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달성 태고정

달성 태고정

2025-09-15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달성태고정은 조선 성종 10년(1479) 박팽년의 손자인 박일산이 세운 별당건축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불타서 일부만 남았던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지은 것이다. 항상 바르고 올곧게 살자는 뜻에서 일시루라고도 한다. 대청에는 윤두수의 한시를 새긴 현판과 정유재란 후 이곳에 온 명나라 선무관이 남긴 현판 등이 걸려 있다 네모난 모양의 단 위에 서 있으며 앞면 4칸 ·옆면 2칸 크기로, 동쪽 2칸은 대청마루이고, 서쪽 2칸은 방으로 꾸몄다. 대청 앞면은 개방되어 있는데 옆면과 뒷면에는 문을 달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청 앞 기둥 사이에는 2층으로 된 난간을 설치하였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가구나 세부 가공이 정교할 뿐만 아니라 초익공계의 정교한 가구 구성을 갖추었기에, 건축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로 평가되고 있다. 태고정 주변으로 도곡재와 육신사, 충효당이 있으며 사육신기념관을 방문하여 사육신과 박팽년에 대한 전시 및 영상 자료를 관람할 수 있다.

영천 숭렬당

영천 숭렬당

2025-09-22

경상북도 영천시 성내동

조선 세종 때 대마도와 여진 정벌에 공을 세운 이순몽 장군(1386~1449)이 살던 집으로 1433년에 중국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영천 숭렬당의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 자 모양인 맞배지붕인데 그 양쪽 끝 칸에 날개를 단 듯 지붕을 덧달았다. 이 같은 모양은 맞배지붕이 팔작지붕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이고 있는 지붕 형식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는 새부리 모양으로 뻗쳐 나왔다. 평면은 가운데 3칸보다 양쪽 끝 칸이 한 자씩 좁으며 건물 안쪽의 천장은 가구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미고 있다. 영천 숭렬당은 구조가 조선 전기의 수법을 보이고 있지만 일부 재료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들이 조선 후기의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

2026-03-12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로 237 (야탑동)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는 경기 성남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 속에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자연체험을 통해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우고 지역 환경의 소중함과 건전한 가족공동체 형성을 기반으로 생활, 문화공동체 활동을 할 수 있다. 수심이 얕은 연못에서 다양한 물속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습지, 건강한 생태계 회복을 위해 조성된 반딧불이 보전 복원지역, 자연소재를 이용한 다양한 환경교육을 통해 자연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학습장, 등산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탁청정종가

탁청정종가

2025-10-29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군자리길 21

1541년(중종 36) 탁청정 김수가 건립하고 조선 후기에 화재가 나서 중건한 탁청정종가는 가옥에 딸린 정자로 개인 정자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된다.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고 명필 한석봉의 현판이 걸려 있다. 김수는 광산김씨 예안 입향조인 농수 김효로의 둘째 아들로 문무를 겸비하였으며, 조리서 『수운잡방』을 저술하였다. 원래는 낙동강에 인접한 곳에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로 인하여 1974년 현재의 위치인 군자마을 ‘오천리유적지’로 이건 되었다. 군자마을은 500~600년 전 광산김씨 농수 김효로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안동 부사였던 한강 정구 선생이 "오천의 한 마을에는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으며 조선시대 전기부터 끊임없이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마을에는 탁청정을 포함한 광산김씨 종중의 종가인 후조당, 수운잡방의 저자인 김유의 고택 등 20여 채의 고택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와 함께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소장 고문서(보물),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소장 전적(보물), 후조당 유물(경상북도 유형문화재) 등이 있으며 유물 전시관인 숭원각에는 선대 유물, 고문서, 서적 수백 점이 전시되어 있다. 후조당에서는 고택체험-한옥스테이도 운영한다.

논산명재고택

논산명재고택

2025-12-31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논산 명재고택은 윤증선생고택이라고도 하며 마을을 향해 활짝 열려있다. 뒤로는 노성산 산줄기를 병풍으로 두르고, 앞에는 장방형의 커다란 연못을 두었다. 연못 안에는 자그마한 원형 섬이 있고, 그 안에 고택과 함께 300년의 세월을 보낸 배롱나무가 멋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운치를 더한다. 연못을 지나 앞마당의 섬돌을 오르면, 기단 위의 기품 있는 사랑채가 손님을 반긴다. 1984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고택에서는 한옥스테이가 가능하며 다례, 천연염색, 전통음악공연 등의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인근 관광지로는 노성산성, 노성향교, 노성권리사, 노성면 소재지 등이 있다.

성덕대왕신종

성덕대왕신종

2025-10-28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제35대 왕인 경덕왕이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대왕을 위하여 만들기 시작하여 그 아들인 혜공왕에 의해 771년에 완성되었다. 종의 꼭대기에는 용뉴와 음통이, 몸에는 위로부터 보상당초무늬를 새긴 문양띠, 그 아래는 4개의 유곽, 4구의 비천상, 2곳의 당좌, 맨 아래에는 보상당초와 연꽃 문양띠가 양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우아한 형태와 화려한 장식,아름답고 여운이 긴 종소리 등 우리나라의 종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이다.

