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본덕동
호가정은 조선 중·명종대의 문신 설강 유사[雪江柳泗](1502~1571)가 만년에 지은 정자이다. 호가정이라는 이름은 송나라 소강절이 말한 호가지의[浩歌之意]에 담긴 뜻을 취하여 지었다. 이 정자는 1558년(명종 13)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불타 없어져, 1871년(고종 8년)에 다시 세웠다. 그 후 1932년과 1956년 중수하였다. 정자는 정·측면이 다 같이 3칸인 골기와 팔작지붕의 건물로, 당초에는 중앙에 거실을 두었으나 중수할 때 이를 없애고 전부 우물마루로 고쳤다. 사방좌우 모서리에는 1칸씩의 낮은 난간을 두었다. 사방중앙칸의 가운데는 댓돌을 두어 출입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호가정이 위치한 노평산 기슭은 앞에 극락강과 황룡강이 합류하여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이곳에는 호가정 현판을 비롯하여 설강의 호가정기와 노사 기정진의 호가정 중건기, 후손 유보한의 호가정 중수기, 호가정원운, 근 차설강정운, 근 차판상운등과 오겸, 이안눌, 김성원 등이 누정제영[樓亭題詠]을 새긴 편액이 걸려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비아안길 19
조선시대 문신 조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유허비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비아동에 위치한 조형어린이공원 내에 있다. 유허비는 선현의 자취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를 말한다. 취병조형유허비는 조형의 6대손 조운한이 목사로 부임하여 선조인 조형(1606~1679)을 기리기 위하여 조형이 태어난 옛터에 1873년(고종 10)에 세운 비석이다. 비의 형식은 화강석 1매에 비의 지붕과 몸체를 함께 조성하였고 기단은 별개의 돌이다. 특징은 높이보다 너비가 긴 가로형태의 양식인 점이다. 즉 비의 총 높이 95㎝, 너비 120㎝, 두께 28㎝이며 문기는 모두 346자로 음각문이다. 현재 유허비는 원래 있었던 곳에서 택지개발 때문에 북동쪽으로 50여 m 옮겨진 것이다. * 한일관계사의 주요 자료 부상일기의 조형 선생 조형(1606∼1679년)은 조선시대 현종 때의 문신으로 자는 군헌, 호는 취병이며 본관은 풍양이다. 1630년(인조 8년) 명경관에 급제하여 사국에 재임할 때 허목의 사건에 관련되어 부여에 귀양 갔다. 1655년 대사간 겸 통신상사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와 병조참판, 경기도 관찰사, 도승지,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나 1675년 장열대비의 복제문제로 인하여 경기도 양주에 추방되었다. 1665년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와 《부상일기(扶桑日記)》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17세기 한일관계사의 중요 자료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신으로서 여러 역사서에 기록된 인물도 흔치 않고, 또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일원에는 학술적 가치를 가진비는 더욱 없으므로 이 비는 취병선생에 대한 연구와 지방사 연구, 금석학 관련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2026-07-06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풍영정길 21 (신창동)
풍영정은 광산구 광신대교 아래로 흐르는 극락강변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강물도 맑지 않고 유속도 느린데다 난개발로 인한 주변지역의 경치 훼손으로 당시의 운치를 만끽할 수는 없지만 지그시 눈을 감고 앉았으면 시수가 저절로 떠오를 만큼 풍광이 수려한 곳이다. 여름이면 강을 타고 불어온 바람이 시원하고 겨울이면 눈 덮인 주변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어 마치 절해고도를 연상하게 하는 곳이다. 또한 풍영정은 조선조 명종 때 승문원 판교를 지낸 칠계 김언거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정자이다. 당시 풍영정은 자연의 풍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자 학문과 예술을 교류하는 문화의 장이었다. (출처 : 오매광주)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박호동
양씨삼강문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박호동 박뫼마을 입구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양산숙과 가족 6명의 충·효·열·행을 기리기 위해 1635년 건립된 정려각이다. 정려는 충신, 효자, 효부,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표창하는 일을 말한다. 박뫼마을은 양산숙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양산숙은 형인 양산룡과 함께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 휘하에 참여하여 여러 전공을 세우다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이후 왜군이 전라도 지역으로 침입하자, 양산룡은 어머니와 아우, 누이와 피난을 가다가 현재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몽탄면 지역인 삼양포에서 왜적을 만나 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양산숙의 부인 광산이씨는 현재의 전라남도 무안군의 승달산에서 왜적을 만나 저항하다가 자결하였다. 양씨삼강문에서는 임진왜란 때 광주 지역의 모습과 충, 효, 열을 강조한 조선 후기 사회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소촌로46번길 46 (소촌동)
송호영당은 눌재 박상(朴祥)과 사암 박순(朴淳)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1728년에 건립되었다. 원래 박상의 출생지인 서창동 절골마을에 있었으나 후에 현 위치로 옮겼다. 이곳은 1995년 12월 22일부터 1996년 4월 16일까지 사당, 담장, 진입계단의 보수공사가 이루어졌고, 1997년 10월 12일부터 1998년 1월 16일까지 효자각을 건립하였다. 이후 1998년 9월 2일부터 10월 14일까지 사우석축을 보수하였다. 이 영당의 기단은 시멘트 기단 위에 중앙은 영정봉안장소로 사용되고 좌우에는 온돌방을 만들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하였다. 뒤쪽 벽에는 창방소로 장혀위에 납도리를 걸쳤고 전면에는 단청을 하였으나 퇴락하였다. 창호는 분합문이며 빗살(교살) 창살로 되어있고 주두 위의 포작은 익공식을 따르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담징을 붉은 벽돌로 쌓았으며 대문은 평문이다. 눌재 박상(1472∼1530)은 연산군 7년(1501)에 정시을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를 시작으로 중종 24년(1529) 나주목사를 마치기까지 약 29년간 조정에 몸담았다. 사암 박순(1523∼1548)은 그의 조카로 조선중기의 문인학자이다. 사암은 명종 8년(1553)에 정시문과에 장원한 뒤 예문관전적을 시작으로 약 35년간 조정에 있었다. 송호영당에는 사암과 눌재의 문집도 보관되고 있다.
