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7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387-1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 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2026-07-07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경주 계림은 첨성대(瞻星臺)와 월성(月城)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閼智)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 탈해왕(脫解王) 때 회공(瓠公)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金櫃)가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하여 성(姓)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始林), 구림(鳩林)이라 하던 이 숲을 계림(鷄林)으로 부르게 되었다. 계림은 신라의 국호(國號)로도 쓰이게 되었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왕위는 박씨 왕족인 파사왕에게 계승되어 왕이 되지 못했고, 후대인 내물왕 대부터 신라 김씨가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경내의 비는 조선 순조(純祖) 3년(1803)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신라 왕성 가까이에 자리한 계림은 신라 김씨 왕족의 탄생지로 여겨져 신성시되고 있다. 지금도 왕버들과 느티나무가 하늘을 가릴 듯이 우거져 있으며, 북쪽에서 서쪽으로 작은 실개천이 굽이쳐 흐른다. 대릉원-계림-반월성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옆에는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피어나 유적지의 운치를 한층 더해 준다.
2025-03-12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가 공무를 집행하던 곳이다. 도내의 일반 행정·군사·조세 및 중요한 재판이 행해졌다. 원래 태조 4년(1395)에 충주에 설치되었으나 선조 35년(1602)에 공주로 옮겨와 충청도 전체를 관장하는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여지도서』에는 선화당을 비롯하여 50여 채의 건물과 칸수를 기록하고 있으나, 지금은 선화당과 포정사 및 삼문, 부속건물 1채만 남아있다. 지금의 선화당 건물은 순조 33년(1833)에 지은 것으로, 원래는 공주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나 1932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앞면 8칸·옆면 4칸의 규모인데, 원래는 앞면 9칸·옆면 5칸이었던 것이 옮기면서 축소되었다. 지붕의 옆선이 여덟 팔 (八) 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내부는 칸을 막지 않고 전체를 통칸으로 하여 넓은 공간을 마련하였고 2열로 기둥을 세웠다. 중앙은 우물 정(井) 자 모양의 천장으로, 주위의 툇간은 서까래가 드러난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임금의 덕을 드러내어 널리 떨치고 백성을 교화하는 건물임을 뜻하는 ‘선화당(宣化堂)’이라는 현판을 앞면 중앙에 달았다. 조선 중기의 수법이 남아있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축으로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2026-01-05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공주 우금치 전적은 1894년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최후의 격전을 벌인 장소이다. 공주에서 부여로 넘어가는 기슭의 고개로 우금 고개, 우금재 또는 비우금 고개라고도 부른다. 우금치 고개는 호서지방의 요충지이며 중부지역의 거점으로, 충청도 감영소재지가 있는 공주 남쪽의 중요한 관문이었다. 1894년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반봉건과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죽창으로 대항한 곳으로 한국 근대사에서 매우 뜻깊은 장소이다. 우금치 전적은 역사의 현장으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으며, 동학군의 넋을 위로하기 1973년 동학혁명군위령탑을 세웠다.
2025-12-22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아산만로 37-37
아산 세계꽃식물원은 연중 3,000여 종의 원예종을 감상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온실식물원이다. 이곳은 1994년 아산화훼영농조합법인 농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네덜란드 등에서 튤립, 백합, 아이리스 등 구근류들을 전문적으로 수입하여 꽃을 생산하여 국내 판매, 해외 수출을 하던 꽃 농장이었다. 하지만 국내 화훼시장 기반이 열악하고 꽃과 식물이 건강한 소비가 일어나지 않아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타개책으로 2004년부터 재배온실을 개방한 것이 세계꽃식물원의 시작이다. 세계꽃식물원의 이름은 희귀한 꽃을 전시하는 곳이 아닌 세계의 원예종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곳을 의미한다. 식물원에서는 씨앗이 잎이 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이 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일회성의 축제처럼 화려한 꽃 대궐이 아닐 수도 있지만 식물의 서사를 보여주는 곳이 세계꽃식물원이다. 365일 꽃이 피는 곳이지만 그 결과인 꽃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식물의 생장 전체를 볼 수 있다. 식물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화훼농장으로 열대 관상용 수목들과 화훼류들을 직접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2015년부터는 리아프 가든센터를 오픈하여 꽃을 단순히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생활 속 꽃들이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경험들을 제공하고 있다.
