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정취암

정취암

2026-08-27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둔철산로 675-87

대성산의 기암절벽에 자리한 정취암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정취암 탱화가 유명한 사찰로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간다 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일컬었다. 신라 신문왕 6년 동해에서 아미타불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비추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고 하며 이때 의상대사께서 두 줄기 서광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정취사를 창건하였다. 정취암은 고려 공민왕 때 중수하고 조선 효종 때 소실되었다가 봉성당 치헌선사가 중건하면서 관음상을 조성하였다. 1987년 도영당은 원통보전공사를 완공하고 대웅전을 개칭하여 석가모니 본존불과 관세음 보살상, 대세지보살상을 봉안하였다. 1995년에 응진정에 16나한상과 탱화를 봉안하고 1996년 산신각을 중수하여 산신탱화를 봉안하였으며 탱화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인근에 둔철생태공원과 선유동계곡 등 아름다운 자연관광지가 있는 지역이다.

산청 법계사 삼층석탑

산청 법계사 삼층석탑

2025-09-09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대로 320-292

지리산 천왕봉 동쪽 중턱에 자리 잡은 법계사는 544년에 연기조사가 세운 절이라 전한다. 한국전쟁 당시의 화재로 토굴만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최근에 법당을 지으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법당 왼쪽에 위치한 이 탑은 바위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몸돌 각 모서리에는 기둥을 넓게 새겼다. 각 층의 지붕돌은 두터운 편이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3단이다. 탑의 머리장식 부분에는 포탄 모양의 돌이 얹혀있는데, 나중에 보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바위를 기단(基壇)으로 이용한 탑은 신라 이후로 유행하였는데, 이 탑처럼 아래 기단부를 간략하게 처리한 경우는 드물다. 양식이 간략화되고 투박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에서 벗어난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고양향교

고양향교

2026-03-19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양로285번길 33-13 (고양동)

고양향교는 조선 숙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명륜당, 전사청, 외삼문은 1984년에 새로 지었다. 대자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고양향교는 홍살문을 시작으로 하여 명륜당 등의 한옥 건물과 담장, 굴뚝, 기와 등이 어우러져 전통의 건축미가 잘 남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앞의 외삼문 쪽에는 공부하는 장소를 두고, 뒤의 내삼문 안에는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두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었다. 건물들을 비스듬히 배치하여 배수와 통풍, 경관 등을 세밀하게 고려하였다. 매년 음력 8월 27일,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가르침과 그 학덕을 기리고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025-03-21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화채봉길 313

진전사의 옛터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도의국사가 창건한 절이라 전하는데, 터 주변에서 ‘진전[陳田]’이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탑은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날아갈 듯한 옷을 입은 천인상[天人像]이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구름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웅건한 모습의 8부신중[八部神衆]이 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1층 몸돌에는 각기 다양한 모습의 불상 조각들이 있다.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려져 있어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3층 지붕돌 꼭대기에는 받침돌만 남아있을 뿐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1층 몸돌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양면 쌍산의로 459

쌍봉사 철감선사탑은 쌍봉사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 승려 철감선사 도윤의 유골을 봉안한 불탑이다. 철감선사는 통일 신라시대의 승려로, 28세 때 중국 당나라로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였다. 문성왕 9년(847) 범일국사와 함께 돌아와 풍악산에 머무르면서 도를 닦았으며, 경문왕대에 이곳 화순지역의 아름다운 산수에 이끌려 절을 짓게 되는데, ‘쌍봉’인 그의 호를 따서 ‘쌍봉사’라 이름하였다. 경문왕 8년(868) 71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니, 왕은 ‘철감’이라는 시호를 내리어 탑과 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탑은 신라 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 원당형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세부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짜 맞춘 수법이 목조 건물의 수법을 그대로 구현한 형태이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승탑은 받침돌 위에 몸돌과 지붕돌을 놓은 모습이다. 대부분 잘 남아 있으나 아쉽게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진 상태이다. 탑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은 밑돌, 가운데 돌, 윗돌의 세 부분으로 갖추어져 있으며, 특히 밑돌과 윗돌의 장식이 눈에 띄게 화려하다. 2단으로 마련된 밑돌은 마치 여덟 마리의 사자가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저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앞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 흥미롭다.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

2025-12-18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화채봉길 368

멀리 동해가 내다보이는 진전사터 안의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는 탑으로, 진전사를 창건한 도의선사의 묘탑으로 추정된다. 도의는 선덕왕 5년(784)에 당에서 유학하고 헌덕왕 13년(821)에 귀국하여 선종을 펼치려 하였으나, 당시는 교종만을 중요시하던 때라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이 절로 들어와 수도하다가 입적하였다. 이 탑은 일반적인 다른 탑과는 달리 8각형의 탑신(塔身)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아랫부분이 석탑에서와 같은 2단의 4각 기단(基壇)을 하고 있어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 모양을 새기고, 그 위로 탑신을 괴기 위한 8각의 돌을 두었는데, 옆면에는 연꽃을 조각하여 둘렀다. 8각의 기와집 모양을 한 탑신은 몸돌의 한쪽 면에만 문짝 모양의 조각을 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하지 않았다. 지붕돌은 밑면이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낙수면은 서서히 내려오다 끝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로 살짝 들려 있다. 석탑을 보고 있는 듯한 기단의 구조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도의선사의 묘탑으로 볼 때 우리나라 석조부도의 첫 출발점이 되며, 세워진 시기는 9세기 중반쯤이 아닐까 한다.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치밀하게 돌을 다듬은 데서 오는 단정함이 느껴지며, 장식을 자제하면서 간결하게 새긴 조각들은 명쾌하다. (출처 : 국가유산청)

