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능주면
삼충각은 조선 선조 26년(1593)에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장렬히 순절한 충의공 최경회와 지평 문홍헌 장군, 명종 10년(1555) 을묘왜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지방에 침입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조현장군 등 세 충신의 애국충정을 추모하기 위하여 숙종 11년(1685) 능주향교 유림이 세운 정려각이다. 정려는 조선 시대 유교적 윤리를 기본으로 전국적으로 많이 건립되었는데 특히 임진왜란 무렵의 충신들이 많이 정려를 받았다. 화순능주삼충각은 지역 유림이 주체가 되어 능주면 잠정리 지석강 상류 천변의 높은 절벽 위에 3개의 동으로 건립하였다. 3명을 동시에 봉안할 때 흔히 1개 동에 함께 모시는데 삼충각은 별도의 재각에 각각 봉안한 것이 다른 정려각과 구분된다. 전면을 향해 왼쪽 건물이 최경회 정려이고, 가운데 건물이 조현의 정려, 오른쪽 건물이 문홍헌의 정려이다. 삼층각이 세워진 절벽에는 화순 성화명 도로수축시주목록 암각기문이 새겨져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장렬히 순절한 최경회 장군의 위패를 모신 재각이다. 원래는 순조 35년(1833)에 한천면 금전리에 세워졌으나 이곳이 저수지 공사로 수몰되자 1963년 3월 현 위치로 이건 하였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최경회 장군은 자가 선우이고 호는 삼계 또는 일휴당으로 화순 출신이다. 명종 66년(1561) 진사가 되고, 선조원년(1567) 문과에 급제하여 장수, 무장현의 현감과 영해부사 등을 거친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의병을 규합하여 금산, 무주, 창원, 성주 등지에서 대첩을 거두고, 진주성에서 왜병과 싸우다 순국하였다. 동면 백룡리에 최경희 장군의 뜻을 기리는 사당인 충의사가 지어져 있으며, 또한 능주면 잠정리의 삼충각 한편에도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서면 도원길 40-28
대한불교조계종 제21 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작은절 이다.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하고 신라 애장왕 때 당나라에서 귀국한 순응 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온다. 조선시대 상당한 사세를 갖추고 있던 규봉암은 17~18세기에 폐사되었다가 1729년 연경에 의해 다시 세우게 되었고, 6·25 전쟁으로 방치되었다가 1959년 대웅전과 함께 당우 3동을 지으며 현재에 이른다. 유네스코에서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의 서석대, 입석대와 더불어 무등산 3대 주상절리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광석대 돌기둥 아래에 규봉암이 자리 잡고 있다. 예로부터 ‘규봉암을 보지 않고 무등산에 올랐다 말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난 절경 중 한 곳이다. 광석대와 규봉암은 사계절 아름답지만, 울긋불긋 단풍이 물드는 늦가을은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다. 규봉암 주변으로 광석대를 포함 설법대, 은신대, 풍혈대, 삼존석, 송하대 등의 바위들이 사찰을 둘러싸고 있어 그 경관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규봉암에 가는 길은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서 오르는 탐방로와 주로 이용되는 증심사 코스, 그 반대편의 원효사 지구에서 오르는 3개의 코스가 있다. 영평리 도원 탐방센터에서 규봉암까지는 약 한 시간쯤 산길과 계단을 올라야 한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동면 백천로 236-1
환산정(環山亭)은 1637년 백천(百泉) 류함(柳涵 1576~1661) 선생이 창건한 정자(亭子)로, 방 1칸의 소박한 죽정(竹亭)이었는데, 1896년 1차 중건, 1935년 1차 중수(重修), 1958년 보수(補修), 2010년 2차 중수(重修)하고, 2025년 화순 제11경으로 지정되었다. 환산정은 화순군 서성저수지 안에 위치해 있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변 풍경이 산수가 뛰어나고, 앞쪽에 펼쳐진 서암산의 적벽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1965년 서성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상류 한가운데 섬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서성저수지가 만조에 가까울수록 환산정의 비경은 빛을 발한다고 한다. 환산정은 백천 류함이 17세기 전반에 축조한 누정이다.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류함은 1637년 의병을 일으켜 청주까지 진격해 갔다. 그런데 인조가 강화를 체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해산한 후, 이곳으로 내려와 환산정을 짓고 은거하였다고 한다. 17세기 처음 정자가 지어질 때는 방 한 칸의 초가였다. 이후 퇴락한 것을 1896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또한, 원래 서성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담장을 치고 솟을대문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성서수지로 물이 잠기면서 담장을 없어지고 솟을대문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환산정 현판이 안쪽 창방에 걸려 있으며, 원운 15개의 편액도 함께 걸려 있다. 조선시대 이 지역 정자의 전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건물이다. 환산정(環山亭) 편액은 원교(園嶠) 이광사(李匡師 1702~1777)선생의 갈필(渴筆) 글씨이며,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광취명당(廣聚明堂)이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청풍면 풍암리
화순읍 남쪽, 이양면 지석천 강가에 자리한 송석정은 조선조 선조 때 훈련원첨정을 지낸 양인용이 광해군 때 당쟁으로 정계가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홀연히 고향으로 돌아와 시문으로 벗들과 담소하며 유연자약한 여생을 즐긴 곳이다. 정자와 강물,바위와 산이 조화를 이루는 호젓하고 고요한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송석정 주위 강성마을의 하천변은 봄, 여름, 가을이면 원색이 난무하는 유원지로 변하며 특히 수박, 참외를 재배하여 여름철피서객들의 좋은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지석천 강물은수심이 깊지 않아 물고기가 많으며 여름철 피서지겸 가족나들이 코스로 적당한 곳이다.
