운 비각이다. 이것이 여느 문과 다른 것은 이 비각 앞의 현판에 새겨 있는 내용에서 ‘1788년 정조가 윤음으로서, 표리비를 세우라’ 이르고 충효 지리(忠孝之里)라는 마을 이름을 지어 하사한 점이다. 비는 1789년(정조 13년)에 세운 것으로 전면에는 비명이 3행으로 새겨져 있다. 비의 크기는 총 높이 220㎝, 기단 높이 110㎝, 비신 높이 171㎝, 비신 너비 68㎝이며 비갓이 얹혀 있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비각의 건립 연대는 1792년이며, 그 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비각 전면에는 전주 부윤 한용구가 쓴 정조어제윤음(正祖御製倫音)이란 현판이 있다.
2026-09-02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유달로 180 (죽교동)
목포시는 우리나라 최서남단의 항구도시로 유달산과 호남 옥토를 가로질러 흐른 영산강, 다도해가 어우러진 고장이다. 유달산은 예로부터 영혼이 거쳐 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이라고도 불렀다. 유달산 자락의 달성공원은 선조들의 얼과 풍류가 깃든 시민들의 쉼터로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와 시가지 전망의 기능을 가진 공원이다. 유달산과 달성공원은 딱히 구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유달산 둘레길과 산책로, 등산로가 같이 이어져 있다. 샘으로 유명한 절인 보광사와 산 정상의 소요정에서는 목포 시내와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케이블카인 목포 해상 케이블카와 영산강의 하굿둑도 보인다. 달성공원과 이어진 유달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유리온실로 된 특정자생식물원을 방문할 수 있다. 또한 목포의 눈물 노래비와 유달산 조각공원, 달성사를 연계 방문할 수 있고, 목재 문화체험장에서 목재 관련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