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4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서석면 풍암리
홍천 풍암리 동학혁명군전적지는 조선 후기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싸웠던 전적지이다. 고종 31년(1894) 교조신원운동의 실패와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포악한 정치가 원인이 되어 동학접주인 전봉준이 나라 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게 하자는 내용으로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켰다. 당시 홍천 지방에서도 농민 운동이 크게 일어나 농민군의 일부가 관아를 공격하고자 산에서 내려와 장야촌까지 진군하였으나, 관군 총사령관 맹영재와 싸워 동학군 30여 명이 전사하였다. 여기에서 패한 동학군은 풍암리에 집결하여 최후의 항전지인 자작고개에서 김숙현을 중심으로 관군과 싸웠으나 끝내 패하여 동학농민운동은 실패하고 말았다. 1976년 자작고개에서 지역 주민들에 의해 유해 더미가 발견되었는데, 당시 사망자를 800여 명으로 추정하지만 부상자를 함께 묻었다고 하니 그 수는 더 많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도 풍암리 주민들은 전투에 동학교도로서 참가하였다가 전사한 사람들의 제사를 음력 10월 20일부터 수일간 많은 집이 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동학군전적기념비가 있다.
2026-09-09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황룡면 물뫼길 25
1894년 1월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시달리던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농민군은 봉건의 압제와 외세의 핍박을 깨치고자 들고 일어섰다. 마침내 4월 초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이 이끈 수천의 농민군은 백산에 모여 반봉건의 제폭구민과 반외세의 척양척왜의 기치를 내걸고 관군과의 전쟁에 나섰다. 4월 6일 밤 농민군은 황토현에서 전라도 감영군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승리했다. 이 싸움은 농민군이 관군과 접전을 벌여 거둔 최초의 승리였다. 이어서 4월 22일 장성의 황룡강 유역으로 진군한 전봉준의 주력부대는 전주에 주둔하던 홍계훈의 경군을 황룡 지역으로 유인하여 또다시 대승을 거두었다. 이 황룡전투는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전주를 점령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경군과 한 차례 접전을 벌였던 전투로써, 동학농민군이 서울의 정예부대를 격파한 의미있는 전투였다. 그 여세를 몰아 곧바로 전주성을 점령하게 되면서 동학농민군의 요구를 수용한 전주화약이 맺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까치능선이라고 불리던 이곳 동학격전지가 바로 황룡전적지이다.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동학사상을 일깨우고, 후세에 역사 교육의 장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전국에서 헌수운동을 통해 이곳에 동학기념공원을 조성했다.
2025-03-06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두자리
정읍시 이평면 면사무소 앞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말목장터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배들평 농민 수천 명이 고부로 가기 전에 모였던 곳으로 제1차 백산기포를 할 때까지 장두청을 두고 진을 설치했던 장소이다. 또한 이곳에는 180년 정도 된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이 나무 아래에서 말목장터에 모여든 농민들에게 전봉준이 군수 조병갑의 탐학과 농민 수탈의 실정을 알리고 농민봉기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고 전한다. 이곳 주민들은 지금도 이 감나무의 감은 따지 않는다고 한다. (출처: 국가유산청)
2025-08-13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이곳은 만석대교와 제방 사이에 위치한 고부군수 조병갑이 쌓은 만석보의 터다. 보(洑)란 논에 물을 대기 위한 목적으로 둑을 쌓고 냇물을 가두어 두는 곳을 말한다. 신태인에서 고부로 가는 지점의 동진강을 건너는 다리 하류에는 보뚝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주위에는 넓고 비옥한 배들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 너른 평야에서 1만 석이나 되는 많은 쌀을 거둬들일 수 있다 하여 만석보라 이름하였지만, 굶주리고 착취당해야 했던 농민들의 분노가 서려있기도 하다. 원래 정읍천 상류에는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민보가 있었다. 그런데 1893년에 고부 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이 민보 아래에 만석보를 쌓으며 농민들을 강제로 일하게 하였고, 주인의 허락도 없이 큰 나무를 베어 사용하였다. 또한 보를 쌓은 뒤에는 수세 명목으로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결국 1894년 조병갑의 포악한 정치와 과중한 세금으로 힘들어하던 농민들은 만석보를 헐었다. 이는 동학농민혁명의 발단이 되었으며, 1973년 이곳을 기념하기 위해 사적비를 세웠다. 주변 관광지로 만석보 혁파비, 정토사, 정읍 신태인시장, 말목장터와 감나무가 있다.
