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0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죽림길 43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은 초간 권문해(1534~1591)의 할아버지 권오상이 지은 가옥으로, 숲이 우거진 낮은 뒷동산을 배경 삼아 경사진 대지에 동남향으로 위치한다. 안채는 ㅁ자형으로 정면 5칸, 측면 5칸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집이다. 2단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어 건물 전체가 매우 높고 웅장하다. 안채의 오른쪽 앞면에는 사랑채인 별당(보물 제457호)이 나와있고, 왼쪽에는 대동운부군옥목판 및 고본(보물 제878호), 권문해 초간일기(보물 제879호) 외 여러 서적을 보관한 백승각이 있다. 별당 앞쪽에 행랑채 겸 대문채가 있었으나 철거되었다. 안채와 사랑채인 별당은 두 공간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연결하였다. 이는 조선 전기 손님 접대를 중요하게 여기던 살림집의 특징이자 누각형 접객 건물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드문 사례이다. 안채 오른쪽 뒤편 사당은 출입문에 붙였다 떼었다 하는 중간 설주가 있다. 이러한 설주 양식이 나타나는 곳은 이 종택이 유일하다. 조선 전기의 건물로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당대 건축 구조와 양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은 풍수지리상 명당자리로 유명한 죽림리 대수마을에 있다. 조선 중기 문인 초간 권문해(1534~1591)의 할아버지 권오상이 지었다고 전하며,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국가민속문화유산 제201호) 안채의 오른쪽 앞에 있는 별당 형식의 사랑채이다. 평지 위에 막돌로 높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집을 세우고 난간을 돌린 다락집 모양이다. 실제로는 안채와 연결되어 있으나 지붕이 팔작지붕이기 때문에 정면에서 보면 독립된 건물처럼 보인다.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오른쪽 3칸은 대청이고, 왼쪽 1칸은 온돌방이다. 대청 앞면은 문짝 없이 개방하고 옆면과 뒷면은 판벽을 쳤다. 외관은 네모 기둥에 주두만을 얹어 대들보를 받친 간소하고 소박한 모습이나 별당 내부 천장은 상당히 공을 들여 정교하게 꾸몄다. 일반 주택 건축으로는 보기 드물게 뛰어난 기법으로 건물 안쪽을 장식하여 꾸민 조선 시대 별당 건축물이다.
2025-08-22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433번길 186
수종사는 남양주 조안면 송촌리 운길산의 정상 부근에 있는 봉선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일찍이 서거정이 동방 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격찬한 명당으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 풍경을 볼 수 있으며 인근 산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수종사는 신라 시대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으며, 조선 세조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세조가 지병 치료를 위해 강원도에 다녀오다가 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보내던 중,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아가 보니 토굴 속에 18 나한상이 있고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종소리를 내더라는 것이다. 이에 세조가 18 나한을 봉안해 절을 짓고 수종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다. 그러나 사찰에 세조의 고모인 정의옹주의 부도가 남아있는 것은 그 이전에 이미 상당 규모의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 응진전, 약사전, 산신각, 종각, 경학원, 요사 등이 있다. 중요 문화유산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수종사부도내유물과 수종사 오층석탑이 있다. 사찰안에는 세조가 하사했다는 500년 수령의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있다. 사계의 풍광이 모두 빼어나지만, 가을 단풍이 물드는 시기의 풍경이 특히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수종사 주차장에서 절까지는 400m로 도보로 15분 정도 소요된다.
2026-03-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조소1길 20
이곳은 녹두장군인 전봉준 선생이 동학운동을 일으킬 당시 거주하였던 집이다. 1894년 갑오 동학 혁명 당시 전봉준이 살았던 오두막집으로 흙담 네 칸 집이다. 당시 우리나라 가난한 농민들이 살았던 전형적인 가옥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부엌은 서쪽에 위치하여 이에 이어서 큰방과 윗방이 배치되는 것인데 이 집은 이 순서를 따르지 않고 있다. 큰방과 윗방은 장지로 칸막이가 되어 필요한 경우 터놓을 수 있으며 천장은 두 가지 다 연동 천장이다. 그리고 두 방의 전면에는 퇴를 놓았으며 대살문으로 드나드는 끝방 전면에 반쪽에는 짧은 담을 두르고 이곳에 땔나무 등을 두었으나 이것이 본래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부엌의 전후벽에는 널문을 달아 필요한 때에는 잠글 수도 있도록 되었다. 대문의 동편에는 잿간을 겸한 변소가 있으며 출입문으로는 한 짝의 열매문을 달았다. 전봉준의 공초록에는 이 곳에 와서 수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촌로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웃 마을 양교리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다도면 암정로 398
