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금학산관광농원

금학산관광농원

2023-07-19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팔봉산로 2050-112

홍천군 북방면, 홍천강과 인접한 자연림 속에 깊숙이 들어앉은 농원이다. 방목 형태의 염소 사육장과 토끼 사육장, 토종닭 방사장 등이 4만여 평 자연 속에 펼쳐져 목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별천지를 이룬다. 또 주인 가족이 직접 차려내는 흑염소와 토종닭 요리도 별미로 꼽힌다. 공해가 전혀 없는 산에서 자란 목축과 푸성귀들은 물론, 사람들까지도 전혀 오염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숙박시설 또한 이용 가능하다.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2025-11-03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170-4

이곳은 흥무왕 김유신 장군이 탄생한 곳으로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13 세손이다. 김유신 장군은 만노군 태수(萬弩郡 太守) 김서현(金舒玄) 장군의 아들로 진평왕 17년(595년) 진천읍 상계리 계양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나이 15세 되던 609년에 화랑이 되고 낭비성 싸움에 공을 세워 압량주 군주가 되었다. 선덕여왕 때 상장군(上將軍), 무열왕 7년(660년) 상대등(上大等)이 되어 당군(唐軍)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후 나당연합군의 대총관(大摠管)이 되어 고구려를 정벌하고 태대각간(太大角干)이 되었으며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다시 찾아 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여 흥무대왕으로 추봉 되었다. 지금의 계양(桂陽) 마을 입구에 장군터라 불리는 곳에 1983년에 유허비(遺墟碑)를 건립하였으며, 이곳에서 북서 방향 지점에는 태수 관저에서 사용했다는 우물터 연보정(蓮寶井)이 현존하고 있으며, 무술 연습을 했다고 전해오는 투구바위와 치마대가 있다.

포천계곡

포천계곡

2025-08-19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화죽리

‘아홉 구비 홍개동 한 하늘이 열렸네. 백 년을 아껴 둔 이 산천일세. 새로이 정자 지어 몸을 누이니, 속세가 아니르세 별천 지로세’ 조선 후기 대표 선비인 응와 이원조 선생이 <포천구곡>이라는 시를 통해 포천계곡의 이름이 탄생했다. 계곡 상류의 폭포옆에 만귀정이라는 정자를 만들어 만년을 보냈던 곳으로 유명하다. 만귀정과 포천계곡은 성주 관광의 대표인 성주 10경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한 여름이면 수많은 피서객들이 만귀정 인근의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 명소로도 잘 알려있으며 조선시대 선비와 같이 푸르른 산 경치와 폭포를 벗 삼아 청정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영천 청제비

영천 청제비

2025-12-23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

영천 청제비는 신라 때 세워진 비석으로 총 2기이다.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에 있는 비석이 청제비이고, 왼쪽에 있는 비석이 청제중립비인데, 이 2기를 합하여 ‘청제비’라고 부른다. 오른쪽에 있는 청제비는 직사각형의 화강암 자연 판석으로 세운 것이다. 이 비석의 양면에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앞면에는 신라 법흥왕 23년(536)에 청못을 만든 내역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신라 원성왕 14년(798)에 청못을 보수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왼쪽에 있는 청제중립비는 조선 숙종 14년(1688)에 세워진 것이다. 이 비석도 양면에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앞면에는 신라 시대에 청못을 처음 만들었다는 사실과 조선 효종 4년(1653)에 비석이 두 동강이 나 다시 맞추어 세웠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수리한 사람의 이름과 맡은 임무가 새겨져 있다. 영천 청제비에는 비석을 세운 날짜와 청못 조성 공사 규모, 내용, 참여 인원수 등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신라 시대의 수리 시설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학술 자료이다.

남해가천암수바위

남해가천암수바위

2025-10-23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

해안에서 북쪽으로 100m 거리에 자리한 가천마을에는 가장 아래쪽 밭 모서리에 한 쌍의 암수바위가 5m 간격으로 서 있다. 이곳에서는 미륵불이라 하여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 부르기도 한다. 암미륵은 높이 3.9m, 둘레길이 2.3m의 크기로, 여인이 잉태하여 만삭이 된 모습을 한 채 비스듬히 누워 있고, 숫미륵은 높이 5.8m, 둘레길이 2.5m 크기로, 남성의 성기 형상으로 서 있다.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들이 숫미륵 밑에서 기도를 드리면 득남한다고 한다. 1751년 남해현령 조광진의 꿈에 나타난 노인의 계시에 의해 이 바위를 발견하였다고 전한다. 자식을 많이 갖는 것과 농사의 풍요로움을 빌던 대상이 마을 전체의 수호신으로 바뀌고, 다시 불교의 미륵불로 이어진 민간신앙의 한 예를 보여준다.