2024-09-12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경주 남산동 전 염불사지는 8세기에 창건되어 12세기까지 운영된 신라의 사찰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이곳에 위치했던 사찰의 명칭은 염불사, 피리사, 봉구곡사 등 다양한 명칭이 기록으로 전하고 있으나, 사찰의 명칭을 단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가 부족하여 전할 전(傳)자를 써 전 염불사지로 명명되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남산 동쪽 산기슭에 피리촌이 있었는데, 그 절을 피리사라 하였다. 피리사에는 이상한 중이 있었는데, 늘 아미타불을 외었다. 그 소리가 성 안에까지 들렸으며 누구 하나 그 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소리가 높고 낮음이 없이 낭랑하기가 한결같았기에 사람들은 모두가 그를 공경하여 염불사라 불렀다. 그가 죽은 뒤에 소상을 만들어 민장사안에 모시고, 그가 본디 살던 피리사를 염불사로 고쳤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염불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며, 사찰터에는 2022년 11월 25일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탑 (전)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2024-07-10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령평화2길 1
제주도 문화유산 1주년에 발맞춰 한·중·일 합작으로 공룡을 테마로 한 가족공원인 “제주공룡랜드”를 2007년 8월 14일에 개장하게 되었다. 중국과학원 고척추생물 및 고인류연구소 (IVPP)의 철저한 고증과 일본 DM사의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공룡 가운데 가장 큰 공룡인 높이 28m의 브라키오사우루스,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 사납기로 유명한 벨로시랩터, 3개의 뿔이 달린 초식공룡 트리케라톱스 등 200여 마리의 다양한 작동과 고정 공룡들이 전시되어 있다. 공원 내부에는 공룡들이 알을 낳고 부화하는 과정 등이 첨단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되고 성대 복원으로 공룡의 생생한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공룡동굴생태 체험관과 과거 공룡들이 살던 시대로의 여행을 테마로 한 3D 입체영화관, 기초과학의 발판인 지구 46억 년 전 희귀 화석, 신생대, 중생대, 고생대의 진품화석광물, 운석, 공룡 골격화석들이 자연사 박물관에 일목 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경주 인왕동 사지는 인용사의 터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용사는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629~694)의 안녕을 비는 절이다.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멸망 이후 당나라는 신라까지 정벌하려 하면서 당에 머물고 있던 김인문을 감옥에 가두었다. 신라 사람들은 그의 귀국을 기원하며 관음도량을 열었으나, 효소왕 3년(694)에 김인문이 귀국하던 중에 죽자 그의 극락왕생을 빌며 미타도량으로 바꾸었다. 인용사는 신라에서 승려나 왕이 아닌 개인을 위해 세운 최초의 사찰로서 당시 신앙의 형태를 보여준다. 2002년~2011년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4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하였다. 신라의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로, 유례가 드문 亞자형 건물 터를 비롯하여 탑지, 금당지, 강당지, 회랑지, 연지와 우물 등이 확인되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서호면 선사주거로 308
청동기시대의 집자리 유적으로, 서호면 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장천리 괴음마을 앞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다. 청동기 시대 이곳 사람들은 지름이 4∼5m 크기의 원형 움집을 짓고 살았다. 움집은 땅을 30∼50m정도 파고 내부바닥은 진흙으로 다졌으며 벽을 따라 기둥을 세우고 풀이나 갈대로 지붕을 만들었다. 집의 면적은 약 12∼20㎡로 4명에서 5명 정도의 가족이 모여 생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는 원형 내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중앙에 얕은 구덩이가 있고, 바닥면 가장자리에 기둥구멍이 마련되어 있는데, 화로터나 출입구가 없는 것이 특색이다. 출토된 유물로는 항아리형·사발형의 무늬없는토기, 화살촉·가락바퀴·삼각형 돌칼 등 석기류가 있다. 현재 이곳에는 원형 움집 1채와 사각형의 움집 1채를 복원해 놓았다. 원형은 원래 이곳에 있던 형태의 것이고 사각형은 중부나 북부지방에서 발견되는 움집을 비교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유적지 옆에는 발굴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있는데 집안의 생활모습, 돌칼, 돌화살촉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고인돌이나 토기 만드는 방법이 그림으로 소개되어 있어.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1984년 목포대학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것으로,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권의 유적이다. (출처 : 영암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2026-03-27
대전광역시 서구 대덕대로317번길 9 (월평동)
둔산선사유적지는 대전 서구 둔산지구에서 출토된 선사시대 유적이다. 1991년 둔산지구 개발 도중 발굴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한 곳에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한꺼번에 발굴된 곳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터 3곳과 신석기시대의 움집터, 구덩이와 빗살무늬토기 조각 등의 유물이 발굴되었고 구석기 50여 점도 출토되었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대전 지역에 인류가 마을을 이루고 살았음을 알려주는데, 특히 이 지역에서 갑천 주변의 얕은 구릉에 넓은 농경지와 풍부한 물을 배경으로 많은 주민이 살았던 사실을 알려준다. 이 유적은 이전 복원 후 선사유적공원으로 조성되었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2년 10월 28일 대전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둔산선사유적지는 대덕대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 대전 IC 및 신탄진 IC와 호남고속도로 지선 유성 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대전도시철도 1호선 정부청사역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한밭수목원, 국립중앙과학관, 엑스포과학공원 등이 있다.
2025-11-05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嶋潭里) 남한강가에 있는 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동굴유적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문화 유적으로 전기구석기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거의 모든 시기의 유물층이 발견되어 각 문화층의 성격을 찾아볼 수 있다. 1980년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역에 실시된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구석기시대의 동굴유적임이 확인되었다. 이후 3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여러 시기에 걸쳐 문화가 형성되었음이 밝혀졌으며, 출토된 유물을 통해 구석기시대 문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구석시유적지의 유물 및 의의 * 동굴의 규모는 입구 높이 8m, 넓이 7∼10m이며 확인된 동굴의 길이 85m이다. 구석기시대 전·중·후기, 중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문화층들이 덧쌓여, 시기마다 만들어 썼던 석기·뼈연모·토기·조가비연모 등과 사냥했던 짐승뼈 화석과 조가비 및 토기조각들이 출토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그들의 먹을거리와 삶 및 자연환경을 살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