운흥사는 전통사찰로, 1775년 정문이 쓴 진여문4중창기에 의하면 당 희종년간(846∼887)에 도선국사가 이곳의 지세가 좋아 흥덕으로부터 와서 이곳 도성암에서 첫 강회를 열고 터전을 닦은 후 신라 효공왕 년간(897∼911)에 웅점사로 개칭되었고 웅치사, 운흥사로 바꾸었다. 1775년 당시에는 대웅전 침계루 등 380여 칸의 규모를 갖춘 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규모가 축소되었다가 1998년 혜원스님이 부임하면서 대불사가 진행되었다. 또한, 운흥사는 조선 후기 승려인 초의선사가 출가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운흥사 입구에는 운흥사와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있는 남녀 한 쌍의 돌 장승이 있다. 사찰 앞에 세우는 사찰 장승은 경내의 부정을 금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기능을 지닌다. 석장승은 사찰에서 500m쯤 떨어진 밭 가운데 마주 보고 서 있는데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의 모습이다. 남장승은 높이 270㎝, 둘레가 192㎝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로 크고 둥근 눈에 뭉툭한 코, 송곳니가 삐져나와 있지만 인자한 할아버지의 얼굴이며 몸체에는 상원주장군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여장승은 웃는 표정으로 소박한 모습이다. 깊은 선으로 둥근 눈이 표시되었고 입언저리의 잔 수염과 주걱턱 표현이 인상적이고 몸체에는 하원당장군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여장승의 뒷면에 기록된 조선 숙종 45년(1719)이라는 내용을 통해 정확한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다. 사찰의 위치가 '다도면'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은 조선시대의 차 문화와 관련이 깊으며, 지금도 사찰 주변에 야생 차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2025-03-18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가인리 산60-20
남해 가인리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는 마을 주민의 신고로 통해 처음 알려졌다. 1997년 진주교육대학교 서승조 교수가 이를 학계해 보고하였다. 그 후 2005년 3월 31일 경남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19일에 천연기념물로 승격되었다. 이곳에서는 익룡의 발자국, 대형 초식 공룡(용각류)의 발자국, 두 발로 걸었던 초식 공룡(조각류)의 발자국, 다양한 종류의 육식 공룡(수각류)의 발자국, 새 발자국, 도마뱀 발자국, 거북이 발자국 등이 발견되었다. 이외에도 공룡 피부 자국과 뼈 화석도 발견되었다. 발자국 화석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두 발로 걷는 익룡이 남긴 발자국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익룡의 발자국은 대부분이 네 발로 걷는 익룡의 것으로, 두 발로 걷는 익룡의 발자국은 세계적으로 처음 발견되었으며, 그 이름은 ‘해남이크누스 가이엔시스’라고 붙였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을 공룡과 사람이 함께 살았던 증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용각류의 발자국은 브론토사우루스와 같은 공룡이 남긴 것으로 생각되어, 그 이름이 ‘브론토포두스 버디아이’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나오는 벨로시랩터와 같은 작은 육식 공룡의 발자국도 발견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육식 공룡 발자국도 발견되었는데, 발자국의 길이가 1.1㎝이다. 이 외에도 가운뎃발가락이 매우 긴 육식 공룡 발자국(글라래이터)도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새의 발자국은 세 가지가 넘는다. 백악기에 처음으로 발견된 도마뱀 발자국도 있는데, ‘네오사우로이데스 코리아엔시스’라고 한다. 이 화석 산지는 백악기 척추동물의 발자국이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게 발견된 곳이며, 세계 최초로 발견된 발자국들도 많은 곳이다. 발자국 화석뿐만 아니라 공룡 피부 자국, 뼈 화석, 나뭇가지 화석 등은 1억 년 전 다양한 생물들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알려 준다.
2025-08-05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설림3길 49 (소룡동)
은적사는 전라북도 내에 있는 사찰 가운데 가장 오래된 백제 시대 사찰이다. 천방사, 선림사 등으로도 불리었던 은적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군산시 소룡동 설림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613년(백제 무왕 14년, 신라 진평왕 35년) 신라 원광 법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952년(고려 광종 3) 정진 국사가 중창, 1373년(공민왕 22) 고승 나옹이 2차 중창, 1781년(정조 5) 보경 선사에 의해 중건, 1937년 허옹 선사가 중건하는 등 네 차례에 걸쳐 중창·중건이 있었다. 현재의 대웅전과 극락전 등 전각들은 1985~1995년 사이에 대규모 중창 불사로 새로 지어진 것이다. 이전의 전각으로 극락전, 명부전, 조사전 등이 있었으며 특히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와 다포 형식이다. 대웅전에 봉안된 은적사 석가여래 삼존상(전라북도 유형 문화재)은 1629년(인조 7)에 수종 화상이 조성한 대형 목불 좌상으로 조성한 불상으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산사 인근의 절에서 옮겨왔다고 전한다. 형식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서 모시고 있는 모습이다. 본존 석가여래는 사각형의 엄숙한 표정에 오뚝한 콧날, 당당한 어깨, 균형 잡힌 몸체, 안정감 있는 무릎 자세 등 신체의 비례가 뛰어나고 법의의 주름 표현이 아름답다. 얼굴은 네모나며 콧날이 오뚝하고 눈과 입 등의 표현이 정제되어 있다. 문수보살의 얼굴은 본존불과 같은 형식이다. 머리에는 위쪽으로 벌어진 중국식 보관을 쓰고 있는데 윗부분에는 붉은색, 아랫부분에는 금색이다. 크기는 전체 높이 114㎝, 머리 높이 23㎝, 어깨 너비 49㎝, 무릎 너비 71㎝, 무릎 높이 19㎝ 정도이다. 보현보살의 얼굴 역시 문수보살과 같은 모양이다. 두 보살상 모두 팔에는 꽃무늬가 새겨진 팔찌를 하고 있으나 특이하게도 보현보살은 왼쪽 팔이 노출되어 있으며 배 부근의 옷자락 밑으로 장식적인 꽃무늬 조각이 새겨져 있다. 크기는 전체 높이 114㎝, 머리 높이 23㎝, 어깨 너비 47㎝, 무릎 너비 72㎝, 무릎 높이 20㎝ 정도이다. 본존인 석가여래불은 간소한 나무 대좌에 결가부좌한 채 항마촉지인을 맺고 있으며 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낮게 표현되어 있다. 크기는 전체 높이 114㎝, 머리 높이 41㎝, 어깨 너비 54㎝, 무릎 너비 78㎝, 무릎 높이 19㎝ 정도이다.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본존불 뒷면에는 후불 탱화로서 영산회상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음 탱화와 신중 탱화를, 오른쪽에는 칠성 탱화와 산신 탱화가 걸려 있다.
