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무안발산마을미륵당산

무안발산마을미륵당산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해제면 광산리

무안 지방에서는 대개 당산나무, 선돌, 당집 등을 대상으로 당산제를 지내는데, 발산 마을에서는 장승의 모습을 하는 당산석 2구를 제사의 주체로 삼고 있다. 이 2구의 석인상은 당산 할아버지와 할머니, 미륵, 당산, 당산 미륵 등으로 불리는데, 150m 거리를 두고 서 있다. 당산 할아버지는 턱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두툼한 긴 수염이 나 있고, 머리에는 벙거지 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풍화 작용이 심하고 거친 입자의 돌 때문에 세부적인 조각 수법은 알아볼 수가 없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어 불상과 비슷한 면이 보인다. 신체는 더욱 간결한 선으로만 옷 주름을 표현해 사실성이 떨어진다. 당산 할머니가 초기의 입석 형태를 띠고 있지만, 당산 할아버지는 조각을 지닌 상징물의 형태를 띠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발산마을의 당산석은 입면을 형상화한 신앙 물이란 점과 형태상 성기 바위를 모사하고 있다. 이는 당산석이 상징물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는데, 일반적인 당산석의 경우 마을 제사에서 주신의 기능을 갖는 신체는 원래 상태의 암석과 당산나무, 당집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고창오거리당산

고창오거리당산

2025-11-03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고창읍에 조성된 오거리 당산은 동·서·남·북·중앙의 5방위에 당산을 조성한 것으로 자연 입석과 조형 입석으로 세웠다. 고창 오거리 당산은 1803년 3월에 고창현 중심지 세 곳에 동시에 조성되었다. 처음에는 오거리가 아니라 삼거리 당산이었다. 삼거리는 상, 중, 하 세 곳을 가리킨 말인데 세 곳에 화표석주의 당산을 세운 것이다. 현재는 기존의 삼거리 당산과 천북동과 교촌리의 자연 마을 당산을 포함하여 오거리 당산이라 한다. 상거리, 중거리, 하거리 당산은 조형 입석으로 당산을 삼았으며, 천북동과 교촌리 당산 은 자연 입석을 당산으로 삼았다. 조형 입석 가운데 하거리 당산은 진서화표의 명문이 있고, 중앙 당산은 미륵 당산으로 불교적 요소가 강하다. 반면에 자연 입석을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당산의 당산 입석으로 삼은 것은 민간 신앙적 요소가 강하여 불교 신앙과 민간 신앙이 합쳐진 오거리 당산인 것이다. 오거리 당산은 화표를 당산 입석으로 삼은 유일한 당산이다. 정월 대보름날 줄다리기를 한 후 당산에 줄을 감아 놓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남문안당산

남문안당산

2025-03-06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남문안길 10

당산은 신이 있다고 믿는 민간신앙의 대상물이다. 남문 안 당산은 조선시대 읍성의 남문터로 알려진 취원문루, 일명 건선루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1992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다. 성을 지키는 수호신적인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이 당산은 2개의 화강암을 다듬어 하나의 기둥처럼 아래위로 세웠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위에 놓인 돌기둥 중간에는 4마리의 거북이가 조각되어 있으며, 아래에 놓인 돌기둥 한 면에는 기둥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24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과 주민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당산제를 지냈으며, 마을 주민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줄다리기도 행하여졌다. 또한 줄다리기 때 사용된 줄은 당산석에 감는 의식인 ‘옷 입히기’ 의식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합천 영암사지

합천 영암사지

2026-01-21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영암사지는 황매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터이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모르나 고려 현종 5년(1014)에 적연선사가 이곳에서 83세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홍각선사비의 조각 중에도 ‘영암사’라는 절이 등장하는데 이 비석이 886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영암사의 창건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발굴을 통해 조사해 본 결과, 불상을 모셨던 금당·서금당·회랑터·기타 건물터가 확인되어 당시 절의 규모를 알 수 있고 금당은 3차례에 걸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쌍사자석등(보물)·삼층석탑·귀부·당시의 건물 받침돌·각종 기왓조각들이 남아있다.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경의 것으로 절의 창건연대를 살피는 데 중요하다. 영암사의 건물터는 일반 사찰 건물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금당이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 돌출부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 금당지 연석에 얼굴 모양이 조각되어 있고 후면을 제외한 3면에 동물상을 돋을새김 한 점, 서남쪽 건물터의 기단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특징과 더불어 절터 내에 흩어져 있는 석조물은 이색적인 느낌마저 든다. 조형의 특이함과 입지 조건, 서남쪽 건물의 구획 안에서 많은 재가 나오는 점으로 보아 신라 말에 성행한 밀교의 수법으로 세워진 절로 보인다.