합천 백암리 석등

합천 백암리 석등

2025-10-23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

합천 백암리 석등이 세워져 있는 곳은 백암사 또는 대동사터라고 전하여 오나 분명하지 않으며, 이 석등도 무너져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한 것으로 원래의 위치는 알 수 없다. 8장의 잎이 달린 연꽃을 조각한 둥근 아래받침돌 위에 아무런 새김이 없는 8각의 긴 가운데기둥을 세워 신라석등의 경쾌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 위로 꽃봉오리 같은 윗받침돌은 안에 얕은 홈을 파서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화사석은 8각으로, 4면은 창을 내고 4면은 사천왕입상을 매우 뛰어난 수법으로 도드라지게 새겼다. 화사석은 불을 밝혀두던 공간으로 불빛이 있던 옛모습을 떠올리면 흥미롭다. 지붕돌은 밑면에 1단의 받침이 있으며, 그 안쪽으로는 홈을 파서 화사석을 끼워 고정시키도록 되어 있다. 지붕돌의 경사면은 얇지만 뚜렷하게 각을 지어 신라시대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귀퉁이에는 꽃조각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깨어져 그 흔적만 남아있다. 꼭대기에는 8잎의 연꽃 문양조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을 화사하게 장식하였고, 특히 화사석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과 사천왕상의 배치 등은 주목되는 수법이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인 8세기 후반의 우수한 석등이라 할 수 있다.

서울 의릉(경종·선의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2026-02-27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 (석관동)

조선 20대 경종(재위 1720~1724)과 그의 비인 선의왕후의 어씨의 무덤이다. 경종은 희빈 장씨의 소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하여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일반적으로 쌍릉은 좌·우로 조성하지만 이 무덤은 앞·뒤로 무덤을 조성한 상하이봉릉(上下異封陵)이다. 이처럼 앞·뒤로 만든 것은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으로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영릉에서 처음 나타났다. 왕릉에는 무덤 둘레에 병 풍석을 세우지 않고 대신 무덤 주위에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했는데, 난간석의 기둥에는 십이간지가 방위에 따라 문자로 새겨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 망주석·장명등·문무석과 말·양·호랑이가 있다. 무덤의 석물 배치와 양식은 명릉과 같이 규모가 작고 간소한 후릉제도를 택하였다. 왕비릉의 석물 배치는 왕릉과 같으나 무덤 뒤에 담을 두르지 않았다.

행주서원

2026-03-12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산성로 127-17 (행주외동)

행주서원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왜군과 싸워 큰 공을 세운 권율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842년(현종 8)에 건립된 서원이다. 조선 후기에 헌종은 고양 서삼릉에 행차할 때마다 임진왜란 때 공적이 높은 권율 장군의 제향을 지낼 건물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다가 왕명을 내려 행주대첩이 일어났던 산성의 아래쪽 한강가에 사당을 짓게 하고 기공사라 하였다. 권율 장군은 1582년(선조 15)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다. 1593년(선조 26)에 전라도 병력을 인솔하여 행주산성에 주둔하던 중 왜군 3만 명과 싸워 2만 4천 명을 사살하는 행주대첩 전과를 올려 그 공로로 도원수가 되었다. 왜군이 철수한 선조 37년에 노환으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 세상을 떠났다. 죽은 후 선무공신 1등에 영의정의 벼슬을 받았고, 시호를 충장공이라 하였다. 행주서원은 미리 예약을 한 후에 서원 안을 둘러볼 수 있고, 평상시에는 바깥에서 담장 너머로만 볼 수 있다.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025-01-20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고려 목종 때의 승려인 홍법국사의 부도로, 충청북도 중원군(현 충주시)의 정토사 옛터에 있던 것을 1915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홍법국사는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에 활약하였던 유명한 승려로서 당나라에서 수행하고 돌아와 선(禪)을 유행시켰으며, 고려 성종 때 대선사(大禪師)를 거쳐 목종 때 국사(國師)의 칭호를 받았다. 기단(基壇)은 네모난 바닥돌을 깐 후에 8각의 아래받침돌을 놓고, 그 위로 엎어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높직한 괴임을 두어 가운데 받침돌을 올린 후 다시 윗받침돌을 얹어 놓은 모습이다. 가운데 받침돌에는 구름을 타고 있는 용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고, 윗받침돌에는 아래와 대칭되는 솟은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탑신(塔身)의 몸돌로, 둥근 공모양을 하고 있다. 몸돌에는 공을 가로·세로로 묶은 듯한 십(十) 자형의 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그 교차점에는 꽃무늬를 두어 장식하고 있다. 지붕돌은 별다른 장식은 없으나 여덟 곳의 모서리마다 꽃조각을 둔 것이 눈에 띄는데, 아쉽게도 대부분이 없어져 버렸다. 삿갓 모양으로 깊숙이 패인 지붕돌 밑면에는 비천상 (飛天像)이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성에서는 8 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신라의 부도형식을 잃지 않으면서 일부분에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작품으로, 제작연대는 홍법국사가 입적한 고려 현종 8년 (1017) 이후로 보고 있다. 공모양의 몸돌로 인해 ‘알독’이라고 불려지기도 한 이 탑은 새로운 기법을 보여주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부도로, 섬세한 조각과 단조로운 무늬가 잘 조화되어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