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금척리
경주 근교 금척리 평지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로, 크고 작은 30 여기의 무덤이 모여 있다. 이곳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받은 금으로 만든 자(금자)를 숨기기 위해서 40여 개의 가짜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지금도 이 무덤들 속에 묻혀 있을 것이라 전한다. 본격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1952년에 파괴된 무덤 2기를 조사하였다. 무덤 내부는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덧널(곽)을 설치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유물은 금귀고리와 굽은 옥 등이 수습되었다. 이곳의 무덤들은 모두 경주시내의 평지 무덤들보다 규모가 작아 신라의 낮은 귀족들의 무덤으로 짐작된다. (출처 : 국가유산청)
2025-10-27
경상북도 경주시 두대안길 69 (율동)
경주 벽도산의 서쪽을 향한 바위에 삼존불[三尊佛]을 조각한 마애불[磨崖佛]이다. 이 불상은 가까운 곳에 있는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서방 극락세계를 다스린다는 아미타불을 가운데에 새기고, 양쪽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새겼다. 아미타불의 머리는 아주 큼직하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낮게 있어 모자를 쓴 듯한데, 이는 굴불사지의 석조사면불상과 같은 양식이다. 얼굴은 볼에 살이 올라서 매우 풍만하게 보이며 미소가 남아 있다. 어깨는 넓고 반듯하며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되어 몸의 굴곡을 잘 드러낸다. 오른손은 내리고 있고 왼손은 가슴에 들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어서, 이 불상이 아미타불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발은 앞으로 내민 것이 아니라 독특하게 옆으로 반듯하게 벌리고 있다. 왼쪽의 보살은 풍만한 본존상에 비해 날씬한 여성미를 강조하고 있다. 몸의 굴곡이 여실히 드러나 있으며, 발은 역시 옆으로 벌리고 있다. 오른손은 어깨 위에까지 들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왼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다. 이러한 손모양을 통해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인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오른쪽의 보살상 또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또 다른 협시보살인 대세지보살이다. 이 불상들의 머리 뒤에는 모두 둥근 선으로 머리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이 불상은 경주 굴불사지석조사면불상과 기본적으로는 같지만, 풍만성이나 발의 모양, 옷주름의 모양 등으로 보아 제작 시기가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5-09-23
경상북도 경주시 산업로 4214-76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경주 굴불사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바위 불상으로 약 높이 3미터의 바위 네 면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서 사면석불이라 부른다. 이 사면불의 서쪽은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삼존불, 동쪽은 유리광세계의 약사여래불, 북쪽은 미륵불, 남쪽은 석가모니불을 각각 새긴 사방불의 형태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 기록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이때쯤 불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불상조각에 있어 입체의 표현, 음각과 양각의 표현, 좌상과 입상의 표현 등을 변화 있게 배치해 매우 특색이 있으며 풍만하고 부드러우면서 생기를 잃지 않은 솜씨를 볼 때 통일신라 초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이곳은 예로부터 능시탑 또는 연화탑으로 불렸던 능지탑이 있던 자리이다. 무너진 채 버려져 있던 탑을 신라삼산조사단이 1969년부터 수차례 조사하여 1979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 능지탑은 원래 기단의 네 면에 십이지신상을 세워 넣고 연꽃 모양의 무늬를 새긴 돌을 쌓아 탑신을 만든 5층탑으로 추정된다. 또한 발굴 중에 소조불상의 파편과 많은 양의 기와 조각들이 출토된 점으로 보아 탑의 네 면에 감실을 만들어 불상을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탑의 기단부는 돌을 다듬어 쌓고 윗면은 흙을 덮어 잔디를 심었다. 기단부 둘레에는 십이지신상 중 9구를 방위에 맞게 안기둥처럼 세웠다. 이중 8구는 낭산 동쪽 황복사 터 앞에 있던 미완성된 왕릉 터에서 옮겨온 것이다. 기단부 위쪽의 탑신부는 기단부와 같은 형태로 돌을 다듬어 쌓았는데, 위쪽에 굄돌을 한 단 더 올린 점이 기단부와는 다르다. 탑의 꼭대기는 사모지붕 모양으로 흙을 쌓아 마감하였다. 현재 탑 주변에는 정비하면서 사용하고 남은 연꽃 모양을 새긴 돌 36개가 쌓여 있고, 그 옆에 성격이 밝혀지지 않은 토단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은 자신이 죽으면 10일 내에 왕궁 바깥뜰에서 검소하게 화장하라고 유언하였다. 그런데 실제로 탑에서 가까운 사천왕사지에서 문무왕릉비 조각이 발견되어 경주 능지탑지에서 문무왕을 화장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능지탑이 능시탑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2025-10-28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 101-5
골굴암의 높은 암벽에 있는 자연굴을 이용하여 만든 12개의 석굴 중 가장 윗부분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이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골굴석굴’에는 목조전실이 묘사되었으나 지금은 바위에 흔적만 남아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이 솟아있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은 가늘어진 눈, 작은 입, 좁고 긴 코 등의 표현에서 이전보다 형식화가 진전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입체감이 두드러진 얼굴에 비해 평면적인 신체는 어깨가 거의 수평을 이루면서 넓게 표현되었는데, 목과 가슴 윗부분은 손상되었다.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겨드랑이 사이에는 팔과 몸의 굴곡을 표시한 V자형 무늬가 있다. 암벽에 그대로 새긴 광배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머리광배와 불상 둘레의 율동적인 불꽃무늬를 통해 흔적을 살필 수 있다. 평면적인 신체와 얇게 빚은 듯한 계단식의 옷주름, 겨드랑이 사이의 U자형 옷주름 등이 867년에 조성된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와 유사한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동방동
