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8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대산면 신계리
신계리 마애여래좌상은 풍악산 동쪽 중턱에 우뚝 솟은 바위의 남면에 새겨진 불상으로 자연 암석의 한 면을 다듬어 거기에 부처의 앉은 모습을 돋을새김 한 마애불이다. 고려 초 도선스님이 하룻밤 만에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줄에 꿴 구슬로 둥글게 감싸 몸 둘레에 서린 빛을 표현한 것은 희귀한 예이다. 왼쪽 어깨에 걸친 옷은 단순한 선으로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이목구비를 비교적 생동감 있게 조각하였다. 넓은 어깨, 불룩한 가슴, 통통한 팔, 다리에도 입체감이 실려 있어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코와 양 귓불 일부분이 부서져 없어졌으나,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 배경을 알 수 없다. 신계리 마애여래좌상은 상호의 표정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으나 경직된 분위기와 법의 주름에 보이는 선각 기법 등을 통하여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6-10-01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비전길 7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가왕 송흥록 선생이 태어난 곳이며, 여류 명창 박초월의 소리의 고향이다. 예로부터 운봉은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하나인 옥보고가 거문고를 크게 발전시킨 곳(운상원)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순조 때 화수리 비전마을에서 태어난 송흥록 선생은 민속음악 가운데 가장 느린 진양조를 판소리에 응용, 판소리의 표현 영역을 확대시키는 등 다양한 음악 기교를 사용함으로써 극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판소리를 완성시킨 인물이다. 특히, ‘춘향가’의 옥중가 중 귀곡성(귀신 울음소리)은 그가 창작한 독창적인 판소리 창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송흥록 선생으로부터 출발된 동편제는 형의 고수로 지내다가 뒤에 형에 버금가는 명창이라는 소리를 들은 아우 송광록과 손자 송만갑이 대를 이어온 이후 계층과 지역을 초월한 광범위한 애호를 받는 예술로 부상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무덤에서는 ‘내 소리를 받아 가라’는 귀곡성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2000년부터 비전마을에 국악 성지가 조성되며 송흥록 선생 생가와 박초월 명창 고택이 복원되었다.
2025-12-15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은천계곡은 전북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은천마을의 마을 명칭에서 유래됐다. 은천계곡은 대아수목원으로 건너가는 다리 상류 부분으로 계곡을 따라 음식점, 펜션, 캠핑장 등이 위치해 있다. 대아수목원은 산림 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으로 계곡과 함께 연계 관광을 하기 좋다. 수목원으로 들어가는 다리에서부터 계곡은 깊어질수록 주변의 산과 어우러지며 운치를 더한다. 맑고 잔잔하게 흐르는 은천계곡에서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여름이면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2025-10-30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광로230번길 138
봉학골 산림욕장은 다양한 산림 휴식공간을 조성하여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정서함양에 기여하고자 조성된 곳으로 가족단위 휴양지로 안성맞춤이다. 주요 시설로는 조각공원, 식물원, 맨발숲길, 자연학습장, 물놀이장, 야외 다목적 광장 등이 있다. 조각공원에는 여러 장승과 다양한 곤충, 동물들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기에도 좋고 사진 촬영 장소로 적합하다. 조각공원을 지나면 작은 식물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야생화와 희귀한 수목이 식재되어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해미석, 대리석, 통나무 등 다양한 재료로 조성된 맨발숲길에서는 혈액순환, 면역력 개선에 도움을 주는 맨발 걷기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물놀이장은 2개소가 설치되어 있어 여름철에 많은 이용객이 찾고 있으며, 다목적 야외광장에는 운동시설, 놀이시설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자연학습장에서는 자연학습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하고 있다.
2026-10-01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소이로61번길 63
미타사는 고려 전기에 창건된 대한불교조계종단의 법주사 말사이다. 1965년에 8칸 규모로 목조 와가 형태의 불당을 세웠고, 이후 확장하여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의 극락전을 건립하였다. 또한 그 서쪽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형태의 삼성각을 세웠다. 1980년에는 극락전 앞 서쪽에 정면 7칸, 측면 2칸 반의 주심포식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의 선실을 건립하였고, 극락전 앞으로는 3층 석탑과 요사채를 건립하였다. 1979년 지은 극락전의 안에는 석가여래 좌상과 아미타여래 좌상, 관세음보살 좌상, 대세지보살 좌상 등이 봉안되어 있고, 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걸려 있다. 삼성각 안에는 고려 말 작품으로 추정되는 높이 90㎝의 석조 아미타여래 좌상 1구가 있고, 약 700m 떨어진 진입로 서쪽의 암벽에는 고려 후기작으로 추정되는 높이 405m의 마애 여래 입상이 보호각 안에 있다.