2025-09-16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안동댐의 보조댐 부근에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면 언덕배기에 초가집이 드문드문 들어앉아 있다. 이곳이 바로 안동댐을 조성하면서 수몰된 지역의 가옥 몇 채를 옮겨와 야외박물관으로 만든 민속 경관지이다. 안동민속촌의 야외박물관입구에는 두 개의 장승이 반기고 있고 이어서 이 고장이 낳은 문인 이육사 선생의 시비 앞으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시비에는 그의 대표작 ‘광야’가 새겨져 있다. 육사시비 앞에는 그의 일생을 간략히 기술한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안동댐 주변에는 안동 민속촌과 안동 민속박물관, 이육사 시비,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장, 안동호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서면 물염로 161
중종 명종대에 성균관 전적 및 구례, 풍기군수를 역임한 홍주 송씨 물염 송정순이 16세기 중엽에 건립한 정자이다. 후에 외손 금성 나씨 나무송, 나무춘 형제에게 물려주었고, 그 후 수차례 중수와 함께 1966년, 1981년에 중수하였다. [물염]은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뜻이다. 화순적벽에서 3km 상류에 위치한 물염정은 방랑 시인 김삿갓이 경치에 반해 자주 찾았던 정자로, 정자 옆에는 난고 김병연의 시비와 동상이 있다. 병풍처럼 둘러친 물염적벽의 기암절벽과 소나무 숲의 운치, 그리고 깊은 계곡과 단애의 풍치를 정자 위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신선이 노닐던 선경 속으로 빠져들게 할 만큼 멋진 절경을 연출한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서면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산지로 커다란 옹기를 엎어 놓은 모양의 바위산으로 옹성산이라 불리며, 화순군 이서면, 북면, 동복면의 경계에 있고 인근에 있는 백아산의 흰색과 대비되는 검은색을 띠고 있다. 백아산 능선에서 뻗어 나와 있지만 그 산세는 백아산을 닮지 않고 있다. 옹성산에는 고려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한 철옹산성이 정상 산자락에 있는데 입암산성, 금성산성과 함께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역의 3대 산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이 고을 현감을 지내고 진주성에서 순국한 황진 장군이 군사를 훈련한 곳이라 한다. 담양 화순간 15번 국도 상의 독재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이 있으며 안성리 신성마을이나 몽성암 부근에서도 오를 수 있다. 옹성산 바로 아래는 동복호가 자리 잡고 있다. 주변에는 백아산 자연 휴양림, 화순 서유리 공룡 발자국 화석지, 물염정, 화순적벽 등 방문할 만한 곳이 많다.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해망동
* 탁류의 소설가, 월명공원 채만식문학비 *
서울의 남산공원처럼 군산의 상징인 월명공원에서는 사방으로 군산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다. 해망굴 옆 흥천사 입구에 차를 대고 114개의 계단을 오르면서 월명공원 산책이 시작된다. 수시탑이나 전망대에서는 군산 앞바다를 오가는 작은 어선과 대형 선박들, 금강 건너편의 장항 일대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고 바다조각공원에 가면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조각공원에서 조금 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채만식문학비와 만나게 된다. 문학비를 뒤로 하고 봉수대터가 있는 점방산 정상에 오르면 금강과 서해바다의 장관이나 고군산열도 뒤로 떨어지는 장엄한 일몰을 감상하게 된다. 본래 월명공원은 봄철 경관이 멋진 곳. 4월이면 개나리, 진달래가 앞다퉈 피고 5월이면 왕벚꽃과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입장료는 따로 없다. 군산을 찾는 여행자라면 필히 한번 쯤 들러 볼만한 곳이다. 한편 군산시는 현재 금강하구둑 남쪽, 진포대첩비가 서있는 금강호 시민공원 근처에 2층 규모의 채만식문학관을 개관하였으며 오페라 '탁류'를 제작해 군산시민문화회관에서 공연하였다.
* 채만식문학비의 내용 *
비문에는 그의 일대기가 자세하게 적혀 있다.1902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난 소설가 채만식 선생은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중퇴했다. 1925년 단편 '새 길로'가 조선 문단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대표작은 장편소설 '탁류'로서, 부조리에 얽힌 1930년대의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이자 군산을 무대로 일제강점기 시대의 억눌린 서민들의 삶을 기록한 수작이다. 군산까지 흘러 와서 서해 바다와 합쳐지는 금강을 두고 채만식은 '탁류'에서 눈물의 강이라고 불렀다. 군데군데 일본식 가옥들이 남아있는 월명동 주택가나 군산 화교소학교를 중심으로 한 거리 혹은 뱃고동소리가 처량한 군산항 등지를 돌다보면 채만식 선생의 체취가 아스라히 느껴진다. 채만식은 한국전쟁 직전 고향근처에서 가난과 폐결핵이라는 병고로 마흔 여덟의 짧은 나이에 이승과 인연을 끊었다"
2026-02-11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
당진 필경사는 송악읍 서해대교 근처에 보존된 심훈 작가의 집이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바로 앞에는 상록수문화관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필경사는 ‘붓으로 밭을 일군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심훈은 1933년경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부친이 살고 있는 당진으로 이주하여 『영원의 미소』, 『직녀성』 등을 집필하였다. 그리고 1934년 독립하면서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이 바로 필경사이다. 심훈은 1935년 이 집에서 대표적 농촌소설인 『상록수』를 집필했다. 필경사는 한 때 그의 장조카인 고 심재영옹이 관리하다가 당진시에 기부한 이후 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이 새겨진 마당의 시비는 1996년 한국문인협회가 세운 것이다. 당진 필경사는 국도 38호선, 지방도 619호선에서 상록수길을 따라 방문할 수 있으며 서해안고속도로 송악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서해대교, 행담도, 송악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