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나바위 성당

나바위 성당

2025-04-0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1길 146

나바위 성당은 조선 헌종 11년(1845년)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초대주임이었던 베르모넬(장약슬, 요셉) 신부가 중심으로 1906년 건물을 시공하여 1907년 완공하였다. 성당설계는 명동성당 포아넬 신부가 도왔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다. 나바위 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처음으로 전도하던 곳이어서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며, 이 건물은 천주교의 한국 유입과 그 발전과정을 볼 때 서구식 성당 건축양식과 우리나라 건축양식을 잘 절충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이다. 1916~1917년까지 흙벽을 벽돌조로 바꾸고 고딕식 벽돌조 종각을 증축하였다. 한국문화의 특성에 맞게 한옥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나바위 성당건물은 특히 회랑이 있어서 한국적인 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은 밤이면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소나무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원래 이름은 화산 천주교회이었지만 현재 ‘나바위 성당’으로 개명하였다. 나바위 성당은 국내 천주교의 성지답게 그에 따른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첫 번째 볼거리로는 김대건 신부 순교비를 들 수 있다. 김대건 신부 순교비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졌다. 두 번째 볼거리로는 망금정을 들 수 있다. 망금정이란 ‘아름다움을 바란다’라는 뜻으로 1915년 베로모렐 신부가 초대 대구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서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화산의 끝자락에 있는 넓은 바위인 나바위에 위치하고 있는 데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망금정이 있는 너럭바위 아래 바위벽면에 마애삼존불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석불사(익산)

석불사(익산)

2025-11-2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삼기면 진북로 273

석불사는 한국 불교 화엄종 본산으로 종교 단체에 등록되어 있다. 이 사찰에는 보물로 지정된 백제시대의 석불좌상과 광배가 있는데, 조성시기는 600년경으로 여겨지며, 삼국시대 환조불로서 국내 최대의 것이고, 광배 또한 최대 규모이다. 창건연대는 백제무왕 7세기 전반에 미륵사지 창건에 앞서서 건축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석불좌상은 백제시대에 조성된 매우 귀중한 불상이다. 높이가 156㎝나 되는 거구의 여래좌상은 당당한 자세로 얇게 표현된 통견의 법의를 결과부좌한 무릎 위로 흘러 덮었다. 그리고 거대한 주형광배는 7개의 화불과 불꽃 무늬를 조각하였다.

익산 쌍릉

익산 쌍릉

2025-11-11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쌍능길 65 (석왕동)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에 있는 무덤으로, 남북으로 2기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어 쌍릉이라고 부른다. 무덤 안의 구조는 백제 후기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며, 무덤의 봉분과 돌방의 크기가 큰 북쪽의 것을 대왕묘라 하고, 남쪽의 작은 것을 소왕묘라고 부른다. 크기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2기 모두 원형의 봉토무덤으로 흙을 높이 쌓아 만든 봉분 이외에 별다른 장식이 없다. 1917년 조사할 당시 무덤은 이미 도굴이 되어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대왕묘 안에서 나무로 만든 관이 일부 발견되어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무관은 바닥면보다 위쪽 면이 약간 넓고, 뚜껑의 윗면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관고리에는 8쪽의 꽃잎을 가진 연꽃무늬가 있었던 것도 확인되었다. 이들 두 고분은 1917년 일본인 학자 야쓰이 세이이쓰에 의해 발굴된 바 있으나, 정확한 정보를 남기지 않아 고분의 구조나 성격을 밝히기 위한 학술발굴조사가 2018년(대왕릉)과 2019년(소왕릉)에 실시되었다. 학술발굴조사 결과, 대왕릉의 경우는 사비기 백제왕릉급 무덤으로서 판축 기법을 사용한 봉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석실 끝부분에서는 여태까지 그 존재가 알려진 바 없던 인골 조각이 발견하였는데 이에 대한 정밀분석 결과 인골추정 나이가 무왕의 사망 나이와 비슷함에 따라 무왕의 무덤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소왕릉의 경우에는 적극적인 자료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무왕릉과 마찬가지로 석실의 규모와 품격에 있어 왕릉급임을 확인하였다.