2026-07-02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고흥읍 흥양길 90-29
고흥향교는 세종 23년인 1441년에 지방 유생을 교육하고 유교 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고흥현 서문 밖에 창건된 교육기관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유림들의 노력으로 숙종 2년인 1676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되었다. 향교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과 배향 공간인 대성전을 중심으로 전학후묘의 전통적인 배치를 갖추고 있으며,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고흥 지역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담당하며 지역 유학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고흥군청에서 차량으로 약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인근에는 존심당과 고흥 아문 등 역사문화유산이 자리해 함께 둘러보기 좋다.
2026-07-02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도화면 발포성촌길 3
발포만호성은 현재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성촌마을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발포만호성은 조선시대의 군사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적지로 전라좌수영 산하의 5관 5포 중 수군만호가 다스린 수군 진성으로서 성종 21년(1490년) 축성되어 고종 31년(1894년) 폐지된 조선 초기의 성이다. 이 성은 선조13년(1580년) 이순신 장군이 발포만호로 부임해와 18개월 동안 재임했던 곳이다. 성벽은 항아리 모양에 가까운 사다리꼴 형태로 성안의 건물지로서는 동헌과 객사, 배수로, 무기고, 동문, 서문, 남문, 망루터 등이 남아 있는데 이는 1977년 전남대학교 박물관 발굴 조사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풍양면 대청길 33-11
우리나라 유자의 최대 산지인 고흥군에 위치한 고흥유자공원은 풍양면 일대 유자 재배 단지에 있는 공원이다. 유자 재배지로서 천혜의 기후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고흥은 전국 유자 생산량의 약 60~70%를 차지한다. 고흥유자공원은 고흥군이 2008년 1년 동안 조성한 공원으로 전망대, 산책로, 탐방로, 약수터, 쉼터를 갖추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유자나무가 양옆으로 심어져 있고, 유자 밭 사이로 난 탐방로를 지나 전망대에 오르면 일대에 펼쳐진 대규모 유자 재배 단지와 고흥만의 다도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대한민국 유자 1번지라 할 수 있는 고흥군 풍양면 대청마을은 11월이 되면 2019년부터 고흥유자석류축제를 열고 있다. 주변 관광지로는 차량 이동 약 20분, 14㎞ 거리에 운암산이 있고, 운암산의 반대 방향으로 차량 이동 약 15분, 15㎞거리에 녹동항이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도양읍 목넘가는길 34
쌍충사는 충열공 이대원과 충장공 정운을 배향하는 사당이다. 이대원은 1587년 녹도만호로서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적을 맞아 전과를 올렸고 손죽도 해상에서 순절하였다. 정운은 유성룡의 천거로 1591년 녹도만호로 부임했고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과 함께 옥포·한산해전 등에서 선봉장으로서 전과를 올리고 몰운대에서 순절했다. 쌍충사는 1605년 이대원의 아들인 이대상이 세웠으며, 1990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어졌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내부에는 이대원과 정운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쌍충사는 봉암리 해안가 높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어 소록도와 녹동항, 녹동항 바다정원이 바로 보이며 이곳을 둘러본 후 뒷문으로 나가면 공원형식의 녹도진 성지가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은 고흥반도 남서쪽에 위치한 어항으로 1971년 12월 21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으며 소록도, 거문도, 백도, 제주도를 연결하는 해상 교통의 중심지이다. 또한 고흥군의 주요 어업항으로 연근해 어획량의 약 7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깊은 수심과 넓은 수로를 가지고 있어 대형 선박의 입항이 가능하며 항만 주변에는 여객터미널, 수산물 시장, 공영주차장 등이 있어 이용이 편리하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녹동신항 건설 공사를 진행하여 현재는 구항과 신항으로 나뉘어 있다. 구항은 녹동 재래시장이 들어서 있고, 신항에서는 제주도와 거문도 여객선이 운항 중이다. 인근 섬에서 생산되는 활어, 선어 등과 김, 미역, 다시마, 멸치 등 모든 해산물의 집산지로 고흥 연근해에서 생산되는 각종 수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름 80m, 둘레 251m의 인공섬으로 바다 위 떠 있는 정원을 형상화한 녹동항 바다정원과 돔 영상관, VR 체험관이 있어 녹동항의 이모저모를 경험할 수 있다. 매년 5월에는 녹동 바다 불꽃축제가 열린다. 주변 관광지로는 쌍충사, 소록도 중앙공원, 거금대교, 도양 해안일주도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