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심곡서원

심곡서원

2025-07-04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심곡로 16-9 (상현동)

조선 중종 때 사림파의 영수였던 정암 조광조(1482~1519년)를 주향[主享]으로 하는 심곡서원은 강당이 전면에 위치하고 사우가 뒤쪽에 배치된 조선 시대 서원의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1871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시 조광조를 모신 서원 중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현재까지 존속되고 있다. 광교상현IC에서 차량으로 약 4분, 신분당선 상현역에서 약 3분 소요되며 역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문정공 조광조 선생 묘 및 신도비가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인근에 에버랜드, 한국민속촌,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과 융건릉, 지산포레스트리조트스키장, 덕평공룡수목원, 한택식물원 등이 있다.

이항로선생 생가

이항로선생 생가

2026-01-21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화서1로 239

양평군 서종면 벽계마을에 위치한 이항로선생 생가는 200여년 전 이항로의 아버지가 지은 집으로 이항로가 태어나서 일생을 보내며 양헌수·김평묵·유중교·최익현·유인석·홍재학 등 많은 선비들을 길러낸 곳이다. 마을의 명칭이 벽계인 것은 벽진 이씨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항로선생 생가는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던 사랑과 하인들이 거처하던 대문간에 붙어 있는 행랑, 집의 안쪽에 있는 ㄱ자형 안채는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주택 구조를 따르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같이 지은 것으로 광복 후에 헐린 것을 복원한 것이다. 강당은 화서선생의 강당 설립 구상에 따라 화서집을 참고하여 건축하였다. 가옥의 배치는 현재 역 ㄱ자형 안채와 ㄷ자형 사랑채가 가운데 담장을 두고 긴 ㅁ자형 형태를 가진다. 툇마루는 쪽마루가 많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완충 역할을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안채는 평사량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기단과 주초는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예전의 모습을 고증하여 새롭게 지었다. 가옥의 부엌 쪽 뒤뜰에는 4칸 규모의 초가 한 채가 있다. 마을에는 이항로 생가 외에도 노산사가 있어 이항로선생의 높은 학식과 유학을 전승하고 있다. 노산사는 벽진 이씨 집안의 것이라기보다 마을 유림의 영당으로 주자, 우암 송시열, 화서 이항로의 영정을 모시고 매년 음력 9월 15일 많은 유림들이 모여 제를 지낸다. * 이항로 선생 이항로는 조선 후기의 학자로, 1808년(순종 8) 과거에 합격했으나 포기하고 학문과 제자 양성에만 전념하며 조선 후기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형성하였다.

이항복선생묘

이항복선생묘

2025-08-05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

이항복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시호는 문충이며, 호는 백사이고, 본관은 경주이다. 이항복 선생은 이조참판‧병조판서‧우의정‧영의정 등의 벼슬을 하였으며 ‘오성과 한음’의 오성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선조 13년(1580)에 알성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22년(1589)에 예조정랑으로 정여립의 모반 사건을 다스렸다. 그 후 오성군으로 봉해지고 형조판서, 병조판서, 좌․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라 오성부원군에 봉해졌다. 묘는 권율장군의 딸이었던 부인 안동권씨와 쌍분을 이루고 있다. 묘역 앞의 비탈 아래에는 이항복을 모신 영당이 있으며 영당 오른쪽에는 효종3년(1652)에 건립된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옥개방부형(지붕모양의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의 모습인데, 크기가 장대하여 당당한 모습이고, 단정한 처마 뻗침과 화려한 장식의 받침돌이 조화롭다. 이 묘역은 17세기 묘제 석물의 예술성을 유지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이다.