2026-07-21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동국사길 16
동국사(東國寺)는 1909년 일본 승려 선응불관 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일본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며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온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그리하여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의 많은 창문이 일본식 사찰의 특징을 나타낸다.조계종 제24교구인 고창 선운사의 말사로, 동국사의 대웅전은 2003년 7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동국사의 본래 이름은 금강선사였다. 금강선사는 1909년 일본인 승려 내전불관이 군산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창건한 조동종 사찰이다. 일본 불교는 1877년 부산 개항과 함께 일본 정부의 요청에 의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정토진종 대곡파가 포교를 개시하였으며, 1904년 군산에도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이후 일연종이 뒤를 이었다. 결국 일본 불교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까닭은 순수한 불교 포교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일본 불교를 포교하고자 1911년 6월 3일 자로 사찰령을 발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 불교는 전국에 별원, 출장소, 포교소 등을 건립하였다. 금강선사가 창건되기 전, 군산에는 본원사, 군산사, 안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금강사를 창건한 내전불관은 1909년 당시 77세의 고령으로 군산 지역을 순회하던 중, 군산 일조통에 있던 집을 빌려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1913년 7월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금의 동국사를 신축하였다
2025-11-28
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도장포마을 바닷가에 위치한 커다란 바위로 신선이 놀던 자리라 하여 신선대라 불린다. 신선대는 주변 해안경관과 더불어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갓처럼 생겨 갓바위라고도 불리는데 벼슬을 원하는 사람이 이 바위에 득관의 제를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바위에 서면 멀리 다도해 풍경이 펼쳐지고, 바위 옆으로 몽돌이 깔려 있는 작은 해수욕장인 함목해수욕장이 있으며, 도장포 마을 언덕에 신선대 전망대가 있어 탁 트인 바다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신선대 전망대는 해금강 가는 길 오른쪽에 있으며 자동차로 접근하기 용이하다.
2026-06-19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청계천은 종로구와 중구 사이를 가르는 10.84㎞의 하천이다. 2003년 7월부터 2005년 9월까지 복개한 청계천로와 삼일로 주변 5.84㎞ 구간을 복원하고 총 22개의 다리를 설치하는 등 시민들의 쉼터로 탈바꿈하기 위한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하였다.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각종 문화행사 등이 열리고 있으며, 누구나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도심 속 휴식처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25-09-09
서울특별시 종로구 홍지동
탕춘대성은 조선 후기 도성방어체계를 보여주는 독특한 구조의 방어성으로, 한양의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여 세운 성이다. 도성과 북한산성 사이 사각지대인 지형에 맞게 두 성 사이를 이어 성벽을 만든 일종의 관문성(關門城) 성격을 지녔다. 성곽 둘레는 약 4㎞로서, 성 안에 연무장(演武場)인 연융대(鍊戎臺)를 만들고 군량창고 등을 갖추었다. 성벽은 크기가 고른 정방형의 둘로 반듯하게 쌓아 숙종 때 성을 쌓는 기법을 잘 보여준다. 홍지문은 홍예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문루를 지었는데, 대개의 성문처럼 우진각지붕이다. 그 옆으로 이어진 수문(水門)인 오간수대문은 홍예 5칸을 틀어 수구(水口)로 썼다. 성의 이름은 연산군 때 세검정 동편 봉우리에 탕춘대(현재 세검정초등학교)를 쌓고 연회를 베풀었던 것에서 유래했는데, 홍지문은 한북문으로도 불렸다. 1921년 홍수로 인해 홍지문과 오간수대문은 무너졌으나 1977년 탕춘대성과 함께 다시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