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춘천댐

춘천댐

2024-07-31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서면 오월리

춘천댐은 신북면 용산리와 서면 오월리 사이의 북한강 본류에 건설된 수력 발전소로 1965년에 완공되었다. 댐 높이는 무려 40m에 이르고 담수면적은 총면적 17평방km이다. 화천으로부터 내려오는 물길을 막아 설립된 춘천호 주변은 맑은물과 푸른 자연 환경을 지니고 있다. 춘천댐에 의해 만들어진 춘천호의 수위는 해발 130m로 계곡 모양을 따라 S자 모양으로 이루어져 호수라기 보다는 마치 계곡을 따라 흐르는 강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춘천시에서 북쪽으로 약 1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춘천댐에서 의암댐으로 이어지는 약 19km의 길은 춘천에서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이다. 댐 아래와 위에 유원지 시설이 되어 있어 낚시와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편의 시설이 있고 댐 서쪽 밑에는 계곡을 막은 수영장도 있다. 주변에 팔각정, 춘천댐 매운탕촌, 애니메이션 박물관 등이 있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나들이 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달성 현풍 석빙고

달성 현풍 석빙고

2025-08-28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현풍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이다. 남북으로 길게 축조되어 있으며, 출입구가 개울을 등진 능선 쪽에 마련된 남향구조이다. 돌의 재질은 모두 화강암으로 외부에서 보면 고분처럼 보인다. 입구는 길쭉한 돌을 다듬어 사각의 문틀을 만든 후 외부공기를 막기 위해 돌로 뒷벽을 채웠다. 외부는 돌을 쌓고 점토로 다져서 흙을 쌓아 올렸다. 잘 다듬어진 돌로 벽과 천장을 쌓았는데 천장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네 개를 틀어 올리고 그 사이사이에 길고 큰 돌을 얹어 아치형을 이루게 하였다. 천장에는 통풍을 위한 환기구가 두 군데 설치되었고 빗물에 대비한 뚜껑이 있다. 바닥은 평평한 돌을 깔고 중앙에 배수구를 두었다. 당시에는 얼음창고가 마을마다 설치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작은 현풍고을에 이러한 석빙고가 만들어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1982년 석빙고 주위의 보수작업 때 축조 년대를 알려주는 건성비(建城碑)가 발견됨으로써 1730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용연사(대구)

용연사(대구)

2025-07-07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용연사길 260

용연사는 사찰 입구에 있는 못에서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사찰은 914년(신라 신덕왕 3년)에 보양국사가 창건하였으며, 1419년에는 천일대사가 중창하였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여러 전각들이 차례로 중건되었고,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용연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유래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한 끝에 가피를 받아 금란가사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귀국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자장율사는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오대산 월정사, 영축산 통도사 등지에 진신사리를 봉안하였고, 이들 다섯 사찰은 5대 적멸보궁으로 불리게 되었다. 용연사의 진신사리는 임진왜란 당시 전란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겨졌던 것을,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이 다시 통도사로 모시던 중 사리 1 과를 이곳 용연사에 봉안하였다. 이후 건봉사, 도리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8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불리게 되었다. 사찰 내에 위치한 금강계단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수계의식을 행하는 신성한 장소로,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 계시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금강계단 앞에는 적멸보궁이라는 전각이 세워지며, 이 전각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금강계단에 모셔진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예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용연사의 금강계단, 삼층석탑, 극락전,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 유물 등은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되어 지정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길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림욕을 즐기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며, 이 길은 비슬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이기도 하다.

예연서원

예연서원

2025-03-19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구례길 123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곽재우(1552∼1617)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곽재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조직하여 경상도 일대에서 활약하여 큰 공을 세운 인물로 붉은 옷을 입은 장군이라는 뜻의 ‘홍의장군’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광해군 10년(1618)에 ‘충현사’로 처음 세웠고 현종 15년(1674)에 규모를 확장하여 서원의 모습을 갖추었다. 숙종 3년(1677) 나라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예연’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고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77년과 1984년에 걸쳐 복원하였다. 현재는 곽재우의 재종숙으로 정유재란 때 공을 세운 곽준의 위패를 추가로 모시고 있다. 경내 건물로는 사당과 강당 등 주요 건물과 제물을 준비하여 두던 고사, 숙소로 사용되던 동·서재 등이 있다. 사당은 곽재우와 곽준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강당은 유림의 회합장소와 교육 장소로 사용하던 건물로 중앙에는 마루를 구성하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한 구조이다.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낸다. 경내에는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비석이 있어 흥미롭다. (출처 : 국가유산청)

소재사(대구)

소재사(대구)

2025-11-20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휴양림길 228

소재사는 비슬산 조화봉 남서 중턱 해발 430m에 위치한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 말사이다. 소재사라는 이름은 일체의 재앙을 소멸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절로서,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그 뒤 공민왕 7년인 1358년에 진보가 중창하였고, 1457년 활륜이 중건, 1510년 외암이 중수, 1701년 청심이 중창, 1841년 완산이 중창하였다. 그 뒤 1857년에 법로가 중수하였으며, 1900년 왕산이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대웅전은 1976년 달성군에서 해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러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명부전 역시 최근에 허물어져 다시 중수하였다. 특히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보살좌상은 최근 개금불사에서 출토된 복장품에서 1674년에 조상했고 건륭 6년 신유 3월 20일에 중수개금을 시작하여 4월 6일에 마쳤다고 하는 복장기를 확인하였다. 즉, 조상연대와 중수기록이 있고 또한 지장보살로서는 비교적 큰 규모이며 조선 후기 작품이면서도 조선 전기 양식을 일부 간직하고 있어 조상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부근에는 피부병과 고질병에 좋다는 약수가 솟는 금물정이 있다. 샘의 물 표면에 금가루 모양의 작은 먼지들이 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대견사