2026-07-06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신촌동
송정주민과 광산구민의 휴식 공간인 송정공원은 금봉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한 현충탑과 용아 박용철 시인의 시비, 국창 임방울 선생의 기념비, 의병대장 금제 이기손 장군의 의적비, 이밖에도 많은 충혼비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지역 주민의 지식의 산실이 되고 있는 송정다가치문화도서관이 있으며, 휴식공간 및 체육시설 등이 있는 힐링 산책로이다. 공원 내 금선사(송정신사)는 일제강점기 동안 일제의 군국주의적 침략정책과 식민통치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워진 신사 중 하나이며 현재 한국 내에 남아있는 신사 가운데 유일하게 목조로 만들어진 신사이다. 금선사 일대는 일제강점기와 관련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송정신사 주변에 식재된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도심 속 자연을 느끼게 해주는 녹색 휴식 공간이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첨단중앙로182번길 23 (쌍암동)
쌍암공원은 광산구 첨단지구 내 광주과학기술원 앞에 위치해 있다.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호수가 운치를 더하고 있어, 일명 호수공원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호수 주변을 따라 잘 조성된 철쭉꽃 숲들과 소나무숲이 있고 하늘을 향해 내뿜는 부유폭기는 상쾌함과 시원함을 더해준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도심 속의 작은 예술축제 등 이벤트 행사가 열린다. 편의시설을 갖추고 깨끗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이곳은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 좋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동호동
조선시대 정철의 스승 송천 양응정의 묘역으로 현재 제주 양 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묘역에는 1581년(선조 14) 유림들이 세운 묘비와 석물이 있는데 정교하고 고풍스럽다. 또 이곳에는 양응정의 아들이며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민공 양산숙의 묘와 양응정의 손자인 한림학사 양만용의 묘가 있다. 조선 조 명종~선조 때의 문장가이자 문신인 송천 양응정의 선비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 묘역을 기념물로 지정하였으며, 산 아래에 제각이 있고 묘 앞에 민병승이 찬한 신도비가 있으며 묘제일은 음력 10월 10일이다. 양송천묘역은 조선 중기의 분묘로 묘비·망주석·문인석 등 각종 석물이 잘 남아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광곡길 133
월봉서원 내에 위치한 빙월당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을 배향하는 곳이었으며, 백우산 기슭 광곡(너브실) 마을에 있다. 기대승의 장남 기효증이 1607년(선조 40)에 아버지를 추모하여지었으며 1938년 기대승의 후손에 의해 이전·개축되었다. 월봉서원은 당초 고봉을 추모하기 위해 고봉 사후 7년 만인 1578년(선조 11)에 낙암(현 신룡동)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고 동천(현 산월동)으로 옮겨서 건립했는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1941년 현 위치에 빙월당을 새로 지었다. 이어 1978년부터 사당과 장판각, 내삼문, 외삼문의 건립에 착수, 1981년 모두 준공하였다. 빙월당의 당호는 정조가 고봉의 고결한 학덕을 상징하는 ‘빙월설월(氷月雪月)’의 뜻으로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월봉서원 주변으로는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풍치가 아름답고 경내도 조용하다. 가볍게 산책을 즐기며 관람하기 좋고 역사 공부를 위하여 아이와 방문하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많은 편이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본량동서로 180-48
일제강점기의 용진정사는 한말의 도학자 후석 오준선(1851∼1931)이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자 망국의 한을 달래면서 용진산에 강당을 짓고 후진 양성에 힘쓴 곳으로써 한말 호남 의병활동의 본거지이기도 하였다. 정사는 학문을 가르치거나 정신을 수련하기 위해 마련한 집을 뜻한다. 용진정사는 용진산 남쪽의 산록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원래 용진사가 있던 곳으로 삼봉 정도전, 우암 송시열 등이 다녀갔던 곳으로 전해진다. 절이 허물어진 뒤 청안 이 씨들이 그 터를 가지고 있었으나, 후석이 정사를 짓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 옛 절터의 상대와 중대를 희사함으로써 정사를 지을 수 있었다. 후석이 별세한 뒤 문인들이 정사 동쪽에 3칸의 용진영당을 세우고 1924년 석지 채용신이 그린 초상화를 모셨다. 영당의 좌우벽에는 큰아들 북파 오헌수와 둘째 아들 도호 오동수의 영정이 함께 걸려있다.