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표충사(해남)

표충사(해남)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대흥사 경내에 있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휴정과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 뇌묵당 처영의 영정도 함께 모시고 있는 사우이다. 서산대사는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늙은 몸을 이끌고 전국의 승려들에게 격문을 돌려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서도록 하였다. 묘향산에서 1,500여 명, 그의 제자인 유정은 금강산에서 700여 명, 처영은 지리산에서 1,200여 명의 승병을 모집하여 순안, 평양 등지에서 왜구를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전쟁 이후 그는 승려로서 최고의 존칭과 정 2품 당상관 작위를 받았으며 묘향산에서 선조 37년(1604) 입적하였다. 대흥사와 인접해 있는 이 건물은 조선 정조 12년(1788)에 세웠으며 앞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 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초창 당시는 대웅전을 바라보는 곳에 있었는데, 헌종 2년(1836) 잠시 동남쪽의 주산으로 옮겼으나 철종 11년(1860) 현재 자리로 돌아왔다.

아산 이충무공 유허

아산 이충무공 유허

2025-03-17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

아산 이충무공 유허는 아산 현충사 일대의 성역을 말한다. 현충사는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당으로 1706년(숙종 32)에 처음 세워졌다. 1932년에는 이충무공 유적보존회가 결성되어 사당을 다시 지은 후,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정부 차원에서 성역화하고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일생 기록화인 십경도가 보존되어 있으며, 난중일기(국보) 등과 장검(보물) 등 관련 유물과 임진왜란 당시 해전 사료를 수집하고, 이를 전시 및 교육하기 위한 역사 테마관인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이 함께 있다. 그 외에도 이순신 장군이 살던 옛집, 활터, 정려 등이 있다.

환구단

환구단

2026-03-18

서울 중구 소공동 97-3

환구단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대한제국시대의 제단으로 환단이라고도 한다. 유교적인 정치 이념을 수용해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을 가리킨다. 환구단의 한자 표기는 고종실록에 기록된 것이고 한글 표기는 독립신문을 따라 정하였다. 고종 34년(1897년)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당시 황궁인 경운궁 맞은편 옛 남별궁터에 단을 만들어 조성했다. 원래는 거대한 규모를 가진 대한제국의 성역으로 제를 올리는 환구단과 천신의 위패를 모시는 황궁우, 그리고 주변 시설로 어재실, 향대청, 석고각 등을 갖췄었다. 그러나 일제가 1913년 호텔 신축을 이유로 철거하여 환구단 본단은 없어지고 상징물 격인 황궁우와 석고각 안에 있던 돌북만 남아 있다.

충절사·상의재

충절사·상의재

2025-11-12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위만사당길 20-4

충절사와 상의재는 엄흥도의 충성심을 기리는 건물들이다. 엄흥도는 조선의 지조 있는 선비로 조선 6대 임금이었던 단종이 영월에서 시해당하자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냈다고 한다. 17세기 중반 이후 충신과 사육신에게 표창을 하는 정책이 생기게 되고, 엄흥도의 충성심을 높이 평가해 그의 후손을 관리로 등용하였고 엄흥도를 육신사에 모시게 되었다. 영조 26년(1750)에는 엄흥도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별도로 묘를 마련했는데 영조 31년(1755)에 상절사라는 사당을 세웠다. 순조 33년(1833) 상절사는 의산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이후 1900년에 의산서원 강당에 해당하는 상의재를 세웠고 위패를 별도로 모셔 충절사라 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숙모전