대견사

2026-07-29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일연선사길 177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대견사는 대구광역시 비슬산 정상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이다. 대견사는 신라 하대 초기인 헌덕왕 때에 창건된 신라 천년 고찰이다. 이 절을 창건한 주체는 헌덕왕과 왕비였던 것으로 보이며,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 스님이 1227년 승과에 22세 나이로 장원급제하여 초임 주지로 온 이래, 22년간 주석하여 삼국유사 자료수집 및 구상을 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사찰 역시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폐사되었다가 광해 3년인 1611년과 인조 11년 두 차례에 걸쳐 크게 중창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18세기 들면서 다시 폐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1900년 영친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하여 이재인이 중창하였으나 1908년 허물어지기 시작하여 1917년 6월 『조선 총독부 관보』에 ‘대견사를 폐지한다’고 공시하면서 그 터만 남게 되고 폐사지에는 삼층석탑만이 위태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 한 때는 ‘대견사지’라고 불리었다. 그러다 달성군과 조계종 동화사에 의해 2011년 11월 대견사 재건 공사가 착공되어 2014년 3월 적멸보궁, 요사채, 산신각, 목조 와가 등 건물 4동이 완공되었다. 이로써 대견사가 폐지된 지 100여 년 만에 다시 복원되었다. 설악산봉정암, 지리산법계사와 더불어 1,000m 이상에 자리 잡은 사찰 중 한 곳이며, 불상이 아닌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적멸보궁이라 한다. 대견사에 봉안한 진신사리는 2013년 11월 동화사가 스리랑카 쿠루쿠데사원에서 모시던 부처님 진신사리 1 과를 기증받아 이운 한 것이다. 이 진신사리는 서기 103년부터 스리랑카 도와 사원에서 보관해 오다 1881년부터 쿠루쿠데 사원에 모셔진 사리 4 과 중 하나다. 비슬산 정상에 위치하여 봄이면 비슬산 참꽃 군락지에 진달래가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아침가리계곡

아침가리계곡

2025-03-07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기린면 추대길 58

아침가리는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한 마을을 칭한다. 인제소재 방태산 기슭에 있는 산마을 삼둔사가리 중 하나로 오지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시간만 햇빛이 비치고 금방 저버리는 첩첩산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침가리계곡은 시원하고 맑은 물과 계곡을 따라 펼쳐진 원시림으로 인해 사시사철 트레킹 코스로 알려져 있다. 아침가리트레킹은 방동약수에서 아침가리까지 난 길을 한참을 걸어 올라간 뒤 계곡길을 트레킹 하며 내려가는 코스이다. 이 코스는 정해진 길이 없으며, 계곡을 따라 걸어도 되고 숲 그늘에서 걸어도 된다.

정응민예적지(판소리공원)

정응민예적지(판소리공원)

2023-05-30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 영천길 9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에는 보성소리라는 판소리 명가를 이루어낸 송계 정응민의 생가터와 예적비가 있다. 예적비 위로는 정재근, 정응민, 정권진으로 이어지는 소리 가계 3대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보성제는 강산제 소리의 단점을 보완해 더웅혼한 소리제로 발전을 시킨 유파로서 오늘날 판소리 계에서는 보성제가 서편제 - 강산제 - 보성제로 이어지는 서편제의 한 갈래로서가 아닌 서편제, 동편제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또 하나의 유파로 인정받고 있다. 정응민은 1964년 소리인생 70의생을 마감하지만 그가 개척한 흥부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춘향가 등 다섯 바탕의 보성제 판소리는 오늘날 전국 각지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판소리제이다. 도강마을에는 북모형의 예적비 외에 목을 트이게 해 달라고 염원하던 북바위라 부르는 소리 바위, 수많은 명창들이 득음을 위해 피를 토해 내던 일림산 계곡의 흑운다리 폭포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주천서원

주천서원

2025-03-18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주천면 금평1길 30-7

주자를 중심으로 여대림·주잠·이황·이이·김충림·김중정 등 7인(人)을 기리고 있는 서원이다. 1924년 광산 김 씨 문중 사당으로 처음 짓고 ‘주천사’라 하였다. 1975년 성균관장의 인증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서원은 홍살문, 외삼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반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9월 15일 제사 지내고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천황사(진안)

천황사(진안)

2025-11-26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정천면 수암길 54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정천면 갈룡리 구봉산에 있는 사찰인 천황사는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헌강왕 때인 875년에 무염 국사가 창건하였고, 1065년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였다. 본래 이 천황사는 주천면 운봉리에 있었으나 숙종 때 중건을 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설선당, 요사채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유형문화유산 제17호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120㎡가 넘는 매우 큰 건물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나한상과 동자상이 벽화로 조성되어 있다. 이외의 유물로는 부도 3기가 전해지는데, 절 입구에 있는 평생 ‘금강경’을 강의하던 명봉의 부도와, 대웅전에서 산 쪽으로 15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애운의 부도이다. 애운부도는 높이 170㎝의 크기로 현재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제1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애운부도 옆에는 높이 213㎝ 크기의 부도 1기가 남아 있다. 1995년 사자사(師子寺)라는 명문이 새겨진 신라 때의 기와가 발굴되기도 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출처: 진안군 문화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