마구령·고치령

마구령·고치령

2025-07-21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영단로

마구령과 고치령은 소백산의 대표적인 고갯길로, 백두대간에서 소백산 사이에 있는 험준한 고개다. 두 고개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길로, 보부상들의 애환도 함께 안고 있는 영남 지방의 옛길이다. 마구령은 소백산 국립공원 경계 지역 가장 동쪽에 자리한 고개로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암곡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장사꾼들이 말을 타고 다녔던 고개라 하여 마구령이라 전해지며, 경사가 심하여 논을 매는 것처럼 힘들다 하여 매기재라고도 불린다. 충청북도 단양군의 의풍계곡에서 백성들이 부석장에 나가기 위해 마구령을 넘어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고치령은 영주시 단산면의 마락리와 좌석리를 잇는 고개로, 과거에는 북쪽의 관동 및 호서지방으로 통하는 교통로였다. 신라시대에 고개 아래에 대궐을 짓기 위해 터를 잡은 일이 있는데, 이때에는 옛고개라 하였던 것이 변형되어 지금은 [고치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소백산 산지와 태백산 산지가 만나는 고개로 고개의 서쪽으로 형제봉과 국망봉, 비로봉으로 연결되는 소백산맥이 이어진다.

강원특별자치도립화목원

강원특별자치도립화목원

2026-09-22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화목원길 24 (사농동)

강원특별자치도립화목원은 강원특별자치도에서 운영하는 공립수목원으로, 도심 속 산림 휴양과 자연학습 공간을 제공할 목적으로 1999년에 개원했다. 식물 유전자원 수집·증식·보존을 위한 연구 등 현지 외 보전 기능을 강화하고 있으며, 대국민 자연체험학습장과 휴식 공간을 제공하여 자연의 소중한 가치를 체험할 기회를 선사한다. 총 1,827종류, 8만 5천여 본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산솜다리·노랑만병초·홍월귤 등 희귀식물 129종류, 모데미풀·금강봄맞이·금강초롱꽃·개느삼 등 특산식물 49종류, 그리고 두메닥나무·제비동자꽃·등대시호·금꿩의다리 등 기후변화 취약식물 보존원 136종류가 있다. 화목원 내에는 산림박물관도 운영되고 있는데, 강원특별자치도의 동식물과 산촌 생활 등 산림을 주제로 한 상설전시관을 비롯해 기획전시관, 3D 영상관 등을 갖추고 있다. 연못과 인공폭포, 정자가 어우러지는 수생식물원과 어린이들을 위한 자연 놀이터인 어린이정원도 화목원에서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화목원은 계절별로 다채로운 꽃이 피고 지며 색다른 풍경과 재미를 선사한다. 봄에는 벚나무길과 철쭉원에서 꽃놀이를 즐기고, 여름에는 분수광장과 메타세쿼이아 숲에서 시원한 한때를 보낸다. 가을에는 국화전시회를 감상하고, 겨울에도 따뜻한 유리온실에서 푸릇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경상북도수목원

경상북도수목원

2025-09-19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수목원로 647

경상북도수목원은 경북 포항시 내연산 자락(평균 해발 650m)에 위치하며, 아름다운 사계 경관과 전국 수목원 중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2,926ha)를 자랑하는 경상북도의 대표 수목원이다. 경상북도 향토 고유 수종 및 국가 식물 유전 자원의 보전 및 연구, 도민의 정서 함양을 위한 자연친화적 생태교육 체험장 조성, 동해안권 관광지, 주변 식물원과 연계한 산림 생태 문화권 형성을 위하여 조성되었다. 독특한 생태를 가진 울릉도 식생을 재현한 울릉도 식물원과 고산식물원, 침엽수원 등 26개 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숲해설전시관, 숲체험학습관, 생태탐방로 등의 체험시설과 자연체험학습장이 있다. 가족, 친구, 연인 등과 함께 예쁘고 아름다운 식물을 관찰하며 산책할 수 있고, 영춘정(전망대)에 오르면 포항의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근처 보경사나 내연산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등산 코스도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방문할 수 있는 수목원이다.

신석정 고택

신석정 고택

2026-08-26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석정로 63

신석정 고택은 한국시단의 거목인 신석정(1907-1974) 선생이 살았던 곳이다. 신석정 선생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 출신으로 17세에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1931년 『시문학』지에 시 「선물」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대 최초의 모더니스트라 불릴 만큼 서구의 낭만시와 한국적인 면을 가미한 문단의 거인으로 성장하였다. 선생은 조국을 빼앗겼던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질긴 시혼으로 민족혼의 배양토 구실을 했다. 저서로는 시집 「촛불」과 「슬픈 목가」가 있다. 가옥은 초가 3칸의 집이었으나 지금은 수리하여 4칸 규모로 되어 있다. 신석정 고택은 선생이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1931년 이후 낙향하여 시작(詩作)에 전념한 곳으로 1952년 전주로 이사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왕성한 문학활동을 하여 당시 많은 시민들이 드나들던 집이기도 하다.

양주향교

양주향교

2025-10-30

경기도 양주시 부흥로1423번길 50

양주향교는 조선 태종 원년(1410)에 건립된 후 많은 유학자를 양성 배출하던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었고, 1610년에 재건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었다. 전쟁 후 유림들의 뜻을 모아 대성전을 먼저 복원하고, 1984년에 명륜당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주향교는 고대 중국오성과 송대 2현을 비롯 신라, 고려, 조선조의 18선현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유덕을 추모하고 있다.