군위 인각사지

군위 인각사지

2025-03-31

대구광역시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로 250

군위 인각사지는 군위군 화산의 북쪽 기슭 강가 퇴적지대에 자리 잡은 절터이다. 인각사는 선덕여왕 시절 원효가 세운 절이라 한다. 그 뒤 고려 때에 크게 고쳐 지었고, 일연이 충렬왕 10년(1284)부터 5년간 이 절에서 머물며 삼국유사를 지은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각사는 언제 세워졌는지 문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발굴조사 때 대웅전터로 생각되는 건물이 있던 곳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를 확인하여, 신라 후기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지금의 인각사에는 법당과 두 채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중요문화유산으로 인각사 보각국사 탑과 비(보물)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매천사

매천사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광의면 월곡길 22-3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황현 선생은 한말의 순국지사이자 시인이며 문장가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짓고 재질이 뛰어났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갑오경장·청일전쟁이 연이어 일어나자 위기감을 느끼고, 경험과 견문한 바를 기록한 ‘매천야록(梅泉野錄)’· ‘오하기문(梧下記聞)’을 지어 후손들에게 남겨 주었다. 1905년 11월 일제가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국권을 박탈하자 김택영과 국권회복 운동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10년 8월 일제에게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자, 절명시 4편과 유서를 남기고 아편을 먹어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 되었으며 이건창, 김택영과 함께 한말삼재(韓末三才)라고 불린다. 생전에 살았던 곳에 그의 후손과 지방 유림들이 1955년에 세운 이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서계박세당 사랑채

서계박세당 사랑채

2025-03-31

경기도 의정부시 동일로128번길 36

조선 후기 실학자 서계 박세당(1629∼1703) 선생이 저술 활동을 하던 건물이다. 선생은 조선 현종 1년(1660)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자리에 올랐으나 40세에 관직을 만두고 이곳에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또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체험한 경험을 토대로 그의 대표적인 농학서 『색경』을 저술했다. 처음에는 안채와 안사랑, 바깥사랑, 행랑채를 갖춘 조선 후기 사대부 가의 규모였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바깥사랑채만 남아 있다. 사랑채 규모는 앞면 5칸·면 2칸 반으로 누마루가 덧붙어 있어 乙 자형 구조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동쪽의 수락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서향집에서 왼쪽을 향하고 있다. 보통 좌향의 배치에서는 남향이나 남서향, 동향을 따르는 것에 비해 이 가옥은 방향보다 배산임수의 자연 지세에 따라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

2025-12-11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우렁길 73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이홍인 부자의 충과 효가 얽혀있는 유서 깊은 집이다. 이홍인 공의 후손들이 사는 집으로서 명종 6년(1551)에 지은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건축으로 추정되며 ‘충효당’이라 부른다. 안채와 사랑채가 맞붙어 있고 안동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내부의 중앙은 뜰로 꾸민 소박한 집으로 남쪽과 서쪽에 바깥으로 통하는 대문이 있다. 남문이 본래의 대문이지만 지금은 서문을 대문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서문 바깥에 평행하게 있던 바깥채를 철거한 뒤에 드나드는 문도 옮긴 것으로 보인다. 공간에 비하여 넓고 튼튼한 문틀을 하고 있으며 드나드는 문이 많아 흥미롭다. 서쪽에는 一자형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가진 ‘쌍수당’이라는 별당이 있다. ‘쌍수당’이란 충과 효를 한 집안에서 다 갖추었다는 의미로, 이홍인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나서 왜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순국한 충의를 기리고 그 후손 한오의 지극한 효를 기리는 것이다. 이 집은 부분적으로 수리를 하고 변형도 되었으나 나직한 야산을 배경으로 하고 풍산평야를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상류주택과는 달리 소박하고 서민적인 민가 성격이 강하다. (출처 : 국가유산청)