영일 칠포리 암각화군

영일 칠포리 암각화군

2026-03-19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해안로

영일 칠포리 암각화군은 칠포리 201번지와 334번지 해안도로변 그리고 749번지 등 곤륜산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바위그림이다. 1989년 처음 발견되어 1994까지 조사되었다.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동굴 벽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의 그림을 새겨놓은 것이다. 주로 농사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주술행위의 결과물로 보고 있다. 모두 세 군데 나누어져 있다. 원위치에 하나, 거기서 6m 떨어진 계곡에 하나 그리고 20m 떨어진 곳에 또 하나가 있다. 원위치에 있는 암각화는 돌출부 앞쪽을 거칠게 쪼아서 평탄한 면을 만든 후 서쪽면 전체에 6개의 같은 모양의 그림을 꽉 차게 새겨 넣었다. 계곡에 떨어진 바위는 원위치 있던 것이 갈라져 분리된 것으로 보이는데, 역시 서쪽면에 2개의 같은 모양의 그림이 보인다. 모두 오랜 세월 탓에 그림이 많이 닳아 있다. 마지막으로 20m 떨어진 곳에 있는 바위그림은 작고 완성이 덜된 상태이다.

영천보성리암각화

영천보성리암각화

2025-10-27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동굴벽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의 그림을 새겨놓은 것을 말하는데, 주로 농사의 풍요와 생산을 기원하던 주술행위의 결과물로 보인다. 영천보성리암각화는 거북이 모양으로 생긴 바위 한쪽 옆면에 7개의 그림을 새겨 놓았다. 그림을 새긴 면의 넓이는 최대 길이 337㎝, 최대 폭 130㎝이다. 암각은 상하로 긴 장방형에 양측면을 안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호형으로 처리하고 중간허리에 직선을 그어 아래위로 양분한 후 각각의 칸에 두 개씩의 점을 찍은 고령 양전동식과 같은 형식이 많으며 쪼기 수법을 새겨져 있다. 포항 칠전리와 고령 양전동, 영주 가흥리에 있는 암각화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같은 문화유형으로 추정되나, 각 그림의 세부형식이 조금씩 달라, 서로 시대가 달랐거나 혹은 지역이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연대를 정확하게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청동기 후기나 철기시대 초기 단계의 것으로 보이며, 선사시대 경북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정신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경주 양동 무첨당

2025-08-13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32-19

경주 양동마을 내에 위치한 무첨당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회재 이언적(1491∼1553)의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운 건물이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건물 내부를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좌우 1칸씩은 온돌방이다. 대청은 앞면 기둥 사이를 개방하고 누마루에서도 대청을 향한 쪽은 개방되어 있으며 뒤쪽과 옆면은 벽을 쳐서 문짝을 달았다. 평면은 ㄱ자형을 띠고 있고 둥근 기둥과 네모기둥을 세워 방과 마루를 배치하고 있다. 이 건물의 기능은 상류주택에 속해있는 사랑채의 연장 건물로 손님접대, 쉼터, 책읽기를 즐기는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던 곳이다.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별당 건축의 기능에 충실하게 지은 건축물로 회재 이언적 선생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무첨당이란 이언적의 손자 이의윤(1564~1597)의 호로 조상이 남긴 유산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뜻으로 조상을 욕보이지 않겠다는 후손의 결의를 담은 것이다. 양동마을은 500여년의 전통을 가진 역사마을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국가지정문화재 등 귀중한 문화유산이 가득한 마을로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이며 1일 6회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마을을 탐방할 수 있다.

경주석장동암각화

2025-11-24

경상북도 경주시 석장동

경주석장동암각화는 경주 평야를 가로지르는 서천과 북천, 두 하천이 만나는 금장대 북쪽 바위벽에 그려진 것이다. 선사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는 이 그림은 강물에서 약 15m 높이의 수직 절벽 윗부분에 가로 약 2m, 세로 약 9m 되는 범위에 새겨졌으며,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모두 27점이 확인됐는데, 기하문 8점, 검과 창의 요소를 갖춘 그림 11점, 발자국 4점, 여성기 3점, 배 1점, 그외 동물 모습과 해석이 어려운 그림 등이 있다. 서로 조금씩 형태를 달리하고 있지만 기본은 방패 모양과 도토리 모양, 꽃 모양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가운데 도토리 모양과 꽃 모양의 그림은 다른 지역의 바위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지역만의 독특한 특색이다. 특히 검과 결합된 여성기의 그림 등은 칠포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1994년 3월에 동국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유적조사팀이 발견한 것으로 쪼아파기와 쪼고 갈아파기 같은 제작기법이 절충되어 청동기시대 중기와 말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물상암각화에서 기하학문 암각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한편, 금장대는 경주의 서천과 북천이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풍경의 아름다움 때문에 기러기도 쉬어간다는 금장낙안 이야기로 알려져 있으며, 하천 주변은 금장대 습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