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6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도고산로587번길 73-21
울창한 나무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북향으로 자리 잡은 아산 용궁댁은 순조 25년(1825)에 지었다고 한다. 집의 진입로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있고, 바깥마당에는 무지개처럼 휘어진 소나무 줄기가 대문을 대신하고 있다. 안채는 5칸 겹집에 양쪽을 홑집으로 꺾어 덧붙여 ‘ㄷ’ 자 모양을 이루고 있고, ‘一’ 자형의 중문간채가 튼 ‘ㅁ’ 자형을 이루고 그 앞에 ‘ㄱ’ 자형의 사랑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日’ 자형의 배치를 하였다. 대청 앞쪽에는 후대에 시설된 듯한 유리문이 있고, 대청의 왼쪽으로 제사에 쓰였던 곳으로 보이는 2칸의 찬방이 있다. 사랑채는 앞면에 툇마루를 두었고, 모두 덧문을 달았는데 이것은 북향집이기 때문에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후대에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를 가로막고 있는 중문간채는 중문을 들어서서 곧바로 안마당을 향해 있지 않고 꺾어 들어가도록 하였다. 특별한 정원시설은 없지만 집안 곳곳에 매화, 소나무, 향나무, 감나무 등을 심어 아름답게 꾸몄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2025-03-16
경상남도 거제시 사등면 청곡리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경상남도 거제시 사등면 국도변에 약 50m의 간격을 두고 바둑판식 고인돌 3기가 있다. 국도변 언덕에 있는 1호는 현무암으로 된 덮개돌을 2개의 작은 받침돌이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 고인돌의 머리가 향하는 마을은 망한다는 전설이 있어서 옛날부터 마을사람들이 돌머리를 돌리는 싸움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서로 화합하여 마을 중간지점으로 돌머리를 돌려놓았다고 한다. 2호는 국도변에서 50m 지점의 밭 가운데에 있는데 중간이 파괴된 채 흙속에 묻혀 있어 하부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3호는 청곡 마을 입구에 있는데, 동네 수호신 같이 동네를 지키고 있으며, 정월 대보름이면 이곳에서 마을사람들이 안락제를 지냈다고 한다. (출처: 국가유산청)
2025-11-12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촌길 27-7
고령 신촌숲은 고령군 쌍림면에 위치한 자연발생유원지이다. 마을 뒤쪽으로는 산이 있으며, 야산에서 흐르는 내와 경남 합천군 묘산에서 흘러오는 내가 서로 합류하여 안림천을 이룬다. 아름드리나무가 무성하며 깊지 않은 안림천은 시원한 숲 속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으로 여름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다. 무엇보다 주차공간과 야영지가 넓고 개수대와 샤워실이 있어 무료 캠핑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신촌숲 주변 2㎞에 걸쳐 전망 및 관찰데크, 진입 계단, 램프, 학습장, 산책로, 지압로, 기타 체육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안림교의 상류와 하류 1㎞ 구간에 자연적으로 자생하고 있는 수목을 따라 산책로를 비롯해 지압로 등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2025-12-10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03-1
봉하마을은 진영읍에서 동쪽으로 4.5km 떨어진 봉화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진영단감과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는 초가집 형태로 본채에는 방 두 칸과 부엌이 있고, 아래채에는 헛간과 옛날식 화장실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8살까지 살았던 집으로 2009년 9월 복원하였다. 생가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되, 방문객의 쉼터가 되길 바랐던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일부 수정된 형태로 복원했다.