하남 동사지

하남 동사지

2025-08-20

경기도 하남시 서하남로418번길 122 (춘궁동)

하남 동사지는 경기도 하남에 있는 사적이다. 고려 초기에 창건된 거대 규모의 절터로서, 금당 규모가 경주 황룡사 금당에 필적하는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1988년 발굴 작업 시 ‘[桐]동 [寺]사’ 라는 이름의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절터임이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금동불상과 막새기와, 동으로 만든 불기류 및 도자기들이 출토되었다. 지름 5.1m의 8각 구조물과 건물터 등 유구의 상태, 건축양식 또한 독특하여 건축사 및 한국불교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강화 선원사지

강화 선원사지

2026-04-07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선원사지로 222

강화 선원사지는 1976년 동국대학교 강화도학술조사단이 강화도 일원에 대한 지표조사에서 처음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 이곳에서 몇 개의 주춧돌을 비롯하여 보상화 무늬 전돌, 범자[梵字] 새긴 기와, 지붕에 얹었던 잡상들을 확인하고, 선원면[仙源面] 도감마을, 도감산에 있는 사지이므로 학술적·역사적으로 가치가 있어 지역의 연원을 기초하여 1977년에 사적 강화선원사지[江華仙源寺址]로 지정되었다.

고령박씨종중재실

고령박씨종중재실

2025-03-16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박문수길 147

암행어사로 많은 일화를 남긴 박문수(1691∼1756)의 제사를 모신 곳이다. 박문수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경종 3년(1723)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에까지 올랐다가 1724년 노론이 집권할 때 파면되었다. 1727년 소론이 집권하면서 다시 기용되어 영남암행어사, 충청도암행어사 등을 거치며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하였다. 그 뒤 호조참판을 거쳐 병조판서와 영의정에까지 벼슬이 올랐다. 이 건물은 1932년에 세웠으며 안채는 ㄱ자형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사랑채는 5칸 규모이며 一자형 평면을 갖춘 집이다. 재실 안에는 박문수 공이 사용하던 유품과 영정을 모시고 있고 박문수의 손자인 박영보가 쓴 수부정기와 박문수 일대기 등의 전적을 보관하고 있다. 1990년에는 원래 재실이 있었던 자리에 새로 재실을 지었다.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2025-03-17

충청북도 충주시 충열1길 6 임충민공충렬사

충민공 임경업(1594∼1646)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숙종 23년(1679)에 사당을 세웠고, 1706년에 장군에게 충민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영조 3년(1727)에는 사당 이름을 충렬사라 했다. 임경업 장군은 선조 27년(1594) 충주에서 태어나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과 의주성을 다시 쌓아 국방을 강화하는 등 나라에 이바지한 바가 컸다. 명나라를 숭상하던 장군은 인조 30년(1642)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위협을 받게 되자 명군과 협력해 청에 대항하고자 했으나 계획이 탄로 나 청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청나라는 장군에게 여러 제의를 하면서 포섭하려 했으나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 1646년 국내의 ‘심기원의 모반 사건’에 억울하게 연관되어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피살되었다. 현재 충렬사에는 장군이 사용했던 유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사당 앞 왼쪽에는 장군 부인의 곧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부인완산이씨 정렬비’가 있다.

순창 충신리 석장승

2024-12-04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407-11

석장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당산’ 혹은 ‘벅수’라고도 한다.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거대한 사각의 자연석 한 면을 장승의 모습으로 다듬었다. 머리는 왼쪽으로 경사지도록 깎여 있고, 다른 장승과는 달리 눈이 작게 조각되어 있다. 세모난 콧날은 끝이 뭉툭하게 잘려 있는데, 이는 장승의 코가 아들을 낳는데 효험이 있다는 민간신앙에 따라 아들 낳기를 원하는 마을 아낙들이 떼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마와 양 볼에 혹이 불거져 나왔는데, 이마에 새겨진 혹은 불상의 눈썹사이에 있는 백호를 연상시킨다. 웃는 듯한 입 사이로 내민 혀의 모습이 소박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준다. 보통 석장승에는 남장승과 여장승을 나타내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충신리 장승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충신리 석장승은 애교스러운 생김새와는 달리 남장승으로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이 장승은 마을을 수호하고 부정한 것을 막기 위한 주민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는 민속신앙 중 한나라 할 수 있다. 순창군 충신리 대로변에 있던 석장승은 2004년 12월에 순창-남원간 도로변의 순창문화회관 뒤뜰에 순창 남계리 석장승(국가민속문화유산)과 함께 옮겨졌다.

남원서천리당산

2025-03-18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

서천리당산은 당산나무, 돌장승, 솟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남녀 한 쌍인 돌장승은 운봉초등학교 서쪽 500여m 지점에 마주보고 서 있는 부부장승이며, 이 주변에 당산나무가 있다. 장승과 솟대를 함께 세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전라도 지방에 남아 있는 당산 신앙의 한 형태로 원래는 이곳에도 솟대를 함께 세웠던 것으로 보이지만 마을 중앙에 있었던 솟대의 모습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부부장승은 마을의 허한 곳을 방어하고 서쪽을 진압한다는 의미에서 각각 [방어대장군], [진서대장군]이라 새겨져 있다. 방어대장군은 남장승으로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나온 둥근 눈에 주먹코와 아래로 쭉 뻗은 송곳니가 있다. 가슴에 수염이 있으며, 귀가 없는 것이 특이하다. 진서대장군은 여장승으로 머리에는 벙거지 모양의 돌 모자가 씌워져 있고 둥근 눈에 주먹코와 귀가 있다. 다른 여장승에서는 찾아보기 드물게 속눈썹이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