숙모전

2025-03-16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1로 462

숙모전은 계룡산 동학사 안에 있는 사당으로 비운의 왕인 조선 단종과 정순왕후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다. 숙모전 앞에는 계유정난에 원통하게 죽은 황보인, 김종서, 정분 등의 세 재상과 안평대군, 금성대군 등의 종실, 단종의 복귀를 꾀하다 발각돼 참형당한 사육신, 생육신, 그 외 죽음을 당한 많은 원혼과 의인들의 충의절신위패가 모셔져 있다. 1455년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매월당 김시습이 머리를 깎고 동학사를 찾아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다음 해 사육신이 참수당하자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서울 노량진 언덕에 매장하고 동학사로 다시 돌아와 단을 만들고 제사 지냈다. 현재 숙모전 내부에는 단종과 단종의 비 정순왕후, 동무에는 엄홍도를 비롯한 47위, 서무에는 사육신을 비롯한 47위를 모시고 있다. 사단법인 숙모회에서 봄과 겨울에 지내는 전통제향인 숙모전 대제로도 유명하다. 숙모전 대제는 조선 초기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가 동학사 서쪽에서 고려의 왕과 스승을 위해 지낸 초혼제로부터 시작됐다. 1399년(정종 1) 금헌 유 선생이 단을 만들어 고려의 왕과 포은, 목은을 초혼했으며 1400년에는 이정간이 수령으로 부임해 각을 세우고 야은 길재를 추가로 배향하여 삼은각이라 이름 지었다. 1456년(세조 2) 김시습이 삼은각 옆에 사육신 초혼단을 만들었는데, 1457년 세조가 동학사에 들렀다가 초혼단을 보고 감동해 팔 폭 비단에 억울하게 죽은 100여 명의 신하와 고려의 왕들을 제나 지내게 했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단종과 안평대군, 그 밖에 100여 명의 신하의 명단을 추가로 내려보내 모두 200여 명을 제사하게 했다. 후대에 오면서 제향이 중단되었다가 1963년 숙모회가 발족하며 봉안 대상과 의례 절차를 정비하고 매년 김시습이 최초로 제사한 음력 3월 15일 춘향제를, 단종이 사사된 음력 10월 24일 동향제를 거행하고 있다.

영모전

영모전

2025-03-11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영모전길 148

단종(재위 1452~1455)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영월의 주산인 매봉산 자락 남쪽 언덕에 있다. 이곳에 유배된 단종이 살해되자, 그를 추모하기 위해 군민의 성금을 모아서 1517년(중종 12) 영월부사 이용하(李龍夏)가 그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려고 성황당이 있던 자리에 사당을 건립하였으며, 이용하의 후손 이계진이 개수하여 ‘영모전’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또한 영정은 추익한(秋益漢)이 백마를 탄 단종에게 머루를 진상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영모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앞면 가운데 칸의 뒷부분에 초상을 모셔둔 방을 두고 그 양 측면과 뒷면은 벽을 설치하였으며, 앞면은 장지문을 달아 밝게 처리하였다. 그 외의 부분에는 마루를 놓았는데 앞면 3칸은 모두 문 없이 개방되어 있고, 뒷면과 옆면은 벽에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살창을 설치하였다. 추익한이 단종에게 산머루를 진상하려고 영월로 오던 중 연하리에 이르렀을 때, 곤룡포와 익선관 차림에 백마를 타고 동쪽을 향해 가는 단종을 만나게 되었다. 추익한은 황망히 읍하고 땅에 꿇어앉아 “대왕마마께서는 어디로 행차하시나이까?” 하고 여쭈니 단종이 “태백산으로 가는 길이오. 그것은 처소에 갖다두시오” 하고 말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 추익한은 기이하게 생각하고 급히 단종 처소에 가보니 단종은 이미 승하한 뒤였다. 추익한은 방금 전 만났던 것이 단종의 혼령이었음이 분명하다 생각하고 그의 뒤를 따라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종과 함께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은 단종을 숭상하는 일종의 신앙으로 발전하여 영모전 외에 녹전 성황당, 정선각, 보덕사의 칠성각 등에서도 단종의 위패 또는 영정을 모시고 있다. 또한 그 뒤로도 군민들은 마치 단종이 살아 있는 것처럼 공경하여 해마다 단종문화제가 열리는 시기와 음력 10월 24일(단종 승하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민충사