2026-03-12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정선읍 비봉로 67-9
정선향교는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정선읍에 위치한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공자와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을 교육하기 위해 세워졌다. 본래는 삼봉산 기슭에 있었으나 1605년(선조 38년) 대홍수로 소실된 뒤 여러 차례 이전을 거쳐 1732년(영조 8년)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대성전과 동·서무를 먼저 완공하고 다음 해에 명륜당과 부속 건물을 지어 교육 공간을 완비하였다. 1960년 대성전은 새롭게 단장되었고 명륜당과 기타 건물들은 이후 지속적으로 보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육 기능을 수행했으나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 기능만 남게 되었다. 현재는 봄·가을로 석전을 지내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한다. 정선향교는 향교 문화 체험, 찾아가는 향교, 문화 교실, 선현지 탐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성년식과 기로연도 진행하고 있으며, 기로연은 조선시대 원로 문신의 예우를 위해 마련된 전통 행사이다. 향교 건물은 전학후묘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명륜당이 앞쪽에, 대성전이 뒤쪽에 위치한다. 향교는 지역 사회의 전통 교육과 예절 문화 전승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2026-03-11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로 170 (정왕동)
오이도는 시흥시의 서남쪽 해변에 위치한 섬 아닌 섬으로서 각종 어패류가 많이 나는 관광지이자 신석기시대를 비롯한 각 시기의 유적이 여러 차례에 걸쳐 발굴되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중요 유적지이다. 조선시대에 ‘오질이도(吾叱耳島)’, ‘오질애도(吾叱哀島)’ 등으로 불린 이곳은 삼면이 바다여서 만조 때는 출렁이는 바다 내음을, 썰물 때는 살아 움직이는 바다 생물들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고 저녁에는 아름다운 낙조를 만날 수 있는 시흥의 명소이다.
2025-03-24
부산광역시 금정구 체육공원로399번길 324
스포원파크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위해 조성된 금정체육공원을 시에 개방한 시설로, 8만 8천 평의 평지 부지에 경기장 3동(경륜장, 스포츠센터, 테니스장), 야외 체육시설, 교육체험시설, 수변광장과 숲이 있는 종합 레포츠 공원이다. 전체 부지의 1/3이 40만 그루의 녹음인 데다 공원 내 에티켓 준수 시 돗자리, 소형텐트가 허용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레포츠 시설이 구비되어 있어 취향에 따라 원하는 활동을 즐길 수 있어 휴일 힐링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스포츠센터에서는 실내 종목으로 수영, 골프, 피트니스, 배드민턴, 탁구와 키즈랜드, 문화교실을 이용할 수 있다. 주 경기장은 BNK썸 여자농구단의 홈경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야외체육시설로는 인조잔디 축구장, 풋살장과 국제대회개최 규격의 하드코트 실내‧외 테니스장이 있으며, 공원 외곽을 따라 순환 조깅로‧자전거로 가 조성되어 있어 간단한 산책과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자전거는 테니스경기장 1층 자전거대여점에서 대여가 가능하다. 또한 청소년을 위한 교육체험시설로 탄생의 신비 성문화센터, 어린이 교통나라, 재난안전체험장의 교육시설뿐만 아니라, 자전거 경주 관람을 즐기는 성인을 위한 경륜장도 마련되어 있다.
2025-10-27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금산은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라는 사찰을 지은 뒤 보광산으로 불리어 왔으나, 고려 후기 태조 이성계가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오르게 되자 그 영험에 보답하는 뜻으로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으로 금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산은 다도해에서 유일한 큰 체적의 화강암 산임에도 불구하고 토산 성격이 강해 남해안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낙엽수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전국의 3대 기도도량인 보리암이 위치하는 등 상징적인 의미가 많은 명승지이다.
2025-10-27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노도길 76-16
벽련마을에서 나룻배로 건너가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섬 노도는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유배되어 56세의 일기로 유형의 삶을 마감했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배를 젓는 노를 많이 생산했다고 하여 노도라고 불린다고 하며, 섬의 생김새가 삿갓을 닮았다 하여 삿갓섬 이라고도 불린다. 김만중은 두고 온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글과 문학으로 승화시켜온 산증인이다. 노도에는 그가 직접 팠다는 샘터와 초옥 터, 그리고 허묘가 남아 그의 자리를 쓸쓸히 메우고 있다. 조선 후기 정치가로서, 문신으로서, 효자로서, 소설가로서, 한글애호가로서, 시인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대문호 서포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남해의 작은 섬 노도는 유배문학의 산실이다. 2011년부터 시작한 노도 문학의 섬 조성 사업은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서포의 문학정신을 결합한 관광자원 개발 사업으로 상주면 양아리 노도에 서포 문학관, 민속체험관, 작가 창작실, 서포 초옥 등을 조성하여 문학 애호가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고, 남해읍에는 유배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