경주 동방동 와요지는 1977년 택지 조성공사 도중에 우연히 발견된 가마터로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발굴조사하여 9기의 도자기와 기와를 굽던 가마터를 발굴하였다. 그중 1기를 조사한 결과 가마의 전체 길이는 10.5m, 넓이 1.72m인 구릉 경사면을 이용하여 만든 굴가마(등요)로 밝혀졌다. 도자기를 굽던 곳의 천장 부분 벽 일부가 남아있으며, 도자기를 빚던 곳과 굽던 방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있다. 출토된 기왓조각은 고려시대에 성행한 새 깃털 모양 무늬와 연꽃무늬의 장식 기와, 그리고 조선시대에 제작된 기와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마바닥에서 출토된 건륭이 새겨진 암막새는 가마터가 없어질 당시의 것으로 생각되며, 가마터의 제작시기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로 추정하게 한다. 가마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토기와 기와를 만들 수 있는 양질의 흙과 물, 그리고 구워내기 위한 연료가 필요한데 이곳 동방동 일대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교통로가 있어 운반도 용이하였기에 오랜 시간 도자기 생산을 담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2025-10-28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경주 재매정은 신라의 김유신 장군 집에 있던 우물이다. 화강암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만들었는데, 이 일대가 장군의 집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김유신 장군이 오랜 기간을 전쟁터에서 보내고 돌아오다가 다시 전쟁터로 떠날 때, 자신의 집 앞을 지나면서 가족들을 보지도 않고 우물물을 떠 오게 하여 말위에서 마시고는, “우리 집 물맛은 옛날 그대로구나”하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993년 발굴조사에서 재매정을 중심으로 사방 70m 지역을 발굴하였다. 우물의 깊이는 5.7m이며, 가장 넓은 부분은 1.8m이고, 바닥의 지름이 1.2m로 벽돌같이 다듬은 돌로 만들었다. 우물 옆에 비각이 있고 비각안에 조선 고종 9년(1872)에 이만운이 쓴 비석이 있다.
2026-03-12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36-4
경주 남산은 유물·유적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후기까지의 불상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그중에 하나인 높이 1.4m의 마애보살 반가상은 칠불암(七佛庵) 위에 곧바로 선 남쪽 바위에 새겨져 있다.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지그시 감은 두 눈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구름 위의 세계에서 중생을 살펴보고 있는 듯하다. 오른손에는 꽃을 잡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천의(天衣)는 아주 얇아 신체의 굴곡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보이며 옷자락들은 대좌(臺座)를 덮고 길게 늘어져 있다. 머리 광배와 몸 광배를 갖춘 광배 (光背) 자체를 불상이 들어앉을 공간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보살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며,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2026-03-12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지석묘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만든 무덤으로, 받침돌 위에 큰 덮개돌이 괴어 있다고 하여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고인돌은 모양에 따라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나뉜다. 경기도 파주시 덕은리에는 20여 기의 탁자식 고인돌과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터가 함께 발견되었다. 낮은 언덕을 따라 집터가 있고 20여 기의 지석묘가 흩어져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다. 덕은리 지석묘는 모두 탁자식 모양이며, 다른 지역의 탁자식 고인돌에 비해 전체 크기와 무덤방이 작은 편이다. 고인돌에서는 민무늬토기, 돌도끼,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덕은리 주거지와 지석묘군은 청동기시대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주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2026-02-03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36-4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칠불암 내에 있는 바위 면에 새겨진 7구의 불상들을 지칭한다. 동쪽을 향한 넓은 바위 면에 삼존상이 있고, 삼존상 바로 앞의 네모난 돌기둥에는 면마다 불좌상이 새겨져 있다. 본존과 두 보살로 된 삼존상, 돌기둥의 네 면에 새겨진 사방불을 합쳐 모두 7구의 불상들이 새겨져 있으므로 암자의 이름을 칠불암이라 부른다. 이곳에 원래 있던 사찰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 불상군의 핵심 불상은 삼존불 중앙의 불좌상이다. 이 불상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가사를 걸치고 항마촉지인(좌선할 때의 손 모양에서 오른손을 풀어서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사방불은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손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정면에 해당하는 동쪽면의 불상은 약그릇을 지니고 있어 약사불임을 알 수 있다. 삼존상의 뒤쪽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또 돌기둥 위에 홈이 파여 있고, 주변에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이곳이 원래 지붕을 덮은 석굴 사원으로 추정된다. 이 주변에서 「약사경」과 「금강경」을 새긴 석경의 파편들이 발견되어 복과 장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민간의 약사 신앙과 관련된 사찰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