민충사

2025-07-18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136

민충사는 강원도 영월읍에 있는 사당으로 단종의 비운과 시녀들의 충절을 기리는 역사적 유적지이다. 이곳은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며 낙화암에서 투신한 시녀 6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유배되었다.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자 단종은 1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를 모시던 시녀 6명은 낙화암에서 금강에 몸을 던졌고, 그 넋을 위로하고자 1742년 영조가 사당을 세우고 민충사라는 사액을 내렸다. 민충사는 금강정 뒤편에 위치하며 사우, 정전,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사우에는 단종과 시녀들의 초상화, 육신창절서원의 비석 등이 모셔져 있다. 정전에는 단종과 시녀들의 신주와 제기가 봉안되어 있다. 민충사에서 위로 올라가면 낙화암 절벽이 있으며, 시녀들의 충절을 기리는 순절비가 세워져 있다. 민충사 앞 금강정에서는 동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으며, 인근에는 라디오스타 박물관과 영월향교가 있다.

자규루 및 관풍헌

자규루 및 관풍헌

2025-05-27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중앙로 61

관풍헌은 조선시대 지방의 업무를 처리하던 관청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과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는 조계종 보덕사에서 포교당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약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규루라는 누각이 있다. 자규루는 단종(재위 1452∼1455)이 세조(재위 1455∼1468)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을 때 잠시 지내던 곳이다. 단종은 이 누각에 자주 올라가 자규시를 지었다고 한다. 자규란 피를 토하면서 구슬피 운다고 하는 소쩍새를 가리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견주어 지은 것이다. 원래는 세종 10년(1428) 군수 신권근에 의해 지어져 ‘매죽루’라 불렸으나 단종의 자규시가 너무 슬퍼 누각이름을 매죽루에서 자규루로 바꿨다고 한다. 그 후 많이 퇴락해 민가가 들어섰는데, 정조 15년(1791)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이곳을 돌아다니다 그 터를 찾아 복원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영월 청령포 관음송

영월 청령포 관음송

2026-08-25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영월 청령포 관음송은 한강 상류지역인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는 수령 600년 된 소나무로, 1988년 4월 30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0m, 가슴 높이 둘레가 5m이다. 줄기가 1.2m 되는 높이에서 두 줄기로 갈라져 있는데, 하나는 위로 하나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단종과 관련된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다. 조선의 제6대 왕인 단종은 숙부인 세조로부터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당하게 된다. 단종은 눈물과 비애, 그리움, 외로움 속에서 처소 바로 옆에 있는 소나무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 한다. 관음송이라는 이름은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서 ‘觀(볼 관)’자를,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 하여 ‘音(소리 음)’ 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 한다. 이 나무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나무의 껍질이 검은색으로 변하여 나라의 재난을 알려 주었다 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대전 계족산성

2024-05-17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

대전 계족산성은 대전시 대덕구에 솟은 계족산(420m) 정상부에 축조된 삼국시대 산성이다. 면적 52,896㎡, 길이 약 1,650m의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백제가 쌓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6세기경에 신라에서 쌓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높이는 약 7∼10m 가량 되며 동, 서, 남쪽에 문을 건설했다. 성 안에서는 삼국시대에 만든 큰 우물터가 발견되었고, 성내 건물터에서는 고려시대 기와편과 조선시대 자기편이 발견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축조 방법은 충북 보은의 신라 삼년산성과 같은 방식이며, 약간의 백제계 토기도 출토되어 축조 후 한때 백제가 점령했던 적도 있었음을 시사한다. 계족산성을 둘러싼 신라와 백제의 다툼은 지금 대한민국 국토 가운데에 있는 대전 지역이 삼국시대에는 국경지대였음을 말해준다. 이 산성은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1년 10월 25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대전 계족산성은 동쪽의 장동산림욕장이나 산디마을, 남쪽의 비래동, 북쪽의 이현동 등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인근 관광지로는 장동산림욕장, 산디마을 캠핑장, 이현동산성, 비래사, 옥류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