부안 동문안 당산

부안 동문안 당산

2025-03-06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부안 동문안 당산은 돌기둥(당산)과 돌장승 한 쌍(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당산)으로 이루어진 당산이다. 마을 밖으로부터 부정한 것의 침입을 막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로 세운 돌기둥을 중심으로 동쪽 50여 m 지점에 당산나무가 있고, 그 사잇길 양쪽에 한 쌍의 돌장승이 마주 보고 서있다. 돌기둥은 화강암을 깎아 만든 것으로 그 꼭대기에 돌로 조각한 오리가 올려져 있다. 돌기둥 주변은 당산제에서 쓰인 동아줄로 칭칭 감아놓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정상 부분의 오리와 그 밑의 기둥이 약간만 보일 뿐이다. 당산나무 서쪽에는 몸체에 ‘상원주장군’이라고 새겨진 남장승이 머리에 벙거지모양의 모자를 쓰고 서 있고, 동쪽으로는 ‘하원당장군’이라고 새겨진 여장승이 서 있다. 여장승은 남장승보다 키가 크지만 모자는 쓰고 있지 않은 모습이다. 마을에서는 2년마다 음력 정월보름에 당산제를 지낸다. 새끼를 꼬아 만든 동아줄로 줄다리기를 한 다음 그 줄을 돌기둥에 감아 놓은 후 제를 올린다. 동아줄을 돌기둥에 감는 것을 ‘옷 입힌다’고 하는데, 마을 전체의 복을 기원하고 농사의 풍요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의미로 신앙물을 인격화 함으로써 돌기둥을 동제의 주신으로 받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돌기둥과 돌장승 모두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마을신앙을 보여주는 민속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

정읍 김명관 고택

정읍 김명관 고택

2026-01-02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공동길 72-10

조선 중기 주택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는 이 집은 흔히 아흔아홉 칸 집이라고 부르는 전형적인 상류층 가옥으로, 김동수의 6대조인 김명관이 정조 8년에 건립하였다. 한양에서 내려온 김명관이 청하산 아래 명당을 골라 10여 년에 걸쳐 이 집을 완공한 것이라 하며, 대문 앞쪽으로 30여 평의 연못을 파놓았다. 이 집은 창하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동진강 상류의 맑은 물이 흐르는 전형적인 터전에 동남쪽을 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사랑채는 이 집에서 가장 화려한데 부엌이 독립되어 특이하다. 안쪽 행랑채의 대문을 들어서면 집의 구조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온 이 집은 마당의 크기와 위치, 대문간에서 안채에 이르는 동선의 관계가 뛰어나다. 특히 안마당은 ㄷ자집 형태의 안채 내부 마당과 안 행랑채 사이의 긴 가로마당이 만나서 아늑함이 느껴진다. 후세에 보수 또는 개조되지 않아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주위 환경이 잘 정돈되어 있어 가옥과 조화를 이룬다. 소박한 구조와 건축가의 독창성, 조선 후기 사대부 가옥의 중후한 모습을 대체로 원형대로 잘 유지하고 있어 건축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좋은 연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민속문화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다.

해평리석장승

해평리석장승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득량면 해평리

장승은 마을입구나 길가에 자리하여 그 마을의 수문신·수호신 등의 구실을 하는 민간 신앙의 한 형태이다. 해평리 석장승은 남·여 한 쌍의 모습으로, 보성의 오봉산 동쪽 산자락 마을 입구 길 양쪽에 1구씩 놓여 있다. 마을 방향으로 우측 편에 돌담을 뒤에 두고 서 있는 것이 ‘상원당장군’이고, 바로 길 건너 좌측에 조금 낮게 서 있는 것이 ‘하원주장군’이다. 상원당장군은 여자의 형상으로, 민머리에 얼굴은 거의 평면이다. 생김새는 주름진 이마에 갈매기 모양의 눈썹을 가지고 있으며 동그란 눈, 방망이 모양 코, 뚜렷한 콧구멍 등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약간 벌린 입술 사이로 치아를 희미하게 새겨 넣었으며 턱에는 덩굴 모양 비슷한 무늬를 조각하였다. 하원주장군은 남자의 형상으로, 역시 민머리이며 몸통 전체는 사각기둥 모양이다. 이마에는 굵은 주름이 있고 눈썹은 위로 치켜 올라갔으며 눈은 튀어나와 있다. 코는 주먹코이고 콧구멍도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긴 입은 지그시 다물고 있다. 또한 양쪽 귀도 정교하게 새겼고 수염도 굵게 조각하였다. 원래 개흥사 입구에 놓여 사찰을 수호하던 역할을 담당하였다가, 이 마을로 옮겨진 뒤 당시 바닷길로 운송되었던 조세의 원만한 수송과 주민들의 평안·안정 등을 기원하는 마을의 수호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