2025-09-17
경상남도 김해시 대청계곡길 170-563
우리나라에 불교가 최초로 전래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경내에는 우리나라 최초 불법을 전파했다고 전하는 장유화상의 사리탑이 있다. 사찰 내에는 사리탑이 있는데,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의 처남인 장유(長游:본명 허보옥)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석조팔각사리탑(石造八角舍利塔)이다. 석탑의 크기는 높이 241㎝로, 팔각기단 위에 팔각의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을 올렸다. 장유암 근처에는 해발 801m의 불모산 용지봉 준령에서 흘러내리는 장유대청계곡과 수려한 자연경관이 펼쳐져 장유암을 찾는 이들에게 세상사 시름을 모두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2026-07-22
경상남도 김해시 분성로261번길 35
수릉원은 가야를 건국한 수로왕을 기념하기 위한 공간이다. 수로왕과 허왕후가 함께 거닐었던 정원과 같은 이미지로 수로왕릉과 가야 왕들의 묘역인 대성동고분군을 이어주는 단아한 숲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39,600㎡ 규모의 생태공원으로 수로왕과 허왕후의 만남을 테마로 조성되었으며 동쪽에 자리한 산책로는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을 기념하는 공간으로서 구실잣 밤나무와 가시나무, 상수리나무 등 곧게 뻗은 나무를 심어 남성의 느낌이 들도록 하였고 서쪽은 대성동고분군을 지나 허왕후를 위한 공간으로 야생감, 돌배, 살구, 개복숭아 등 열매를 맺는 나무들을 심었다. 정원의 연못은 해상왕국인 가야를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옛 가야시대 습지에 서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시연꽃이나 노랑어리연꽃 등을 심었다. 주요 시설로는 수로왕을 위하여 허황후를 위하여, 한마당, 가야루, 기억의 정원, 사색의 정원, 민속박물과 등이 있다. 인근에 수로왕릉, 대성동고분군이 있고 바로 옆에 김해민속박물관과 김해한옥체험관이 있어 가야시대의 역사와 문화, 생활상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2025-10-23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관해정길 17
관해정은 회원서원이 있었다고 해서 서원곡이라 부르는 무학산 계곡 일대에 관해정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 한강 정구(鄭逑) 선생을 추모하는 뜻으로 그의 문하생들인 장문재(張文哉)선생이 지은 것으로 전한다. 서원은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지고 정자만 남아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을 중심으로 외삼문(外三門), 관리사(管理舍) 등이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한강과 그의 문하생인 미수 허목(許穆)의 향사(享祀)를 모시고 있다. 관해정 앞에 있는 수령 440년이 넘은 은행나무는 한강(寒岡)이 손수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25-12-18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
고려 말 충렬왕 7년 원나라 세조가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위하여 정동행성을 두었으나 일본 정벌이 2차에 걸쳐 실패로 돌아간 그해 10월, 환주산(현, 자산동 무학초등학교 뒤쪽 마산시립박물관 일대)에 둔진을 설치하였다. 몽고정은 이곳의 둔진군이 용수를 쓰기 위해 만들었던 우물로 추정되고 있다. [몽고정 맷돌]이라고 불리는 지름 1.4m가량의 원방형의 돌이 몽고정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를 차륜이라는 설도 있으나, 맷돌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물 곁의 석비에 몽고정이라 써서 세워둔 것은 1932년 마산 고적 보존회(일본인 고적 단체)가 멸시적 감정에서 명명한 것으로, 그 이전에는 고려정이라 불렸을 것이다. 몽고정은 지금은 나무 덮개가 덮여 있지만, 근대까지만 해도 인근 주민들이 사용하는 공동 생활용수이자, 물맛이 좋아 간장 공장에서도 사용되었다.
2025-10-23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밤밭고개로 442
신라 말기 학자인 해운 최치원 선생이 대를 쌓고 해변을 산책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며 최치원 선생 사후에 그의 학문과 인격을 흠모한 고려, 조선 시대 많은 선비가 이곳을 찾게 되었고, 이곳은 우리나라 선비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조선 숙종 17년에 최위가 창원도호부사로 부임하여, 대를 정화하고 천세만세에 유린되지 말라고 한 유허비를 동편 중앙에 세웠고, 서편에는 1930년경에 최씨 문중에서 추모비를 세워 팔작지붕 비각 안에 안치하였다. 삼국사기, 보한집, 역옹패설,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문선, 읍지 등 많은 기록을 살펴보면 그 경관이 아름답고,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는 동안 많은 선비와 시문학의 대가들이 최치원의 학덕을 흠모하여 끊임없이 찾아온 아름다운 바닷가의 '대' 였다.
2025-09-22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의림로 382
수리봉 자락에 있는 사찰인 의림사에는 의림사 3층 석탑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양식을 보인다. 이중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형성하여 상하 기단면석에는 양 우주와 1탱주를 모각하였다. 탑신은 각 층에 양 우주가 모각 되어 있으며 옥개 받침은 5단이다. 상륜부는 노반만이 남아 있으며 보주는 후에 끼워 넣은 것이다. 1974년 주지 도각 스님이 요사 앞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우면서 일부 보수를 하였는데 높이는 3m이다. 이 탑 주변에는 석등의 대석과 당간지주 등의 석물 부재가 남아 있으며 사찰 입구 약 1㎞ 지점에는 석종형의 조선시대 부도 3기가 잘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