유학사(의령)

유학사(의령)

2025-03-19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여배로5길 2

미타산(彌陀山, 높이 662m)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약 1300여 년 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고찰(古刹)이다. 조선 개국 직후 왕사를 지낸 무학대사 자초(自超 1327~1405)가 1399년(정종 1년) 창건하였다. 무학대사는 660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미타사(彌陀寺)로부터 조금 떨어진 지금의 유학사 자리에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남향으로 자리 잡은 극락전을 중심으로 맞은편에 만세루, 극락전 왼쪽에 종각, 극락전 오른쪽으로 요사 두 동이 아래·위로 배치되어 있다. 칠성각은 요사 뒤쪽의 계단 위쪽에 있다. 주법당인 극락전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내부 불단에 금동 아미타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다. 원래 오동나무로 만든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었다가 1980년대에 어디론가 이운되었다 한다. 그때 삼존불 중 주존불을 본떠 석고상으로 남겨 두었는데 2002년 새로 조성한 현재의 주존불은 그 석고상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만세루(萬歲樓)는 루(樓)의 입지 즉 사찰의 정문에 해당하는 자리에 있지만 실제 누각 형식의 건물이 아니다. 단층 건물인 데다 누문도 없으며, 툇마루가 달린 요사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건물 뒤편에 걸려 있는 편액도 유학사(留鶴寺)라고 되어 있지만 사찰에서는 만세루라고 부른다. 이 건물에는 1900년 이태현(李泰鉉)이 지은 ‘법당중수기’ 등 유학사의 연혁을 알려주는 현판들이 보관되어 있다. * 무학대사와 유학사의 이야기 * 원래 유학사는 미타산의 8부 능선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조선 초기 때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를 지낸 무학대사가 이 유학사에 들려 사찰이 앉은 위치가 풍수지리에 맞지 않다고 하여 지금의 위치에 절을 옮겨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지고 있다. 무학대사는 풍수지리에 무척 밝았기 때문에 당시 이성계를 도와서 조선 개국과 함께 한양에 도읍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일화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 유학사의 전설 또한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닐 것으로 믿어진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부근의 형세가 마치 날아가 학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고, 예전에 유학사가 있던 자리는 그 학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였다 하니 학의 머리에 절이 앉아서는 아니 되고 지금의 위치에 사찰이 있어야만 학이 마치 절을 품고 있는 형상이 되어서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찰의 이름도『학이 절을 품은 채 머무른다』는 뜻으로 유학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때가 조선 초기 정종 2년(1399년)이라 알려지고 있으며 그 뒤 무학대사는 오랫동안 이 유학사에 머물고 있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 말은 지금에 와서 상고할 길이 없고, 다만 그러한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는 사실만 기록할 따름이다.

수도사(의령)

수도사(의령)

2026-03-18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덕암로 581-137

의령에 있는 수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 사찰이다. 절의 규모는 작지만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이승의 고통을 잊게 해준다. 면 소재지에서 신덕산이 있는 북쪽을 향해 약 5km가량 가다보면 오른편에 이목저수지가 나온다. 이 저수지를 끼고 1km쯤 더 들어가면 멀리 산 아래 몇 채의 마을이 바라 보이는 지점에서 같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절의 경내에는 대웅전 대신에 극락전이 있으며 그 뒤에 칠성각과 동서양편에 요사체가 있다. 또 축대의 계단위에는 높다랗게 누각을 올려서 만세루라 이름 지어 놓았다. 극락전 앞뜰의 5층 석탑은 하부기단이 무너진 채 위태로운 형상으로 서있는데 이 석탑의 원위치는 그 자리가 아닌 듯 보인다. 절 입구에 극락교라는 석교가 남아 있다. 또 수도사는 동쪽 산기슭에 모두 8기의 부도군이 서 있는바 이것들을 미루어 옛날에는 이 절의 규모가 제법 컷을 것이라는 주지의 말이다. 한편 이절이 있는 신덕산은 합천의 황매산으로부터 뻗어온 줄기로 산세가 매우 웅장할 뿐만 아니라 우거진 잡목림에 경관이 또한 뛰어나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수도사는 지금부터 약 1300여 년전, 신라의 30대 문무왕 2년 (662년)에 고승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이라고는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김수로왕 7왕자가 의령 수도산에서 수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절의 뒷산에 흡사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가 있어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병풍바위라 하는데 당시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백여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절의 이름을 수도사[修道寺]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1420년(조선 세종 2) 국률[國律]과 정암[鼎巖]·유곡[柳谷] 등이 중창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유정[惟政]이 중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