서울 운현궁

서울 운현궁

2025-12-02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64

운현궁은 경복궁과 같은 궁궐이 아니라 왕족의 친족들이 거주하던 궁으로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사적이다. 흥선대원군의 일가가 거주하고 생활한 사저였으며, 고종이 임금이 되기 전까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운현궁은 조선조 말기의 역사적 사건들 대부분이 시작된 곳이며 수많은 개혁정책과 쇄국정책이 시행된 곳이었기에 역사적 상징성이 남다르다. 운현궁의 대표적인 건물은 1864년 9월에 준공한 노안당과 노락당, 그리고 6년 후에 증축한 이로당이 있고, 지금은 한 개뿐이지만 그 당시 네 개였던 대문이 있다. 노락당은 운현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서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큰 행사때 주로 이용되었다. 노안당은 대원군이 사랑채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노안당은 전형적인 한식 기와집으로 추녀 끝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석남사(안성)

석남사(안성)

2025-06-16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촌새말길 3-120

석남사는 서운산 기슭에 자리한 작은 사찰로, 통일신라의 승려 석선이 창건한 곳이다. 고려 초기에 혜거국사가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고 그 후 화덕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영산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석탑재와 마애불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마애불은 높이 7m 정도의 자연암벽에 양각된 입상으로, 얼굴은 암벽의 균열로 인해 마멸이 심하다.

영원사(원주)

영원사(원주)

2026-03-12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판부면 영원산성길 685

영원사는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치악산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영원산성의 수호 사찰로 창건하여 영원사[永遠寺]라고 하였다가 조선시대 1664년(현종 5)에 인환이 중건하면서 영원사[領願寺]로 바꾸었다. 그 뒤 한때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39년에 이계호가 중건하였고, 오랜 풍우로 붕괴 우려가 있었던 법당을 주지 김병준이 중수하였으며 1990년 무이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폐허 직전의 영원사를 중창하여 이어오고 있다. 현존 건물로는 대웅전과 산신각, 종루, 요사채 2동이 있으며, 1988년 5월28일 전통사찰로 지정되었으며 절 뒤쪽 600m거리에 약 4km에 걸쳐 영원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치악산국립공원 금대분소에서 영원사까지 거리는 2.4km로 금대계곡길을 따라 오르면된다. 단풍이 한창인 가을, 영원사에 오르는 길에는 온통 울긋불긋한 숲의 모습이 산책의 운치를 더하곤 한다.

진부령 흘리마을

진부령 흘리마을

2025-12-12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간성읍 흘리길 185

인제군에서 고성군으로 넘어가려면 미시령(767m)을 넘거나 진부령 (529m)을 넘어야 한다. 인제군 용대삼거리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용대 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나 북으로 올라가면 알프스리조트 입구와 진부령고개가 나온다. 진부령 마을 관리 휴양지는 46호선 국도변에 있다. 향로봉 산맥인 칠절봉과 둥글봉에서 발원한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관광객을 사로잡고 있다. 여행객들은 이곳 마을에서 생산되는 산채, 옥수수, 감자, 약초, 토종꿀 등을 산지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으며 토종닭을 비롯한 토속 음식이 관광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피망 생산 단지로 향, 맛, 품질로 비교가 안 되는 전국 제일의 피망 산지이며 또한 고랭지 채소와 치커리 재배로 고소득 마을이다.

약사사(인천)

약사사(인천)

2025-05-26

인천광역시 남동구 풀무로 48

1932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하던 보월스님이 우연히 이곳 만월산을 지나게 되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동서남북이 한눈에 다 보이고, 산세가 팔을 뻗어 시가지를 감싸 안은 듯한 모양이 예사롭지 않아 그 이듬해 이곳에 작은 암자를 짓게 하고 약사암이라 명명하였다. 지금의 약사사보다 조금 더 산 위쪽이었는데, 일반 대중에게 부처님의 설법이 좀 더 쉽게 다가가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보월스님은 그 뒤 금강산으로 돌아갔고, 그를 이어 인천 해광사에서 수도 중이던 한능해 스님이 이곳을 지켰다. 그는 1960년대 들어 지금 위치에 대웅전 등을 짓고, 약사암을 약사사로 높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재 약사사에는 대웅보전, 극락전, 약사전, 칠성각, 산신각, 미륵불, 독성각, 용국각, 조사당, 일주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